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하아, 하아!”
몇 차례 1RM 공격 시범을 더 보인 정다현은 완전히 축 늘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앞에는 양단된 마물 세 마리가 놓여 있었다.
내 앞에는 방금 전 데려온 유해 8단계 마물이 놓여 있었고.
“…….”
나는 지친 정다현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정다현에게 여러 차례 시범을 보이게 했지만 사실 첫 공격을 봤을 때 대충 어떤 상태인지 감을 잡은 상태였다.
여러 번 시켜본 건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의식적으로 가능한 건지 보기 위함이었고.
두 번까지는 우연일 수 있지만 세 번이면 실력이 맞고 네 번이면 확실한 거겠지.
[저 인간이 네 생각을 들으면 화날 거 같은데.]네가 고자질 할 수 없으니 상관없다.
[고자질 마렵게 하네.]그래봤자 전달할 수 있는 건 없지.
아무튼 정다현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벌써 이 수준에 도달할지 몰랐는데.
혹시나 싶어서 멀리 있는 유해 8단계 마물을 머리채 잡고 데려왔었지만 그건 사냥하지 못했다. 일격에 모든 걸 쏟아 붓기에 연속성은 없던 것.
정다현의 공격이 상처를 입혔지만 유해 7단계처럼 두 동강을 내진 못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친 나는 정다현에게 조언하기 시작했다.
“일단 네가 펼친 공격은 초인급에 속해.”
“그 말은……!”
“육체가 정신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초인이 된 게 아냐.”
“아, 아닌가요?”
“어, 아니야.”
이게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서로 일치해야 할 발전이 어긋난 상태였기에. 이걸 바로잡지 못하면 지속적인 괴리감에 큰 문제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빨리 고층을 쌓아올려도 기초공사가 탄탄하지 못하면 금방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억지로 쥐어짜내지 마. 지금 그 공격은 네 상태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니까.”
“…….”
정다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육체 단련에 힘 써 그게 준비가 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초인의 경지에 올라설 테니까.”
“그거면 될까요?”
“각성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포스나 기프트지만 그 기반이 되는 건 육체야.”
“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좀 쉬어.”
“네?”
정다현의 근본적인 문제는 쉬지 않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거였다. 육체의 단련을 위해 훈련만큼 중요한 게 휴식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젊음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러다 한 번 꺾이게 되면 얼마나 심각한데, 그걸 모르고 있다.
역시 젊음이 좋다.
[너도 젊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내 나이가 몇인데 젊은 걸 운운하냐.
[…난 너희가 상상하는 이상의 세월을 살아왔거든? 내 앞에서 다 새파란 녀석들이야.]그래, 너 나이 많아서 좋겠다.
아무튼 괜히 젊은 시절 관리에 따라 초인의 전성기 실력이 유지되는 게 아니다.
“쉬라고. 나머지는 차차 따라올 거니까. 사냥은 이걸로 끝.”
“…네.”
정다현은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지만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가끔은 이렇게 무작정 따를 때가 필요하긴 하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니까.
정작 나는 시행착오란 착오는 다 겪었지만.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미국에서 보고 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다른 국가에서 연락이 와?”
정다현은 날 힐끔 보더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곳들이 많으니까요. 제 힘이 필요하다고 어필을 해요. 여러 곳에서 제안이 오고 있긴 해요.”
“미국은?”
“…제일 많이 와요.”
“네 부모님이 거기 계시다고 하던데.”
“요즘 부쩍 많이 연락이 오긴 해요. 제 실력이 나아졌다는 소식 때문인지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오면 본인들 자리가 더 공고해질 수 있다고.”
여기에서나 별 말이 없지 정다현은 해외에서 유력한 초인 후보로 꼽히고 있다.
어느 국가나 끌릴 수밖에 없기는 하다.
부모가 있는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정다현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본인 전리품처럼 생각하고 있는 거죠.”
난 쓰게 웃는 정다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정보망을 돌리다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출세 지향적인 부모, 전리품처럼 다뤄지던 딸. 그래도 정다현은 그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 자기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구김살 없이 자신만의 정의를 집행해나갔다.
저번 생에서는 날 마주하면서 꺾였고, 이번 생에서는 날개를 달게 되었지만.
내가 키웠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굴려서 만든 걸 뺏길 수 없지.
“한 번쯤 가서 마무리 짓는 게 좋아.”
“네? 하지만 가면 쉽게 돌아오기 힘들 텐데요.”
“내가 같이 가줄게.”
“오빠가요? 그, 그거야 물론 감사하지만 너무 신세지는 거 같은데요.”
“나도 미국 갈 일 있어서 그래.”
허버트와 팬텀에게 받기로 한 걸 중간점검 할 명분이 있으니까. 게다가 날 볼 때마다 아낌없이 퍼주는 허버트와 만남은 기대되는 면이 있었다.
이번엔 뭘 또 주려나.
내 수락에 정다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일정 잡아볼게요. 감사해요!”
*
* *
아닌 척 했지만 정다현이 보여준 1RM식 공격은 제법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저 방식을 내가 모르고 있던 게 아니다. 이미 질리도록 알고 있던 걸 다시 한 번 재확인 한 셈이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모든 힘을 끌어내기 위해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다현의 공격은 현재 자신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수준이었고, 그걸 아직 준비되지 않은 육체로 발현하는데 성공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나는 그걸 골고루 흘려보내는 부하에 있다고 생각했다. 견고함만 내세운 것이 아닌 부드러움이 가미된 정다현의 묘리는 전신 곳곳에 부하를 흘려내면서 초월적인 위력을 발현시키게 했다.
저 방식을 고속비행에 접목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우선…….”
설명보다 행동이 먼저라고, 나는 고속비행을 시전해보였다. 간단한 시범으로 도달한 곳은 한라산 백록담이었다.
굉장히 먼 거리였지만 태평양을 가로지른 것에 비교하면 가까운 거리였다.
공간이 삭제되는 현상과 함께 백록담에 도착했을 때, 고속비행 여파를 이겨내지 못한 전신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뼈까지 드러난 곳이 근육부터 차근차근 수복되면서 피부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초재생도 워낙 강력한 기프트다보니 사용할수록 효율이 좋아지고 있었다.
“일단 이 정도지.”
[부하가 골고루 분산됐네?]여기까지는 내가 깨달음을 얻은 것과 정다현을 보고 다시 한 번 개량한 방식이다.
이걸로 전국 모든 곳을 오갈 수 있게 되었지만 조금 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바로 기프트 자아다.
내가 의식적으로 부하를 분산하고 있지만 이 역할을 자아들이 분담해서 맡게 된다면?
나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 힘을 합치는 게 더 효과가 좋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써먹는 거지.”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피해를 덜 입은 상태로 고속비행을 시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어어어억?!
난 눈치 없이 달려드는 마물의 목을 날려버린 뒤 백록담 주변을 산책했다. 고속비행의 보완 작업을 병행하면서 이제 필요가 없어진 전이를 삭제했다.
그러자 바로 용용이가 반응했다.
[와! 필요 없어졌다고 바로 없애기냐?]“자리만 차지하는 건 치워야지.”
용용이가 이렇게 날뛰는 이유는 전이의 약점을 극복할 때 도움을 줘서다.
과거의 인연이니 뭐니 하면서 질질 끌면 전력만 저하될 뿐이다.
[진짜 가차없네.]용용이는 그게 불만인 듯했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다.
다시 서울로 복귀한 나는 곧장 심상 세계 안으로 들어간 뒤 기프트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모두 집합.”
혈종이 어떻게 굴렸는지 사방에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빛의 속도로 모여들었다. 그 과정에서 제련이는 혈종까지 데려오려고 해서 나한테 쿠사리를 듣고는 조용해졌다.
막내가 눈치까지 없으면 곤란한데.
뭐, 만득이와 광심이가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으니 알아서 교육해오겠지 싶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고속비행의 부하를 나눠서 짊어지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최선을 다해 해소시켜라. 알았냐?”
녀석들은 갑자기 늘어난 잔업에도 불만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다. 말을 잘 듣는 모습을 보이니 꽤 만족스럽군.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면 나도 야박하게 굴 필요가 없다.
녀석들도 잔소리를 더 들을 이유가 없고.
이런 게 윈윈이란 거겠지.
평소에 이런 맛이 없었는데, 혈종이 다른 건 별로여도 밑에 녀석들을 다루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나보다.
말을 안 들으면 녀석에게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지도.
우웅! 우웅! 우웅!
왜인지 내 결정에 기프트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가?
내가 의아함을 드러냈지만 녀석들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반대의견만 피력할 뿐이었다.
혈종만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그게 뭘까.
우웅! 우웅! 우웅!
이젠 아예 악을 쓰는 수준이다.
분명 뭔가 있긴 한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을 때 혈종을 불러다가 써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개김성이 자라날 때 한 번 투입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되겠군.
“자,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신입 맞이해야지?”
내 말에 녀석들의 항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음흉한 웃음이었다.
*
* *
우웅!
고속비행은 모든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주변의 모든 게 바뀌었다. 위대한 신수의 품이 아닌 웬 인간의 심상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본래 고속비행은 신수인 천둥새의 권능으로, 의식이 존재할 때부터 고속비행을 지탱한 것은 신수의 권능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천둥새에게는 그만이 아닌 다른 기프트들도 존재했지만 각자가 신수의 권능이라는 사실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견제와 협력을 하면서 대치 상황을 유지해나갔다.
그것이 신수의 권능으로서 살아가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고, 주인의 인정을 받는 신수로서 올바른 태도라고 보았다.
하지만 천둥새에게만큼은 자신이 제1의 권능이자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속비행을 둘러싼 세상이 바뀌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신수의 권능 대신 낯선 권능들이 자리했다.
고속비행은 주인을 살해한 녀석과 상종할 수 없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몰라도 자신은 이곳에 옮겨와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아마 자신의 힘이 탐이 나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원수에게 힘을 빌려줄 수 없다는 생각은 굳건했기에 고속비행은 곧장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변과 모든 접촉을 차단했다.
자신은 신수의 권능이었다. 천둥새의 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곳이 살아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 취급을 하면서 권능들끼리 쑥덕거리며 이것저것 처리해나갔다.
고속비행에게 그것은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어째서 권능들이 서로 협력을 하는 거지? 천둥새의 품에 있을 때 느껴본 적 없는 권능들 간의 끈끈함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주인은 자신에게 언제나 냉혹했고, 권능들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 그 속에서 주인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고속비행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성과를 내고 주인에게 인정을 받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으나, 그 뒤로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파앗!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것이었다.
권능끼리 서로 시기 질투를 하지 않고 화목함을 유지한다. 그 속에서 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짓밟는 생존경쟁이 아닌 주인을 더 잘되기 위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권능들이 사는 냄새.
저도 모르게 끌리는 걸 느꼈던 고속비행은 이내 충동을 억눌렀다.
주인의 품을 벗어났기에 약해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하지만 결심과 달리 모든 감각은 다른 권능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자신도 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끼고 싶다.
현실과 이상 사이 충동 속에서 부딪치던 고속비행은 자기들끼리 복작거리던 권능들이 자신에게 구애를 보내자 멈칫했다.
정말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주인에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은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아니다, 자신을 꼬드기기 위한 입에 발린 말이다.
고속비행은 부인하면서도 흔들리는 걸 느꼈다.
주인에 의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던 자신은 이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곳은 주인을 살해한 녀석들이 있는 곳인 걸?
이에 권능들은 주인들의 다툼을 자신에게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주인들이 싸웠을 뿐, 자신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아닌가.
가뜩이나 흔들리던 고속비행은 그 말이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우웅!
그때 다시 한 번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행복하자고?
그토록 바라던 말을 듣는 순간, 고속비행은 뭐에 홀린 것처럼 더 망설이지 않았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전 주인과 이곳 주인이었을 뿐이니까.
자신은 그저 스스로 행복을 찾아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껍질을 깨고 나온 고속비행의 눈에 들어온 것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권능들과…….
주인을 살해한 인간이었다.
그가 왜 여기에?
“정신없이 구르다 보면 행복이 뭔지 알게 될 거다.”
그리고는 대기하고 있던 권능들에게 말했다.
“데려가서 정신 재무장 시키고 와.”
꼼짝없이 붙들린 고속비행은 질질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