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만득이들한테 지시를 내렸지만 이게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기프트 자아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다각도로 기프트 발동이 가능해지니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더 성장하면 추후에 다른 기프트와 통폐합도 가능해질 테고.
“현재 후보로 따져보면 기뢰랑 칼날폭풍, 초재생 정도인가.”
내가 보유한 기프트 중 그나마 자아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녀석들이다.
기뢰는 프란츠가 평생에 걸쳐 갈고 닦은 기프트를 내가 복사해와 애용하던 것이고, 칼날폭풍은 오종엽의 기프트인 슬래쉬와 누리의 칼날폭풍이 결합된 것이다.
초재생은 그 자체만으로 전설급 기프트라 할 수 있고.
아, 하나 더 있긴 하다.
내 첫 기프트인 혈중섭식. 애초에 이건 처음부터 자아가 존재하던 녀석이지. 그 자아가 혈종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설마 혈종을 데려오려고 하진 않겠지?
“머리를 좀 비워야겠어.”
남은 시간 동안 기프트를 좀 더 세련되고 위력을 극대화 할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연구소의 박사들이 날 위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어야지.
[정작 넌 머리를 비우면서?]“나야 깊게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 인간들은?]“뭘 연구하길 좋아하는 거니까 서로 윈윈하는 거지.”
[와, 그렇게 해석을 해?]용용이 녀석, 감탄하기는.
원래 사람이란 건 다양한 타입이 존재하는 법이다. 신수도 마찬가지 아니냐. 각자 취향이 다르니 그걸 존중해줘야지.
[그냥 너 좋을 대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그럼 그렇게 생각하던가.
[그래서 머리는 어떻게 비울 건데?]“빌런을 제거할 거다.”
[엉?]왜 자꾸 한 말을 또 하게 만드는 거지? 한 번 말하면 말귀를 좀 알아들을 것이지.
근데 용용이는 도리어 억울한 기색이었다.
[아니, 지금 말이 이상하잖아.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한 거잖아? 그래서 머리를 비우려는 거고! 그런데 왜 갑자기 빌런을 제거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데?]“아, 그거?”
그래도 인간 사회에 나온 지 오래 되고 나 따라다닌 것도 오래 됐으면서 아직도 모르고 있냐.
[아는 게 이상한 거거든?]전혀 이해하지 못한 걸 보면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나쁜 놈들을 죽이는 건 고민이 필요한 일이 아니지. 당연한 일일 뿐. 고민이 필요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머릿속 생각이 사라지지.”
[…….]이 간단한 이치도 모르다니. 신수가 똑똑하다는 건 내 착각이 아닌가 싶었다.
[와, 진짜 어이가 없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그럼 틀린 거라도 있냐?”
[너무 많아서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해보던가.”
[아, 됐어! 네 말이 맞는 걸로 해!]반박도 못할 거면서 아는 척 하기는. 딱 봐도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니까 말 돌리는 게 분명했다.
[속 터져!]“의뢰도 완수했으니 보이는 족족 쓸어버리면 되겠지.”
한국에서는 이제 음지에 숨은 빌런을 찾기 힘들어서 양지로 나온 녀석들을 찾아가며 소탕해야 하는데, 이곳은 참 찾기 쉬운 것 같았다.
[진짜 이게 정상이라고?]*
* *
천둥새 정보를 건네준 것으로 허버트와 다니엘은 빌런 소탕이 끝날 거라 생각했다.
의뢰를 하여 리그 측 빌런들을 쓸어버리고 12궁의 일원인 딜러까지 잡는데 성공했으니까. 처음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였고, 정부 측이 LA의 통제권을 되찾는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파티의 항의가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뭉갰다. 적대적 공존 관계인 이상 파티의 세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의 힘이 강해진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최준호에 대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헤드 브레이커의 빌런 소탕이 끝나지 않았군. 파티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야.”
구심점을 잃은 리그는 하부 조직을 두고 철수를 감행했지만 미국에 본거지를 둔 격이 된 파티는 아니었다. 빌런 하부 조직과 연이 닿은 그들은 최준호의 무분별한 소탕에 비명을 질렀다.
그중 가장 큰 타격은 LA 내 최대 암시장의 파괴였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금액은 천문학적이었는데, 최준호 손에 걸리면서 모든 것이 소멸되는 타격을 입었다.
정부가 중재하라는 압력이 들어왔지만 허버트로서도 최준호가 왜 빌런 소탕에 나섰는지 이해를 못했다.
애초에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천둥새에 관한 정보를 줬는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어.”
“안나를 보냈으니 답을 가지고 오겠지.”
“역시, 다니엘. 내 마음을 귀신같이 눈치 채는군.”
“…네가 이런 일을 할 리 없으니 내가 하는 거다.”
“하하, 어차피 헤드 브레이커를 건드릴 수 없으니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게 좋아. 폭탄은 파티에 넘겨주면 되는 거고.”
“그래도 상황 파악은 해두는 게 좋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나 크리스틴이 가지고 온 자세한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허버트는 물론이고 냉정한 다니엘마저도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파티를 뒤집어놓는 빌런 소탕 이유가 ‘그냥’이라고?”
“네. 빌런 소탕이 머리 비우기 좋다고 하네요.”
“…….”
“저도 처음에 듣고 믿을 수가 없어서 세 번이나 되물어보고 들은 말이에요.”
오히려 다른 해석을 덧붙였으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계에 있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준호의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납득이 되었다.
입꼬리를 씰룩이던 허버트는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와하하하! 진짜 재밌는 녀석이라니까! 머리를 비우기 위해 빌런을 소탕한다고? 이걸 진심으로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안 그래, 다니엘? 진짜 이 녀석은 미친놈이야! 이런 미친놈이 초인이라니! 아주 임자 만났어!”
“파티에 뭐라고 말할까?”
“마음 같아서는 골탕 좀 더 먹으라고 하고 싶지만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왔겠지?”
한참 웃던 허버트가 안나 크리스틴에게 묻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LA로 온 게 자신들을 물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럴지도. 그럼 전달하도록 해. 지켜볼수록 손해가 커질 거라고. 방문할 계획이 있으면 한시라도 빨리 찾아가는 게 좋다고.”
“네.”
“이 정도면 우리가 충분한 성의를 보인 거겠지. 저쪽에 똑똑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헤드 브레이커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머리 싸매고 있을 걸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만 나오는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직접 와서 묻기도 애매하고.
“아니, 곧 찾아갈 테니 묻긴 하겠어. 하지만 자기들이 빌런과 결탁했다는 걸 밝혀야 할 텐데 그게 쉬울까?”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허버트는 히죽 웃었다.
반면 다니엘은 부정적이었다.
“너무 독이 오르게 두는 건 좋지 않아.
“나머지는 그쪽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피해가 만만치 않겠어. 그게 우리한테는 기회가 될 테고.”
허버트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다니엘과 안나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바탕 휘저으며 머릿속을 정리해나갈 무렵, 졸라맨에게서 소식이 전해졌다.
고자왕, 아니 사자왕 막심 게데스가 찾아오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파티 소속이라 볼 일은 없지만 미국에 온 김에 한 번 봐서 나쁠 건 없겠지.
무엇보다 나는 녀석이 리그를 제거하기 위해 고자의 길을 선택한 것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저 정도 신념이라면 존중받아 마땅하지.
내가 수락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막심 게데스가 날 찾아왔다.
“오랜만이다, 준호.”
“내가 온 건 한참 전에 알지 않았냐?”
“그렇긴 하지. 바빠 보여서 이제야 오게 되었다.”
“바쁠 것까지야.”
LA에 온 이후, 의뢰를 수행하면서 난 할 거 다 하면서 보냈다.
대통령에게서 한 번쯤 방문할 거라고 들었으니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고.
“왜 서 있냐, 앉아라.”
난 자연스럽게 막심 게데스와 대화를 나눴다. 주된 주제는 내 행보에 관련된 이야기였고, 그 다음은 막심 게데스가 리그와 맞선 이야기였다.
그러다 딜러를 제거한 것에 찬사를 보냈다.
“녀석이 만든 공간은 굉장히 번거롭지. 그래서 그 영역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설마 안으로 들어가서 제거할 줄 몰랐다.”
“제법 잔머리를 굴리긴 하더라.”
“딜러가 만든 공간을 그렇게 평가할 각성자는 너밖에 없을 거다.”
십대초인의 일원인 자신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을 정도라고 말하며 막심 게데스가 쓰게 웃었다.
확실히 딜러의 기프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땐 까다로웠겠지.
“정부에서 빌런 소탕 의뢰를 했다고 들었다.”
“거기에 너희랑 손잡은 곳도 있다며? 그러게 왜 빌런 조직이랑 손을 잡냐.”
“비밀조직이라면 어디에나 지하경제와 연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내가 알 바는 아니지.”
“하긴, 빌런을 제거하는 대의 앞에 어떤 말을 해도 무의미하군.”
막심 게데스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딱 봐도 그걸로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더 꺼낼 기세는 아닌 거 같았다.
그렇다면 용건은 이 다음에 있겠군.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건 네가 아니라 저기에 있던 건가?”
내 시선이 고정된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자가 있었다.
“잠깐…….”
막심 게데스가 놀라서 날 막으려고 했지만 내 손이 들리는 게 더 빨랐다.
타앙!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쇄도한 포스 탄환이 틀어박히는 듯했으나 마치 수면 위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공간에 물결이 치더니 그대로 공격이 흩어졌다.
맹탕은 아니로군.
“너희들이 음흉한 건 아는데 얼굴은 드러내고 얘기를 해야지.”
비밀 세력이라고 칭하는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례했군.”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영. 잘 관리된 탄탄한 몸에 정장을 갖춰 입은 노인이었다.
유령 가면을 쓰고 있으나 하얗게 샌 머리와 노화한 기세가 노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프란츠 영감보다도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
“세계최강 초인을 보게 되어 반갑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 영감이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겠지.
“난 뭐라고 부르면 되지?”
“팬텀이라고 부르면 된다.”
그는 막심 게데스 옆에 서서 말했다. 팬텀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막심 게데스는 은연중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이것도 꽤 흥미로운 그림이긴 하군.
“그래서 찾아온 이유는?”
“우리 하부 조직을 다 날려버렸더군.”
“그래서 항의하려고?”
팬텀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일어난 일로 항의는 무의미하지. 우리가 부리던 녀석들이 깨끗했던 것도 아니고. 한 번쯤 물갈이를 하려고 했으니 네 탓을 할 생각이 없다.”
“내 탓을 하면 어쩔 수는 있고?”
“…….”
가면에 가라졌지만 팬텀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딱 봐도 특권의식에 절여진 녀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막심 게데스가 분위기를 살피는 걸 보면 더 건드려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물론 이런 녀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오래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막심 게데스는 리그를 제거하기 위해 큰 걸 희생했지만 노회한 저 양반은 딱 봐도 자기 이익만 추구하게 생겼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파티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없는데.”
[와, 0.001초만에 대답했어.]용용이 감탄과 별개로 전혀 생각이 없었다. 딱 봐도 뒤에서 음흉한 짓거리 하는 녀석들 모임에 내가 들어갈 이유가 없지.
“그럴 거라 생각했지.”
팬텀도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
진심을 담지 않은 채 찔러보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이다.
슬슬 거슬리기 시작하는군.
막심 게데스는 내 눈치를 살폈지만 팬텀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
“한 뜻을 갖고 움직일 수 없지만 거래가 가능한 파트너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래?”
“미국 정부처럼 우리도 의뢰를 하고 싶다는 의미지.”
“자칭 세계를 주무르는 파티라는 곳에서 말인가?”
“마물의 등장 이후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그만큼 늘어났지. 할 수 있는 것들도 줄어들고. 의뢰를 받을 생각이 있나?”
“글쎄.”
굳이 들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는데 말이다.
딱 봐도 장난질을 칠 거 같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의뢰일 것이다.”
“뭔데?”
“천둥새. 미국에 있는 신수를 제거하는 의뢰지.”
“…….”
[어? 네가 하려는 거랑 같잖아?]용용이 말대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뢰라서 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난 가면 사이로 드러난 팬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나도 상대의 눈을 응시하면 그 속에 묻어나오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노회한 팬텀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파티가 왜 천둥새를 제거하려고 하는 건지 굳이 이해가 필요하진 않았다.
이 미국에서 정부와 권력을 다투려면 천둥새도 거슬릴 수도 있을 테니까.
신수라는 존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상상도 하기 힘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다만.
그걸 왜 나를 본 즉시 말하는 것일까.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이것은 나한테 아주 익숙한 수작이다.
난 팬텀을 향해 웃어보이곤 말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