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고속비행을 낚는데 성공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기프트 낚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득이들한테 던져놓았으니 알아서 정신개조를 시키겠지.
자기만의 공간에 틀어박혀서도 계속 이쪽을 힐끔거리는 걸 보고는 관심종자인 걸 눈치 챘다.
관심 고픈 녀석을 낚는 건 쉬운 일이지.
그래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녀석을 끌어내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던 것이다.
“계획대로 성공했고.”
애가 순진하기는 해도 기프트 질로 볼 때 모인 녀석들 중에 가장 좋아보였다. 게다가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는 걸로 보였으니 나중에 슬쩍 등장해서 좋은 사람인 척 해주면 홀라당 넘어올 것이다.
[얘기는 잘 끝났어?]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오니 용용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 고속비행을 낚는데 성공했으니 녀석하고 얘기를 마쳐야겠지.
[가, 갑자기 왜 그래? 긴장되게.]빤히 바라보니 찔렸는지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난 녀석의 조그만 눈을 빤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우리 아직 할 얘기가 남았지?”
[무슨 얘기? 난 모르겠는데.]“모른다? 내가 알려줘야 되나?”
[알려줘. 난 진짜 모르겠다니까.]“천둥새를 잡았을 때 너와 현아가 등장한 거. 그리고 천둥새가 세상에 개입할 때 난리 친 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를 키워나가던 녀석이 움찔하더니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쫄기는.
“널 탓할 생각은 없고. 내 질문 몇 가지에 대답만 해주면 된다.”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 뭔데?]“우선 천둥새가 세상에 개입한 걸 왜 부정적으로 본 거지?”
[꼭 들어야 해?]“신수들의 약점이 될 만 한 건 알아.”
[그게 맞아.]용용이 수긍에서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다만 용용이 입에서 나오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결국 긴 한숨과 함께 용용이가 순순히 시인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신수의 존재는 세상에 노출될수록 힘이 약해져.]“약해진다?”
[신수는 신비의 존재니까. 신비감이 옅어진다는 건 힘이 약해지는 걸 의미해.]“그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응, 알려질수록.]너희도 이미 널리 알려진 존재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잖아. 실체가 존재하는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돼.]그래서 청룡이라 안하고 용이라 했던 건가. 하긴, 용이라는 것만 밝히면 얘가 천룡인지 청룡인지 화룡인지 지룡인지, 모르겠지.
그 말은 천둥새도 자신의 존재를 알린 덕분에 힘이 약해졌다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니야. 몇 사람이 아는 정도로는 달라지는 게 없어. 아마 걔도 인간 지배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알릴 수 없다고 계산했을 걸? 같은 신수지만 너 못지않게 교활한 녀석이야.]거기에서 깨알같이 내 탓을 하는군.
입이 터진 용용이는 천둥새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신수임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천둥새는 최강국가인 미국에 자리 잡아 확실하게 이득을 취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힘을 탐하면서 다른 신수들이 경계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신수 이름이 알려지면 약해진다고? 재미있는 정보였다.
“내가 네 이름을 사방팔방 알리고 다니면 약해지냐?”
[설마 그 짓을 하려고? 너무 하잖아!]“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웬만해서는 약해지지 않아. 하지만 찜찜하겠지?]그런 거였군. 아마 내가 용용이의 존재를 알리고 다녀도 유의미한 결과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거고.
“그 신이라는 녀석은 그걸 방지하기 위해 가명을 내세운 거로군.”
[응.]“그 녀석이 천둥새보다 더 교활한 거 같은데.”
[방법의 차이야. 천둥새는 직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면 자칭 신은 간접적인 방법이라 한계가 존재하거든.]용용이 말대로였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힘들 만큼 교묘한 수였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뭐지?”
[현아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비밀로 할 테니 말해봐.”
[진짜 말하지 마?]“그래.”
물론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은 바뀔 것이다.
[그 신이란 녀석은 기존 자신의 것을 제외하고 새로운 신비를 만들려고 하는 걸 수도 있어.]존재한 적도 없는 ‘신’이라는 걸 내세워서.
방금 전에 알려질수록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가능하다고?”
[가설일 뿐이지. 안 그러면 신을 너무 내세운 게 이해가 안 돼.]“널리 알려서 신비를 만든다, 괜찮은데.”
기존의 방식과 정반대였지만.
[응, 나도 현아도 의심하고 있어. 너도 봤잖아? 신에게 그릇은 이미 있어.]난 용용이가 말하는 그릇의 정체를 눈치 챘다.
“드래곤.”
[맞아.]“재미있군. 신수들도 머리를 굴리고 있잖아. 전부 너처럼 세상 편하게 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편하게 산다고? 말도 안 돼! 너라는 폭탄 때문에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있거든?]“그래서 불만?”
[와, 진짜 억울하네.]용용이가 악을 썼지만 내 귀에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천둥새나 자칭 신이나 왜 그랬는지 알게 된 걸로 충분히 유용했다.
신수들은 유명세가 쥐약이었군.
자칭 신은 그걸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재밌네.”
*
* *
새로운 신입 고속비행은 유능했다. 처음에는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다가도 주어진 미션은 차근차근 해결하는 유능함을 보였다.
실력이야 원래 확실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녀석은 만득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만족스러운 모습마저 보이고 있었다.
만득이들이 의아함을 느낄 정도로. 이걸 보면 괴로워하길 바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고속비행은 그동안 다른 자아들과 어울리는 걸 바랐었나 싶었다. 유능한데 다루기도 쉬우니 잘 끌어들였군.
난 고속비행의 애칭으로 고속이나 비행을 생각했지만 두 단어 앞글자를 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서 별명을 지어주었다.
“앞으로 네 이름은 고비다.”
우웅!
주 168시간 죽어라 구르고 있었지만 고비는 그것도 좋다면서 힘차게 대답했다.
눈치 살살 보는 만득이들에게 없는 신입의 열기가 느껴졌다. 역시 신입은 빠릿한 맛이지.
“원하는 게 있냐?”
내 물음에 고비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도 만족하고 있다고.
여태까지 없는 유형이긴 하군.
어쩌면 덜 구른 것일 수도 있다.
만득이들한테 더 굴리라고 얘기해놔야겠다.
고비를 성공적인 대학원생 루트에 안착시킨 뒤 나는 천명국을 만나러 갔다.
각성자안보실장 사퇴 이후 따로 사무실을 차린 내부에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천명국의 대세론에 힘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겠지.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짧은 시간 사이 정치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천명국이 날 맞이했다.
“제가 직접 찾아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초인님.”
“가까운 거리인데요.”
“앉으시죠.”
난 천명국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 이 자리는 그가 청해서 이뤄졌다. 여기 오기 전 나는 천명국이 왜 날 보고 싶다고 한 걸까 궁금했다.
아니, 이유야 알고 있다.
정확히는 언론사주들 학살 사건 때문이겠지.
다만 내가 보고 싶은 건 천명국의 스탠스였다.
정치에 입문한 그의 생각은 예전과 동일할까 아니면 정치인답게 바뀌었을까. 어떤 말을 할지 꽤 궁금했다.
천명국도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언론사주 건은 많이 아찔했습니다.”
“토론회 봤습니다.”
“아, 그걸 보셨습니까?”
“제 취미가 뉴스 보는 건데요. 거기에서 나오던데요. 후보님 재치에 감탄했고요.”
내 말에 천명국이 손바닥으로 팔뚝을 비볐다.
“아, 후보 말고 실장이라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초인님에게 후보 소리를 들으니 이거 적응이 안 돼서.”
“그러죠.”
사실 나도 실장이 좀 더 입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천명국을 바라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언론사주들이 죽은 건은 흐지부지 묻힐 거 같습니다.”
“그런가요.”
“예. 이미 죽었는데 전수조사로 그동안 악행이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천명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가 전수조사 카드를 내세우자 다른 후보들이 전부 난색을 표했던 것. 야당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여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받아먹었다는 의미가 되겠지.
조사가 없다면 나를 엮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천명국이 무마시킨 것이다.
아마 이걸 다 계산하고 얘기한 거겠지. 그러면서도 조사하자는 포지션을 내세울 수 있으니 정치적 묘수라 할 수 있겠다.
“실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제 생각, 말입니까.”
천명국이 멈칫했다. 난 시선을 고정하고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다렸다.
정치인의 길로 접어든 뒤, 그는 참 많이 바뀌어 있었다. 후줄근하던 차림새에서 정치인의 세련됨과 믿음직한 모습을 강조할 수 있는 스타일링을 장착했다.
정치인은 덧셈의 정치를 해야만 한다. 불리한 사안에서는 말을 아끼고, 적아가 나뉘는 상황에서는 확실한 아군을 만들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거침없이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한다.
천명국이 대통령과 나로 인해 대선후보로 발돋움을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언제든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를 테면 최준호 리스크겠지.
과연 천명국의 생각은 어떨까.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천명국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예. 솔직히 말해 속이 시원합니다.”
“의외네요.”
“사실이니까요. 예전의 저라면 정의를 내세웠을 수도 있겠지만 청와대에 들어오고 난 뒤 정의만으로 잘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양심이 납득하는 건 타협하고 받아들여야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초인님과 관련된 부분은 더더욱.”
그것이 천명국의 각오였다.
나로서는 어설픈 각오보다 지금이 더 낫다.
“게다가 초인님 손에 죽은 언론사주들은 이 나라에 1도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초인님이 쓸어버리지 않았다면 선거 후 제가 직접 손을 썼을 것입니다.”
천명국은 그동안 언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시달렸다며 질색을 표했다.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캠프를 꾸린 그는 초소형 캠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작은 규모였는데, 벌써부터 온갖 청탁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자리를 노리는 이들 중 언론들이 가장 집요했다. 좋은 기사를 써주겠다는 걸 미끼로 대변인으로, 정책 자문으로 사람을 밀어 넣으려는 시도를 끝없이 했다.
좋은 말로 거절했지만 나날이 압박 수위가 강해지면서 선을 넘는 것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정도였다고 하니 단단히 얕보인 셈이었다.
만약 천명국이 3선 중진이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아니, 애초에 말이 나오지 않게 미리 사람을 앉혔을 수도 있겠다.
“작은 권력 하나마저도 뜯어먹기 위해 눈이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정치의 본질이 어떤 건지 알겠더군요. 한편으로는 제가 만만해보였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을 하는 천명국의 기세는 꽤 사나웠다. 이게 정치인 천명국의 모습이겠지. 기대가 됐다.
“많이 바뀌었네요.”
“정치하기 전만 해도 바뀌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면서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저도 괴물이 되어야 하더군요.”
천명국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전 그게 더 마음에 듭니다.”
“예?”
“권력의 속성은 그런 겁니다. 저만 해도 그렇고요. 천 실장님이 예전과 같았다면 지금쯤 누군가의 허수아비가 되었을 겁니다.”
나야 그 의도를 꿰뚫어 보고 모조리 머리를 부숴버렸지만, 천명국은 그럴 수 없는 게 다르다.
“다행히 초인님이 도움을 주셔서 훌륭한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실장님이라면 가능하실 겁니다. 남은 일정 잘 소화하시고 좋은 결과가 있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명국은 어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자신의 자리에 맞게 진화를 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쁜 것만 배워서 입바른 소리만 했으면 내 고민이 깊어졌을 텐데 말이다.
현재 지지율이나 추세를 볼 때 경선 통과는 물론이고 본선에서도 무난히 이기겠지.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앞으로 더 자주 마주하게 될 텐데, 정보를 미리 전해주는 게 낫겠지?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요.”
“뭡니까?”
“제가 이번에 기프트를 얻었습니다.”
“예에…….”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나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난 기프트의 정보에 대해 알려줬다.
“이걸로 전국 어디든 1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미친!”
“예?”
소스라치게 놀랐던 천명국은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아, 아니.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 축하드립니다. 하하, 정말 대단한 기프트입니다. 근데 그 정도로 대단하면 반작용이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얼굴은 왜 하얗게 질려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기프트에 대한 분석이 날카롭군.
난 또 다른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부작용은 거의 다 극복한 상태입니다.”
“허, 허허.”
“그러니 더 자유롭게 더 많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죠.”
“…….”
날 보던 천명국이 급기야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