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진세정의 반응은 오히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번 요청은 어쩌면 가장 열렬하게 나를 지지하는 팬들이 떨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결정이었다.
눈앞에 있는 진세정마저 폭거라며 실망할 수 있는 그런 사안.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걸 단번에 바꿔버리는 것인데 지금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흐흐, 게다가 초인님이 직접 참여한다고요? 그럼 더 좋죠.”
[오히려 불을 붙여버린 거 같은데?]“…….”
용용이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난 내 말을 진세정이 잘못 이해한 건가 싶어서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이렇게 하면 팬들이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음, 아무래도 낯설어 할 수 있겠죠? 그동안 덕질 해 온 것과 많은 게 바뀌는 거니까. 특히 세계관이라는 게 꽤 중요하거든요. 여기에서 자기들만 아는 세계라는 동질감도 무시할 수 없고요.”
“역시.”
진세정이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
아이돌 세계관 속 최준호와 현실 속 최준호는 다르다.
그 괴리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모습을 두고 가상의 세계에서 덕질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오히려 좋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거지?
나를 본 진세정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현실 속 초인님이라, 이것도 귀하거든요.”
“귀하다고요?”
“네, 초인님은 여태까지 이 부분에 미온적이셨잖아요? 이렇게 직접 나서주신 것만으로도 팬들이 환장할 요소인 거예요!”
“…….”
어질어질하군.
진세정과 내 팬이라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적일지도 모르겠다.
[와! 나 네가 겁 먹은 얼굴 처음 봐.]겁 먹은 건 아니지만 순간 극도의 현기증을 느낀 건 사실이었다.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회로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다. 얘기하다가 이렇게 말리는 느낌이 드는 건 진세정밖에 없었다.
“다만 이건 양해해주셔야 될 거예요.”
“어떤 겁니까?”
“초인님의 행보를 100%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으니까요. 적당한 각색은 필요해보여요.”
“알겠습니다.”
이것까지는 내가 납득해야겠지.
하지만 상상과 현실과 괴리 속에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
“이것도 오히려 좋단 말이지. 기존 세계관에서 열심히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세상에 환멸을 느껴서 흑화하는 설정으로 가면 초인님이 지닌 특유의 섹시함과 퇴폐미를 부각시킬 수 있겠어. 이것만이 아니라 연령가가 낮아서 넣지 못했던 것들을 대거 넣는 거야. 미성년자 애들은 찾아보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음지에서 다 찾아낼 테니… 오히려 더 좋잖아? 히히히히!”
“…….”
[이게 진짜 올바른 선택 맞아?]그러게.
스위치를 잘못 누른 느낌인데.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
* *
아무래도 언론사주를 떼거지로 쓸어버려놓고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아주 거하게 사고를 친 범인이 왔구만, 허허.”
대통령도 사고를 친 게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긴, 대통령의 정보력이 신성그룹에 뒤처질 리가 없겠지. 각성자들이 등장한 세계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 마스터이기도 했다.
당연히 정보력도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뛰어날 것이다.
난 늘 대통령 옆에 동석했던 자리가 허전한 걸 확인했다.
“천 실장님이 없으니 허전하네요.”
“제자리를 찾아간 거지. 워낙 욕심이 없어서 오랫동안 날 많이 도와줬어. 이제 큰물에서 놀아야지.”
“토론회는 저도 봤습니다.”
말 그대로 천명국을 위한 판이었다.
“솔직히 나도 감탄했지. 대처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바로 역공까지 해버렸어. 그로 인해 상대가 난감한 모습을 보였지. 아마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천 실장의 능력이 더더욱 돋보였겠지.”
시뮬레이션이라는 기프트가 갖는 위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하긴, 철저하게 계획을 수립하는 헌터에게 시뮬레이션은 별도의 준비 없이 Try&Again을 반복할 수 있어서 효율이 좋다고 평가받았다.
나도 몇 번 상대해봤지만 그때마다 머리를 부숴버려서,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전투가 아닐 때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래, 오늘 부른 건 자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네.”
“말씀하십시오.”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일어난 일이고.”
난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대통령도 피식 웃었다.
“오래 된 기사들을 건수로 잡고 나섰다는 건 뒤늦게 알았거나 시기를 가늠한 거겠지?”
그 뒤에 이어진 말의 내용은 내가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였다.
구체적인 워딩인 ‘최준호 공화국’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행동으로 옮긴 어떤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나보다.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제게 말하지 않아서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제 생각은 예전과 동일합니다. 걸리면 가는 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을 것입니다.”
“간단하면서 가장 무서운 말이지.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기준이야. 걸리면 간다는 게 자네와 주변의 위협에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죽을 짓을 저질러서 그런 건지.”
“이번 일과 양지에 나온 빌런 소탕 때문입니까?”
“그렇지. 자네의 명확한 스탠스를 알아야 자네를 대하는 사람이 주의할 수 있기도 하고.”
만약 이 추세대로 흘러가면 내 손을 빌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상대의 비리를 파헤치고 내게 알리려는 시도가 많아질 거라고 했다.
이용당하기는 하지만 죽일 놈을 죽이는 거라서 딱히 거부감은 없는데 말이지.
다만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보다.
“자네 역할이 중요해지는 만큼 기준은 중요하네. 그게 때로는 귀찮고 무시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 하지만 걸릴 놈들이 다 간다는 걸로 하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니겠나? 기준 없이 손을 쓰는 건 모두의 불안감만 키우게 될 거야. 그건 자네에게 귀찮은 일이 될 테고. 그건 막자는 거지.”
대통령은 내가 제2의, 제3의 언론사주 대량학살을 벌일까 우려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내세운 ‘걸리면 간다.’는 간단명료한 원칙이 명확한 기준이 잡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 듯했고.
적당한 시점에서 안정을 시켜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굳이 논리를 개발해가면서 그럴 필요가 있나?
“죄송하지만 방금 말씀은 납득하기 힘드네요.”
“그런가…….”
“대신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한 듯하지만 내게도 기준은 존재한다.
“경쟁자 제거를 위해 제보했다면 제보자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 구린 녀석이면 그 녀석부터 처리하겠습니다.”
날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덤벼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남의 손을 빌려서 상대를 제거할 생각만 하고 자신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멍청한 거지.
그제야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허허, 이래나 저래나 떼죽음이 한 번 발생하겠군. 그래도 제보한 쪽이 쫄려서 자제할 테니 균형이 맞춰지겠군.”
“무작정 죽이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 그럴 테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게 내 개인적인 마음이고.”
“진짜라니까요.”
“그래, 진심이길 바라고.”
아무래도 믿는 기색은 아니지만 굳이 설득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난 조금만 더 버티면 되고 나머지는 천 실장이 감당하면 될 문제니까. 얼마 남지 않았지.”
“…….”
[아주 사방에서 떠넘기려고 난리들이네.]지켜보던 용용이가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이다. 누가 보면 내가 폭탄인 줄 알겠어.
[네가 고작 폭탄이라고? 양심 없네.]*
* *
청와대를 나온 나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정다현과 만남이었다.
마물 사냥을 위해 장기 출장을 떠난 정다현은 그 사이 한 단계 더 발전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닌 차분함이 잘 벼려진 기세와 맞물리면서 강자로서 잘 정제된 것처럼 보였다.
얼굴도 더 예뻐진 거 같고.
강해지면 원래 얼굴도 더 피는 건가? 험한 곳에서 사냥을 거듭했을 텐데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다현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봬요, 오빠.”
“잘 지냈어?”
“네, 정확히는 치열하게 보냈어요.”
“그래 보여.”
“역시 오빠 눈에는 바로 보이는군요.”
그 말을 하면서 오히려 안심한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오히려 내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해봐.”
“특별한 건 없었어요.”
말은 그러면서도 정다현은 영동 지역에 머무르면서 사냥한 것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마물 사냥에 나서면서 여러 변수에 의해 숱하게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용케 살아남았다고 한다.
실제로 낮은 유해단계로 평가되는 마물들도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은 치명적인 능력을 보유했다면서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다현다운 말이고 그러니 이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함흥 대전투라 불린 것으로, 내가 미국으로 갔을 때 유해 8단계 마물이 나타났던 전투란다.
‘혜윰’이라 명명된 이 마물은 꽤 오래 전에 등장했던 녀석으로 잔머리를 잘 굴리던 녀석이라고 한다. 본래 고성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종적을 감추고 함흥에 나타나 도시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다현이 이끄는 결사대가 필사적으로 막아서면서 이찬택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당시 혈전에서 정다현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대단한데?”
“결국 마물은 못 잡았어요.”
“그래도 네가 아니었으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야.”
“그건 맞아요. 그래도 분해요. 제가 좀 더 강했으면 시간만 끄는 게 아니라 마물을 사냥해서 더 큰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딱 정다현스러운 말이다.
지금도 동 나이대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음에도 힘에 목이 마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그 말만으로 힘이 나요.”
단순히 말만으로 생색내서는 안 되지. 그러다 문득 내가 언론 사주들을 쓸어버린 걸 정다현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이번에 일어난 소란에 다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데 넌 궁금하지 않아?”
“네, 어차피 죽을 짓을 한 사람들이겠죠.”
간단명료하면서 강렬한 대답이었다. 실제로 틀린 말들도 아니고.
예전의 정다현이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태도였다.
꽉 닫혀서 절대 타협이 불가능하던 게 정다현이었는데.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다.
[너 때문에 이상해진 게 아니고?]이게 이상하다니. 얼마나 실용적으로 변했냐. 딱 보기 좋은데.
[내가 보기에 한 사람 배려놓은 거 같은데.]그건 너만의 착각이란다, 용용아.
“죽을 짓을 한 사람들이 많긴 하더라.”
“네, 가끔은 혼란스러울 정도로요.”
하지만 모두를 죽여야 한다는 건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도 뒷감당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
더 강해지면 알게 될 거라니 순순히 납득한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왜?”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
* *
정다현과 내가 온 곳은 마물 출몰 빈도가 잦은 강원도였다. 이곳까지 온 이유는 정다현이 깨달음을 얻은 게 있는데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다.
훈련실에서 보여 달라고 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였다.
“실전이 아니면 불가능해요.”
난 멍멍이를 동원해서 실전 같은 느낌을 내볼까 싶다가도 정다현이 이렇게 말한 적은 처음이어서 순순히 따라갔다.
뭘 보여줄까.
내가 기대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서 흥미가 진진했다.
“제 걸로 완성하고 보여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정다현이 내게 보여줄 것은 마물을 상대하는 공격 방법이었다.
얼마 전 깨달음을 얻고 완성했다고 하는데 꽤 결연한 걸로 보아 어느 정도일지 기대가 되었다.
내가 유인해온 마물의 수준은 대략 유해 7단계.
아직 정다현이 상대하기 벅찬 수준이다.
아니, 그동안 꾸준히 단련을 했으니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지도.
크어어어어!
정다현을 발견한 마물이 발광하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왜 가만히 있지?]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나와 용용이는 마물의 접근에도 가만히 있는 정다현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와 행동이 달랐던 것이다.
그때였다.
스가아아악!
정다현의 검에 포스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공간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쓰러지는 마물.
방금 전 광경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아!”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는 정다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게 준비한 건데 어때요?”
[꽤 용을 쓴 거 같은데?]“…….”
용용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그 광경을 다소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전 정다현이 보인 포스 운용, 응축 능력은 그녀의 수준을 초월한 것이었다.
현재 정다현의 레벨은 7.
하지만 지금 공격은.
“초인급인데?”
지금 수준에서 불가능한 건데 어떻게 한 거지?
“한 번 더 보여줄 수 있어?”
“네? 저 지금 지쳐서…….”
“그건 괜찮아.”
난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체력 회복제와 포스 회복제를 꺼내들었다.
양도 넉넉하게 챙겨 와서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했다.
“…….”
정다현은 다소 질린 표정으로 내가 챙겨준 것을 먹고는 다시 한 번 공격을 펼쳤다.
확실했다. 정다현은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힘을 폭발시킬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비슷한 용어로는 1RM이라고 해야겠지.
이거, 왠지 고속비행을 견뎌낼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