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제임스 리드는 오랜만에 돌아가는 고향에 잔뜩 들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극도로 높은 경지에 오른 그의 신체 컨트롤은 심장의 박동까지 잠잠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한껏 차가워진 머릿속으로 그는 최준호가 미국으로 향했을 때 벌어질 일을 생각했다.
‘난리가 나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준호의 미국행이다. 지금은 세계최강이라 불리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그를 인정하지 않는 각성자들이 많았다.
어디 그뿐인가. 한때 아시아 소규모 우방국에 불과하던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점을 꼽아 깔보는 시선까지 존재했다.
실력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임스 리드 입장에서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입을 놀리는 녀석들을 생각할 때마다 두통이 엄습했다.
미국은 한때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과거 세계가 좁다하며 위세를 떨쳤던 미국은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출신을 갖고 차별하려고 들다니. 그런 녀석들이야 말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머저리들은 직접 최준호의 힘을 실험하려고 들 것이고, 최준호의 자비가 없다면 대부분 처참한 꼴을 당할 터였다.
그런 녀석들은 죽어도 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많은 숫자의 각성자가 살아남아 국토 수호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위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녀석들은 사라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세계 흐름이 바뀌고 있어.’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하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이 등장했다.
이는 미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각성자가 강해지는 속도보다 마물이 강해지는 속도가 더 빠른 시점에서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초인들은 자신들의 비기를 아낌없이 풀어야 한다. 제임스 리드는 스스로 이론을 정립하여 육체를 개조하고 초인의 경지에 오른 만큼 자신의 비기를 세상에 공개했다.
다른 초인들도 그 뒤를 따르길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다. 제임스 리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한심함을 느꼈다.
‘그걸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사람은.’
당연하게도 최준호다.
앞으로 점점 더 강해질 마물 사냥의 중심에 최준호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정유 운반선이 안전하게 다녀오면서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의 악몽이 처리된 자리를 차지하여 중동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석유를 차질 없이 수급할 공급처를 구하게 되면서 국가 정상화에 성큼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도시국가 형태에 가까웠던 탓에 마물의 습격으로부터 인프라 대부분을 지켜냈던 대한민국은 석유의 수급으로 날개를 달았다.
한때 동북아시아의 한 축이었다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지역강국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이건 미쳤어.’
제임스 리드는 거칠 것이 없는 듯 나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인천에서 LA까지.
비행기는 말 그대로 최단 경로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물이 등장한 이후 절대 생각할 수 없던 움직임이었다.
현재 지구의 하늘은 마물의 것이다. 비행 또한 마물의 영역이 아닌 곳을 골라 움직여야 하고, 기존 경로에 새로운 마물이 자리를 잡게 되면 비행기 탑승객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비행기는 움직이는 속도에 비해 포스 파장이 발산되지 않아 먹잇감으로 분류되기 십상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스를 발산해보기도 하고 마물의 체취를 흉내 내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최준호의 비행기는 지구 모든 곳을 하루거리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최준호여서, 최준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부디 자기 주제를 파악할 줄 알면 좋겠는데.’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졸라 짱나.”
머저리들의 머리가 최준호의 손에 산산조각 나는 상상을 하면서 제임스 리드는 표정을 구겼다.
*
* *
역시 용용이 발톱이 효과가 좋다. 미국까지 비행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쾌적한 걸 보면.
[정작 난 죽겠거든?]네 희생으로 내가 편하게 온 거니 기뻐하려무나.
장하다, 우리 용용이! 멋지다, 용용이!
[넌 하나도 희생 안하잖아.]위대한 신수에게 일개 인간의 희생이 필요했던가? 네가 희생했다고 나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인 셈이다.
[그렇게 까진 말할 필요는 없고.]아무튼 네 덕에 잘 온 건 있으니까. 내가 천둥새를 잡으면 날개 하나 정도는 양보해주마.
그거야 시간을 두고 차차 생각해볼 문제다. 나도 현아를 상대하면서 신수가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됐으니 조금 더 내 자신을 벼려놓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천둥새를 잡는데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고속비행을 붙들어놓을 수 있는 공격이다.
그래도 맷집이 약하다는 소리는 들었으니까 처음 공격을 적중시키는 게 관건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맷집이 약한 건 신수의 기준일 뿐, 실제 공격을 적중시키려면 생각보다 더 강해야 할 것이다.
제련이를 좀 더 갈궈야겠다. 얘도 휴가를 받고 싶다면 좀 더 분발하겠지.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LA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11시간. 마물이 등장하기 전, 인천에서 LA에 도착하던 시간과 동일했다.
난 엉거주춤 서 있는 졸라맨을 보며 말했다.
“나가자.”
“응.”
그 똑똑하다는 녀석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는.
하긴, 신수의 발톱 효과를 생각하면 놀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에헴.]용용이가 으스대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난 졸라맨과 함께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이국적인 LA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그렇게 살기 좋다고 하는데 얼핏 보기만 해도 선선한 날씨와 잘 정리되어 끝없이 펼쳐진 시가지는 마물의 대비에 잘 준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온갖 녀석들이 뒤섞여서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
난 비행기에서 내려오다가 마중 나온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서큐버스라 불리며 나는 잘 모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여자인 안나 크리스틴이었다.
여전히 미모 관리가 잘 되어 있군.
“준호!”
한껏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나와 포옹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유력자들이 많아 보이는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인가보다.
이 정도를 받아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가볍게 등을 두드리는 걸로 화답하자 안나 크리스틴이 놀라서 날 바라봤다.
“뭘 봐?”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이 정도면 나아진 거지.”
“하긴. 휴! 많이 바란 게 이상하긴 해요.”
한숨을 내쉬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군.
*
* *
내 입국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애초에 미국에 온 것이 천둥새 사냥을 위한 것이고, 그 전에 리그의 빌런들 사냥을 위해서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서울에 머물고 있는 줄 알 것이다.
이런 건 미국이 위장을 잘한단 말이지.
나는 조용히 공항을 빠져나와 미국 정부에서 준비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사실상 정부가 통째로 빌려놓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안나 크리스틴을 보았다.
“내게 자세한 설명을 위해 하기 네가 왔다는 건가.”
“맞아요.”
“왜?”
내 반문에 안나 크리스틴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와! 대단해! 얼굴에 인위적이면서 자연스러움이 공존하고 있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 정도면 하나의 작은 우주인데?]그 와중에 용용이는 안나 크리스틴을 둘러보며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고.
아주 대환장 파티로군. 무슨 얼굴 하나에 우주를 논하는 건지.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하다는 의미로군.
그러거나 말거나 안나 크리스틴은 이를 악 물며 내게 말했다.
“익숙한 얼굴이 와서 어려운 일을 자처하면 고맙다거나 반가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건 고맙지.”
“…하나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런 걸로 하죠.”
날 찾아온 것은 앞으로 수행할 작전에 대한 브리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꺼낸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현재 미국 상황은 개판이에요. 당장 함께 브런치를 먹던 친구가 디너에서는 적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죠.”
로비가 공식적으로 합법화 되어 있는 미국의 내부는 현재 난장판이라고 한다.
본래 미국의 가치를 숭상하는 정통파부터 시작하여 파티의 후원을 받는 세력과 인종, 지역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 고립주의자와 대외팽창 주의자 등등, 나올 수 있는 것들은 다 얽혀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리그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에요.”
“걔들도 활동이 가능하다고?”
체제 전복을 위해 움직이는 녀석들인데 눈 뜨고 봐준다고?
안나 크리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생부터 파티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이니까요.”
리그를 도려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했다. 문제는 그걸 어디까지 생각하고 도려내느냐였다.
“파티와 리그의 경계에 모호한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특히 이곳에요.”
안나 크리스틴은 캘리포니아 전역에 걸쳐 스며든 리그의 세력은 축출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왜 어려운 건지 모르겠는데.”
“그야 당연히…….”
“계속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리그가 아닌 파티의 일원이라고 할 테고.”
“…….”
“그 후에 정체성이 모호한 녀석들만 따로 모아서 감시하다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죽이면 되지.”
별로 과격한 방법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고 하면 분명한 것들부터 분리하고 그 다음 애매한 걸 판별하면 그만이다.
쓰레기를 한 자리에 모아 태워버리면 가장 좋은 방법이고.
“당신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방법이네요. 그 방법이 옳아요. 현재 미국에 필요한 건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외과 수술이에요.”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내부인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이란다.
자기들이 받아먹은 게 많다는 걸 당당하게 고백하는군.
받아먹기는 하고 싶고 청구서대로 움직이는 싫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난 그 개판을 정리해줄 생각이 없는데.”
“네. 그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죠. 그리고 준호가 이곳에 온 목적은 천둥새 사냥을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그래.”
“마초맨이 말했겠지만 준호가 도와준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어요.”
이거, 지금 거래를 제안하는 거 같은데.
“내가 하는 만큼 돕겠다는 건가?”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목표로 하는 건 있어요.”
“뭐지?”
“이곳 캘리포니아를 다시 정부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해요.”
현재 캘리포니아는 각종 정치 세력이 난립했고 리그 세력이 뿌리 깊게 파고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캘리포니아는 한때 이곳만으로 아프리카 전체를 합친 것보다 경제력이 높고,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였다.
이만한 곳을 온전히 정부 통제에 두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겠지.
안나 크리스틴이 내게 원하는 건 그들의 비밀 지부를 일소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쫓고 거점을 파괴하는 건 내가 많이 하던 일이지.
어떻게 할까.
그래, 기왕이면 와서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겠지. 미국 정도면 그나마 상식적인 거래가 가능한 파트너니까.
“받아들이지.”
“감사해요!”
안나 크리스틴의 표정이 환해졌다. 왜 저러지?
“거절할 줄 알았나?”
“그것까진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의뢰라 생각했어요. 당신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가능해.”
“…역시.”
순순히 믿으니까 오히려 내가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굳이 궁금하진 않아서 더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정보는?”
“이 부분은 오늘 저녁에 방문할 분이 건네줄 예정이에요.”
“그냥 네가 하면 안 되나?”
“저는 유능한 로비스트일 뿐, 고위직 인물이 아니거든요. 제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이 일을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어요.”
내가 볼 땐 그런 것치고 주제를 잘 아는 거 같지 않은데.
자기 입으로 유능을 운운하는 거 보면 별로긴 하지만.
뭐, 리그 빌런들을 보이는 족족 죽이다 보면 어느 순간 만족하겠지.
그렇게 안나 크리스틴과 만남이 끝났다.
나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미국의 야경을 감상했다.
“그게 그거구만, 뭐.”
하늘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다고.
어차피 마물의 등장으로 인해 오염이 줄어들어 자체적으로 정화가 된 상태였다. 서울의 하늘이나 LA 하늘이나 그게 그거다.
똑똑!
“손님인가.”
약속 하나는 칼 같군.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들어와도 된다고 승낙하니, 안나 크리스틴이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는 2m의 큰 키를 한 백인 장년인을 알아보았다.
내가 아무리 세상물정에 눈이 어두워도 정치 뉴스를 보면 자주 접하게 될 인물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안나 크리스틴은 내가 그를 모를 거라 생각했는지 소개시켜주었다.
“대통령님이세요.”
그가 바로 미국의 현 대통령인 허버트 R 클라인의 방문이었다.
꽤 높은 양반이 올 줄 알았는데 대통령이 바로 방문한다고? 의외였다.
“반갑습니다, 마스터 최. 세계최강 초인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영광이군요.”
“저야 말로.”
나는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악수를 하는 순간, 손끝을 타고 파고드는 기이한 파장을 감지했다.
허버트가 수작을 부린 건 아니다. 그저 고유의 파장이 묘하게 익숙해서 내가 알아본 것뿐이다.
이거, 상황이 재밌게 흘러간다.
난 안나 크리스틴을 보고 말했다.
“내가 말한 거 기억하나? 리그 빌런을 계속 죽이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네.”
내 전략은 간단하다. 리그 빌런으로 추정되는 녀석을 죽이고 또 죽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남은 잔당은 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런데 처음부터 왕건이가 걸릴 줄 몰랐다.
내 시선이 안나 크리스틴에서 허버트 R 클라인에게 옮겨갔다.
“그런데 리그 빌런이 여기 있네?”
그래도 대통령이니 바로 목을 분지르면 안 되겠지.
자초지종은 들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하니까. 일단 사지를 분지르고 질문을 해봐야겠다.
난 안나 크리스틴이 대답하기도 전에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