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나와 현아는 바다 한가운데에 섰다. 한 번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대결을 신청했는데 받아주다니, 역시 용용이보다 현아가 낫다.
[와, 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이 해줬는데 이렇게 배신 당하네.]고마운 게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야동이나 보는 신수다.
뼈 삭는다.
[안 봤다고! 내가 인간 번식행위를 왜 봐!]뭐, 진실이야 나중에 밝혀지는 법이니까. 지금은 대결에 집중해볼까.
어떤 요구를 해도 현아는 잘 받아주지만 얕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용이보다 현아가 신수로서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목적 또한 불분명하여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과연 전투 방식은 어떨까.
“대결 방식은?”
“어떤 걸 원해?”
“실전.”
“난 상관없어.”
“그럼 바로 시작하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기습적으로 손을 먼저 쓰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현아가 손을 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쏴아아아!
그와 동시에 푸르게 물드는 세계. 미묘한 이질감이 내 감각을 어지럽히고 피부를 파고들었다.
물?
잠깐이지만 숨이 턱 막혀왔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내 손은 반사적으로 나가고 있었다.
손끝을 타고 휘몰아치는 기뢰가 순식간에 현아의 면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것은 목표를 적중시키지 못했다. 연기처럼 흩어진 현아의 신형은 유령처럼 깜박이다가 나와 일정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난 개의치 않고 현아를 추격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가 유령처럼 사라지길 반복하는 현아를 적중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물속 내부에서 가해지는 강력한 압박은 내가 100%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해보자는 건가.
난 수중에서 포스로 발판을 만들어 박찼다. 만만치 않은 저항이 느껴졌지만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현아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강렬한 저항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파지직!
내게 큰 위협을 줄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나와 거리를 두기에 충분했다.
난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는 척하면서 전이로 현아에게 접근했다.
콰득!
목을 틀어쥐는 순간 힘을 줬지만 손 끝에 감도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 뒤로 몇 차례 접근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빗나가거나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이래서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내가 멈춰 서자 현아도 멈췄다. 투명한 눈동자 너머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혔다.
“승부를 낼 생각이 없나?”
“맞아.”
현아의 의도는 처음부터 그거였다.
“그럼 왜 대결 제안을 받아들였지?”
“신수와 대결하는 장면을 그려봤던 거 아냐?”
현아의 대답은 태연자약했다. 그리고 밝힌 의도는 승부를 낼 생각 없는 것 또한 대결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난 널 죽일 만큼 공격이 강하지 못해. 대신 네 공격도 내게 닿지 못하게 만들 수 있어.”
‘대결’이란 것에 있어 현아의 전략은 단순했다. 내 힘이 소진될 때까지 버텨내는 것. 내가 그 사실을 늦게 눈치 챌수록 현아의 승리가 높아지는 구조였다.
“넌 강해. 하지만 날 이길 수 없어.”
그것이 현아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대로 천둥새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로군.”
“맞아. 지금 상태로 걔를 이길 수 없을 거야.”
현아가 말하길, 천둥새는 자신보다 더 교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고 한다.
내가 천둥새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천둥새의 속도를 쫓을 수 있어야 한다. 전이가 있지만 그걸로 모자라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
현아는 환경을 조종하여 유리한 곳으로 끌어들였다면 천둥새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속도’로 날 압도하려 들 것이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난이도가 더 높겠다.
“공격을 적중시키면 사냥할 수 있나?”
“충분히 가능해. 적중을 시킬 수 있다면.”
천둥새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동력이었다. 그걸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면 방어력은 의외로 약하다고 말했다.
좋은 정보로군.
“지금보다 더 벼려놔야겠어.”
입맛이 썼지만 받아들여야겠지.
더 이상 대결 의지를 보이지 않자, 현아는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끝없이 펼쳐졌던 바다에서 내 사무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 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어?]근데 현아가 대단한 건데 왜 용용이 네가 으스대는 거냐.
*
* *
최준호가 돌아가고, 현아와 용용이가 따로 남게 되었다.
꼬리를 흔들며 현아의 주위를 돌던 용용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으로 말했다.
[너무 많은 힌트를 준 거 아냐?]“안 그러면 천둥새를 상대하기 힘들 거야.”
[넌 그 인간이 천둥새를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렵지 않을까.]“가능성은 있어.”
[상대는 다른 신수도 아닌 천둥새라고.]신수답지 않은 탐욕스러움과 교활함을 지닌 신수다. 마치 세계 전체를 차지하려는 것처럼 자기 영역을 확장해나가면서 다른 신수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그동안 용용이나 현아가 지켜볼 수밖에 없을 만큼 천둥새는 강하다.
그리고 자세한 속내를 드러낸 적 없는 용용이는 최준호가 천둥새를 꺾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았다.
[불가능해. 가능성이라고 해도 아주 희박한 정도야.]“…….”
현아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껄끄러워하는 걸 대신 나서줄 수 있어. 고마워해야 돼.”
[넌 그 인간이 친구비로 얼마나 더 뜯어 가는지 몰라서 그래.]“설마 더 준 거야?”
[그게… 응.]“너도 참 대단하네.”
[아오! 이렇게 받아먹고 죽어버리면 나만 손핸데.]현아의 감탄에 용용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지더라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천둥새가 자기한테서 도망가는 녀석을 그냥 보내준다고?]“약점이 있으니까.”
[그걸 안다고 공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일말의 희망이 있는 현아와 부정적인 용용이의 생각 차이는 분명했다.
“그보다.”
[응.]“유럽에서 본 걸 알려줘.”
[아, 그거…….]용용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확실히 지성을 가진 신수의 존재는 위협적이며 강력한 힘을 가졌다.
투뿔 마물까지는 그래도 본능이 앞섰다면 신수는 이성이 유지되었다.
현아의 전투방식은 효율적이다. 압도적인 힘에 자신이 유리한 점을 놓지 않다니. 지지부진한 장기전으로 이어졌다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건 나였을 것이다.
“천둥새는 더 하다는 건데.”
이야기만으로 생각해보면 천둥새는 신수의 힘과 인간의 교활함을 갖춘 녀석이다. 초기에 확실히 기선을 잡아두지 않으면 당하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생각해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유일한 힌트는 맷집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건데. 어떻게든 구겨 넣어서 공격을 적중시키는 게 관건이겠지.
그때 졸라맨이 날 찾아왔다. 미국에다 보고를 하고 답을 가져왔나보다.
“준호!”
“얘기는 나눴냐?”
“준호의 요구 조건을 모두 보고 했어. 상부가 졸라 난감해 하더라! 그런 모습 처음 봤어! 실제로 엄청 난감한 제안이기도 하고.”
그럴 수도. 신수를 사냥하겠다고 나선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들 영토가 쑥대밭이 될 수 있는 일이니까.
과거 세계가 좁다하며 전 세계에 영향력을 투사하던 미국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겠지.
“맞아. 실제로 정부 사람들 표정 졸라 구겨졌거든.”
말을 하면서 싱글벙글 웃는 것이 평소에 쌓인 게 많았나보다.
“결과부터 말하면 준호에게 길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어.”
“단서가 붙는 거 같은데.”
“맞아. 본국에서 준호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 해.”
길을 열어주면 열어주는 거고, 거기에 조건이 붙으면 사실상 거절 아닌가.
왜냐하면 나는 그 제안을 일단 거절할 생각이니까.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길을 안 빌려줄 테고.”
“근데 이건 준호를 위한 것이기도 해!”
“말해봐.”
“정확히는 준호가 가기 쉽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리그가 천둥새와 협력하고 있거든!”
난 졸라맨이 어떤 부탁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녀석을 치워 달라?”
“맞아. 그게 선행되지 않으면 준호가 천둥새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리그가 방해할 거야.”
“자세히 말해봐.”
“응.”
내 요구에 졸라맨은 현재 미국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서부였다. 현재 미국 서부 도시들은 사실상 미국 시민들과 리그의 각성자, 파티의 일원이 뒤섞인 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다.
“이곳은 일종의 중립지대와 같아. 미국에서도, 파티에서도, 리그에서도 건드리지 못해.”
미국 서부가 차지하는 미국 내 위상은 굉장하다. 정부에서는 이곳을 수복하고 싶었지만 홀로 해낼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였다.
“천둥새를 사냥하려면 준호도 이곳에 와야 해. 만약 녀석들을 무시하면 사냥 과정에서 방해를 받겠지. 그래서 준호의 도움을 받는 걸 선택했어.”
“내가 안 도우면?”
“그래도 길은 열어줄 거야.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생각으로는?”
“의뢰를 받는 게 좋다고 봐. 리그 세력을 일소하면 방해자를 치워버릴 수 있고,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상대할 수 있어. 이건 준호가 하려는 일의 난이도를 졸라 낮추는 게 될 거야.”
내 힘을 빌려 개판인 상황을 정리하는 대신 도움을 주겠다는 거로군.
내부에서는 내가 천둥새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을 내린 건가, 제법 크게 배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리할 녀석들이 누구인지 말해봐.”
“우선 리그가 있어. 그리고…….”
졸라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보다 미국 서부가 더 개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 정부의 명령을 따르는 미국 소속 각성자가 존재하고, 별도의 결사체인 파티가 존재한다. 그리고 리그가 이 파티에서 파생되면서 구분이 모호한 사람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그로 인해 평상시에는 리그의 각성자들이 서부에 퍼져 있다고 하는데, 당국에서는 손을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단다.
여기에 최근 천둥새를 신으로 모시는 신흥종교가 창궐하면서 온갖 잡탕 세력으로 서부가 들끓는 중이란다.
미국 정부에서는 이 고리를 끊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사람이 전무했다.
그냥 천둥새만 잡고 빠지고 싶어지는데.
하지만 졸라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리그가 그렇게 둘 것 같지도 않다.
“의뢰를 받아들인다면 뭘 줄 수 있지?”
“뭘 원해?”
“글쎄.”
내가 미국에 바라는 건 길을 빌리는 것밖에 없어서.
그러고 보니 과거 세계최강이던 미국의 무기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할 건 리그 머리들을 없애는 건가?”
“맞아. 머리를 잃은 각성자들은 혼란에 휩싸일 테니 그 기회를 잡아 일망타진 할 거야.”
“사이비종교 녀석들은?”
“걔들은 광신도라 상종하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천둥새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와해될 것이라 보고 있고.”
미친놈은 상종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졸라맨이 말했다.
그 말은 동의한다. 미친놈 주변은 가까이도 가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길 거라 보냐?”
“다른 누구도 아닌 준호잖아! 이기겠지!”
뭔가 근거가 없는 믿음 같은데.
난 좀 더 근거를 내놓으라는 의미를 담아 쳐다보았지만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말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용케도 내게 배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천둥새의 요구에 한계를 느낀 걸지도.
그나저나 미국 서부의 리그 지부라.
세상만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빌런들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자기 정체를 감출 생각도 없이 활동할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의뢰를 받지 않았어도 내 눈에 띄었으면 손을 썼겠다.
그렇다면 미국에 은혜를 입히는 게 좋겠지.
“제안을 받아들이지.”
“오케이! 잘 부탁해!”
“대신 필요한 정보는 빼놓지 말고 가져와.”
“누구 말인데, 당연하지!”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졸라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언제쯤 출발할 거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내 석유가 도착한 뒤.”
멍멍이를 데리고 출발한 정유 운반선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사히 도달했고, 석유를 가득 채운 뒤 한국으로 출발했다.
아메드 국왕은 약속대로 석유를 원가에 판매했고, 선물도 듬뿍 안겨다주었다.
푸짐한 선물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도양에서 내 석유를 노리고 해적들이 습격했단다. 그 숫자만 백여 척에 가까울 정도라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갈 땐 건드리지 않았다가 올 때 습격한 걸 보면 석유가 목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멸.
멍멍이한테 걸려 인도양에서 악명을 떨치던 해적 연합 기지가 전멸했다.
그 과정에서 체포된 해적의 숫자가 일만 명이 넘고.
범죄자들을 인도로 보내느라 시간이 며칠 지체되었다.
그런데 기사가 이상하게 나와서 멍멍이가 해적들을 잡아먹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직접 보지도 않고 사실인 것처럼 떠드는 꼴이라니.
어이가 없군.
“우리 멍멍이 사람은 안 무는데.”
누구 하나 가져다놓고 물어보라고 해서 증명할 수도 없고.
멍멍이가 돌아오면 우리 개가 사람 물지 않는다고 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