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마침내 이야기를 마치고 스위트룸을 나섰다. 다니엘 로건은 말라붙은 땀을 닦아내는 허버트를 보며 물었다.
“허버트, 왜 그랬나.”
“상대는 세계최강이니까. 그걸 받지 않으면 믿음을 주지 않을 게 뻔한데 당연한 일이지. 그나저나 세계최강을 시험해본 결과는 혹독하군. 보고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손속이 잔인해. 특히 잭과 크리스가 아무 것도 못했을 때는 진짜…….”
허버트의 너스레에 다니엘은 폭발했다.
“고작 그걸 확인하려고 자기 몸을 던져? 넌 대통령이라고!”
“하하, 던지기는. 과거의 일이 예기치 못하게 들춰진 거야. 부끄러운 과거지. 하지만 그걸로 최준호의 성향을 알게 됐잖아? 그거면 돼.”
“발목에 구멍이 뚫려놓고 잘도 하는 소리다.”
다니엘 로건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허버트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고작 기운을 감지한 걸로 손을 쓰는 녀석이야. 내가 감추려고 해봤자 언젠가는 밝혀졌겠지. 이 정도가 피해를 최소화한 거야. 젊은 날 객기치고는 비싼 대가지만.”
“…….”
다니엘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이었다. 녀석이나 최준호나 모두 정상이 아니다. 그랬기에 이런 충돌이 벌어졌고 이렇게 괴상한 형태로 끝났다.
자신이 진짜 브레인워싱에 당할 뻔 한 걸 모르는 건가.
‘아니, 모를 리가.’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처세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허버트였다.
그 선택은 자신이 살펴보지 못한 곳까지 닿는 포석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일지도.
최준호를 이용한 리그 세력 축출은 위험한 발상이지만 그처럼 과감하고 단호한 칼질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친놈들 사이에 있으니 나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군.”
“어이, 그래도 나까지 끌고 들어가는 건 너무하잖아.”
“네녀석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고 말을 해라.”
“그렇게 생각하니 저렴하게 막은 것 같기도 하고.”
허버트와 시선을 마주친 다니엘 로건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든 우리 머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총이지만 총구를 상대방으로 돌리는데 성공했지.”
“그 관점에서 보면 대성공이군.”
“우리는 몸에 구멍 뚫리는 걸로 끝났지만 리그 녀석들은 어느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할까. 아마 못할 거다. 그럼 다시 이곳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거지. 옛 영광을 재현할 그때를 재현할 수 있어.”
허버트는 잔뜩 기대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내가 머무는 방을 방문한 졸라맨은 방안에 펼쳐진 참상에 경악했다.
“준호! 이게 뭐야?”
전날 전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방안은 누가 봐도 살벌한 충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안나 크리스틴은 치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괜히 치우겠답시고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었다. 여기 있던 일을 동네방네 알릴 필요도 없고 나도 모르는 사람이 방에 들어오는 게 내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방을 바꿔주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냥 부서진 방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별 거 아냐. 서로 상태 파악을 한 거지.”
“그게 끝이라고?”
“어, 봐봐. 누가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저기 핏자국이 있는데?”
“저 정도 흘린다고 누가 죽겠냐.”
“그건 그런데, 하! 졸라 화끈하네.”
고개를 젓던 녀석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뒤에서 알아볼 거면서 아닌 척 하기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예전에 리그의 추종자였다는 사실은 모를 확률이 높았다. 알려져서 좋을 건 없을 테니.
대신 날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저번에 말했잖아. 내 연구소에 졸라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고! 오늘 대학 안내해주면서 소개시켜줄게.”
“그럴까.”
“아마 엄청 도움 될 걸?”
“나한테?”
“응. 준호한테 졸라 물어볼게 많은 사람들이야. 그리고 이건 준호한테 졸라 도움이 될 거고.”
졸라맨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오늘은 시내를 둘러볼까 싶었지만 시내는 언제든 구경할 수 있으니까. 졸라맨이 스탠퍼드 출신이라고 했고, 이곳은 한때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가들의 산실이기도 했다.
괜찮은 인력을 땡겨서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나한테 어떻게 더 도움이 된다는 지 궁금했다.
[만약 도움이 안 되면?]그땐 졸라맨이 그토록 좋아하는 대련을 몇 번 해야겠지.
준비를 마치고 졸라맨과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이동했다. 겉으로 보면 온갖 세력이 잡탕처럼 뒤섞여 있는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딱 살기 좋은 도시로 보일 뿐. 그 말은 여러 세력의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결심이 쉽지 않았을 거다.
“전하고 달라진 게 있나?”
“있어. 아주 많이 있지.”
운전을 하면서 졸라맨은 캘리포니아 전체에 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도시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굉장히 무감각해졌다. 모든 상점을 방문할 때 실내 주차시설을 이용했고, 일반 시민들도 총을 휴대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총기사고는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며, 대부분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오해로 벌어진 일이다.
악의 씨앗은 지면에 깊이 틀어박혀 뿌리를 뽑기 힘들 정도로 자리를 잡으면서 치안 악화가 심각할 정도란다.
“그게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어. 리그에 들어가지도 못한 하류들은 상점 약탈을 빈번이 하고, 온갖 범죄조직이 리그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약한 기색이 보이면 바로 잡아먹힐 거야.”
“그렇군.”
약육강식의 세계임에도 그나마 질서가 유지되는 건 총기 휴대가 가능해서 그런 건가. 대한민국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와장창!
두두두두두!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보니 복면을 뒤집어 쓴 빌런들이 상점 약탈을 시도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주변의 반응이다. 주변 가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셔터를 내리면서 빌런들의 침입에 경계하는 태세를 갖췄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차 세워.”
끼이익!
졸라맨이 반사적으로 차를 세웠고 나는 밖으로 나와 곧장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점 주인은 혼자였고 빌런의 숫자는 열 명이나 되어서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누구…….”
콰직!
난 빌런의 목을 비틀어버린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빌런들은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총구를 돌렸다.
피빗! 피비비빗!
총알은 내 포스막을 뚫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렸다. 다른 빌런은 총으로 무리라 생각했는지 칼에 포스를 두르고 내리쳤지만 흠집도 나지 않았다.
“모두 도망쳐!”
판단은 제법 빠르지만, 저격을 얻은 이후 누구도 내 손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퍽! 퍼벅!
내 저격에 적중된 빌런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한 명만 남기고 모조리 머리가 터져 쓰러졌다.
“괴, 괴물!”
마지막 남은 녀석도 그 말을 유언으로 남긴 뒤 머리가 부서져 쓰러졌다. 포스막으로 피가 튀는 것까지 완전히 튕겨낸 나는 멍하니 지켜보는 상점 주인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인 뒤 졸라맨의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자.”
“이대로 그냥 가?”
“그럼 뭐가 더 있냐?”
“아, 아냐.”
졸라맨은 다시 차를 몰았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난 궁금한 점이 있어 졸라맨에게 물어보았다.
“원래 이런 일이 빈번하냐?”
“아, 저거?”
“어.”
“생각보다 많아. 준호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상점 주인도 버티기 힘들었을 걸.”
“못 버텼으면?”
“다 털리는 거지.”
태연하게 말하기는. 아무튼 저런 게 일상이라는 걸 보면 막나간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퍼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가 생각한 건 유능한 사람들을 만나서 나 대신 연구해줄 사람을 낚아올 계획이었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이게 헬스장이지 연구소냐?”
게다가 졸라맨이 소개시켜주는 사람마다 전부 웬만한 보디빌더보다 더 몸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악랄하기로 유명한 스탠퍼드 박사과정을 거친 인물들인데, 몸 상태는 200살은 너끈히 살 것처럼 건강해보였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준호! 졸라 강한 비결이 있으면 알려줘!”
“손속이 졸라 자비 없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뭐야?”
“이 기프트 원리가 졸라 복잡한데 어떻게 졸라 쉽게 풀어낸 거지?”
“준호! 졸라…….”
전부 졸라맨한테 한국어를 배웠는지 말마다 졸라를 붙여대고 있었다.
졸라맨이 하나도 아닌 여럿이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기프트의 원리가 졸라 독특한데? 기프트에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있다는 건가?”
“그럼 기프트에 졸라 자극을 줘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기프트 인격론에 이어 진화론까지 나오는 건가. 졸라 참신해!”
이 박사 보디빌더들은 기프트를 이론적으로 해석,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접목해서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 말들을 듣고 나는 흥미가 동하는 걸 느꼈다.
실제로 기프트에 자아가 있는 건지,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걸 유추해내고 있었다.
보통 머리들이 아닌데?
만약 이 머리로 내 기프트를 연구하게 만들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지 궁금해졌다.
[네가 실험체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는데 괜찮다고?]용용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독이나 약물로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천마갑귀의 독을 뒤집어쓰고도 살아남았는데 그거보다 더 독한 게 있으려고.
지금의 난 더 강해지는 것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난 쓰게 웃는 졸라맨을 보고 물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야?”
“연구에 미쳐 있지. 하지만 이 연구가 인류를 더 강하게 만들고 마물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고 믿고 있어.”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건 이걸 보여주기 위함일 테고.”
“준호가 내 친구들을 필요로 하는 걸 알아. 그건 분명 인류에 도움이 되는 걸 테고. 하지만 난 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고 싶어. 그리고 이건 준호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거야.”
“흠.”
틀린 말은 아닌데.
졸라맨의 설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선택은 준호가 하는 거야! 난 준호가 어떤 선택을 해도 원망하지 않아!”
[쟤 거절하면 울 거 같은데?]말은 쿨했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하군. 난 간절함이 담긴 졸라맨의 시선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고민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내 마음은 이들과 협력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부려먹을 기회가 생겼는데 그걸 받아먹지 못하면 강해질 자격이 없지.
특히 천둥새라는 적을 앞에 둔 지금 더더욱.
오히려 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뽑아내서 접목시키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 보여주지.”
“뭘?”
“너희가 궁금해 하는 것들.”
내 말에 박사 보디빌더들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준호! 거짓말 하면 안 돼! 그럼 우리 다 졸라 울 거야!”
“우리가 울면 졸라 추한 거 알지? 꼭 보여줘야 돼.”
녀석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연구소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보디빌더 뺨치는 근육질들이 울겠다고 협박하니 기도 차지 않았다.
“됐고, 필요한 게 있어.”
“뭔데?”
“이 연구소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마물 독 가지고 와봐.”
최고 우수사원이 시범을 보여야겠지.
*
* *
모든 마물은 저마다 독성을 갖고 있고, 특히 독을 주 무기로 한 마물은 포스와 섞어 치명적인 독으로 변화시켰다.
당연하게도 마물 독은 중요한 연구 소재였다. 내 요구에 졸라맨이 갖고 온 것도 기대를 충족시키는 강력한 독이었다.
“이 독은 네바다주 사막에서 잡은 브라운 폭스의 독으로…….”
유해 8단계 마물인 브라운 폭스의 독은 닿는 즉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강력한 독이었다.
특수 코팅을 12겹 해놓은 용기로 간신히 보관한 이 독은 향이 닿는 모든 범위에 환각을 일으키고 닿는 즉시 모든 걸 녹여버리는 산성을 품고 있었다.
“이 독은 초인조차 죽일 수 있어. 위험해.”
졸라맨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말에 개의치 않고 특수 용기에 담긴 독을 바라보았다.
한껏 겁을 먹은 듯 하니 만득이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딱 좋아 보이는군.
“잘 봐.”
난 그대로 용기를 들어 마개를 열고 내용물을 내 손에 부어버렸다.
“어! 위험……!”
용기 개방과 동시에 강렬한 독성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삽시간에 연구소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가려고 했다.
그때 나선 것이 만독불침이었다. 만득이는 제멋대로 날뛰려는 독성을 휘어잡더니 내 손에 떨어진 독을 순식간에 해독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화이트보드에 가득한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는 것과 같았다. 초인조차 죽일 수 있다는 독도 만득이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우수사원다운 퍼포먼스다.
“이, 이건!”
“졸라 말도 안 돼!”
“졸라 짱이잖아!”
만독불침 기프트로 놀라기는.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에 나온다.
“이건 기프트 활용일 뿐이고, 이것도 가능하지.”
난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보이게 했다.
말끔하게 해독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던 손바닥 위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만득이가 해독했던 브라운 폭스의 독이었다.
단지 해독만이 아니라 그 독에 대한 정보를 기록해서 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이건 순전히 만득이가 이뤄낸 성과였다. 그리고 내 지시에 따라 독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다.
나도 만득이가 이것까지 해낼 줄 몰랐지. 기프트 자아가 스스로 생각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기프트를 활용할 수 있는 폭을 제공하고 기프트 응용 분야의 한계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여기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머리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까.
기대가 되는군.
“…….”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난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어때?”
더 물어보고 할 것도 없다.
완전히 넘어왔군.
이제 쐐기를 박을 때다.
“내 요구조건을 들어주면 너희가 연구하게 할 의향이 있는데.”
내 말에 모두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