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
최준호와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제임스 리드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눈 대화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천둥새. 그것은 미국의 대외비이자 전설로 불리는 존재이며, 그 존재가 미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신수였다.
미국은 이 존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닌 공존을 선택했다. 천둥새는 강력한 신수이며 지혜로운 존재였고, 미국에 많은 것을 알려준 존재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어둠도 존재한다.
천둥새는 세간에 알려진 신수들과 달리 탐욕스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천둥새가 리그와 접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근심이 커져가고 있었다.
파티는 기득권의 결사체라고 할 수 있지만 리그는 체제 전복을 통해 국가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단체였다.
천둥새와 리그의 결탁이 사실이라면 가장 큰 위협에 힘을 보태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천둥새 제거에 동참하느냐는 다른 문제였지만.
“아! 졸라 머리 아파!”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최준호의 제안을 상부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게 어떤 뉘앙스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제임스 리드는 바로 보고를 올리기보다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연락한 상대는 안나 크리스틴이었다.
탁월한 협상가이자 최준호 전문가이기도 한 그녀라면 필요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줄 것이라.
천둥새와 한 번 붙기로 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예상했었나?”
[그의 성향상 탐욕스러운 신수와 부딪치는 면이 많아요. 언젠가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요.]“그래서 어떻게 보고 있지?”
[제 의견을 보고서에 담으려고요?]“높으신 분들은 다른 변수가 일어나는 게 달갑지 않을 테니까.”
[맞아요. 여기에 파티의 입장도 고려되어야 하고요.]하지만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의 위정자들은 천둥새의 행동을 우려하면서도 천둥새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휘둘리고 있다. 이걸 갑자기 쳐낸다면 그 후에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지 짐작하기 힘들다.
실제로 천둥새가 있는 곳에 천둥새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유행하고 있고, 마물이 존재하지 않는 걸 근거로 이곳이 낙원이라는 사이비종교가 횡행하는 중이다.
[그 전에 한 가지 사실을 고민해야 해요.]“뭘 말이지?”
[그는 신수를 사냥할 힘이 있는 건가요? 곁에서 지켜본 입장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초맨?]“그건…….”
제임스 리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준호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그는 이미 홀로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사냥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최소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의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과연 신수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보다 못할까?
이 부분을 놓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그 마물의 진정한 강함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그래도 대련을 하면서 최준호의 끝없는 강함을 겪어봤다. 녀석이 누군가에게 꺾여 쓰러지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설사 그 상대가 신수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제임스 리드와 안나 크리스틴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
* *
졸라맨과 얘기를 나눴고, 상부와 상의가 필요하다고 하니 기다릴 생각이다.
예전의 나라면 다짜고짜 천둥새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둥새는 내가 여태까지 상대해본 적 중 가장 강할 것이다.
그리고 강함이 밝혀진 적 없는 미지의 상대였다.
만전의 상태로 상대하려면 변수를 제거해야 한다.
[만약 미국에서 거절하면?]그냥 잠입해서 처리하지, 뭐.
[그게 뭐야.]일단 만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였다.
졸라맨이 미국의 대답을 가지고 올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정유 운반선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볼 생각이었고.
이게 무사히 돌아오면 많은 변화가 일어날 예정이었기에 적어도 눈으로 보고 떠날 것이다.
[나쁜 판단은 아니야.]천둥새를 상대하려는 이런 내 계획을 용용이는 이렇게 판단했다.
[걔는 탐욕이 커서 민폐를 끼치고 있을 거거든. 그 틈을 잘 파고들었어.]그걸 잘 알고 있으면 미리 좀 말해주지 그랬냐.
[안 물어봐서 대답 못했어!]…얄미운 녀석 같으니라고.
아무튼 이렇게 천둥새를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하면서 남는 시간은 버서커의 썩어빠진 정신을 고쳐주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신경이 분산된다. 아무리 강한 존재도 그것이 약점이 될 수 있고,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휘둘리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난 이렇게 당하는 거야 말로 멍청함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힘을 가졌으면 자신이 판을 주도할 생각을 해야 하지, 왜 닥쳐오지도 않은 위기를 생각하며 몸을 사려야 하는가. 그런 건 힘이 없는 자가 보여야 할 행동이지, 강자가 보여야 할 모습이 아니다.
[근데 걔는 약하잖아.]그건 나나 용용이 네 기준이고.
그래도 버서커 정도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는 된다.
이 정도로 키웠는데 맞고 다니면 곤란하기도 하고.
[그건 그래.]버서커는 소중한 자원이다. 녀석은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며, 영향력이다. 그런 녀석이 가족의 존재가 약점이 된다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지도해야겠지.
이럴 거면 양지로 끌어내서 가족과 만나도록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험하게 다뤘다.
“썩어빠진 근성이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
평소에는 신음을 흘리던 녀석이 좀비처럼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수용력이 좋아서인지 내가 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썩어빠진 정신을 완전히 뜯어고쳐주는 거겠지.
이런 문제점은 폭력으로 쉽게 해결이 된다.
“강자는 누릴 자격이 있지만 자리에 멈춰 서는 건 죄다. 왜냐하면 내가 멈춰 있을 동안 다른 녀석들은 빠르게 강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면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난 완전히 널브러진 버서커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겠냐?”
“…머리는 이해했는데 몸이 매우 힘들군.”
그거야 사지가 부러져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 버서커 녀석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녀석의 의지가 나약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런 말 때문이란 걸.
예전의 녀석은 별의 순간을 엿보겠다며 더 투지를 불태웠다.
양지로 올라오니 배가 부른 것이다.
“네가 약해서 당한 거야. 당하기 싫으면 나만큼 강해졌어야지.”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알기나 하는 건가?”
“날 죽이겠다며? 별의 순간을 보겠다며? 그럼 격차를 좁힐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쟤는 너처럼 기프트도 못 빼앗아오는데? 나한테 친구비도 받지 못했는데?]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법이다. 녀석도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 되겠지.
하지만 이번 일은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서 그런가.
버서커는 내 말에 100% 공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강해지는 것만으로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건가?”
…교육의 효과가 완전하진 못하나보다. 버서커 녀석이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걸 보면.
“네가 강한 것 자체로 함부로 건들지 못하겠지. 그걸로 못 미더우면 나처럼 개 한 마리 들여놓던가.”
“멍멍이를 말하는 거로군.”
회의적이던 버서커의 눈이 번뜩였다. 하긴, 멍멍이 정도면 집 지키는 개로 훌륭하긴 하지.
내가 계속 두들기고 특식을 준 덕분에 지금은 플러스 단계 마물과도 맞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집에 들여놓으면 걱정은 안 될 걸?
버서커는 멍멍이가 탐이 나는 기색인데, 아직 어림도 없다.
“근데 네 실력으로 멍멍이를 길들일 수 있냐?”
“어렵겠지.”
“그러니 힘을 기르라는 거야. 네 힘이 강하면 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고, 세력을 형성할 수도 있지. 그리고 멍멍이 같이 마물을 길들이면 되는데 왜 그거에 휘둘리고 있냐?”
“…확실히.”
어째 내가 실컷 얘기한 것보다 멍멍이 길들인 게 더 확실한 설득이 된 거 같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군.
[어쨌든 알아들었으니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결과만 보면 그렇기는 하다.
근데 내 말보다 멍멍이로 설득이 된 거 같아 열이 좀 받는데?
아무튼 녀석의 목표가 생겼으니 그 부분으로 가도록 유도해야겠군.
“그럼 멍멍이 같은 펫을 들여놓기 전에, 녀석을 다룰 수 있는 실력부터 갖춰놓자.”
“지금 팔다리가 부러졌는데.”
“너 회복력 좋잖아? 회복제 뿌리고 다시 덤벼.”
“…….”
내 말에 버서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뒤 회복제를 뿌리고 일어났다.
엄살 부리기는.
역시, 튼튼해서 두들기는 맛이 있다.
*
* *
확실히 목표가 생기니까 달라졌다. 목적이 존재하는 발악은 조금 더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과정을 들여다보면 내가 힘을 더 쓰게 만들었으니 버서커 치고 제법 분발했다.
[이건 좀 심한 거 아냐?]쓰러진 버서커를 보며 용용이가 질색했다. 나도 꽤 흥이 난 나머지 손을 좀 심하게 쓰기 했다. 그래도 회복력이 워낙 좋은 녀석이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에게 다가가 회복제를 특별히 두 병이나 뿌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버서커를 생각해준다. 이 비싼 회복제를 두 병이나 쓰니까.
[그냥 한 병 쓰게 조절하면 됐잖아?]자꾸 시비 거네, 용용이 녀석.
아무튼 회복제 효과는 확실했다. 얼핏 보면 시체에 가까웠던 것이 사람 몰골로 바뀌어갔다.
그때, 훈련실 입구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나와 버서커의 대련중엔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데 누구지? 고개를 돌린 나는 귀여운 외모와 대비되는 팔다리가 쭉 뻗은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아빠……! 어, 어어? 최, 최준호다!”
난 처음 알았다.
사람의 눈이 하트 모양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한달음에 다가온 소녀가 누군지 알지 못하다가 버서커의 목소리를 듣고 알게 되었다.
“소희야…….”
“아빠! 어? 왜 이렇게 다쳤어?”
이 소녀가 버서커의 딸인 이소희였군. 이름하고 어린 시절 사진만 봤기에 못 알아봤다.
근데 버서커 딸이 이곳에 무슨 일로 온 거지?
버서커는 이소희의 부축을 거절하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련하면 흔하게 입는 상처다.”
“이게 흔한 일이라고?”
“초인들의 대련이니까. 치열할수록 도움이 되는 법이다.”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의연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긴, 내가 치열하게 두들겨 패기는 했지. 그래도 이게 다 버서커 좋으라고 하는 일이지,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은 아니다.
[거짓말.]겸사겸사 나도 좋은 거니 그러면 된 거 아니냐?
[그건 말이 다르잖아.]친구라면서 내 편인지 남의 편인지 알 수 없는 용용이의 말은 흘려버리면서 나는 이소희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닮지 않았지만 재능은 닮았는지 잘 갈고 닦은 것이 느껴졌다.
음, 그래도 딸 앞에서 이곳저곳 쥐어터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자니 마음이 좋지 않군.
다음에는 겉으로 티가 나지 두들겨줘야지.
[와…….]용용이가 감탄하는 걸 들으면서 부녀지간을 보다가 이소희가 내게 고개를 홱 돌리는 걸 보고 멈칫했다.
내 팬이라고 하던데 아버지를 두들겨 팬 날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팬심 앞에 그마저도 사소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소희 반응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준호 님! 팬이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진짜 멋지세요. 그리고 빌런들을 용서하지 않고 제압하는 모습까지. 준호 님을 보면서 각성자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집에 준호 님 굿즈도 시리즈별로 다 구매해놨어요!”
“…….”
이걸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질 않았다.
하지만 내 행보를 보고 지지를 보내준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았고.
난감하군.
그러거나 말거나 이소희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준호 님이 말씀하셨던 ‘걸리면 간다.’가 인생의 목표가 됐어요. 저도 커서 준호 님 같은 멋진 각성자가 될 거예요. 앞으로도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 진짜 이렇게 봬서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내주는 사람과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원하는 게 있고 그걸 충족시켜주는 관계였지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니 이건 좀 난감하군.
[난감할 게 뭐가 있어. 그냥 팬 서비스 해줘.]옆에서 신이 난 용용이를 보며 두고 보자고 벼르며 이소희에게 말했다.
“원하는 거라도 있는지?”
“사진 찍어주세요!”
그렇게 나는 이소희와 수십 번 넘게 사진을 찍고 싸인을 해주는 등, 난생 처음 팬서비스라는 걸 해보게 되었다.
진세정에게 듣기만 했는데 나한테 진짜 팬이라고 할 존재가 있었군.
궁금해서 물어보니 이소희가 신이 나서 말했다.
“저랑 같이 훈련하는 애들 전부 준호 님 팬이에요! 아마 사진 보여주면 부러워서 죽으려고 할 걸요?”
“그렇군요.”
“다음에 한 번 애들하고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
“그건…….”
[뭐해, 팬 관리 해야지.]선뜻 그렇게 하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용용이의 부추김과 진세정의 당부가 떠올랐다.
이게 열성팬을 가진 스타의 숙명이라는 거로군.
내가 언제 스타로서 행동해봤어야지.
“…알겠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진짜 최고! 인터넷에서 준호 님 욕하는 사람들 저희가 다 물리칠게요! 저번에는 웬 아이돌 팬들이 어이없는 걸로 공격해오는데 자기들 연예인 단속이나 잘할 것이지 괜히 부러워서 달려드는데…….”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것이 웬만한 정신계 기프트 공격보다 강력했다.
차라리 빌런을 상대하는 게 더 쉽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쁜 놈들 많이 죽여주세요!”
“그러죠.”
“이제 사진 찍어요!”
방금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소희와 추가적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다.
어느새 멀쩡해져서는 이소희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던 버서커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소리 죽여 웃었다.
“큭큭큭!”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