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겉모습을 본다면 천둥새는 인디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홍인, 그러니까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 불리던 다소 까무잡잡한 피부에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영화에서 볼 법한 복장까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인디언 부족에 속한 여성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TV를 많이 봤군.”
“…….”
천둥새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실물이 더 낫네.”
“날 아나?”
“나를 죽이겠다고 날뛰는 사람의 얼굴을 모를 거 같아?”
하긴, 내게 관심을 가졌다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했던 말을 모를 리가 없겠다 싶었다.
가뜩이나 인간 세계에 관심이 많은 신수라면 더더욱.
“어지간히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던데.”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을 뿐이야. 내 호기심이 매도당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피차 서로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에 들고 아니고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거리가 가깝다.
이 정도면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신에 가까운 신수라고 해도 인간의 육체를 한 이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녀석에게 손을 쓸까 기회를 가늠할 때였다.
“그럼 자리를 옮길까?”
“뭐?”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해. 네가 좋아하는 게 된장찌개라는 괴식이었지? 그거 준비했어. 내가 만든 걸 먹어보면 아마 처음 경험해보는 극락일 걸?”
된장찌개로 극락이라고? 그것도 괴식이라고 비하하는 녀석이?
코웃음이 나올 소리였지만 녀석을 공격하려던 내 손은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신수가 만든 된장찌개가 어떤 맛인지 궁금하긴 했다.
잠깐 수명을 연장시켜도 상관없겠지.
“아마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녀석의 뒤를 따라가니 반듯하게 지어진 오두막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갖출 건 다 갖춘 내부 구조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집안 중간에는 잘 차려진 한 상이 있었다.
그런데 된장찌개에서는 한 번도 맡지 못했던 기이한 냄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보니 으스대는 얼굴로 말했다.
“여러 과일들을 섞어 된장을 만들었어. 아마 새로울 걸?”
“이걸 된장찌개라 말할 수 있나?”
“고유 조리법은 지켰으니까. 먹어봐.”
천둥새의 권유에 난 된장찌개를 맛보았다. 일반적인 된장찌개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맛이지만 특별함이 담겨 있었다.
“이런 맛은 처음인데.”
“신수라면 맛이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 꿰뚫어 볼 수 있어야지.”
녀석만 의기양양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맛이 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부인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먹다보니 중독성도 있었고.
“그래서 비장의 된장찌개를 먹여주려고 날 부른 건 아닐 테고.”
용건이 있다면 밝히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천둥새가 순순히 수긍했다.
“맞아. 난 네가 내 손을 잡았으면 해.”
“너와 손을 잡는다?”
“넌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곳까지 왔지?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건가 생각해본 적 있어?”
“생각할 이유가 있나.”
그냥 세상일에서 동떨어져있다는 신수가 설치는 게 거슬릴 뿐이다.
녀석들의 지나친 간섭이 세상을 뒤틀어버리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그걸 생각하는 표정이 아니었지만.
“있어. 그건 우리 신수가 움직이는 원동력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니까. 신을 자처하는 녀석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청룡과 현무도.”
“…….”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현아의 정체가 밝혀졌군. 난 그보다 신까지 언급하는 천둥새의 말에서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천둥새가 추구하는 ‘욕망’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천둥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내용이었다.
“난 안전을 원해.”
“안전?”
“응.”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 신수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둥새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신수는 너희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긴 시간을 살아왔어. 인간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발전했지만 우리들은 아니었어. 세월의 변화에 순응하기만 했지. 난 이게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해. 마물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제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마물이 등장했고.”
투뿔 마물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투뿔 마물이 신수에게 위협되는 수준에 도달한 게 사실이로군.
물론 다른 신수들이 가만히 있는 거나 드래곤이 드라쿨레아를 통제하던 걸 보면 투뿔 마물이 신수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난 이걸 지켜보고 있는 건 멍청한 짓이라 생각했어. 우리도 변화하고 진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하지만 다른 신수들의 생각은 다르더라.”
“그래서 인간 세상에 개입했다?”
“가장 격동적으로 바뀌는 건 인간이니까. 가만히 마물이 강해지는 걸 보면서 먹이로 전락하길 기다리는 것만큼 바보짓은 없어.”
요지는 살아남기 위해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야기긴 하군.
내 감상은 그것뿐이다.
“내게 이걸 얘기하는 이유는?”
“넌 인간 중에서 특별해. 너의 존재는 나를 더 발전시켜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
천둥새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참 많이 관찰했다 싶었다.
듣고 나니 나오는 건 코웃음뿐이지만.
“내 의사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군.”
“네게도 매력적인 제안이 될 거라 생각하니까. 인간이 가장 중요한 건 이익 아니겠어?”
“네가 내게 이익을 안겨다줄 수 있다?”
“원하는 모든 걸 가져다줄 수 있어.”
천둥새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그 기저에는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광오한 자신감이 함께 했고.
용용이도 그렇고 현아도 확신이 있으니 신수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따라오는 걸 수도 있겠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나 알고?”
“알아. 가족의 안전 아니야?”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지?”
“네가 그걸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천둥새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 웃음이 굉장히 거슬렸다.
난 가만히 녀석의 말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네가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건드리지 않은 게 내 호의야. 마음만 먹었으면 네가 유럽에 갔을 때 다 없앴을 걸.”
“지금 그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건가.”
“아니. 내가 너라는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돼.”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된장찌개는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둔 후였다.
[텄군.]혈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 녀석, 용용이처럼 대화도 가능한 거였군.
[일부러 다 먹을 때까지 대화를 이어나간 거 아니냐?]그럴 리가. 처음이자 마지막 먹는 별미라서 챙겨먹은 것뿐이다.
[그렇다고 쳐주지.]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난 천둥새에게 시선을 고정하곤 말했다.
“생각해보니 네가 줄 수 있는 게 하나 있군.”
“말만 해.”
난 곧게 뻗은 천둥새의 목을 보며 말했다.
“네 목.”
그리고는 손을 뻗었다. 완벽하게 기습의 묘를 살렸기에 천둥새가 피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녀석의 눈이 살짝 커지면서 내 공격을 인지하는 순간, 내 손은 이미 목 앞에 도달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손이 목을 낚아채려는 순간, 정상적인 인간이 보여줄 수 없는 관절 가동 범위를 보여주면서 몸을 비트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내 손은 녀석의 목이 아닌 어깨를 움켜쥐게 되었다.
콰드득!
붙잡힌 어깨뼈는 가루가 되었다. 첫 공격으로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기에 난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대 손을 뻗어 다시 한 번 목을 노렸지만 내 공격 의사를 파악한 녀석이 망설이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완벽하게 피하지 못해 손목을 낚아채 부러뜨렸지만 천둥새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없는 인형을 보는 듯했다.
직접 현신하는 걸 봤기에 더미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목이 부러지면 죽는지 궁금했는데.”
“죽지 않아. 이 모습도 허상에 불과하니까.”
덜렁거리던 어깨와 손목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정도는 약간의 타격도 안 되나보다.
“역시 인간의 육체는 연약해.”
“그럼 목을 내줘도 되는데.”
“아프긴 하거든. 고통에 익숙하진 않아. 그리고.”
차분하던 천둥새의 눈에 스산한 빛이 맴돌았다.
“이렇게 손을 쓴 건 내 제안을 거절한 거라 봐도 되지?”
“처음부터 네 제안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된장찌개에 끌려서 잠깐 듣는 시늉을 한 거지. 고고하신 신수 나리가 이 녀석의 식탐에 이용당했지.]혈종의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내 신경은 온전히 천둥새에 집중되었다.
처음 상대하는 신수는 얼마나 강한 모습을 보일지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아쉽네. 너와 나는 서로 원하는 걸 충족시켜줄 수 있는 관계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
“바로 죽이긴 아까우니까 좀 망가뜨릴게. 인간은 망가지면 생각이 바뀌더라고.”
[조심해라.]혈종의 경고와 동시에 천둥새가 왼팔을 휘두르자 공간을 갈라버리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와장창! 콰득! 콰과과광!
그 한 수에 오두막의 모든 것이 발기발기 찢어졌다. 난 포스막을 두르고 몸을 비틀어 여파를 최소화하려 했지만 천둥새의 한 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렬하며 날 죽이겠다는 적의가 스며 있었다.
[너 지금 얼굴 피부가 반 정도 날아갔거든?]안 그래도 에는 통증이 느껴지더라. 그 정도 부상은 초재생으로 순식간에 회복이 가능했고, 내가 느끼는 감상은 짙은 만족감이었다.
“좋은데?”
신수인데 공격은 마치 인간의 것을 보는 듯했다. 상대를 철저하게 말살하기 위한 살기가 담긴 공격. 무식하게 힘만 센 투뿔 마물에게서 볼 수 없고,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초인의 공격과 차원이 달랐다.
정작 이 참상을 만들어낸 녀석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힘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좀 더 격차를 느껴보고 싶은데?”
“칫!”
내가 지면을 박차고 거리를 좁히는 순간, 천둥새는 혀를 차며 재차 손을 휘둘렀다. 강풍이 내 속도를 늦췄지만 난 개의치 않고 거리를 좁혀나갔다.
콰르릉! 콰과과광!
뒤이어 덮쳐온 건 벼락이었다. 전신의 감각이 곤두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벼락이 연이어 내리쳤다.
포스막을 두르고, 초재생을 최고조로 발동하고 있음에도 노출된 피부가 찢겨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상체는 멀쩡한 게 졸라맨이 준 드라쿨레아 코트가 제 성능을 발휘하는 중이다.
“칫!”
짧게 혀를 찬 천둥새의 신형이 유령처럼 흐릿해지더니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나는 방향을 틀어 녀석이 있는 곳으로 접근해나갔다.
분명 녀석의 공격은 까다로웠지만 버텨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천둥새는 인간의 형태에서 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프트 발동은 육신의 강건함도 동반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인간의 육체 한계를 뛰어넘으면 더 강한 기프트를 발동시킬 수 있을지도.
이건 이번 전투가 끝나면 한 번 검토해봐야겠다.
그 사실을 확인하겠답시고 본체로 현신하는 걸 두고 볼 생각이 없다. 신수의 전력이 궁금하지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제거해야지.
폭풍과 벼락을 뚫고 재차 가까이 접근했을 때, 녀석의 신형이 다시 한 번 흐릿해졌다.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난 손을 모아서 전력으로 제련을 발동하여 칼날폭풍에 담아냈다.
그것은 녀석이 물러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노리고 파고들었다.
천둥새가 한 타이밍 늦게 손을 뻗었지만 칼날폭풍의 위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유령처럼 움직이던 천둥새가 못이 박힌 것처럼 자리에 멈춰버렸다.
후두둑.
복부가 뻥 뚫린 구멍 사이로 흘러내리는 내장 조각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장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지만 천둥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역시 이걸로 처리할 수 없군. 하긴, 이렇게 허망하게 처리하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난 천둥새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도 버틸 수 있냐?”
“역시, 인간의, 육체는, 연약해.”
“질기기도 하지.”
“공감 못하겠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녀석이 말했다. 전신을 둘러싼 기세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어서 큰 타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밖으로 흘러내린 내장 조각을 손에 쥔 천둥새가 날 보는 눈이 바뀌었다. 스산함은 살기로 바뀌었고, 그 기세가 주변과 연동되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해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 정도로 날 죽이고 싶어 하니 나도 전력으로 널 죽여줄게.”
“내 손에 죽은 놈들이 전부 그 소리를 하더군.”
누가 그 전까지 전력을 발휘하지 말아달라고 매달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자신들이 방심해서 한 방 먹어놓고 변명하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그게 인간이나 신수나 다를 바가 없군.
안 좋은 것까지 배운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녀석이 착각하는 게 있었다.
지금부터 전력을 발휘할 거라고?
“그 소리는 본체로 현신할 수 있을 때 하던가.”
한 방 먹이는데 성공한 이상 절대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네가 좋아하는 인간인 채로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