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레벨 측정 당일이 되었다.
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식사를 차려 먹었다. 내 실력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지만 맞은편에 앉은 윤희는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이 웬수가 레벨 8이라니, 맙소사······.”
고향 집에서 내 말을 들은 이후 줄곧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의외냐?”
“댁이 평온한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다른 것도 아니고 레벨 8이라고!”
아침부터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진짜 오빠가 원하기만 하면 돈을 갈퀴로 쓸어 모을 수 있어.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지. 그냥 원하는 거 말만 해도 다 가질 걸? 각성자들의 존경은 덤이고, 관심도······.”
그런 것보다 난 불체포특권에 더 관심이 가 있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지.
“내가 레벨 8되면 넌 어떻게 할 거냐.”
“난 왜?”
“나한테 관심이 쏟아지면 너도 관심 받을 텐데.”
윤희가 관심 받을 이유는 나 외에도 몇 개 있었다.
신성 길드 소속이라는 점, 벌써부터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점 등등.
본인은 초초초미녀라고 하지만 외모도 예뻐서 나중에는 나보다 더 관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야 즐기면 되지. 어차피 신성 길드 출신인 것만으로도 관심이 상당하거든? 이 기회에 오빠 덕 좀 보지, 뭐. 막 남자 아이돌이 나한테 잘 보이려는 거 아냐?”
꿈도 참 야무졌다. 그 정도일 리가 없는데.
“꿈 깨.”
“으흥흥.”
내 말이 안 들리는 것 같다.
“레벨 측정 잘 받고. 떨어진다고 해도 항상 응원하니까 위축되지 마. 파이팅!”
“그래.”
나는 윤희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종로에 위치해 있는 한국 각성자 중앙 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전국 길드 연합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외국과 각성자 교류가 이루어지는 등 각종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다.
정문에서 정다현과 만났다.
“준호 씨.”
“다현 씨.”
“······.”
정다현이 날 빤히 바라본다. 뭔가 불만이 있는 얼굴. 내가 뭘 실수했나 싶다가 저번에 편하게 대해 달라던 게 떠올랐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씩 노력해 보겠습니다.”
“네.”
나와 정다현은 안으로 들어갔다.
“레벨 8 측정은 포스의 운용 방식과 동원량을 체크해요. 최소 기준이 있는 거죠.”
포스 운용이나 포스 동원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레벨 8 측정이라고 해서 이전 측정과 별다를 게 없어보였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레벨 7 각성자를 상대하게 될 텐데, 제압 과정이 중요해요.”
“어떤 부분이 중요합니까?”
“상처를 입히지 않을수록 좋아요.”
“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을 의심했다. 내 머릿속에 제압은 곧 죽음이다. 백 번 양보해도 중상이고.
평소대로 팔다리를 부러뜨려 제압하고 회복제를 뿌려야 되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내 놀란 반응에 정다현도 놀랐다.
“죽··· 상처를 입게 되면?”
죽이면 어떡하냐는 말을 간신히 순화했다.
“그건 2차 시험이라서요. 1차 통과한 분 중에 2차에서 탈락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
대체 왜 이런 시험이 있냐고 물어보니 압도적인 강함과 완급조절도 시험의 한 종목이란다.
차라리 레벨 7 각성자 열 명을 죽이는 게 내겐 더 쉽다.
심각한 내 표정에 정다현도 당황했다.
“준호 씨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해 봐야죠.”
이 측정,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난관일지도.
* * *
레벨 8 측정은 정부 측 인사와 당사자의 지인, 초대받은 참관인만 초대되어 진행한다.
보통 초대받는 참관인은 소속 길드 인원, 그리고 인증해줄 외국 인사가 참여한다. 최준호는 길드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신성 길드를 지목했다.
외국 인사로는 오랜 우방이자 오랫동안 최준호를 주시해 온 미국이 참관인단을 보내왔다.
신성 길드 측에서는 얼굴 마담이라 할 수 있는 이세희와.
“네가 최준호를 주목해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레벨 8 측정장에서 보게 되다니, 놀랍구나.”
신성 길드 소속이자 레벨 8 초인인 흑룡 백군서가 참여했다.
신성가의 가신 출신인 백군서는 뼛속까지 신성맨이다. 그가 있기에 지금의 신성 길드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평이 주를 이룰 만큼 신성 길드에 해 온 공헌이 컸다.
사적으로 신성 그룹 회장과 의형제 사이이며, 이세희에게 삼촌으로 불린다.
“세희 네가 남자에게 관심 갖는 경우가 없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오해한다니까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시기긴 하지.”
“어휴, 들을 생각이 없으시네.”
미소 짓던 백군서는 측정소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웠다.
“다만 들리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성격도 상당히 강하다고 하고.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다는 의미겠지.”
“네, 하지만 실력은 진짜에요. 동생도 엄청난 재능이고요.”
“최윤희라 했던가. 나도 들었지. 재능 하나는 확실한 남매로군.”
“종종 들려서 봐주세요. 탄력만 받으면 무섭게 성장할 거예요.”
“그러마.”
백군서는 말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세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다 최준호를 바래다주고 올라오는 정다현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다현아 여기!”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이세희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백군서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오랜만이구나, 다현아. 그동안 열심히 단련했구나. 많이 성장했어. 그래도 연락 좀 자주하지. 얼굴을 잊어버릴 뻔했다.”
“죄송해요.”
“아니다. 자기 뜻을 세우려고 하는 건데 내가 방해할 수 없는 일이지. 다만 신성은 네 집이기도 하니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찾아와라.”
“···감사합니다.”
“그렇게 잔소리하지 말고 삼촌이 먼저 좀 찾아가시지 그랬어요.”
“그럼 너무 주책맞아 보이지 않을까?”
백군서의 말에 이세희와 정다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화기애애하던 대화 분위기가 깨진 것은 다른 손님이 등장하면서다.
“저기.”
이세희는 저만치에서 다가오는 외국인 무리를 가리켰다. 오늘 참관하기로 한 미국 측 참관인단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선두에 선 금발 여인에게 고정되었다.
“안나 크리스틴.”
러블리한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로 남자 각성자를 전문적으로 홀려 버리는 헤드헌팅 전문가다.
미모뿐만 아니라 빈틈없는 수완까지 가졌다.
이세희와 마주한 안나 크리스틴이 미소 지으며 영어로 인사했다.
“하이, 프린세스 리, 잘 지냈어요?”
“안나도요. 직접 올 줄 몰랐어요.”
“당연히 와야죠. 역사적인 순간인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글쎄요? 어떤 생각을 말하는 걸까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안나 크리스틴의 눈을 이세희가 빤히 들여다보았다. 안나 크리스틴도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치열하게 이어지던 신경전은 측정이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끝났다.
“저희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려고요. 그럼.”
살짝 고개를 숙인 안나 크리스틴이 일행과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이세희가 중얼거렸다.
“은근 기분 나쁘네.”
“나도.”
“허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안나 크리스틴의 마수는 보통이 아닌데.”
백군서가 걱정을 드러냈다.
특히 젊은 남자에게 안나 크리스틴의 미모는 치명적이다. 최준호의 나이가 20대 중반. 한창 피가 끓을 나이다. 자칫하다 새로 등장한 레벨 8 초인이 미국에 넘어갈 수 있었다.
안나 크리스틴의 이명은 서큐버스. 괜히 그리 불리는 게 아니다. 방심하는 순간 홀려 버린다.
하지만 이세희가 보인 반응은 백군서의 예상과 달랐다.
“삼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최준호가 여자한테 넘어갈 걸 걱정하는 거예요.”
“뭐?”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미모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뚫다가 하루아침에 시궁창으로 처박혔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세희가 쓸쓸히 웃었다.
최준호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자신이 겪었던 걸 안나 크리스틴도 겪으리라.
잠시 후, 레벨 8 측정이 시작되었다.
* * *
레벨 8 측정 중 가장 먼저 시작된 건 포스 운용이었다.
[포스 운용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안내 목소리와 함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탁구공 크기의 푸른색 돌 5개였다.
상극 마력석.
포스 간직한 돌이지만 포스를 접하면 밀어내는 성질을 가졌다.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포스끼리 반발력을 발휘한다.
포스 탐지용으로 많이 활용되며, 상극의 반발력을 이용해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헌터의 거리유지용 무구로도 사용된다.
[제한 시간 5분 내에 포스로 상극 마력석을 적중시키면 합격입니다.]포스 운용을 보겠다고 했지만 그 속에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었다. 상극 마력석이 밀려나면 그 경로를 예측, 반발력 계산 등이 이루어지는 것까지 지켜보겠다는 의미였다. 그 변수를 제어하는 것까지 포함되겠지.
포스를 내 몸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상극 마력석이 움직이는 공간을 통제하에 놓아야 하기에 꽤 여러 가지가 요구된다.
근데 이게 어려운 거라고?
난 쉬운데.
상극 마력석이라는 것도, 포스를 밀어낸다는 것도 결국 필요한 건 반응할 시간.
그마저도 뛰어넘는 압도적인 속도, 최단 경로를 점유하면 세상에서 제일 쉬워진다.
[측정을 시작합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기뢰를 발동, 상극 마력석으로 쏘아냈다.
클리어 조건은 간단.
상극 마력석이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르면 된다.
퍼벅! 퍽! 퍼벅!
순식간에 다섯 개의 상극 마력석이 기뢰에 적중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타이머는 4:59로 고정되어 있었다.
1초 지난 것이다. 목숨의 위협이 없어서인지 좀 무디게 반응한 거 같다.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음 시험은 포스량 측정이 있겠습니다.]다음 시험은 포스량을 측정하는 것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레벨 8 초인으로서 보유해야 하는 최소한의 포스량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레벨 8 초인으로서 전투가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 레벨 8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그 다음은 포스 동원량으로,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포스를 운용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출력 테스트라 봐도 무방했다.
최소한의 출력 기준을 충족해야 레벨 8로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항목이다.
내 앞에 놓인 것은 다 쓰고 텅텅 비어 버린 마물의 심장이다.
유해 7단계에 해당하는 크기로, 이걸 다 채우려면 레벨 7의 한계를 돌파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가 출력 기준을 선정하게 되겠지.
나는 포스를 움직여 마물의 심장으로 일거에 밀어 넣었다.
삐삐삐삐!
순식간에 70%가 넘어서면서 요란한 알림음이 울려 퍼졌고, 80%, 90%를 돌파하여 100%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나는 포스 운용을 중단했지만 그 사이 더 밀려 들어간 포스가 마물의 심장에 균열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부숴 버렸다.
콰직!
용기가 파괴되어 갈 곳 잃고 날뛰려는 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폭주하려던 포스가 내 통제 안에 들어와 부드럽게 한 바퀴 돌다가 손끝에 스며들며 사라졌다.
[오류 발생! 오류 발생!]알림 목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번졌다.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해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내 포스량이 생각보다 더 많고 출력도 강했을 뿐이다. 하도 피를 먹어 사납기도 하고. 마물의 심장이 그걸 견뎌 내지 못할 만큼 연약했던 거지.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잠시 후, 합격이 알려지면서 나는 두 가지 종목 모두 통과했다.
1차 시험 합격이었다.
* * *
난관이 예상되던 측정 시험.
최준호가 레벨 8로 예상된다고 하나 백군서는 1차 측정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준호는 쉽게 통과했다.
“믿기지 않는군.”
지켜보던 백군서는 예전에 봤던 측정을 떠올리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극 마력석을 1초 만에? 대체 얼마나 빠르면······.”
자신은 저 5개를 건드리는데 5분을 꽉 채웠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마물의 심장이 버텨 내지 못하고 부서지자 백군서는 고개를 저었다.
“터무니없이 많은 양을 손쉽게 움직이는군. 포스량이나 운용 능력만 봐도 이미 레벨 8 수준이야.”
양, 속도, 위력 모두 최상급에 해당했다. 저런 인재를 이제야 보게 되다니.
만약 최준호를 상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괴물의 등장이다.
측정 시작 전 부정적인 인식은 사리진지 오래였다.
곧이어 2차 측정이 시작되었다.
“함익철.”
레벨 8 측정에서 2차로 이어지는 전투 대상자 선정은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게 된다. 이유는 레벨 8과 전투 경험은 더 높은 경지로 향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같은 소속 길드 출신이거나, 정부에서 밀어주는 인물이 선택된다.
함익철은 차기 각성자안보실의 2인자이며 40대 초반의 상대적인 젊은 나이여서 차기 레벨 8에 오를 유력한 인물로 꼽혔다.
마력탄이라 불리는 기프트를 총으로 활용하는 그는 뛰어난 원거리 공격 수단 보유자이면서 격투기 종합 12단으로 근접 거리 약점을 보완했다.
전투는 무려 5분여간 이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백군서가 미간에 주름을 모았다.
“미쳤군.”
* * *
2차 측정은 내 생에 가장 어려운 전투 베스트 5에 꼽혔다.
상대를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하라니.
세상에 부상 없는 전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죽이는 걸 가장 잘했던 내게 이건 재앙이요, 시련이었다. 다치지 않게 하는 건 내게 너무나 어려운 요구였다.
한 대라도 치면 죽을 것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빈틈을 파고들 때마다 손을 쓰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기뢰를 폭발시켰다. 한 번 죽은 것이다.
억겁보다 길었던 5분이 지났다.
나는 5분 동안 함익철을 27번이나 죽일 수 있었음에도 상처 하나 입히지 않는데 성공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완전히 넋이 나간 녀석은 전의를 상실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내게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벗어나는데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산 게 낫지.
잠시 후 알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이제 끝났군.
사람들이 왜 레벨 8 측정이 어렵다고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죽이는 게 쉽다.
남은 절차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 참관인단으로 온 외국인 무리가 내게 접근했다.
그중 제일 앞에 선 여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손을 들어보였다.
“하이.”
* * *
안나 크리스틴에게 새로운 레벨 8의 등장은 그렇게 새로울 일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레벨 8을 키우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매년 여러 명이 탄생한다.
그녀는 직업상 최고의 각성자들을 만나 왔다. 그래서 천재라는 수식어도, 괴물이라는 수식어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온몸을 휘감는 전율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
탄성을 터뜨린 안나 크리스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좀 전의 여운이 가라앉질 않았다.
오늘 탄생한 초인은 특별했다. 불과 20대 중반이라는 나이다. 젊은 나이는 곧 가능성을 의미했다. 가능성은 발전이고 높은 실력이다.
최준호가 짧은 시간 동안 처리해 낸 사건의 숫자가 무지막지했다. 100% 성공률과 함께 사건의 숫자는 곧 전투경험을 뜻했다.
특히 마지막 측정에서 그가 보여 준 전투력은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강력했다.
20대인데 레벨 8에 전투경험까지 풍부하다? 거기다 빌런을 단호하게 제압하는 정의감까지?
할리우드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개연성 없다고 욕을 먹는다.
‘더 말할 것도 없어. 그는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최대어야.’
다만 난관은 최준호가 정부기관 소속이고 레벨 8이 된 이상 우선 협상권은 3년 동안 대한민국에 있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3년이 지나도 최준호의 나이는 28세라는 점이다. 미국 나이로는 27세. 말도 안 되는 역대급 재능이었다. 정부와 계약하지 않고 3년을 허비해도, 최준호의 가치는 여전히 역대 최고인 것이다.
안나 크리스틴은 마음의 도장이라는 단어를 믿었다.
그걸 위해서는 최준호의 마음을 확실히 훔쳐야 한다.
만약 그가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어쩔 수 없이 풀어 줄 것이다.
비록 미국의 국토가 넓어 각성자들에게 극악의 사냥 환경이라 불려도 대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설득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계산을 마친 그녀는 몸을 쭉 뻗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검은색 투피스 사이로 강조된 가슴골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골반라인과 쭉 뻗은 각선미는 그녀의 자부심이며 무수히 많은 남자 각성자들을 홀려온 최고의 무기였다.
“하이.”
가까이 다가가자 최준호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레벨 8이 아니면 배우라고 생각할 만큼 곱상한 외모였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잘생긴 느낌이 들었다.
“준호! 레벨 8이 된 걸 축하드려요.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깃들길 기원할게요.”
서로 몸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운 거리.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로 접촉한 채 속삭이듯 말했다.
달콤한 향수와 여성 페로몬의 조화. 여기에 남자들이 동경하는 풍성한 금발과 풍만한 몸매로 섹시함 어필까지.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게 애가 닳도록 만든 뒤 한 걸음 물러나 최준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보통 이쯤 되면 남자는 100이면 99는 넘어온다.
100% 넘어올 거라 생각했던 그녀는 미간을 모은 최준호를 보고 이상 기류를 감지했다.
“저기, 준호?”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야지.”
“네?”
“욕하는 건 아닌 거 같으니 봐주지.”
가볍게 혀를 찬 최준호가 몸을 돌려 멀어졌다.
“······.”
생전 처음 겪는 매몰찬 외면에 안나 크리스틴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세희가 배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