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졸라맨이 약삭빠른 느낌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난 부탁을 받아들였다.
신수는 기존 마물과 비교해도 월등한 크기를 자랑했으니까 일부를 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스탠퍼드에서 교수들을 소개시켜주는 등, 기프트 자아의 대학원생론 등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혈종 녀석의 벙찐 표정은 내가 과거로 돌아와 얻은 성과 중 최고였다.
다만 용용이가 아무 반응이 없으니 오히려 어색함을 느꼈다.
“넌 왜 가만히 있냐.”
[갑자기 나는 왜?]“신수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들었잖아.”
[아, 그거?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바뀔 것도 아닌데 입 아프게 말해서 뭐해.]“어, 음.”
[왜?]“그냥.”
용용이 녀석이 모처럼 정상적인 말을 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괜한 걸로 시비 안 걸 테니 준비나 잘해.]용용이에게 이런 세심한 배려를 받게 될 줄 몰랐군.
현재 내 상황에서 나쁜 말은 아니었다. 나는 천둥새에 관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미국 정부와 파티의 정보에 의하면 천둥새의 가장 큰 무기는 ‘고속비행’이라 불리는 권능이다.
마음만 먹으면 수 초 만에 미국을 횡단할 수 있는 이 권능은 첫 등장에서 선보임으로써 대항할 의지를 꺾어버렸다고 한다. 이는 불리할 때 언제든지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다잡아놓고 놓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에 반해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빈약한 방어력으로 꼽혔다. 마물과 비교하면 월등하지만 그나마 공략이 가능한 부분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만큼 처음 천둥새를 만났을 때 공격을 적중시키는 게 관건으로 보였다.
고속비행을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초점인데, 이를 놓고 권능을 취소시킬 수 있는 캔슬러의 참전 유무와 상태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초인 이상급의 각성자,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각성자의 유무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캔슬러는 파티에서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고, 상태 이상은 위치 닥터가 갖고 있던 게 아니었나?
이렇게 보면 파티가 천둥새를 사냥하기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르고스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니지.”
어쩌면 아르고스가 리그를 만든 것 자체가 천둥새의 의중일 수도 있겠다.
팬텀은 아르고스가 천둥새를 설득했다고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가능성 높다는 건 알고 있겠지.
“보자마자 한 방 먹이고 시작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거지?]“어.”
일단 드러난 정보가 이거였고, 숨겨져 있는 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강해보이긴 하는군.
숨겨놓은 강함이 월등하다고 생각할수록 두려움이라는 마물은 존재감을 키워나간다. 난 내가 보유한 기프트들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할 말이 있어.]“뭔데?”
[너와 천둥새가 대결을 벌이기 전에 난 백두산으로 돌아갈 거야.]“왜?”
용용이의 이 말은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아마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너보다 내 존재를 먼저 감지하게 될 거야. 그럼 걔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몰라. 내 존재가 방해가 될 확률이 높거든.]“언제부터 날 이렇게 생각해줬냐?”
[나만큼 널 생각하는 사람 없거든? 누가 보면 매일 훼방 놓는 줄 알겠어.]그럴 리가.
내가 용용이를 구박하긴 하지만 그 진심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다.
결국 날 위해 자리를 비워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의도가 순수할 리는 없겠지만 중립이라도 감사해야겠지.
“말이라도 고맙다.”
[알면 잘해.]저렇게 으스대는 걸 보면 또 태클을 걸고 싶어지긴 하는데.
용용이 권능 중에 하나가 어그로는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고예진이 각성했다면 저 기프트였을 걸로 추측되긴 하던데.
굳이 깊게 생각할 이유는 없겠지.
다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해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에서 지켜보다가 이긴 쪽에 붙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야! 내가 그렇게 야비한 신수처럼 보여?]“…….”
[뭐야,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아니면 말든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하, 됐어.]*
* *
LA에서 시애틀로 출발할 때, 용용이는 말대로 작별을 고했다.
다시 볼 때는 내가 천둥새를 상대로 승리했을 무렵이겠지.
천둥새가 있는 곳은 워싱턴주로 수도인 워싱턴 D.C.와 착각을 많이 하지만 미국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 시애틀이 위치해 있으며, 최근 들어 더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주들 중 마물이 가장 출몰하지 않는 곳이라 칭해져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그것이 천둥새의 영향인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기이한 현상들이 발생하면서 여러 사이비 종교가 횡행하고 있었다.
나는 졸라맨과 함께 시애틀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시애틀에 내리니 LA와 공기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보기만 해도 살기 좋아 보이는데?”
“실제로 시애틀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 졸라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고 있어.”
“그게 천둥새 덕분이고?”
“응, 마물의 습격이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시애틀은 LA보다 더 여유롭고 더 화려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물이 등장하기 전 대도시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야. 그로 인해 사이비 종교가 유행하고 있거든.”
“그게 문제가 되나?”
“맹목적이게 되면 뭐든 문제가 생겨! 그리고 그 영향이 사방으로 뻗히고 있고!”
실제로 이 종교는 LA까지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는데, 별 인상을 받지 못했다. 어디에나 종교에 심취한 무리는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먼 거리를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시애틀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정부에서 보낸 인원이다. 여러 거창한 타이틀이 존재했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길잡이다.
자신을 제임스 터너라 밝힌 길잡이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천둥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천둥새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어 이곳에서는 신비로운 존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첫 말부터 헛소리를 하는군.
“감췄다고?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어떤 점이 말입니까?”
“자기 존재를 감추고 다녔다면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았겠지.”
아예 존재 자체를 몰랐을 테니까.
왜 천둥새가 자기 존재를 감춘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딱 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서 여기저기 티를 내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임스 터너도 대답했다. 내 말에 수긍은 하는데 심기는 꽤 불편해 보이는군.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천둥새를 모신다는 종교는 어떤 곳이지?”
“말 그대로 이곳에 등장한 신을 모시는 종교입니다. 실체가 없는 신보다 더 신답기에 그쪽으로 여론이 확 쏠린 상황입니다.”
하긴, 아무것도 없는 신보다 신수가 더 신에 가까워 보이긴 하겠다. 아니면 성녀가 모시는 신처럼 뭐라도 내려주던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내게 빵 하나라도 더 주는 존재가 더 대단한 법이다.
제임스 터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에 있는 사이비 종교나 미국에 있는 사이비 종교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둥새가 이곳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애틀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주는 다른 곳보다 마물의 위협에서 안전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걸 신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군.”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그 종교에 꽤 너그러운 거 같은데.”
내 말에 운전하던 제임스 터너가 날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
“아무래도 현지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준호! 실제로 이 종교는 미국 전역에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시애틀로 이주하려는 지원자들도 넘쳐나고 있고.”
그 정도로 안전을 향한 미국인들의 열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하긴, 총기 규제가 없다 보니 빌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안나 크리스틴이 말했었다.
“도착했습니다.”
3시간여를 운전한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국 최북단 도시였다. 그곳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 날, 정부의 안가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산장 형태로 지어진 안가는 유사시 마물의 습격에 대비할 수 있고 최악의 상황에는 지하 통로를 통해 산 너머로 피신이 가능한 구조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안가가 천둥새와 접촉한 최초의 장소라고 한다.
“그곳이 천둥새 영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제임스 터너는 이 산장에서 천둥새 영역으로 진입하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천둥새의 의사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천둥새의 의사?”
“허락받지 않는 존재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광신도들은 신을 찾기 위해 천둥새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는 합니다.”
워싱턴주는 신기하게도 마물에게 죽은 사람 숫자보다 신을 찾아 실종된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천둥새한테 유인당해서 죽은 건 아니고?”
“…설마 신수가 인간을 먹겠습니까.”
“마물도 잡아먹는데 신수라고 해서 못할 건 없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흔적은 발견된 적이 없어서.”
제임스 터너는 정보원 입장에서 최대한 드라이하게 판단했다고 얘기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졸라맨이 말을 보탰다.
“준호! 신을 직접 영접하고 싶은 광신도들의 돌발행동이라고 보면 될 거 같아.”
“하긴, 광신도들이 실종된 게 내가 알 바는 아니니까.”
“그렇지. 이곳이 졸라 심한 편이야.”
내가 이곳에 온 것도 천둥새를 잡기 위함이지, 실종자들을 찾거나 그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내 앞에 있는 녀석의 반응이 궁금해서다.
“그래서 넌 무슨 생각인 거지?”
“예?”
“광신도의 생각 말이야.”
“……!”
난 제임스 터너가 반응하기 전에 팔을 낚아채 부러뜨리고는 정강이를 걷어차 뼈를 부숴 놨다.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녀석이 주저앉았다.
“끄윽!”
“준호! 무슨 짓이야!”
경악한 졸라맨이 내게 소리쳤지만 난 제임스 터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왼손으로 머리를 잡아 쥐어 시선을 마주했다.
“왜냐면 이 녀석이 그 사이비 종교 소속이거든.”
“뭐?”
“아니냐?”
고통에 신음하던 제임스 터너는 나와 눈이 마주친 치자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감정을 잘 감춘다고 해서 나까지 속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사이비 종교를 언급할 때마다 보이던 미묘한 반응이 확신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나저나 정부에서 붙여준 인원이 첩자 짓이라니. 일부러 의도했다기보다 종교적 영향이 더 강해보였다.
세계가 마물의 습격으로 신음하는 와중에 자기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으니 그만큼 천둥새를 향한 충성심이 깊은 것으로 보였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었냐?”
“…….”
“대답하지 않는 걸 보면 꽤 가상하긴 한데.”
어차피 나한테 그건 상관없는 일이다.
“잠깐……!”
졸라맨이 날 말리려고 했지만 브레인워싱을 사용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눈동자에 서려있던 결연하던 빛이 사라지고 흐릿하게 풀렸다. 나는 녀석이 꾸미고 있던 계획이 무엇인지 뽑아내기 시작했다.
제임스 터너는 예상대로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다. 본래 정부 요원이었다가 워싱턴주에 머물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고, 천둥새를 추종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천둥새를 만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종교 본단에 알려 대비하려고 했단다.
콰직!
모든 정보를 얻어낸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제임스 터너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자욱한 피를 뿌리며 사체가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날 말리려고 했던 졸라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리할 게 천둥새만이 아니었군.”
“준호, 대체 어떻게 하려고…….”
“딱 봐도 방해할 생각이 넘쳐 보이는데. 사이비 녀석들부터 처리해야지.”
보아하니 이 녀석들이 천둥새의 손발 역할을 하는 걸 수도 있겠다. 우선 인간 세력에 침투해놓은 세력을 치워버린 뒤 홀가분하게 상대하는 게 옳아보였다.
“그래도 상대는 평범한 민간인도 섞여 있어.”
“빌런한테 속을 지능이면 미리 세상에 사라지는 게 나아. 불만이면 따라오지 마.”
“…갈 거야.”
난 졸라맨과 함께 다시 시애틀로 출발했다. 사이비 교단의 본단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