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콰드드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음에도 천둥새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날 노려보는 안광은 더욱 사나워지고 살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신수라더니 맷집 하나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아니, 이것도 신수 중에선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맷집이 강한 녀석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군.
제련을 좀 더 쥐어짜내야겠지.
아무튼 숨겨놓았던 한 수인 컨트롤이 제 역할을 하면서 붙잡는데 성공했다.
모든 건 이 순간을 위한 위장이었다.
[네 기프트가 뭐 있는지 까먹고 있던 건 아니고?]그럴 리가.
혈종은 역시 미친놈답게 내 의도를 모르고 있다.
이런 게 바로 빌드업이란 것이다.
“이래도 버텨?”
[네, 네가 감히…….]“죽기 전에 하는 소리가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는데.”
인간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뇌까지 인간에 절여져버리기라도 한 건가.
그러면 녀석은 신수의 힘과 인간의 정신을 지닌 잡종이 되어버리는군.
둘이 서로 시너지가 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단점도 섞여버린 듯했다.
그러니 좀 더 강해지려고 열심히 했어야지.
“신수의 뼈가 단단하긴 하네.”
[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불멸의 존재로 영원히 남아 너와 네 주변의 모든 걸…….]콰직!
천둥새의 저주는 녀석의 목이 360도 돌아가면서 끝이 났다. 눈동자에 서린 빛이 흐릿해지면서 그대로 자취를 감추자 거대한 동체가 지면으로 빠르게 하강했다.
쿠웅!
둔중한 충격이 퍼져 나가면서 지면이 움푹 파였다. 나는 포스 기운이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사체를 내려다보다가 가슴을 가르고 정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정수를 왼손으로 옮긴 뒤 오른손에 묻은 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천둥새가 보유한 무수히 많은 기프트가 스쳐지나갔다. 날 가장 괴롭혔던 두 종류의 신벌-폭풍, 벼락-이 눈에 들어왔지만 역시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대결 내내 궁지로 몰아넣었던 능력이다.
“고속비행.”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권능에 가까운 기프트.
난 망설이지 않고 고속비행을 선택했다.
찌이잉!
그와 동시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현기증이 엄습했다. 기프트를 복사할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통증이었다. 아니, 이건 아예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이었다.
“…큭.”
격전의 여파 때문인가. 제대로 된 몸 상태가 아니니 그런 걸 수도 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사이즈가 큰데?]하지만 혈종의 대답으로 그마저도 사실이 아님을 알게 했다. 신수의 권능이라 받아들이는 건 그만한 통증을 수반하는 것이다.
고통이 진행되는 사이 고속비행은 차근차근 복사되었다. 그 어떤 전설급 기프트보다, 마물의 권능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주 굉장한 신입이 들어왔어. 좋은데? 크크크! 싸가지가 상상 이상인 거 같은데? 여기랑 아예 상종을 하려고 들질 않아.]혈종의 말을 들으니 고속비행도 자아가 있는 듯했다.
잘 길들이면 녀석도 훌륭한 대학원생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우선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파스스.
신수의 정수를 빼내서인가, 천둥새의 사체는 잘게 부서지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게 소멸한 녀석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용용이가 오면 물어봐야겠다.
파아앗!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공간이동으로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아와 용용이였다.
내가 원하던 등장 타이밍은 아니었다.
[와, 진짜 천둥새를 이겼네? 대단해.]대결이 끝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꼴이라니.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지금 저 등장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널 위협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혈종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용은 옳았다.
파직! 파지직!
그리고 왜인지 신수의 정수가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속비행을 사용했다.
[어? 잠깐!]기프트 발동의 순간, 내 머릿속으로 이동할 곳의 선명한 이미지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 편히 쉴 수 있는 LA의 호텔 스위트룸 앞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파아아아앗!
고속비행은 전이나 공간이동 같은 기프트와 달랐다. 마치 내가 이곳에서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것을 1초 이내로 빠르게 재생한 것처럼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받아야 하는 압력은 천둥새가 고속비행을 시전할 때와 비슷했다.
[미친. 너 그러다 죽는다.]사람은 쉽게 안 죽는다.
[개소리 그만하고. 내가 쓸 몸을 왜 그렇게 막 쓰냐고!]이뤄지지 않을 희망을 갖고 왈왈 짖기는.
혈종의 경고를 사뿐하게 무시하려고 했지만 재수 없게도 녀석의 말이 옳았다.
간신히 호텔 옥상에 착지한 나는 내 팔을 바라보았다. 너덜너덜해져서 뼈까지 드러난 팔은 초재생에 의해 회복되고 있었다.
고속비행은 인간의 몸으로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워싱턴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동하는 것임에도 이만한 충격이라니, 더 먼 거리를 이동하려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지?]그래, 내가 생각한 걸 혈종이 생각 못할 리 없다.
고속비행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 육체를 갖게 된다면 세계 어디든 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선명한 이미지가 문제인데 이건 내가 방문한 것으로 해결이 되는 건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출력할 수 있는 사진으로 대체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나중에 확인해봐야겠군.
“질긴 육체를 갖는 게 먼저겠어.”
[좋은 녀석으로 찾아봐.]혈종 이 녀석은 상사놀이에 맛 들렸군. 툭툭 던지면서 명령하는 꼴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옥상에서 내려와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방안에는 안나 크리스틴이 있었다.
“누구… 오! 굿!”
왜 놀라나 싶었는데 고속비행의 단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입고 있던 옷도 버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졸라맨이 준 코트가 그나마 버텼지만 천둥새와 격전으로 인해 이것도 넝마가 되었다.
수선을 맡기면 원상복구가 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 내 상태는 넝마가 된 코트를 걸친 알몸 상태였다.
졸지에 바바리맨이 되었군.
“준호! 어떻게 된 거예요?”
“잠깐 기다려.”
안에 짐이 남아 있었기에 나는 방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안나 크리스틴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저러나.
“설마 진짜 천둥새를 잡은 건가요?”
“잡았어.”
“…오 갓.”
안나 크리스틴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어보였다. 신수를 상대하는 것이었던 만큼 그 놀라움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사이비 종교 건으로 모두 워싱턴주에 갔어요. 저는 이곳에 남아서 서포트를 맡으면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요. 그런데 준호가 바로 이곳에 올 줄은.”
“그렇게 됐어.”
전장의 뒷수습은 용용이와 현아가 알아서 하겠지.
안전한 장소에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격전의 여파인지 피로가 물밀 듯 밀려오는 걸 느꼈다.
“난 쉴 테니 별다른 일이 없으면 깨우지 마.”
“네, 위에는 보고할게요.”
“그러던가.”
그 말을 남긴 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수면에 빠져들었다. 고속비행을 소화하고 신체의 연이은 혹사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
* *
그건 의식의 단절이었다. 눕자마자 의식이 사라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사흘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 푹 잠든 건 처음인 거 같군.
가볍게 씻고 밖으로 나오니 안나 크리스틴 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허버트와 다니엘, 그리고 경호원들로 바글바글했다.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졸라맨이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준호! 무사했어? 졸라 걱정했잖아!”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보다 언제 왔냐?”
“준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왔어. 진짜 졸라 걱정했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죽을 뻔하기는 했지. 천둥새는 제거했다.”
내가 말하니 장내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이 퍼져 나갔다.
뭐 그리 놀랄 일인지 모르겠다.
죽일 놈 죽인 건데.
설마 안나 크리스틴이 말하지 않은 건가?
“준호 입에서 다시 한 번 들어서 그런 거예요.”
내가 말하나 남이 말하나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졸라맨은 온몸의 근육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역시 사실이었어. 졸라 말도 안 돼. 신수와 대결에서 승리한 게 준호라니.”
“운이 좋았다.”
[그 한 마디로 단정 짓기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 흐흐.]여전히 나대고 있는 혈종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아는 그렇다 쳐도 용용이는 등장할 법도 한데 아직 등장하지 않았군.
[안 오더군.]네가 쫓아낸 건 아니고?
[그 고고한 신수께서 내가 가란다고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냐?]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하지만 용용이라면 충분히 속아 넘어갈 거 같은데. 신수라고 해봤자 내 안에서 이미지는 호구여서 말이다.
내 밥이라는 건 혈종의 밥이 될 가능성도 높고.
졸라맨의 놀라움 이후, 허버트가 찬사를 보냈다.
“우리 역시 헤드 브레이커가 이길 거라고 믿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 것치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거 같은데.”
“…하하, 믿기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승리에 배팅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 다니엘?”
“사실이 맞습니다.”
“의외네.”
“제 말은 하나도 믿지 않는군요.”
내가 의외라는 식으로 대답하니 허버트가 섭섭함을 드러냈다.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하는 행동이 좀 가벼워야지.
오히려 신뢰도는 다니엘이 더 높다.
차라리 다니엘이 대통령이고 허버트가 부통령이면 믿을 텐데 말이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허버트는 천둥새와 관련 있는 일에 대해 설명했다.
“천둥새를 사냥해서 사이비 종교 세력도 일소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헤드 브레이커 덕분입니다.”
“기회를 붙잡은 건 그쪽 능력이고.”
“사실 쫄리긴 했습니다. 당신이 천둥새에게 패하기라도 했으면 뒷감당이 걱정되긴 했거든요.”
“말은 저렇지만 허버트는 정치 생명을 걸고 임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을 향한 믿음이 있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다니엘이 정중하게 말을 보탰다.
정치적 생명을 걸고 움직였다는 건데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않나.
“거봐, 그런 말은 먹히지 않을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내 표정을 본 허버트가 다니엘을 타박하며 앞으로 나섰다.
자기들끼리 뭔 짓을 하는 건지.
다니엘은 가볍게 혀를 차고 있고, 허버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헤드 브레이커, 본래 우리 계약은 이행되었지만 그래도 천둥새의 음모에서 미국을 해방시켜준 공로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당한 거래였을 뿐인데.”
“하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으스대는 표정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장난꾸러기 같았다.
근데 난 그 장난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허버트가 잔뜩 달아오른 기색을 보이다가 내 무반응에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 궁금하신지?”
“궁금하긴 한데.”
“오! 역시, 당신이라면 경우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물은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주시면…….”
“내가 왜?”
“왓?”
“뭐 준비했는지 다 꺼내놔 봐.”
왜 하나만 고르나. 마음에 들면 다 가져갈 생각이었다.
*
* *
허버트가 준비한 선물 면면들이 꽤 마음에 들어서, 하나가 아닌 선물 전부를 받기로 했다. 허버트는 이게 아닌 거 같아 하면서도 전부 내놓으라는 내 요구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선물을 챙길 무렵에도 용용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타나면 물어볼 게 많은데 말이지.
[할 얘기가 있다.]그런 와중에 혈종이 내게 할 말이 있다면서 날 불러냈다.
심상 세계 안으로 들어가니 의기양양한 재수 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하, 어이가 없네?”
다짜고짜 그렇게 말해봤자 어림도 없다.
냉랭한 내 반응에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덕에 신수를 잡았는데 감사 인사 하나가 없네?”
“감사 인사를 받고 싶다고?”
“노노, 그럴 리가. 내가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지.”
난 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녀석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었다.
애초에 줄 거라 생각한 저 사고회로가 신기했다. 머리를 열어서 확인하고 싶은데?
“그래서?”
“바라는 게 있단 말이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는 녀석.
난 가만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듣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네 몸을 하루 빌리고 싶다.”
“뭔 헛소리냐.”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잖아?”
“빌려서 뭐하려고?”
내 말에 녀석이 얄밉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랜만에 콧바람 쐬는 거지. 네 옆에 있는 안나 크리스틴이라는 여자도 죽이던데?”
마치 뭔가 썸씽이 있을 것처럼 얘기하지만 녀석이 내 육체를 차지했을 때 다 보고 있었다.
놈은 한 번도 여자를 건드린 적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오! 그럼?”
“안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지.”
“몸 빌려주는 걸? 독특한 취향에 눈을 떴군. 나한테는 바람직하지만.”
난 기대감 가득한 녀석의 눈을 마주하고는 씩 웃어보였다.
“You’re fired!”
그리고는 녀석을 심상 세계 구석으로 격리시켰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간 좁디좁은 골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녀석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역시 사냥이 끝나면 역시 토사구팽이 제 맛이다.
“이제 집에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