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한정문의 뱀 같은 눈이 천명국을 훑고 지나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였던 그는 한순간에 바뀐 현실이 믿기 힘들었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그는 천명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을 떠올리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청와대 일개 실장에 불과하던 천명국은 존재감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최준호 영입에 나서고 그만이 유의미하게 최준호를 다루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결정타는 대통령의 의중이 향했다는 것.
최준호를 앞세워 거둔 성과는 대통령의 성과가 되었고, 대통령은 천명국을 정치적 후계자로 삼으면서 그 지지율을 옮기는 작업을 해냈다.
그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정문은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서울시장의 자리는 정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명국의 등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몇 번이고 반전의 기회를 노렸지만 모두 실패, 천명국의 지지율은 정권 지지율과 커플링되면서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졸지에 2위 그룹으로 추락한 한정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말도 안 돼.’
그때마다 한정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치초보에 불과한 천명국은 흔한 말실수 하나 하지 않고 신인의 신선함과 정치 9단의 노련함을 동시에 보이고 있던 것이다.
이건 마치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전한철 공방 3업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마저도 한정문은 대통령이 도와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본래 계획은 정치초보인 천명국이 실수하는 걸 받아먹으면서 정치선배의 노련함과 행정가의 실력을 강조하려고 했는데 그러다 경선이 끝날 판이었다.
당연히 결과는 천명국의 압도적인 우세일 테고.
반전의 모멘텀을 찾던 중, 기회가 왔다.
바로 언론사주들의 집단 죽음이다.
실종된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자연사였지만 그걸 순순히 믿는 사람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다.
범인은 아마도 최준호일 터.
그리고 최준호의 이름에 흠집이 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최준호를 잘 다룰 수 있다고 홍보하던 천명국일 것이다.
최준호를 가까이 하면서 대권을 먹을 생각이지만 이렇게 발목을 잡을 걸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래서 정계에서 최준호 리스크를 운운했던 것이다.
한정문은 거칠게 반격을 가했다.
“대답해보십시오, 천 후보!”
*
* *
매섭게 몰아붙이는 한정문을 보면서 천명국은 입맛을 다셨다. 자신에게 공세가 가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예상 이상의 압박이었다.
‘우선.’
천명국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최준호밖에 없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않아도 그만한 실력자는 한 명이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인정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치 9단인 대통령의 지도를 받은 그는 정치의 속성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 한정문도 자신의 실수를 유도해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거겠지.
속내를 감추고 어떻게든 단점을 헤집어놓으려는 것에 환멸을 느꼈지만 반대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란 걸 느끼고 있었다.
“범인으로 최준호 초인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를 옹호하는 겁니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유죄추정의 원칙이 우선되었습니까? 아니면 제가 모르는 증거가 따로 있는 것입니까?”
“…….”
한정문의 입이 닫혔다. 그도 여기에서 더 몰아붙이면 최준호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부담스럽겠지.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모든 게 확실해지기 전까지 범인을 특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바입니다.”
최준호 이름이 걸렸다고 해서 물러나는 모습만 보이면 지지자들에게 실망만 살 뿐이다.
옆에서 보좌하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통령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며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지는 리더여야 한다.
위기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신이 원하는 판을 만들어내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면 좋다.
그래서 천명국은 선수를 쳤다.
“이번 언론사주 죽음은 국가 차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언론사주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전수조사에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야 당연히 좋…….”
가장 먼저 대답하던 한정문이 멈칫했다. 천명국의 말에 담긴 함정이 어떤 것인지 눈치 챈 것이다.
“잠깐만요.”
그래서 수습하려고 했지만 기회를 잡은 천명국은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어떤 원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 누가 노릴 것인지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일 것입니다.”
“자, 잠깐! 그건.”
“모두 동의하셨으니 여당의 의견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대통령께 진언을 드리겠습니다.”
“…….”
불도저 같이 진행시켜버리니 다른 후보들이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졸지에 ‘언론사주 집단 죽음 전수조사’ 토론회가 되었지만 그 여파는 강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사회를 좀 먹던 벌레 몇 마리 죽어 봤자다. 오히려 해악을 끼치던 녀석들이 사라졌으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나.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래도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를 계속 처리하다 보면 언젠가 박멸되기 마련이다.
결정적으로.
나를 의심한다고 해서 내가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없었다.
버서커야 공범이니 침묵할 수밖에 없고.
[인간들! 여기 얘가 다 죽였어요! 브레인워싱으로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고 머리를 부숴버렸어요! 인간들! 얘가 범인이에요!]용용이가 저렇게 외치고 다녀봤자 그 말이 귀에 들릴 리도 없으니까.
내가 벌인 행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세상이 나를 범인이라고 생각해도 범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확신과,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하면 언제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최준호 공화국을 만들려면 이 정도 공포심은 배양해야지. 그래봤자 시간이 지나면 공포를 잊고 슬금슬금 선을 넘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었다.
대체 얼마나 죽여야 정신을 차릴지 나도 의문이긴 하다.
“그렇다고 다 죽이냐?”
다만 대놓고 나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윤희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추궁하듯 바라봤지만 거기에 반응할 내가 아니다.
“나 아닌데.”
“오빠 맞잖아.”
“증거 있냐?”
“20년 넘게 가장 가까이서 봐온 내 촉이 알려주고 있어.”
그 촉으로 전 세계 모든 범인들을 다 찾아낼 기세였다. 그래봤자 떠보는 것에 불과했고 내가 아니라고 하면 별 수 없을 것이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엄마가 공황장애 약을 먹는 건 속상해. 근데 이게 최선인 걸까.”
“죽어서 속은 시원하다만.”
“오빠가 바라는 건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 거야?”
“세상에 욕 먹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냐?”
“하긴, 이렇게 죽이면 욕은 안하긴 하겠다.”
“왜, 너도 건전한 세상을 위해서는 견제가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는 그런 이상이 있냐.”
“올바른 견제가 나쁜 건 아니잖아.”
내 동생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릴 때 성공해서 머릿속이 꽃밭이다.
나야 힘을 탐하다 미쳐보기도 하고 몸을 빼앗겨보기도 해서 경계하지만 윤희에게 그런 건 없었다.
하긴, 이런 걸 알아서 좋을 게 없기도 하지.
나중에 내 마음을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서로 견제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서로 의기투합 하는 것부터 생각해야지. 당장 신성길드만 해도 견제를 받는 구조라고 생각하냐?”
“그건…….”
당연히 아니다. 신성그룹의 위상이 수직 상승함에 따라 신성길드를 건드릴 수 있는 간 큰 곳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공무원 조직에서 감사를 나온다고 해도 눈 가리고 아웅식일 뿐이고.
세상 일이란 건 다 그렇다. 그걸 막는 마지막 보루는 대중의 눈치고.
가끔은 그 대중의 눈도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확실하게 역효과가 발생하더라.
윤희도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눈치였다.
“…아무튼 조심해. 이런 인식 하나하나가 쌓이면 오빠한테도 좋지 않으니까.”
“내가 한 건 없지만 주의하마.”
“진짜 입담만 늘었어.”
결국 윤희도 포기하고 물러났다. 이렇게 가장 끈질기게 따라붙던 여동생도 물리친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안 들키면 되는 것이다.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날 범인이라고 하겠는가.
[넌 법을 지킬 생각은 없지만 상대는 법대로 하라는 거야?]불만이면 나보다 강하면 되는 거다.
[와! 진짜 뻔뻔해!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야.]신수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인데.
내가 언제부터 인간, 신수를 차별했다고.
아무튼 요즘 들어 느끼는 건 내가 사회의 방식을 접했지만 결국 혈종일 때 방식이 제일 편하더라.
*
* *
언론사주 14명이 하루아침에 사망한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당연하게도 범인으로 지목된 건 나였고, 주변에서도 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사법 시스템은 심증이 아닌 재판에 의해 작동하게 되어 있다. 나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려고 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야.”
솔직히 말해서 천명국의 정치 실력에 감탄했다.
경선 토론에서 한정문을 중심으로 한 후보들은 내가 저지른 게 아니냐며 천명국을 압박했지만 도리어 전수조사를 내세워서 닥치게 만들었다.
저들이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원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조사하게 된다면 살면서 해온 것들이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이들이었던 만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을 테지.
그 후 여당 내 어디에서도 천명국을 압박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정치권에 빚지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인 건가. 나와 친한 것 때문에 위기를 맞이할 뻔했던 걸 도리어 역공으로 승화시킨 걸 보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정치 천재 아냐?”
물론 저런다고 해서 언론사주들을 처리한 게 나라는 건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 지금쯤 언론사주들이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유력자들은 조사에 착수했을 테고, 신성그룹이 준비한 자료들은 조용히 그들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테지.
어설프게 내 가족을 건드리게 되면 본인만 증발하듯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압도적인 폭력이 행사될 수 있는 대상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객기를 부리지 못하는 법이다.
다만 그걸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깨우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날 지지하는 사람들이 떠나가더라도.
밖이 시끄럽건 말건 진세정을 찾아갔다. 팝업스토어 방문 이후 개선해야 될 부분을 고민했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초인님의 생각이요?”
“예. 팝업스토어를 방문해보니 저에 관련된 여러 굿즈를 판매하고 있던데.”
“가보셨던 거예요? 아직 많이 부끄러운데. 좀 더 잘 준비할 걸 그랬어요.”
진세정이 보이는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팝업 스토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더 이상 제멋대로 폭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팀장님을 영입하고 팀장님과 얘기하면서 세계관을 구축했었습니다.”
“네, 그랬죠.”
“그걸 수정을 가하고 싶습니다.”
“네? 수정이요? 어떤 방식으로요?”
그동안 내가 손을 대지 않았던 부분이라 진세정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분명 이 분야는 진세정이 전문가다.
하지만 팝업스토어를 방문하고 받은 충격과 공포가 워낙 컸다.
현실의 나와 팝업스토어 굿즈에 붙여져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나 사이의 괴리감은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최악최흉이라 불리던 나조차 항마력이 부족했던 것.
이걸 극복하려면 현실의 나와 세계관의 나를 일치시켜야 한다.
당연히 세계관의 내게 본래 나의 가치관을 주입시켜야겠지.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건 현실의 최준호가 아닌 세계관 속 고군분투하는 최준호니까. 하지만 이 차이를 좁혀놔야 더 큰 실망을 막을 수 있다.
나도 편해지고.
내 마음대로 세계관에 손을 대려고 하는 거 때문에 진세정도 실망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떠난다고 할 수도.
하지만 진세정은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기에 떠난다는 의사를 밝혀도 최대한 붙잡을 생각이었다.
“그런 이유로 판타지던 세계관을 엎고 현실의 제 모습과 최대한 일치시키고 싶은데 팀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는 격렬한 반발을 각오하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좋아.”
응?
전혀 예상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제 상상력만으로 구축한 건 한계가 존재해요. 그런데 현실의 초인님을 바탕으로 보완을 하는 거잖아요. 가장 부족했던 리얼리티를 더할 생각을 하시다니. 이거보다 더 귀한 건 또 없죠. 초인님에게 한 수 배웠어요. 초인님, 팬 조련에 소질 있으신 거 같아요.”
“…….”
뭔가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