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기에 손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
팬텀이 내가 움직이는 걸 봤을 때, 내 손은 이미 면전에 도달해 있었다. 낚아채듯 휘둘러진 내 손은 팬텀의 안면을 움켜잡지 못했다. 연기처럼 흩어진 신형은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기프트인가? 잠깐이지만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다.
콰과과광!
애꿎은 허공을 할퀴게 되면서 공간을 산산조각 냈다. 난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몸을 튕겨내며 팬텀이 있는 곳을 향해 연달아 포스 탄환을 쏘아냈다.
픽! 퍽! 퍼버벅!
연달아 허공을 두드린 포스 탄환이 팬텀의 위치를 고정시켰고, 멈칫하는 사이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어떤 원리로 눈을 완전히 피하는 건지 몰라도 이 좁은 공간에서 온전히 장점을 발휘할 수 없다.
팬텀의 능력은 암살할 때나 위협적이지, 정면대결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나는 녀석의 위치를 특정, 희미하게 감지되는 녀석의 목을 틀어쥐려 할 때였다.
꽈아아앙!
옆에서 달려든 거대한 덩치를 보고 뒤로 물러났다.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 녀석은 방안의 벽을 부숴버렸지만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고 일어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느새 사자화를 마쳐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쫓고 있었다.
“이렇게 상대하는 건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아.”
막심 게데스가 야성을 드러냈다. 줄기줄기 뻗어나가는 살기를 접하면서 전보다 한 층 더 정제된 강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놀고 있던 건 아니로군.
그리고.
돌연 뒷덜미에 느껴지는 서늘함에 넌 목을 앞으로 숙였다.
스팟!
그와 동시에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예기. 거기에 휩쓸려 머리카락이 쏟아지며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그보다 더 다가온 것은 은밀함이었다.
어떤 타격도 없었지만 내 감각을 파고들면서 저 구석에 미뤄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기억났어. 프란츠 영감보다 반 세대 정도 먼저 십대초인의 전신인 다섯 개의 별이 있다고 했었지?”
“…….”
팬텀은 대답 없이 내 빈틈을 노렸다. 그리고 뒤에서 막심 게데스가 달려들었고.
무시무시한 권풍은 의도적으로 팬텀의 위치를 파악하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전혀 다른 타입의 두 초인이 앞뒤에서 압박해오는 것은 오랜만에 긴장감을 끌어올리게 만들었다.
“재밌는데.”
천둥새를 상대하기 전에 이런 재미를 느끼게 될 줄이야. 나는 막심 게데스의 공세에 맞서 손을 뻗었다. 기뢰에 가미된 제련은 투뿔 마물의 가죽에 균열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 위력은 저돌적인 고자왕의 전진을 저지하기에 충분했다.
“크읏!”
충격파를 해소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는 녀석을 떼어놓은 뒤 팬텀을 쫓았다.
방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팬텀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잡았다.”
빈 허공이지만 그곳에 팬텀이 있었다. 내가 녀석의 목을 틀어잡으려던 순간이다.
“잡힌 건 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을 자극하는 서늘한 예기가 거미줄처럼 날 옭아맸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어떻게 만들어낸 거지? 낭패라기보다 놀라움이 자리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팟! 파밧! 파바바바밧!
모든 걸 베어버릴 와이어 같은 공격이었다. 내가 서 있는 모든 공간을 갈라버릴 예기가 가차 없이 내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이건 기프트가 아니다. 극도의 섬세함을 발휘하여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끝에 만들어낸 함정이다. 극의에 오른 포스 운용은 기프트보다 더 강한 위력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수백 조각의 육편으로 화해버렸을 것이다.
과거의 절대강자라고 해도 한 수를 숨기고 있었군. 예전의 나라면 이걸로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회복이 사용되었을 수도.
그 말은 지금은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내게는 초재생이 존재한다.
포스로 이루어진 와이어가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가서 옷이 넝마가 되었지만 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경악하고 있는 팬텀의 기운이 느껴졌다.
누가 보면 내가 괴물인 줄 알겠군.
[쟤들이 보기에 넌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걸?]온전한 인간인데 이젠 인간 취급도 안 해주는 거냐.
용용이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 팬텀을 바라봤다. 방금 공격은 포스를 감춰두고 시간 차이로 발동하는 듯했는데 은밀함과 위력을 모두 잡은 형태였다.
마물보다 사람을 잡기에 적합해 보인다.
“네 능력 꽤 탐이 나는데?”
“…괴물이로군.”
팬텀은 어딘가 허탈한 표정이었다.
꽤 멋진 한 수를 보여줬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창 때는 엄청 강했을 거 같은데 그때 실력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은 있었다.
난 놈을 붙잡으려다가 뒤에서 달려드는 멧돼지부터 먼저 요리했다.
“크아아압!”
덤프트럭처럼 달려드는 돌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양 어깨를 움켜쥐고 기뢰를 퍼부었다.
양손을 휘저으며 무지막지한 권풍으로 사방을 할퀴었으나 피할 건 피하고, 약하다 싶은 건 몸으로 때웠다. 초재생은 이런 내 선택지를 넓혀주었다.
막심 게데스는 처음에는 견뎌냈지만 제련까지 얻어 몇 단계 더 강력해진 기뢰를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콰드드득!
“크아아아아아!”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지만 내 기뢰는 어깨를 부수면서 타고 들어가 팔에 존재하는 모든 뼈를 부숴버렸다.
양 어깨가 축 늘어진 녀석의 배를 걷어차자 피를 뿜어내며 널브러졌다. 사자화도 풀린 걸 보면 꽤 치명상인가보다. 하긴, 속이 곤죽이 되어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인데 그마저도 최소화한다. 역시 짐승 같은 신체 능력이며 회복 능력이다.
막심 게데스를 무너뜨린 나는 팬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모습을 감추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약해진 기세는 회복되지 않았고.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나보군.
“좀 전에 힘을 다 썼나보지?”
“이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강함이란 말인가. 넌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구나. 손속이 잔인한 것도.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손을 쓰는 것도.”
“별 게 아니라니. 나한테 수작을 부리려 했으면 목을 걸어야지.”
“왜 네게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했지?”
“그럼 수작 부린 게 아니냐?”
“…천둥새 의뢰로 정보를 주며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너는 그마저도 수작으로 여긴다는 건가.”
팬텀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난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전형적인 강자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자기들은 그럴 듯한 계획이라고 할지 몰라도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개수작에 불과하다.
“힘 좀 쓴다고 평생 너희가 강자라 생각했던 게 오만이지. 강자 부심을 부려왔던 걸 더 강자한테 밟힌다고 생각해라.”
“허허.”
팬텀이 자포자기 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야 약자가 보일 법한 모습을 보이는군.
그때, 굳게 잠긴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허버트와 다니엘,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두 초인인 잭과 크리스, 경호원들이었다.
파티와 정부는 앙숙이라더니 뭐하는 거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허버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하, 조금 과열된 것 같아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랑 파티랑 사이가 안 좋다더니 무슨 수작이지?”
“중재를 하고 싶습니다만.”
“난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팬텀에게 브레인워싱을 할까 심장을 꺼낼까 고민하던 차였다.
“파티는 헤드 브레이커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없애는 것보다 이용하는 게 더 좋아 보입니다. 뭐, 정말 씻을 수 없이 안 좋은 사이라면 더 말리지 않겠습니다.”
마치 모든 걸 지켜보고 개입한 뉘앙스였다.
음흉한 녀석이로군.
용용이도 느꼈는지 그리 말했다.
김이 빠진 느낌이라서 더 이상 손을 쓰기 뭐했다.
난 허버트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드는데요? 여자라면 반해버렸을지도.”
“그 전에 머리가 터졌겠지.”
“하하! 원래 사람 관계가 처음부터 만족스러울 수 없는 법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능글능글하게 받아넘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위를 내세우고 자기 생각만 하는 녀석이라면 바로 치워버렸을 텐데 그마저도 아니니.
난 다니엘을 바라봤다. 진짜 미국 대통령이라면 저런 무게감이 있어야지. 미국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바뀌는 게 낫지 않을까?
“대통령 할 생각 없습니까?”
“제안은 감사하지만 지금 자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끔 이 녀석을 보면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긴 합니다만, 이 녀석만큼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협조할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다니엘의 말은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허버트를 볼 때마다 자꾸 충동에 휩싸이고는 했다. 특히 저 능글능글한 웃음은 거슬린단 말이지. 그냥 눈 딱 감고 제거해버릴까.
“…하하하.”
나와 시선이 마주친 녀석이 어색하게 웃더니 다니엘 뒤로 숨었다.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세계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인데 가볍기 그지없다.
“장난질은 됐으니 천둥새에 대한 정보나 넘겨.”
팬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숨 값이니 그리하도록 하지.”
막심 게데스는 안중에도 없는 말이로군. 왜 그런가 싶었더니 나한테 치명상을 입었던 녀석이 어느새 멀쩡한 기색으로 일어나 있었다.
고자가 되면서 회복력도 인간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나보다.
“차이를 많이 좁혔다고 생각했는데 더 벌어졌군. 아직 멀었어.”
씁쓸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허버트와 팬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파티는 정부에 빚을 진 겁니다?”
“…신세 진 건 갚도록 하지.”
왠지 모르겠지만 재주는 내가 부리고 과실은 허버트가 취하는 것 같았다.
*
* *
자리가 수습되고 허버트와 대화를 나누던 팬텀이 돌아갔다. 그리고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막심 게데스는 어느새 멀쩡해진 얼굴로 내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지만 우리가 천둥새를 싫어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
“파티는 천둥새와 깊은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녀석이 하는 말은 팬텀에 대한 옹호면서 동시에 파티와 천둥새의 악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래 천둥새 등장 이후, 파티에서는 이 신수라는 생명체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마물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 뛰어난 지능. 인간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은 경계와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뒤통수를 맞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파티에 속해있던 리그가 분열을 일으킨 배후에 천둥새가 있던 것이다.
세계를 감시할 눈으로 꼽혔던 아르고스는 천둥새의 도움을 받아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고 파티에 치명상을 안긴 뒤 지금의 리그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파티는 리그가 힘을 쌓고 세계 각지로 팽창할 때까지 뒷수습에 매진하며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복수를 꿈꿨으나 초월적인 힘을 가진 신수를 배후에 둔 리그를 상대로 국지전을 벌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걸로 리그를 궤멸시키는 건 역부족이었고.
그러던 차에 내가 등장한 것이다. 리그에 치명상을 입히고 신수마저 사냥하겠다고 나선 내가.
팬텀은 예전 방식대로 특유의 자존심을 부리려다가 된통 당한 거라고 말했다.
그게 패착이었다며 막심 게데스는 쓰게 웃었다.
“우리가 그동안 모은 천둥새에 대한 정보다. 이걸 먼저 건네줬다면 오늘의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겠지.”
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넌 거짓말 하지 마라.”
“무슨 말이냐.”
“나랑 붙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으면서 거짓말을 하냐?”
시비가 붙자마자 좋다고 달려들던 모습이 훤했다.
“그, 그건…….”
막심 게데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 내가 수작 부린다는 말을 안 했어도 어떤 형태로든 덤벼들었을 것이다. 결과야 지금보다 더 처참했겠지만 녀석의 투쟁심은 유별난 부분이 있었다.
강함에 대한 집착과 리그를 향한 분노가 원천인 거 같은데,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대신 저걸 써먹을 곳은 있다.
“굳이 시비를 걸지 않아도 상대해줄 테니까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편하게 찾아와라.”
“그래도 되나?”
“어.”
“그럼 회복되는 대로 다시 오지!”
신이 난 막심 게데스가 돌아갔다. 빈방에는 녀석이 두고 간 천둥새에 관한 자료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걸로 한 건 또 했군.
[의외네.]“뭐가.”
[원래 상대해줄 생각 없지 않았어?]“그럴 리가.”
막심 게데스는 튼튼한 녀석이다. 그 말은 버서커처럼 마음껏 두들겨줄 수 있다는 의미다.
나도 천둥새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할 동안 이것저것 실험해볼 것들이 많다. 언제까지 비리비리한 빌런들 찾아다닐 수도 없고.
요즘은 내 악명이 널리 퍼졌는지 아예 아지트를 비워버리는 건 물론 불태워서 증거를 없애버리는 녀석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래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어서 쫓아서 제거하지만 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일일이 마물을 찾아다니기에는 번거로우니 튼튼한 녀석이 옆에 있으면 든든하다.
[너…….]날 부르는 용용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바로 할 것이지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설마 샌드백으로 생각하고 있던 거였어?]“그럼 다른 의도가 있겠냐?”
[…….]날 보는 용용이는 입을 닫았다.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