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
3화
“깔끔하게 끝.”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부로 피에 미친 혈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라면 보이는 족족 갈가리 찢어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깨와 팔만 곱게 부숴 놓았다.
광기에 휘둘리지 않고 손속에 사정을 뒀다. 바닥에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빌런들이 내가 정상인 증거였다.
밖에서 대기하던 무장경찰들이 진입했다. 하나둘씩 빌런들을 체포하고 두려움에 빠진 시민들을 안정시켰다.
언락을 끌고 와서 무장경찰에게 던져 두자, 신속하게 체포했다.
“오빠! 괜찮아?”
“어, 괜찮아.”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하게 달려든 거야! 잘못되면 어쩌려고!”
“걱정했냐?”
내가 웃으며 묻자 물기가 묻었던 윤희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럼 왜 안 죽었냐고 아쉬워하겠냐!”
“그냥, 걱정 받는 게 생소해서.”
“···내가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야. 당연히 걱정하지!”
“그런 것치고 잔소리가 좀 많던데.”
“듣기 싫으면 좀 잘하던가.”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니 당연히 말로 해야 알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걱정해 주는 동생을 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약간 간질간질했다.
이 현장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범죄가 벌어진 장소에서 떳떳하게 서 있다는 것.
빌런의 상당수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지만 규율과 통제를 견디지 못한 자들도 많다. 그 점에서 저번 생의 나는 전자 후자 모두 해당된다.
빌런으로 수배되면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보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되는 것이다. 현재 빌런이 아닌 나는 지금 그 자유가 존재했다. 이 자유가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에 칼을 든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깨끗하게 하나로 묶어 올린 포니테일 머리와 단정하게 차려입은 검은 정장, 아름다운 미모까지.
화려한 아우라가 여배우를 연상케 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은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 같았다.
윤희가 그녀를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정다현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정다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변의 웅성거림 속에서 여인이 최준호에게 다가왔다.
“국가수호국 특수팀 빌런전담반의 정다현 사무관입니다.”
정다현은 국내 최대 규모인 신성 길드 출신에서 공무직 헌터로 옮긴 이력의 소유자로,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유망한 각성자로 꼽히는 인재 중 인재였다.
참고로 신성 길드는 윤희가 목표로 하는 곳이다.
정다현은 각성 후 1년만에 레벨 3에 도달했고 2년 후인 현재 레벨 6에 도달했다. 레벨 7 각성자가 국가의 핵심 인력, 레벨 8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접받는 걸 감안할 때 경이로운 수준의 발전 속도였다.
아름다운 미모와 투철한 사명감, 뛰어난 실력으로 차세대 대한민국을 수호할 인물로 꼽혔다.
실제로 10년 후,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 헌터 중 한 사람이 된다.
저번 생에 그녀와 조우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당신이 빌런이기에 죽여야 합니다.’
만약 내 뒤를 쫓지 않았다면 그 재능을 더욱 꽃피웠으리라.
그녀의 기프트는 ‘직감’이다. 그리고 혈중섭식으로 내가 취한 기프트기도 했다.
“최준호입니다.”
“여기 빌런들을 이 제압한 분이시죠?”
“예, 제가했습니다.”
“실례지만 소속이 어디신지? 아방가르드? 사신?”
정다현의 목소리에 짙은 경계심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항하지 못하게 무력화만 시켰을 뿐 한 명도 죽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돌아오는 게 경계라니?
아! 설마, 직감 때문인가.
적일 때 정다현의 직감은 매우 성가셨다.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감으로 내 뒤를 쫓던 게 직감 덕분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떳떳했다. 과거로 돌아와 모든 악행을 세탁한 나는 고향에서 부모님 등골을 2년 동안 빨아먹은 백수에 불과했다.
“공시생입니다.”
정다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공시생, 이요?”
“예, 공무직 헌터 준비 중입니다.”
“5급 준비 중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7급?”
“9급 준비 중입니다. 공부하려고 책도 샀습니다.”
“······.”
최준호가 오늘 서점에서 구매한 공무직 헌터 A to Z, 공무직 헌터 완전정복!, 한 권으로 끝내는 공무직 헌터! 등등의 참고서를 들어 보이자 정다현의 입이 닫혔다.
보다 못한 윤희가 나섰다.
“저기, 다현 님. 진짜에요. 저희 오빠 5년 동안 취업 준비하다가 공무직 헌터 되려고 어제 지방에서 올라왔거든요.”
“그렇군요. 실력이 뛰어나서 소속이 있는 헌터인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그랬지만 나를 보는 눈은 탐색의 빛이 담겨 있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예.”
“왜 공무직 헌터가 되려고 하시는지?”
현재 헌터 지망생은 대부분 공무직 헌터가 아닌 대기업 소속 헌터를 목표로 한다. 금전적인 면, 대우, 전망 등등을 볼 때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고서는 공무직 헌터에 지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그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본 건가.
“취업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무직 헌터로 목표를 바꿨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 건지?”
“아니요, 이건 제가 선을 넘었네요. 우선 무고한 시민을 빌런으로부터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평범한 시민을 가장하기 위해 한 행동인데, 가슴 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저번 생에 정다현은 정의를 수호하는 헌터로 각성자와 시민들에게 존경받은 존재였다. 미쳐 있던 나를 가장 집요하게 쫓던 헌터 중 하나였고.
“그리고 연락처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상부에 건의 드려 표창장 수여를 추진하겠습니다. 오늘의 영웅적인 행동은 공무직 헌터가 되시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과거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동료가 될 사이였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의심마저도 지우는 게 좋겠지.
번호를 건넨 내가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말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 빌런 아닙니다. 수상한 사람도 아니고요.”
“······.”
“진짭니다.”
“······.”
됐다. 이 정도면 의심이 풀렸을 거다.
* * *
오늘 벌어진 은행 습격 사건을 마무리 지은 정다현은 현장을 둘러봤다.
빌런들을 모두 치워 버렸음에도 좀 전의 참혹함이 보이는 듯했다.
최근 들어 유난히 잦아진 습격.
갈수록 교활해지는 빌런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무고한 민간인들.
오늘 사건도 자칫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했다.
경직되어 있는 특수팀의 시스템. 최대한 많은 빌런을 체포하기 위해 공무직 헌터가 된 그녀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준호.”
정다현은 오늘 만난 남자를 떠올렸다.
자비 없는 손속으로 빌런 열 명을 모조리 불구로 만들어 버린 주인공.
잠깐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최준호가 빌런에게 가한 건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그 모습은 시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헌터가 아닌, 빌런을 연상케 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
정다현이 무수히 많이 보아온 사례들이다.
하지만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세상을 피로 물들일 수 있는 칼은 빌런을 사냥하는 가장 훌륭한 칼이 될 수 있다.
그녀가 가진 기프트 ‘직감’이 강하게 말했다.
여기에서 최준호를 잡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험이 될 거라고.
조회해본 최준호의 경력은 별 게 없었다.
몇 년 동안 대기업 입사에 도전하다가 실패 후 고향에 낙향.
공무직 헌터가 되기 위해 다시 상경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보고서에 없는 미지의 영역이 문제였다. 주어진 정보보다 직감을 더 신뢰하는 정다현은 직감이 주는 경고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내가 직접 관리해야 돼.”
* * *
집으로 돌아온 뒤, 윤희는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오늘 빌런을 제압하는 모습에서 느낀 바가 컸다고 밝혔다.
“그런데 불구로 만들어 버린 건 과하지 않아?”
“전혀.”
“왜?”
“내가 빌런들에게 손속에 자비를 뒀다면 그 빌런들이 시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을 거야.”
“······.”
“모두를 다 만족시키는 결말은 없어.”
어리숙한 빌런이 교활한 빌런이 되는 순간, 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
내가 미쳐 버렸을 때도 그런 생각을 자주했다. 차라리 내가 완전한 힘을 얻기 전에 죽었다면 이런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까. 좀 더 강한 헌터가 날 죽이러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빌런 모두가 악한 사람일까?”
“무고한 자들도 있어.”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그래서 억울한 상황에 처해 빌런이 된 자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그리고 그들도 결국 다른 빌런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고.”
“어렵다.”
“네 정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무고한 1명의 빌런을 구제하는 것보다 그 빌런이 무고한 시민 100명을 학살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알았어.”
방으로 돌아간 윤희의 침울한 표정이 걸렸지만 개의치 않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었다.
하긴,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자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빌런들 중 끝판왕이 나 자신 아니던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자신의 손에 죽어 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몸의 통제권을 잃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그들의 심장을 뜯어내고 피를 빨았다. 그렇게 더 강해졌던 나야 말로 악의 정점이다.
미쳐 있는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과거가 사라지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기회를 붙잡고 잘 아는 척 조언하는 모습이 역겹게 느껴졌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사는 거야, 평범하게.”
오늘 해 보니 가능할 것 같았다.
* * *
전생에 내가 능력을 각성하게 된 계기는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다.
기프트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개방이 된다.
하지만 조건 충족은커녕 어떤 속성과 연관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 같은 경우 우연히 피와 관련된 능력임을 알고 기프트 개방을 위해 안 해 본 짓이 없었다. 직접 상처를 내 보기도 하고 피를 마시기도 하고 바르기도 했다. 그러다 마물의 피를 마셔서 중독되기도 했다.
기프트를 개방하지 못했고 레벨도 낮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었다. 결국 나는 취업을 포기하고 마물 뒤처리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마물 뒤처리조는 사냥이 끝나면 부산물을 확보한다. 마물의 가죽과 고기, 피 등은 신선도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종종 어그로가 튀어서 뒤처리조가 마물에 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각성했던 당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부산물을 확보하던 도중 피 냄새를 맡은 마물의 습격이 이어졌고, 사냥팀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여서 전멸 위기에 몰렸다.
당시 나는 살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마물의 심장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고 능력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홀로 살아남은 건 나 혼자 뿐.
마물도, 헌터도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피에 미쳐 버렸던 최악의 빌런, 혈종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 * *
공무직 헌터가 되기 위한 참고서 구입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윤희에게 포스 운용에 대한 도움을 주고 참고서 위주로 공부했다.
그런 와중 은행에서 빌런을 제압한 것에 대한 표창장도 주어졌다. 그 자리에는 정다현도 직접 참여해서 축하해 주었다.
“시민을 위해 나섰던 만큼 공무직 시험에 가산점이 주어질 거예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이것밖에 못 해 드려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정말 괜찮습니다.”
“네.”
표창장 수여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정다현도 따라 나왔다.
“실례지만 공무직 헌터 시험은 언제쯤 볼지 알 수 있을까요?”
“두 달 후, 늦어지면 세 달 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늦네요?”
“사정이 있습니다.”
사실 참고서를 보는 속도가 좀 느렸다.
공무직 헌터 시험은 한 달에 한 번씩 치러지는데 경쟁률은 3:1. 하지만 실제 불참인원을 고려하면 2:1, 적을 땐 1.5:1까지 떨어진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고 정다현이 물었다.
“혹시 빌런전담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훌륭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시험에 합격하시면 저희 빌런전담반에 오시는 건 어떠신가요?”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아.”
정다현이 탄식했다. 그녀가 오해하는 것 같아 말을 덧붙였다.
“빌런전담반이 싫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국가수호국은 공무직 헌터 중 엘리트만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제 점수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싫은 건 아니시네요. 그건 다행이네요.”
“당장 합격이 먼저라서.”
“그렇죠 제가 성급했네요. 사과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대답에 정다현이 미소지었다.
“그날 준호 씨가 빌런을 제압한 방법은 인상 깊었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래도 손속에 조금 자비를 두면 더 좋지 않을까요? 제압된 빌런 중 셋이 위독한 상황까지 갔었거든요.”
“아.”
그제야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무력화 시키고 그 다음에 중증으로 가는 것까지 염두에 뒀어야 했다.
아무리 회복제 성능이 좋아졌어도 죽어 버리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법이다.
심문을 위해서는 숨을 붙여 놓는 게 필수였다.
그 점에서 정다현은 프로였다. 제압 후 심문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손속의 조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과거 빌런이었던 나는 숨만 붙여 놓는 게 전부라고 생각해서 어설픔을 드러내고 말았다.
다음에는 적당히 힘 조절을 해서 사지만 부숴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은 제가 실수했네요.”
내가 깨달음을 얻고 수긍하자 정다현의 표정이 풀렸다.
“뭘요. 준호 씨는 분명 훌륭한 헌터가 되실 거예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내 기억에 정다현은 빌런의 사지를 부숴 놓지 않던데. 아무래도 깔끔한 것과 확실한 것의 방법 차이라도 있나.
정다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과격한 성향이었나 보다.
우리 둘은 마주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