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제임스 리드는 천둥새를 믿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다양한 인종 구성만큼이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곳이 미국이고, 마물이 등장하면서 종말을 팔아먹는 사이비 종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상이 과격한 것도 있고, 아예 회피를 하려는 것도 있지만 멸망할 수 있던 세계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천둥새 관련 사이비 종교도 그 정도 인식에 머무르고 있었다.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음을 기대는 그런 종교 정도라고.
“…….”
하지만 제임스 터너에 이어, 눈앞에 머리가 부서져서 쓰러지는 남자를 보면서 자신이 나이브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음흉한 녀석이란 말이지.”
방금 전, 시애틀 시장의 머리를 부숴버리고는 태연하게 손을 터는 최준호였다. 제임스 리드는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이미 LA에서 빌런을 추적하는 모습을 봤지만 사이비 종교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신앙에 미쳐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모습에 질색을 했지만 최준호는 개의치 않고 광신도들의 머리를 모조리 부숴버렸다. 그리고 꼬리를 잡다가 시애틀 시장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시애틀 시장이 연관된 걸 순순히 믿었을까?
아니, 중간에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가 적정 선인지 가늠하려고 했을 테지.
하지만 최준호에게 그 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것으로 판단된 즉시, 연관자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상 여기는 천둥새의 영지라 봐야겠어.”
“…이 정도일 줄 몰랐어.”
“널 탓할 생각 없다. 일반적인 신수라면 이런 짓을 벌일 거라 생각하지 않을 테니.”
“하!”
천둥새가 독특한 것은 알고 있다. 세상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는 다른 신수와 다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과연 신수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의도를 어그러뜨렸을 때 들이닥칠 여파는?
최준호가 천둥새를 쓰러뜨린다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반대일 경우 신수의 분노를 사는 게 아닐지 두려워졌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이 도시 전체가 천둥새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는 얘기를 전달해야겠지.”
“내가 할게.”
“그리고 꼬리가 드러난 방향에 시장이 있으니 밑에 녀석들도 광신도일 확률이 높고 여기 워싱턴주까지 뻗혀 있을 수도 있겠지. 이 부분에 대한 조치도 취해야 할 거다.”
“알았어.”
아마 이번 보고가 올라가면 대대적인 감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자신이 본 것이 있으니 사이비 종교가 어디까지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지 샅샅이 훑어볼 것이다.
“그거면 청소는 얼추 된 거겠지.”
태연한 최준호를 보면서 제임스 리드는 자신이 한없이 모자라게 느껴졌다.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다 아는 척 해놓고 정작 제대로 돕지 못했어. 이렇게 심각해질 정도로 썩어가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진심으로 반성해서 한 말이지만 돌아온 건 코웃음이었다.
“숨기려고 하면 무슨 수를 써도 찾기 쉽지 않지. 네 잘못이 아니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 천둥새가 얼마나 음흉한 녀석인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마 녀석은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알고 있을 테지.”
천둥새는 이미 자신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다? 그 의도도 간파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위험해. 물러나야 돼.”
“너야 당연히 그래야 하고.”
“준호는?”
“난 녀석을 만나러 가야지. 애초에 그게 목표였는데. 찾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마중이라도 나오면 좋겠는데 그렇게 친절하진 않겠지?”
오히려 기대된다는 최준호의 얼굴을 보면서 제임스 리드는 자신과 생각하는 궤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도 직접 신체개조를 하면서 숱하게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최준호가 행동하는 걸 볼 때면 범접할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
“미쳤어…….”
“대학원생 굴리는 너랑 네 친구들이 더 미친놈이더라.”
최준호의 마지막 말에 절대 공감할 수 없었다.
*
* *
뒷수습을 이유로 졸라맨을 돌려보냈다. 그동안 평화롭게 잘 돌아가던 도시가 실은 신수의 영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일 테니 정상화 하는데 꽤나 시끄러운 잡음이 동반될 것이다.
“드디어 혼자가 되었나.”
졸라맨을 보내고 혼자가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녀석도 유용한 자원이긴 하지만 옆에서 따라붙으며 사사건건 얘기를 걸어오는 건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마침 떼어놓을 명분이 생겼으니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간 셈이지.
“이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잔머리를 굴린다는 증거지만.”
예전의 나라면 귀찮다고 생각하는 즉시 떼어놓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제정신으로 돌아와 사회에 적응하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달라진 내 대응에서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음을 느꼈지만 동시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일 놈을 찾아다니기도 바쁜 상황에서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 신경을 쏟는 것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신경 쓰고, 늘 말을 걸어오던 용용이의 부재가 도리어 낯설 정도니.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용한 정보를 잔뜩 안겨다줄 수 있는 용용이의 부재는 아쉬움을 동반했다.
좀 더 가까이까지 따라올 것이지.
“필요할 때 없다니까.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물꼬만 트여도 천둥새에 관한 정보가 줄줄이 나왔을 텐데. 대체 신수라는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활개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용용이나 현아도 그렇고 드래곤도, 자칭 신이라는 녀석도 신수는 모두 자기 목적을 갖고 움직인다.
“직접 족쳐서 들어야겠지. 그 전에.”
나는 아까 전부터 내부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혈종을 감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날 피해서 꽁꽁 숨어있던 녀석이 이제는 대놓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포기할 기색이 없어보였다. 산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행동에 잠잠하도록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거 아닌 걸로 귀찮게 구는 거면 없애버리고 싶은데.”
그러다 나도 같이 휩쓸릴 판이니 새삼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을 아무 짓도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 차라리 사지를 잘라버려? 내게도 고통이 동반되겠지만 녀석이 회복되지 못하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심상 세계라는 건 먹지 않고 잠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좋은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심상 세계 안으로 진입했다.
곧이어 내 앞에 혈종이 나타났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군. 그렇게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얼굴을 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야.”
내 얼굴인데 왜 저렇게 후려치고 싶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을 뿌리칠 수 없다는 걸 확신하듯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자꾸 그 예상을 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방해하는 게 목적이냐?”
“그럴 리가. 오히려 나만큼 네 승리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걸?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까 오래오래 살도록 응원해줘야지.”
“자기 목숨 소중한지 잘 아는군.”
“오래 살아야 재밌는 경험들을 많이 하지.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과거로 거슬러오고, 이렇게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겠어?”
모든 걸 다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유대감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게 동족혐오는 절대 아니다.
이런 미친놈과 내가 동족일 리 없으니까.
그저 한때의 실수로 탄생한 거머리를 떼어놓을 수 없음에서 오는 한탄이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난동 부린 이유나 설명해.”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네놈을 돕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
“그건 싫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우지 마라.”
“안 내세울 이유는 또 없지. 개소리 다 했으면 들어가 있어.”
혈종의 입가에 서려있던 미소가 지워졌다.
“네가 이대로 신수와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당연히.”
“내가 볼 땐 네가 진다.”
“…….”
“그리고 네놈의 고집 때문에 나도 죽게 되겠지. 네놈은 멍청한 선택을 해서 죽어도 싸지만 거기에 휘말려서 죽을 생각이 없다. 자살할 거면 차라리 나한테 몸을 넘기던가. 신수만 깔끔하게 죽이고 다시 돌아주지.”
난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개소리 끝났냐?”
어떻게든 겁을 주려고 하는 거 같은데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천둥새가 무섭다고 혈종의 손을 잡을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혈종이 소리쳤다.
“이 개자식아! 지금의 넌 안 된다고!”
미련을 거둔 내게 혈종은 목에 핏대를 세워 소리쳤다.
“그건 해봐야 아는 일 아니냐.”
“해보지 않아도 정해진 게 있는 법이다! 넌 신수보다 약해!”
“근데 넌 이길 수 있다고?”
“난 너처럼 약하지 않으니까.”
“개소리 끝났냐? 난 이제 간다.”
더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망설이지 않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미치겠군. 그럼 차라리 날 이용해라!”
“그게 무슨 말이냐?”
“천둥새를 제거하는데 날 이용하라고!”
“…….”
죽기 싫다는 말은 사실이었나? 혈종은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은 채 천둥새를 제거하는데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해왔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내가 혈종에 대해 아는 만큼 녀석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심을 배제하고 전폭적으로 협력한다면 쓸모는 무궁무진하다.
자발적인 대학원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써먹어줘야지.
“이렇게 간절히 부탁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하, 자기 목숨을 인질 삼아서 협박이라니, 너 같은 미친놈은 없을 거다.”
“진짜 미친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이유는 없고.”
“미친놈은 자기가 미쳤는지 모른다고 하지. 그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거 같군. 진짜 앞에 가짜는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지.”
“헛소리 그만하고, 협력하기로 했으니 천둥새를 잡을 때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만 제공해라. 살고 싶다면 말이지.”
“…개자식. 좋다, 이번만큼은 살기 위해서라도 협력하지.”
잔뜩 일그러진 혈종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녀석으로 인해 나빴던 기분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이대로 30년 정도만 더 굴려먹으면 앙금이 1% 정도 풀릴 것 같은데 말이지.
“네 경력을 인정해서 말단 대학원생이 아니라 팀장급 대우를 해주지. 잘 부탁한다, 팀장.”
“그 같잖은 대학원생 이야기는 그만해라. 한물 간 걸 가지고 놀면서 지겹지도 않냐?”
“안 지겨운데.”
“멍청한 녀석들을 쓸모 있게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 사흘 정도면 충분할 거 같군.”
“이틀. 그 안에 다 처리해.
“…언제고 네놈을 몰아내고 네 육체를 차지해주지. 넌 구석 골방에 틀어박혀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거다.”
“할 수 있다면 해보던가.”
그렇게 혈종이 합류하게 되었다.
*
* *
혈종은 내게 있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저번 생에서 녀석을 지켜보면서 후회하고 과거로 돌아오길 갈망했다. 한편으로는 녀석의 존재에 대해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반대로도 적용되었다. 내가 주도권을 되찾은 뒤 혈종은 내 의식 너머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내 모든 걸 지켜보았다.
녀석은 내가 가진 모든 걸 꿰고 있다. 녀석은 약속을 지켰다. 이틀이란 시간 동안 안가에서 컨디션을 가다듬는 사이, 내가 준 이틀의 시간 동안 만득이, 광심이, 제련이를 활용하여 확실한 체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네놈은 네가 가진 힘의 절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거다.”
“…….”
으스대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부인하기 힘든 말이기도 했다.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녀석은 내가 보유한 기프트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중에 녀석이 사라져도 시스템은 존재하니 내가 홀라당 먹어치울 수 있겠다.
원래 세상 모든 것은 날로 먹을 때 가장 맛있더라.
“이걸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 하지만 재밌는 대결은 벌일 수 있겠지. 그걸 맛보는 게 내가 아니란 게 아쉽지만.”
“너 대신 내가 마음껏 손맛을 봐주지.”
“끝까지 재수 없는 소릴 해대는군.”
“불만 있으면 꺼지던가.”
“…….”
입맛을 다시는 녀석을 물리친 뒤 나는 안가 밖으로 나와 천둥새의 영역 안으로 진입했다.
천둥새 영역이라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거나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기이할 정도로 가라앉은 적막과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인공적인 포스 파장은 웬만한 수준이 아니고서는 감지조차 못할 것이다. 그리고 천둥새 영역 깊숙이 들어가 녀석이 원하는 대로 요리되겠지.
“음흉한 녀석이 맞단 말이지.”
마치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짙은 선팅을 한 것과 같았다. 의도적으로 감춰놓은 장막을 걷어내면 천둥새의 존재감이 감지되었다.
자신만 볼 수 있도록 조성해놓은 환경 속에서 녀석의 시선은 정확하게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난 그 장막을 걷어내고 천둥새와 시선을 마주했다.
“언제까지 감추고 있을 거지? 내가 네 둥지로 가길 원하나?”
파아아앗!
내 말과 동시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건장한 청년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었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어느새 내 앞에 도달한 천둥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높이만 100m를 넘어가는 녀석은 강풍을 두른 채 서서히 작아지더니 이내 나와 비슷한 크기의 인영으로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