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던 진세정과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최준호 공화국이라.
분명 끌리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끝없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 그리고 진세정의 계획에서 내가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함은 저 괴상한 아이돌 세계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 그걸 유지한다?
그 전에 내가 포기해버릴 지도 모른다.
[배포가 대단하네. 나라 하나를 먹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걸 보면.]“그건 그래.”
용용이의 소감이 곧 내 소감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떠드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아예 그렇게 해주겠다니. 그게 내게 이득이 되는 방향이지만 진세정의 기세와 배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꽤 괴로운 일인 거 같지만.
[그 정도는 참으면 되지 않아?]참으면 참을 수는 있지.
대신 내 손발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은데.
오히려 고속비행보다 이것이 타격이 더 심한 기분이다.
이렇게 먼 길로 가버리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이미 먼 길을 온 건가.
“어, 왔어?”
집에 오니 윤희가 세상 편한 차림으로 날 맞이해줬다. 미국에 다녀오고 많은 일이 있은 뒤에 본 건데 몇 분 전에 본 것 같은 태도였다.
“넌 오랜만에 보고도 그렇게 심드렁하냐?”
“멀쩡하게 잘 살아있으면 된 거잖아? 우리 사이에 친한 척 할 이유도 없는데 왜 그러셔.”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실감하고 있는 내 위상이라는 게 내 생각과 많이 달라서 그렇지.
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소파와 들러붙어있던 윤희를 바라보았다.
“할 말 있어?”
“요즘 어떠냐?”
“나? 죽어라 구르고 있지. 내가 받는 연봉이 절대 길드에 여유가 넘치거나 착해서 주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참이야.”
신성길드의 능력 있는 헌터로 자리매김을 한 윤희는 실무 핵심 전력으로 열심히 사냥을 다니고 있었다. 윤희가 보유한 은 사냥에서 효율이 좋기에 신성길드에서도 죽어라 굴리고 있고.
딴 생각 못하게 죽어라 굴리는 건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살 만하게 보이는데 강도를 더 높여도 좋을지도.
“다른 사람들이 귀찮게 굴지 않냐?”
“왜?”
“요즘 사람들이 내 얘기하는 걸 보니 너도 귀찮겠다 싶어서.”
“그걸 이제 알았어? 대답부터 하자면 귀찮아 죽을 지경이야. 어딜 가나 오빠 이야기를 꺼내는데 무시해버릴 수도 없고 장단을 맞추면 더 들러붙거든.”
“그러냐. 좀 거슬리겠는데?”
“상관없어. 난 오히려 즐기고 있거든.”
“그걸 즐겨?”
뻔뻔한 윤희의 표정에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오빠가 세계최강 초인이니 나한테 한 수 접고 들어오는데 당연히 만끽해야지.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지 않으면 저 멀리 사라지더라고. 어차피 그 사람들도 내가 아니라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니 적당한 선에서 누리면 뒷말도 나오지 않아. 나야 완전히 노난 거지.”
“…….”
자기 잘났다면서 하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로 인해 피해를 겪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즐기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런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다.
[딱 네 동생인데 뭔 소리야. 너랑 똑같은데.]용용이 녀석, 선 넘네.
“세희 언니랑 다른 분위기로 누리고 있거든. 그래서 요즘 세희 언니 언행이 왜 그랬나 이해하고 있어.”
“이세희랑 비빌 정도라고?”
“내가 재벌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세희 언니보다 훨씬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지. 대신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뭔지 알아?”
녀석이 뭘 누리고 있는 것도 모르는데 치명적인 단점을 알 리가 있나.
그런데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오빠가 너무 무시무시한 사람이라서인지 남자가 안 붙어.”
“…….”
“오빠 때문에 연애 사업 다 망쳤어. 오빠는 나한테 미안한 마음 가져야 돼.”
[진짜 저거 때문이야?]글쎄다, 내가 볼 때는 나보다 성격 문제 같은데.
“네 개인 문제를 내 핑계대지 마라.”
“진짜거든? 내가 누구 때문에 혼자 늙어가고 있는데!”
“그 말 밖에서 하면 맞아죽을 거다.”
“괜찮아! 내가 어디 나가서 맞고 다닐 건 아니거든.”
“세상은 넓고 너보다 강한 사람은 훨씬 많다.”
“내 주변에 없으면 돼. 아무튼 사실이잖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가만두는 건 오빠 때문이란 이야기가 돼.”
“네 맘대로 생각해라.”
난 새삼 자기합리화에 열심히 하고 있는 윤희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얘도 남자 만나기는 틀린 것 같다.
그리고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성격이 더러워서인 거 같고.
[내가 볼 때 남매가 비슷비슷한 거 같은데.]그 말을 들으면 난 그러려니 할 테지만 아마 윤희는 난리를 칠 거 같다.
난 진세정과 나눴던 얘기를 하니 의외로 간단하게 해답을 내놓았다.
“최준호 공화국? 그거 알아보고 싶으면 밖에 한 번 가봐.”
“어디로?”
“오빠 팝업 스토어 있는 곳으로.”
내가 몰랐던 것 하나.
진세정은 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
* *
난 윤희 말대로 내 팝업 스토어가 있던 곳을 방문해보았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보고 5분도 되지 않아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야 했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굿즈라는 건데, 내 얼굴이 박힌 다양한 제품을 보는 순간 머리가 텅 비는 기분이었다.
대체 저게 뭐가 좋다고 구매하는 거지?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진세정에게 막연하게 듣던 걸 현장에서 보게 되니 전혀 다르게 와 닿았다.
소위 내 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왜 내게 열광하는 걸까.
내가 대한민국 방위에 일조한 것은 맞다. 단지 그것 뿐. 평화에 일조하는 헌터들은 나 말고도 많았다. 그렇다면 진세정의 말을 듣고 도입한 아이돌 세계관이라는 영향인데.
어떻게 홀렸기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몇 번이고 생각해봤지만 내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했다.
[쟤들은 신인류인데?]그래, 나뿐만이 아니라 신수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해하려고 한 것 자체가 오만했던 거 아닐까?]…그럴지도.
오랜만에 나와 용용이의 생각이 일치했다.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날 열광적으로 좋아해주는 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내가 하려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정도다.
그럼 잘해야겠지.
[근데 이해는 못하겠어.]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였다.
*
* *
내가 신수 사냥을 위해 나선 것은 극비에 해당하는 정보였다. 아직 대중에게 신수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어디 설화처럼 인간보다 더 영리한 마물이 존재한다는 내용만 퍼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미국에 극비리에 작전을 수행하러 간 걸로 아는 사람도 있다.
이세희도 그중 하나다. 오늘도 검은색 투피스 정장에 한껏 도도한 기세를 발산하던 그녀는 날 보자마자 기운을 부드럽게 풀었다.
“선물 냄새가 나요.”
“새로운 기프트라도 각성한 거 아냐?”
“그럴 리가요. 그냥 제가 예민한 거예요.”
“…대단한데?”
어떤 상황에서도 변신이 자유로운 게 이세희가 지닌 장점이지.
난 선물보따리를 풀기 전, 진세정과 나눈 얘기에 대해 언급했다.
“진 팀장이 유능하긴 하죠. 준호 씨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요.”
“바로 염장 찌르기냐.”
“낯간지럽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진 팀장의 방향은 옳아요. 준호 씨의 존재를 무서운 존재가 아닌 친근하면서 매력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주고 있거든요.”
…팝업 스토어에서 본 게 있으니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나도 모르는 내 매력이 대체 뭔지 궁금했다.
“만만하게 보진 않을까.”
“그렇지 않아요. 준호 씨가 보여준 것들이 있는데 누가 목숨을 걸겠어요. 사람들도 자기 목숨이 소중한지 잘 알아요. 이제 와서 준호 씨를 얕볼 수 없다는 거죠. 아마 준호 씨한테 당한 사람들은 캐릭터 메이킹이 되는 걸 보면서 속을 끓고 있을 걸요?”
꽤 그럴 듯한 말이긴 했다.
그럼 진세정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감사는 한데 방법이 참 낯설었다.
“다른 방법이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처럼 효과가 좋지 못했을 거예요. 준호 씨한테 극약처방이었던 셈이죠.”
“그렇지.”
진세정의 매직까지 부인할 수 없어서 혀를 차고 말았다.
더 이야기하다가는 진세정의 공을 인정하고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 같았기에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 선물보따리를 풀 시간이다.
“미국에서 받아낸 이권들이 있거든.”
“네. 미국에 다녀온 일은 잘 됐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까요?”
“당연히 신성그룹의 협력이 필요하지. 그 과정에서 원하는 건 가져가도 되고.”
“감사해요. 양심껏 챙길게요.”
사업가의 양심은 믿을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세희는 양심껏 챙기는 부류에 속하니까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허버트에게 강탈하다시피 한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다 좋아보이길래 다 챙겨왔다.
“어, 음.”
얼떨떨한 표정이 된 이세희가 날 본다.
“왜?”
“이거 정상적인 거래가 맞나요?”
“맞는데?”
허버트가 준비한 모든 걸 빼앗듯이 가져왔지만 내가 거둔 성과에 대한 보상이었다.
대신 미국 정부는 빌런없는 쾌적한 LA를 손에 넣지 않았나.
난 정당한 대가를 챙긴 것이다.
상대의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석유부터 시작해서 각종 자원과 식량 판매까지 한다고요? 그것도 관세가 전혀 부과되지 않고?”
이세희가 보기에도 좀 심했나보다.
음, 그러고 보니 내가 빼앗아갈 때 허버트가 나라 잃은 표정을 짓긴 했다. 품성이 경박한 것과 별개로 미국 대통령이니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양반이기는 했지.
“그렇게 됐어.”
“이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거래인데…….”
사람 머리 날리는데 뭣 하러 총을 쓰나. 그냥 손을 쓰면 그만인데.
허버트가 날 볼 때마다 흠칫했던 걸 생각하면 위협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심각하던 이세희도 선물보따리의 실물만 보기로 했는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이 거래의 중요한 점은 사우디에 이어 미국도 문호를 개방했다는 게 되겠어요. 준호 씨의 비법으로 마음만 먹으면 태평양도 가로지를 수 있으니!”
내가 용용이 발톱을 뽑아 만든 운반선은 비단 석유 운반만 가능한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정기적으로 무역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은 마물의 존재로 인해 조각조각 끊겨 있던 물류가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근데 그게 가능하려면 용용이 발톱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은데.
자중해야겠지?
[나 생각해준 거야? 고마워!]너 생각해주는 게 나밖에 없긴 하지. 근데 여분 몇 개 확보할 수는 없나?
[뭐? 너 나 걱정해준 척 한 거였어?]안 되면 말고. 까칠하기는.
“우선 이 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자세히 확인을 해본 뒤 조정해야 할 거 같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기에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오늘 방문한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했다.
나는 할 말을 끝냈지만 이세희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회장님을 한 번 만나보시겠어요?”
“이영문 회장을?”
“네, 준호 씨와 얘기 나누고 싶은 게 있나 봐요. 일정은 준호 씨가 편한 대로 잡아도 되고요.”
이영문은 이세희 체제가 공고해진 뒤 대부분의 일을 맡겨둔 채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여전히 강렬하여 재계의 거두이자 실력자로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왜 날 보자고 한 건지 모르겠는데.
허튼 소릴 할 양반은 아니니 한 번 봐도 괜찮겠지.
“한 번 볼까.”
“네, 언제가 괜찮으세요?”
“지금 바로.”
“바로요? 괜찮겠어요?”
“무슨 이유로 날 보자고 하는 건지 궁금하니까.”
한 번 얼굴이나 보자는 식의 시시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겠지.
내 수락에 이세희는 바로 회장실에 연락을 취했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리를 만들겠다는 대답이 나오고 나서야 표정이 편해졌다.
그로부터 30분 뒤.
본사 회장실에서 이세희와 함께 이영문을 보게 되었다.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잘 관리하고 있는지 안색이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세희에게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놀라운 성과를 가져오셨더군요. 그룹에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파트너에게 맡긴 것뿐입니다.”
나도 이제 겸양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게 취향은 아니라서, 바로 본론에 들어갔으면 싶었다.
이영문은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간 것이었다.
“최준호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초인님이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열과 성을 다해 지원해드리고 싶습니다. 초인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나오는 겁니까?”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누구는 이르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한 발 앞서 나가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최준호 공화국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낯간지러운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영문 회장이 무게를 잡고 하니 그럴 듯하게 들렸다.
“생각이 있다면 어느 정도로 지원할 생각입니까?”
“그룹의 운명을 걸고 배팅을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