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천둥새한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말?]“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더군.”
녀석의 목은 내가 확실하게 비틀어놓았다. 360도로 목이 돌아간 걸 확인했으니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장까지 꺼냈고, 신수의 정수까지 빼앗았다.
생명의 원천이자 힘의 원천을 빼앗겼는데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그 대상이 신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수를 죽여 본 건 처음이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을 들은 용용이가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곡을 찔린 것처럼 반응하는군.
[아, 그거? 으음,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부활할 수 있는지부터 말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활은 가능해.]결코 좋지 않은 이야기였다.
[근데 부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걸?]“어느 정도나?”
[아마 네 손자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가 증손자를 볼 때까지 부활 못할 거야.]“그럼 의미 없는 이야기로군.”
사실상 부활해봤자였다. 워낙 표독스럽게 소리쳐서 숨겨놓은 한 수가 있나 싶었더니 역시나였군. 마음 한구석 피어났던 걱정이 사라졌다.
“신수가 부활이 가능한 줄 몰랐는데.”
[가능은 해. 대신 그렇게 하면 전력을 발휘할 수 없거든. 아마 천둥새는 작은 씨앗만 남겨놨을 거야. 그러니 부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고, 힘을 되찾는데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그때쯤이면 인류는 멸종하거나 지구를 떠났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나 현아가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생각도 없고.]“날 시켜서 제거하게 둬놓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너도 상대해봐서 알잖아. 신수끼리 상대하면 여파를 감당하기 힘들 걸? 아마 다른 신수들도 다 와서 우리를 말리거나 노릴 거야.]신수들은 일종의 핵과 같았다. 서로가 충돌하면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에 신수들끼리 충돌은 가급적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의식 과잉인 거 같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와 천둥새가 부딪친 곳도 산지였음에도 대결 직후에는 언덕 지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놀란 마물들이 다 뛰쳐나올 테지만 천둥새는 주변에 마물을 배치해두는 취미가 없어서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천둥새의 권능을 얻은 거야?]용용이는 그게 궁금했나보다.
딱히 감출 생각도 없어서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래.”
[그거 사용할 수 있어? 신수의 권능이면 인간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역시 용용이는 알고 있었군.
“안 그래도 신체가 대부분 부서지더라. 인간의 몸으로 버텨내지 못하는 거지.”
[역시.]“극복할 방법 없냐?”
[애초에 신수에게 맞춰진 능력이야. 인간이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아.]“방법이 없냐고.”
[육체를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을 걸?]나도 신수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침묵하니 용용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버리는 게 낫지 않아?]“내가 왜?”
[설마 사용하려고? 몸에 무리가 간다니까. 아프기도 할 거고!]“그러려고 초재생을 얻은 거니까. 이제 기프트에 버텨낼 수 있는 육체 관련 기프트를 찾아봐야지.”
각성자가 없다면 마물을 통해 찾아볼 예정이었다.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거리의 제약이 사라질 수 있는 기프트인 만큼 보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였다.
[진짜 대단해. 보통이면 못 먹는 감이라고 생각할 텐데.]“반대일 걸. 자기 죽을 걸 알면서도 도전했을 거다.”
[하긴, 그게 인간이란 동물의 장점이자 단점이니까.]무모한 도전이 지금의 인간을 만들었고, 때때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들이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어차피 난 아니라서 상관없지만.
그리고 그 무한한 가능성이 빌런이라면 싹부터 밟아놔야 한다.
그래도 살아날 수 있으니 짓이기면 더 좋고. 아예 뿌리까지 파내면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한 건데.]“뭘?”
[정수. 내가 여기 올 수 있는 건 네가 통제해서 가능한 일이라니까?]참 집요한 녀석이다. 용용이는 내가 그걸 대답해줄 때까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딱히 비밀로 할 문제도 아닌데 왜 이렇게 궁금해 하는 건지.
“녀석의 기를 죽여서 내 통제에 넣어뒀다.”
[네가 직접?]“어, 왜?”
[와…….]용용이는 그 어느 때보다 놀란 기색이었다. 대체 어디가 놀랄 포인트인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거 엄청난 거야. 넌 지금 신수가 지닌 힘의 원천을 통제 아래 넣은 거라고! 이건 네 포스 통제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우리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고!]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기어오르는 걸 밟아놨을 뿐인데 이렇게 난리 칠 일이라고?
용용이가 갑자기 내 주변을 맴돌더니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날 대하는 기류가 바뀐 느낌인데.
[혹시 내가 섭섭하게 군 거 없지?]엄청 많아서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용용이가 움찔했다.
[아니, 왜. 내가 옆에서 너한테 많이 도움 줬잖아.]네 딴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다만 용용이가 이러는 걸 보면서 내가 신수에게 위협이 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섭섭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 앞으로 잘 지내자. 우리 친하잖아.]그것과 별개로 용용이 모습은 참 간신배 같았다.
내가 신수랑 붙을 생각을 하게 된 건 신수를 하찮게 생각하도록 만든 네 공이 크다.
[헤헤.]녀석이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나라 하나쯤은 거뜬히 팔아치웠을지도.
신수로 태어난 걸 차라리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
* *
다음 날, 나는 청와대로 향했다. 대통령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어서 오게. 무사해서 다행이야.”
“대통령님도 좋아 보이시네요.”
그에 반해 천명국의 얼굴은 거무죽죽해져 있었다. 과로인가 싶기에는 체력 상태는 더 좋아보였다. 그렇다면 뭔가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나보다.
한 번 날 잡아서 휴가를 쓸 수 있게 해줘야 하나.
“자네 덕분이지. 자네가 가져온 석유 덕분에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지 않나.”
“그거 때문이었나요? 잘 모르겠던데.”
“석유는 세상을 많이 바꿔놓았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려운 계층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석유가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삶의 질을 바꿔놓는 문제야.”
내가 미국에 가서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였다.
미국은 여전히 석유가 많이 나고 있는 국가였으니까. 나는 내 영향력 강화를 위해 석유를 가지고 왔는데 그게 도움이 된다면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당연히 대통령은 정권 지지율이 오르니 좋아할 테고.
“지속적으로 석유가 들어오면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우리나라의 미래는 자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대우가 너무 좋은데요?”
정권 말기라서 그런가 대통령도 살랑거리는 느낌이다.
용용이도 그렇고 주변의 대우가 달라지는군.
이게 권력이란 건가.
“허허, 신수조차 사냥할 수 있는 초인 아닌가. 나도 슬슬 임기가 끝나 가는데 잘 보여야지. 그래야 뒷방 늙은이가 될 내가 생각나서 한 번 찾아오고 그러지 않겠나?”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영부인님의 된장찌개가 그립기도 하고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천둥새가 대접한 된장찌개도 괜찮긴 했지만 역시 정석이 가장 좋았다.
“안사람이 좋아하겠어.”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제가 먹은 된장찌개 중 가장 맛있습니다.”
“허허.”
대통령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갈수록 정치력이 느는 것도 보이고 좋네. 이번 석유 문제를 놓고 야당을 해결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별 거 없던데요. 자리 마련이 입을 닫게 할 수 있다면 적성에 맞는 사람을 데려오자고 한 겁니다. 회사만 발전하면 상관없으니까.”
내가 이세희와 신성그룹을 믿음직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처럼 내 영향력을 더 강화시켜줄 사람이라면 정치권에서 추천받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쫓아내면 되고.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지닌 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정석대로 움직이는 거라네. 변칙이란 것은 힘이 모자란 자들이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방법이니까. 자네처럼 압도적인 강자가 흔들리지 않고 정석대로 움직이면 약자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어.”
음, 대통령의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강자가 무서운 건 정석대로 움직여서다.
내가 천둥새와 겨룰 때도 비슷한 과정이었다. 천둥새를 상대로 내가 고전한 건 철저하게 자신이 유리한 점을 내세운 정석으로 대결에 임해서였고, 내가 승기를 잡은 것은 변칙을 이용해서 틈을 만들어내서다.
그렇다면 정석을 고수하되 변칙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대결이 아님에도 한 수 배웠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 덕분에 말년에도 레임덕 없이 편안하게 국정 운영을 하게 됐어.”
“그 정돈가요.”
“정치권이 개판이어서 말이지.”
현재 정치권 흐름은 여당 야당 모두 지리멸렬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정권 혼자서 승승장구하는 상황이란다.
그래서 정부에서 배출한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게 보고 있어서 대통령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에도 절대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라니.
사상초유의 일이긴 하다.
“그리고 유력한 후보로 천 실장이 등장했지.”
대통령이 자랑하듯 말하는데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현재 천명국은 출마 선언을 안했을 뿐이지 차기 대통령 후보로 무려 4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놀라운 것이 천명국은 정치 신인으로 청와대에서 철저한 참모 역할을 하던 사람이다. 2인자인 비서실장도 아니고 그 아래 그룹에 속함에도 이미지나 선호도, 능력 면에서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보통 여론조사에서 등장하면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천명국은 그런 게 없었다.
어쩌면 정치가 천직이 아니었을까.
“대단하시네요.”
“모두 대통령님과 초인님 후광 덕분입니다.”
“우리 천 실장이 겸손하기까지 하지. 국민들은 그 모습을 좋게 봐주고 있고.”
하긴, 천명국이 진짜 무서운 것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점이다. 여기에 시뮬레이션이라는 기프트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웬만한 상황에서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이게 대통령이 말한 강자의 정석에 적용되는군. 유력 후보인 천명국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테니 이 구도를 뒤집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 되시겠네요.”
“허허허허. 그래도 아직 당선된 건 아니니 방심은 안 되네.”
“그렇긴 하죠.”
“그래도 될 것 같단 말이지. 허허!”
“…….”
내 축하와 대통령의 흐뭇한 웃음 속에서 천명국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 *
서서히 출마 선언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천명국의 안색은 안 좋게 바뀌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의 미래는 창창했다.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며, 여태까지 이뤄놓은 성과를 조명 받으며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그는… 만성 혈변에 시달리고 있었다.
“좋기는 개뿔. 이게 좋다고? 좋다면 미친놈들이야.”
천명국은 매일 악몽을 꾼다.
수 틀린 최준호의 손에 머리가 부서지는 자신의 미래를.
최준호와 친해서 괜찮지 않냐고?
그건 헛된 희망에 불과한 소리다.
오늘 사이가 좋아도 내일 사이가 뒤틀리면 언제든지 손을 쓸 사람이 최준호다.
그 강함은 얼마나 대단하던지 최연소 초인에서 홀로 유해 8단계 마물을 잡고 급기야 플러스 단계, 플러스 플러스 단계를 잡더니 신수마저 사냥해냈다.
사실상 제어가 불가능한 괴물을 옆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마저도 언제 터질지 종잡을 수 없고.
그걸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다.
정주호도 초인이 되겠다고 훈련 삼매경이었고, 자신의 하소연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보였다.
“나쁜 녀석. 동병상련이라고 생각했는데.”
약삭빠른 녀석은 분위기를 틈타 탈출에 성공했고, 최준호 밑으로 들어가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
함께 고통분담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당선 후 개헌해서 중임제로 바꿔놓고 정주호는 8년 동안 고통 받게 하는 것이다.
고통에서 해방되는 걸 포기한 천명국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래, 혼자 죽는 것보다 동지가 있는 게 그나마 나으니까.”
천명국은 퀭한 눈으로 출마 선언문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라지면 다음 대통령이 최준호를 다룰 수 있을까?
이미 시뮬레이션으로 미래를 그려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야당 출신 대통령은 한 달만에 머리가 터지고.
여당 출신 대통령은 그보다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사지가 으깨지고 목이 360도로 돌아간다.
그 뒤에 이어질 것은 최준호의 폭주.
가장 큰 문제는 시뮬레이션으로도 어떻게 폭주할지 섣불리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천명국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지금도 최준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고, 그보다 더 빠르게 영향력을 강화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런 최준호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5년은 버틸 수 있겠지?”
설마 정주호도 최준호 등쌀에 버티려기 위해 초인이 되려는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 거다.
눈앞에 뿌옇게 변하는 걸 느끼며 천명국은 출마 선언문을 작성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