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친구들이랑 또 올게요!”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전에 없던 지친 표정으로 이소희를 배웅했다.
투뿔 마물과 사흘밤낮을 싸워도 이렇게 지칠 것 같지가 않은데, 10대 각성자 지망생의 체력은 무시무시함 그 자체였다.
내 광팬을 자처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지만 이렇게 고된 일일 줄 몰랐다.
아이돌이라는 거, 남들은 알지도 못하는 세계관에 보통 정신으로 팬들 대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봤다.
그때 소리 죽인 웃음이 들려왔다.
“…큭큭!”
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레이저를 쏘았다. 하지만 웃고 있는 당사자인 버서커는 나와 눈을 마주하지 않은 채 어깨만 들썩이고 있었다.
“그냥 소리내고 웃지 그러냐?”
“크큭! 크하하하하!”
내 말에 봉인이 해제된 듯 버서커는 광소를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실컷 두들겨 팼지만 저 모습을 보니 다시 한 번 손이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웃으라고 해서 진짜 웃어도 된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다 저 인간 죽어!]그래, 용용이가 말릴 정도로 버서커는 한계 상태에 봉착해 있었다. 여기서 더 두들기면 죽을 수도 있으니 내가 참아야겠지.
참는 게 이기는 거다.
근데, 이 말 누가 한 거지?
[나야 모르지!]아무래도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한 녀석은 계속 졌던 게 분명했다.
참지 않고 머리를 부숴서 다시는 시비를 걸지 못하게 만들어야 진짜 이기는 건데.
그러거나 말거나 웃을 걸 다 웃은 버서커가 날 보며 말했다.
“너한테 이런 약점이 있을 줄 몰랐군.”
“그만큼 대우를 해준다고 생각해라. 네 딸이잖아.”
“당사자보다 딸에게 더 좋은 대우라.”
“싫냐?”
“싫을 리가. 네 새로운 면을 보게 돼서 좋았을 뿐이다.”
버서커는 진심으로 유쾌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그저 내가 시달려서 좋아하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
하지만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내게 호의를 보내는 사람에게 모질어진다는 건 쉽지 않더라.
내 성격대로 같으면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 같은데.
“평소에 내 이미지가 어떤 거냐.”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난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아마 너만 모르고 있을 걸.]나는 모르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고? 어이가 없는 소리들을 하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버서커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그걸 보고는 내가 더 이상 두들겨 주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러다 진짜 손을 쓰고 싶어질 거 같아서 나는 주머니에 있던 푸른 보석을 버서커한테 던졌다.
“됐고, 이거나 받아라.”
내가 준 건 유해 8단계 마물의 심장을 가공한 것이다. 푸른 포스를 품고 있는 보석은 포스가 일렁이면서 신비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신성그룹에서 만든 거라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석을 받아든 버서커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걸 왜 나한테 주지?”
“너 말고 소희한테 줘라.”
“이걸?”
“내 팬이라고 하는데 그냥 지나치겠냐. 저거 포스 순환에 도움 되고 포스 친화력도 길러주니 계속 갖고 다니라고 해.”
“…….”
버서커는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왜 저러는 건지.
괜히 민망해지려 했다.
“싫으면 내놓던가.”
“싫을 리가. 앞으로 자주 찾아오라고 해야겠어. 크크큭!”
누가 보면 올 때마다 선물로 줄 줄 아나보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말했던 버서커는 이내 고개를 젓더니 고마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챙겨줄 줄 몰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고맙다.”
“모르겠으면 매값이라고 생각하던가.”
[넌 진짜…….]“감동을 귀신같이 없애버리는 실력 하나는 대단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
* *
버서커가 돌아가고, 나는 곧장 진세정을 찾아가 이소희와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팬을 대하는 요령을 듣기 위해서였는데 내 말을 듣기 무섭게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진짜 그러셨어요?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왜 있으려고 합니까.”
“재밌을 거 같아서요?”
“…그거 압니까? 제 앞에서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농담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못 당하겠군.
하긴, 내가 과거로 돌아와 가장 당황을 많이 한 게 진세정과 있으면서다.
내가 빌런으로 취급받지 않고 많은 우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진세정의 역할이 결정적이지만 가끔은 이 세계관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돌화는 원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말을 맙시다, 말아.”
“그래도 익숙해지셔야 해요.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초인님의 가장 강한 우군이 되거든요.”
“포기하면 안 되는 겁니까?”
“네. 그래도 소희 양 빼고 열렬한 팬은 만날 일이 많지 않을 거예요.”
내가 공식적인 스케줄에 나서거나 팬들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지 않아 가능한 일이란다.
느낌은 아이돌인데 팬에게 저자세일 필요 없이 강하게 나가도 된다나.
그래도 만날 때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단다.
나도 나 좋다는 사람에게 야박하게 굴 이유는 없다.
내가 혈종처럼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도 아니고, 죽을 짓을 한 놈만 죽이는 거니까.
날 좋아한다고 죽을 짓을 한 건 아니다.
“초인님의 팬 서비스는 부럽네요. 내심 내가 1호가 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제 팬이셨습니까?”
“당연하죠! 그러니 제가 초인님의 곁에서 열심히 보좌하는 거죠.”
금시초문이었다. 난 그냥 그녀가 프로페셔널한 실력자라고 생각했던 건데 덕업일치였다고?
그냥 하는 말인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초인님을 향한 악플을 달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데요.”
그런 것치고 리플을 달던 손가락은 날아다녔던 걸 기억한다.
요즘은 뜸하지만 날 향한 악플 중에 진세정의 것을 뛰어넘는 건 본 적이 없다.
“다음에 소희 양을 보면 올바른 팬질 방법에 대해 알려줘야겠어요.”
그냥 알려주지 않으면 좋겠는데.
“에이, 초인님도 좋으시면서.”
다시 말하지만 결코 좋지 않다.
“이 기회에 올바른 팬 서비스 방법을 배워보시는 건 어때요? 팬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도 가능해요.”
“배우죠.”
“그럼 바로 해볼까요?”
그로 인해 난 팔자에도 없는 팬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
* *
상황이 흘러가다 보니 괴리감이 발생했지만 버서커를 단련시키고 이소희를 만났다가 팬을 대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 모든 일련의 상황은 내가 천둥새를 상대하기 위한 것의 연장선에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관계성을 찾을 수 없는데?]그 부분은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어디서부터 궤도를 이탈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졸라맨이 곧 미국에 보고를 마치고 대답을 들려줄 것이고,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정유 운반선이 도착하면 천둥새를 상대하기 위해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날 찾아왔다. 용용이의 상사 현아가 예고도 없이 방문한 것이다.
[현아가 왜 내 상사야!]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용용이는 영락없는 부하 직원이었다. 아니라고 떽떽거려봤자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봐라, 현아도 딱히 부인하지 않잖아?
[와! 억울해.]더 웃긴 건 용용이가 팔짝 뛰어도 현아는 거길 보지 않고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는 점이다.
“오랜만이야.”
“…네가 왜 그걸 들고 있는 거냐?”
“길을 걷다가 발견했어. 신기해서 가지고 왔고.”
현아가 보인 것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내 응원봉과 내 사진이 프린팅 된 머그컵이었다.
얘는 신수면서 내 굿즈는 왜 구매한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 저걸 어디서 구한 거야?
“인간 세상을 구경하는 건 재밌는 일이거든.”
현아가 말하길, 내게 말하지 않고 종종 인간 사회에 들어와서 각종 문물을 즐겼다고 한다.
용용이도 특이하지만 얘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멋모르고 날뛰는 것보다 낫긴 하지.”
더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자기가 좋다고 즐기는 걸 가지고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하기도 그렇지.
“그럼 그냥 놀러온 거냐?”
“아니, 널 보러 왔어.”
현아는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능숙하게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오더니 맞은편에 앉았다.
“슬슬 천둥새를 상대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어.”
“용용이가 알렸냐?”
[나 안 알렸어!]“응, 알려줬어.”
[아니, 그걸 왜 솔직하게 말해!]용용이 음흉한 자식 같으니.
난 괴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흔드는 용용이를 힐끔 본 뒤 현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천둥새는 강해.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야.”
“어렵다고 보나?”
“가능성에 대해 묻는 거라면, 응. 어려워 보여.”
용용이와 다르게 현아의 말에는 신뢰가 있다. 그리 말할 정도면 내가 지금 상황에서 천둥새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건데, 그러니 더욱 전의가 끓어오르는군.
내 표정을 본 현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렵다고 해도 물러설 생각이 없나보네.”
“승패를 알 수 없는 적하고 붙는 건 재밌는 일이지. 오히려 기대가 되는데.”
“인간의 생각은 모르겠어. 다른 인간도 그래?”
“아마 그럴 거다.”
“진짜 모르겠어.”
그리 중얼거리던 현아는 뭘 생각하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거 알려주려고 왔냐?”
“응. 어렵다고 하면 안 싸울 줄 알았어.”
현아는 인간의 전투 본능을 많이 얕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둥새와 붙지 않길 바라는 듯 한데 내가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천둥새를 상대할 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는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안 그래도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느 걸?”
“천둥새랑 붙기 전에 너와 한 번 붙어보고 싶은데.”
“나랑?”
“그래.”
“…….”
내 권유에 현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현아한테 말한 이유는 평소에는 맹하지만 이럴 때는 영악한 용용이는 피할 걸 알지만 현아라면 의외로 수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와, 대놓고 험담하네.]천둥새와 붙기 전에 신수를 상대한다면 그것도 귀중한 경험이 되겠지. 난 모처럼 인내심을 발휘하여 현아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나로 만족할 수 있겠어?”
“만족 못할 이유는 없지.”
“그럼 상관없어. 내가 상대해줄게. 얼마나 원해?”
“최대한 많이.”
나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분명한 건 현아도 천둥새를 없애길 바라고 있고, 협력을 한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드래곤을 보면서 신수들끼리 사이가 좋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세계는 넓으나 신수들이 각자 구역을 나눠먹기에는 모자라지 않나 싶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걸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면 신수의 숫자는 줄어드는 게 좋겠지.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래도 다치긴 싫으니까 상냥하게 해줘.”
“격렬해야 더 좋을 텐데.”
“알았어. 격렬하게 해줘.”
그렇게 나와 현아의 대화가 진전되고 있을 때였다.
[자, 잠깐만!]가만히 듣고 있던 용용이가 끼어들었다. 나와 현아의 시선이 용용이한테 향했는데 왠지 모르게 붉게 달아올라있는 느낌이었다.
[너희, 대화가 좀 이상하지 않아?]“뭐가?”
[지금 대화, 마치 그, 야한…….]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용용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녀석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슨 음란마귀가 들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난 혀를 찬 뒤 말했다.
“가끔 컴퓨터 켜져 있는 걸 봤는데 야동 좀 그만 봐라.”
현아도 한 마디 보탰다.
“용아, 그러다 뼈 삭아.”
[나 안 봤거든! 그리고 신수가 뼈가 삭겠냐!]근데 반응은 왜 몰래 보다가 걸린 것 같냐.
난 용용이가 칭얼거리거나 말거나 현아를 보며 말했다.
“그럼 바로 한 번 붙어보고 싶은데.”
“알았어.”
현아가 손을 들자 주변 포스가 흔들리더니 풍경이 바뀌었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공간 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내 의지에 간섭하지 않고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역시 신수,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그래, 여태까지 용용이가 너무 하찮게 굴어서 모르고 있었다. 신수 정도면 이 정도 초월적인 면모는 보여줘야지.
“마음껏 공격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