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시작은 에릭 클락슨이 했지만 박사들의 뒤이은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대학원생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쥐어짜낼 수 있는지가 주가 되었다.
정확히는 후학 양성이다.
근데 왜 난 쥐어짜내는 것처럼 들리지. 하긴, 나도 누군가를 훈련시킬 때 죽어라 굴리니까 그게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지.
박사이자 교수이며 우수한 각성자인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학원생은 한 마리의 소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생명체.
아낌없이 다 주는 대학원생은 자신들의 연구를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파트너였다.
내가 보다 더 많은 기프트를 보유할 수 있게 해주고, 스스로 발전하여 응용하고 전투에 돕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기프트 자아와 대학원생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하면 총 맞지 않나?”
그 부분이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내가 대학원생이라면 저들이야 말로 빌런이자 악일 텐데 말이다.
오히려 에릭 클락슨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안 맞아! 대신 충분한 돈과 명예를 주거든!”
“그래?”
“응!”
워낙 자신감 넘치게 말하니 그러려니 싶었다. 나야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얘들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해서다.
개겨봤자 바로 진압해서 더 힘들게 만들어주면 바로 항복하기 마련이지.
대화를 마쳤을 무렵, 졸라맨이 내게 다가와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준호! 너무 귀 기울여 듣지 마. 오랜만에 신이 나서 그런 거니까.”
“그런 것치고 일치하는 점은 많던데?”
“그건 그래. 대학원생이나 기프트 자아는 모두 저항하기 힘든 위치에 있으니까.”
글쎄다, 만득이가 처음에 나한테 반항했던 걸 생각하면 졸라맨의 말을 납득하기 힘들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정신인 나더러 미쳤다면서 덤벼들던 녀석을.
바로 참교육을 시켰지만 만득이의 오작동을 기억에 담아두고 있다.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내게 졸라맨이 말하길, 기프트 자아를 너무 강압적으로 다루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교수에게 쥐어 짜이던 대학원생이 교수를 생매장해버리거나 총으로 쏴 죽인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내 기프트 자아도 그럴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자아라는 건 생각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럼 잘 다뤄줘야 해. 자아들은 준호를 위해 움직이는 거니까! 이게 졸라 힘든 부분이 있어.”
“그렇기는 한데.”
흠, 전투 중에 오작동을 걱정해야 하는 건가.
졸라맨은 날 걱정해서 한 이야기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예 저항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밟아놓으면 되겠네.”
“…….”
“이럼 되는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
졸라맨은 뭔가 할 말이 많은 얼굴이지만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할 것이지 왜 궁금하게 만드는 건지.
하지만 끝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득이들을 대학원생처럼 굴리면서 반항심이 싹트지 않게 잘 관리해봐야겠군.
오늘부터 정신교육 시작이다.
*
* *
기프트 자아와 대학원생의 평행세계 이론은 꽤 감명 깊어서 나는 대학원생에 대한 탐문에 나섰다.
안나 크리스틴 주변에도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 대학원생이던 사람들을 알 것 같아 물어봤더니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건 지옥이에요! 대학원생이요? 내가 대학원생일 땐 교수놈한테 내 친구 클라라의 강아지 퍼피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어요. 하루에 열다섯 번씩 머리에 샷건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죠.”
그러면서 교수들이 말하던 온갖 부조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듣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교수들이 빌런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아직도 살아있지?
그나저나.
졸라맨 동료들도 그렇고 모든 교수들은 대학원생을 쥐어짜내는 기프트를 갖고 있나보다. 이런 건 나도 배우고 싶은데 말이지.
경이로움도 잠시, 나는 얼굴에 열이 잔뜩 오른 안나 크리스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왜 그래요?”
“너도 대학원생 출신인 줄 몰랐는데.”
“그게 신기한 이유에요?”
“생각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싶어서.”
“그럼 제가 미모와 몸매만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줄 알았어요? 이 바닥,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저야 말로 미모와 몸매, 지식과 실력을 두루 갖춘 인재죠.”
코웃음 치면서 도도한 표정을 짓는데, 괜히 자신감만 심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가장 안 좋은 건 저 말을 받아주지 않고 화제를 돌리는 거다.
“아무튼 대학원생이 불쌍하다 이거로군.”
호응하지 않으니 바로 삐뚜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납득했다.
“불쌍하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그렇다면 만득이들도 불쌍하다는 건데, 내 생각은 다른 면이 있었지만 안나 크리스틴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얘들도 챙겨주면 되겠지.”
성과를 만들어올 때마다 몇 시간의 휴가를 주는 걸로. 물론 정신교육이 먼저다.
힌트를 얻은 나는 만득이들을 위한 복지를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
* *
미국에 오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동안 나는 성실하게 빌런을 처리했다.
중간마다 미국 정부에서 건네주는 정보를 토대로 리그 빌런을 쓸어버렸는데, 그냥 참고용이었지 굳이 리그 소속 빌런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리그의 빌런도 빌런이지만 LA 내에 암약하는 녀석들도 잠재적인 협력자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핀 포인트로 리그 빌런들만 처리한다고 해도 머리가 살아있으면 하부 조직 빌런들이 협력자가 되어 빈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보이는 족족 철저하게 말살하는 것이다.
바퀴벌레가 한두 마리 보이면 그 집은 이미 바퀴벌레 소굴이라는 말처럼 빌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 손에 처리된 빌런의 숫자는 물경 오천여 명에 이르렀다. 처음보다 페이스가 떨어진 이유는 아예 거점을 버리고 도망치는 경우가 벌어지면서다.
그래봤자 흔적을 감추지 못해서 대부분 추격해서 쓸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방법을 쓰면서 소탕하는 속도가 늦어져서 페이스가 늦어진 건 사실이다.
미국 정부 측은 생각이 다른 듯 싶었지만.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방문한 허버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나한테 죽을 뻔하고도 저렇게 웃는 걸 보면 사람이 원래 저런가보다.
아니, 정치인들이 대단한 걸지도.
“현재 LA 내 빌런의 활동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입니다. 리그 세력도 딜러를 잃고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지리멸렬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이상의 성과입니다.”
“제 값을 했군.”
“그렇습니다. 헤드 브레이커, 당신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극찬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말에 현혹될 이유가 없다. 이건 거래였고, 평소 내 생각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임했을 뿐이다.
미국 정부에서도 날 이용한 거고.
서로 거래를 한 거니 좋아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없다.
다만 지금쯤 내가 이곳에 온 게 알려졌을 텐데 정치인들이 귀찮게 굴지 않는 걸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파티의 항의가 있었지만 그거대로 오히려 좋았습니다.”
“파티랑 사이가 안 좋나?”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하기도 힘든 애매한 관계라 볼 수 있습니다.”
“잠깐, 그건…….”
“괜찮아, 다니엘. 파티도 접근해올 텐데 어느 정도 알아두는 게 좋겠지.”
제지하려는 다니엘을 안정시킨 허버트는 파티와 미국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마물이 등장하기 전, 파티는 곧 세계였다. 유럽과 북미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 세력의 입김은 세계 전역을 흔들기에 충분했고, 그 위세에 미국 대통령조차 기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물의 등장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파티가 격변을 겪게 된 것은 북미와 유럽을 잇던 대서양의 단절이었다.
지금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혹은 신수가 아닐까 칭해지는 ‘레비아탄’이라 불리는 존재로 인해 파티의 힘이 급격하게 약화됐다.
여기에 결정타가 리그의 분화였다.
북미와 유럽의 단절에 리그의 분화를 거듭하면서 파티의 세력은 축소되었고, 전 세계를 아우르던 영향력은 북미에 한정되게 만들었다.
“현재 미국에는 두 대통령이 있다고 합니다. 양지의 허버트, 음지의 팬텀.”
빛이 바랬다고 하나 여전히 그 세력은 미국 내에 막강하여 아직도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나마 이제는 반항할 수준은 되었다고.
“그게 좋아진 것입니다. 예전 대통령은 파티가 허락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때 리그를 추종했던 허버트는 그 본질이 권력 추구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티의 본질을 엿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실망으로 이어졌다.
대선 당시 상대 후보가 파티의 후원을 받아 고전했지만 개인기로 극복한 이후, 파티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단다.
어느 나라나 권력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대단하군.
과거 파티가 세계 금융을 장악해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물밑에서 거래되는 암시장으로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뉴욕과 LA인데, 그중 한 축인 LA가 나 때문에 쓸려나간 상황이고.
“헤드 브레이커, 당신의 힘 덕분에 파티를 억누를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일입니다.”
“죽이려고 했던 건 잊어버렸나봐?”
“하하, 그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이군.”
“좋은 것만 봐도 짧은 삶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꽤 인상적인 말이로군. 하지만 그게 전부일 뿐, 별 감흥은 없었다.
누가 뭐래든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다. 난 LA에서 리그 세력을 축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빌런을 소탕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파티 세력이 축소된 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산물일 뿐이고.
“그리고 오늘 찾아온 이유는.”
그제야 허버트는 날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파티에서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만나지 않길 바라나?”
“그렇다고 하면 만나지 않으실 겁니까?”
“내가 왜?”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급적 만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나셔도 상관없습니다.”
허버트는 쿨하게 물러섰다.
“파티도 미국에 있는데 만나려고 하면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막으려고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허버트는 미련이 많이 남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굳이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이제 저쪽 용건은 끝난 듯하지만.
내 용건은 남아 있었다.
“슬슬 약속한 걸 받고 싶은데.”
“물론 준비했습니다.”
허버트가 내민 서류는 내 의뢰대금이었다.
“이곳에 우리가 준비한 천둥새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
* *
“…….”
미국 정부에서 건네준 천둥새에 관한 정보를 읽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용용이나 현아가 말한 걸로 쉽지 않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미국 정부에서 기록해둔 정보를 보니 보다 구체적으로 강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천둥새가 강하긴 하군.”
[맞아, 강해. 이제 좀 이해했어?]“그래.”
지금의 나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여럿 있었다.
내가 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둥새를 죽일 자신이 있지만 문제는 나도 무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당연하지만 난 승리를 원하지, 눈에 거슬린다고 같이 죽을 생각이 없었다.
승산을 좀 더 끌어올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법은 있다고?]“있어.”
[뭔데?]우선 기프트 숙련도를 더 끌어올리는 게 있다.
기프트 위력 상승은 마물을 사냥할 때 가장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내 생각이 미친 것은 우리 대학원생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에릭 클락슨이 그랬었지. 대학원생이 서로 합심해서 나가버리면 곤란하니 평소에는 분열 시키다가 연구를 할 때 힘을 합치도록 만드는 게 이상적이라고.
전자는 내게 필요 없다. 전부 힘을 합쳐봤자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강화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대학원생이 더 늘어나면 좋지 않을까?”
[늘릴 수는 있고?]시도는 해봐야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기다려봐.”
그 말을 남긴 뒤 나는 곧장 심상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만득이, 광심이, 제련이를 집합시켰다.
아직 본격적인 대학원생 체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세 자아는 초췌해보였다.
진짜 지옥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체념이라니.
요즘 것들은 근성이 약해서 문제다.
난 녀석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너희가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
우웅! 우웅! 우웅!
셋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내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난 그걸 못들은 척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가 힘든 이유는 숫자가 셋이라서 그런 것도 있다. 만약 너희를 수발 들어줄 녀석이 더 있다면 좀 더 편해지겠지?”
난 이런 가설을 세웠다.
만득이 등 자아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보유한 다른 기프트에도 자아가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 존재하는데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걸 끌어내는 작업을 만득이 등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대학원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난 에릭 클락슨이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더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와. 그럼 그만큼 너희가 더 편해질 테니까.”
내 말을 들은 만득이들의 기세가 확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