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내가 자칭 신하고 만나는 것에도 신경전이 있었다.
녀석은 나를 자신이 구축한 세계로 초대하길 원했고, 당연하게도 나는 녀석의 본거지에 순순히 발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결국 뜻을 관철한 건 나였다. 자칭 신과 심상 세계를 연결하여 중립지대에서 보기로 했다.
쫄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러는 건가.
처음 협상 과정과 별개로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협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의 심상 세계가 연결될 때였다.
[불청객은 치우도록 하지.]심신을 어지럽히는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때까지 조용히 내 옆에서 자리하고 있던 용용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파아아앗!
용용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자칭 신의 밀어내기에 속절없이 튕겨나갔다.
나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그러자 용용이가 나한테 매달렸다.
[도, 도와줘!]“내가 왜?”
[야! 너 이거 배신……!]“잘 가라.”
[악!]팟!
[…….]외마디 비명을 남긴 용용이가 그대로 튕겨나가고, 심상 세계에는 나와 자칭 신만 남았다.
녀석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찬란한 광휘에 휩싸여 있는데,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모습은 성스러우면서 기괴하고, 위압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해야 할까.
혈종이던 시절, 자신의 죄를 사하겠다며 성경을 갖고 다니던 녀석이 있었다.
처음에는 새 것이던 성경이 닳고 닳을 만큼 읽었다. 광증이 도져 나한테 덤벼서 목을 비틀어버리고 성경을 읽어본 적 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천사의 묘사가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것과도 다르지만 딱 봐도 신을 그럴 듯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 광휘 사이로 거대한 눈동자가 속내를 꿰뚫어보려는 것처럼 날 샅샅이 훑는 중이었다.
겉모습이 용용이 말이랑 다른데.
녀석은 내게 자칭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건 꾸며낸 모습이었나, 아니, 인간 모습이나 저 모습이나 모두 거짓이겠지.
지금까지 보고 들은 바로 생각할 때 자칭 신은 굉장히 신중하고 은밀하며 교활하다.
모르는 녀석들은 기세에 압도되어 신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고.
거대한 눈동자가 날 향했다.
[두려워 말라.]누가 누구를 두려워한다고.
[경외하라.]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미묘한 파장을 일으켜 날 간섭하려 들고 있었다. 신이라는 경외감과 이 파장에 휘말리면 그대로 굴복하게 되지만 나한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난 오히려 신을 믿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가 과거로 돌아올 이유가 없으니까.
신을 만나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후회를 바로잡게 해줘서 고맙다고. 제정신으로 되돌려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신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좋을 거 같은데? 자신이 베푸는 것보다 갈취하는 것들이 많은 주제에 고고한 척 하는 녀석들이 최후에 지를 비명이 궁금했다.
물론 날 돌려보내준 신이라면 한 번쯤 봐줄 의향은 있다.
다만, 눈앞의 녀석은 그 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헛소리 그만하자.”
[…….]“내 앞에서 신 행세 한다고 대우해줄 거라 생각했냐?”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인간.]이제야 신 행세를 벗어던졌군.
나도 놈을 처리하겠다거나 하는 이유로 본 게 아니다. 물론 천둥새처럼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충돌한 적이 없다.
내가 혈종처럼 미친놈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녀석을 죽이겠다고 날뛸 이유가 없지.
오늘 보자고 한 건 단순히 몇 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아무리 날 오래 따라다녔다고 해도 용용이 말을 전부 믿을 수 없거든.
“몇 개 궁금한 게 있어서.”
[…고약한 인간이군. 고작 질문을 위해 날 청했나.]“그럼 널 받들어 모시겠다고 청하겠냐?”
난 거대한 눈동자와 마주하면서 용용이가 말했던 신수의 신비에 대해 물어보았다.
[경외가 사라진다는 건 맞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말 좀 쉽게 못하냐?”
[…….]아무튼 용용이가 말한 게 사실이로군.
신수의 힘은 신비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꽁꽁 감추고 신의 존재를 내세운 걸 보면 녀석의 행동이 치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신비는 유지하고 다른 것으로 신비를 만들어낸다.
천둥새보다 이 녀석이 더 교활한 거 같은데.
“다른 신수와 알고 있나?”
[그걸 네게 말할 필요는 없다.]이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 없군. 자기만의 둥지를 파고 숨은 녀석 답게 쉽게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 이럴 때는 용용이가 그리울 정도다.
그런 녀석이 순순히 대화에 응하는 게 이상하긴 하다만.
난 몇 가지 사소한 걸 더 묻다가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신의 존재로 포장해서 새로운 신비를 만들려는 건 무슨 의도지?”
[질문은 그만 받지.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로군.]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꿍꿍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묻지.]녀석은 자기가 질문할 게 있어서 내 몇몇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나보다.
대답하지 않고 대화를 여기서 마쳐볼까?
아니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신수들이 묘하게 호구끼가 있다. 적당히 맞춰주면 내게 필요한 걸 얻어 낼 수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신을 자처하는 녀석이 순순히 대답한 것만 봐도 묘하게 호의적인 거 같은데.
그게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뭔데?”
[널 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신?”
이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래.
[내 손을 잡으라.]“…….”
그러니까, 지금 저 녀석은 나를 신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한 건가? 그러면 내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고?
내가 신이라.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아마 녀석의 착각은 다른 인간들이 환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도 환장해서 달려들 거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신이라는 존재는.
내가 목을 꺾어보고 싶은 도전의 대상이지, 내가 그 위치에 오르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녀석을 믿는 게 우스운 일이다.
“거절하지.”
[인간은 후회할 걸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지. 내 제안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그래도 싫다고.”
[…….]“얘기는 여기까지. 재밌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나 강한지 손을 한 번 섞어보고 싶었는데 녀석의 상태를 보고 불가능하겠다 싶었다. 심상 세계에 연결해서 마주해서 조건은 대등했지만 철저하게 본체는 감추고 있었다.
녀석이 어떤 신수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게다가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기도 했으니 굳이 이 자리에서 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죽을 짓을 한 것도 아니고.
파토를 선언하고 심상 세계 연결을 종료하자 빠르게 현실로 복귀했다.
[뭐야, 왜 나는 내보내? 그 녀석이지? 걔가 내보낸 거지?]용용이가 주위를 맴돌면서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잠시 후에 얘기를 나누자고 한 뒤 성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성녀는 놀라움이 역력한 기색이었다. 옷이 반쯤 흘러내렸는데 그걸 수습할 생각조차 못하는 중이다.
구정물이라고 말하던 아메키라노를 입에 부어주면 정신을 차랄까.
한 번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왜?”
“…진짜 당신의 부름에 응할 줄은 몰랐어요. 그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네요.”
“별 거 없어. 서로 궁금한 게 있으니 만남이 성사된 것뿐이야. 거기 신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거기에 응한 거고.”
그런 것치고 바로 응하지 않고 쫄았냐는 말에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복잡한 거 없이 쫄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의외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기는. 난 고개를 돌리는 성녀를 보다가 묘한 이질감을 감지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성녀의 상태는 신의 숙주와 같은 거겠지.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는 녀석다운 행동이지만 반대로 그 끈이 잘라지면 굉장히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끈을 자르면 본체가 튀어나올지도.
내 눈에는 자칭 신과 성녀의 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에.”
“네?”
“신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거나 더 이상 믿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날 찾아. 그때 내가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
성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아까 내가 에스프레소를 부었을 때보다 더 화난 기색이다. 진짜 화난 거로군.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니까. 신앙도 매일 24시간 주 168시간 같으란 법이 없지. 널 위한 옵션으로 생각해두란 이야기다. 오늘 갑자기 찾아온 것에 대한 선물로 생각하면 좋겠군.”
“그럴 일은 없다고 했어요.”
급기야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나도 더 이상 자극할 생각이 없었기에 한 걸음 물러나는 걸 선택했다.
“생각이 바뀌면 얘기하란 거야. 그리고 옷 좀 올리고.”
내 말을 들은 성녀는 자기 옷차림을 보고도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눈을 치뜨며 소리쳤다.
“이러면 뭐 다른 짓 할 생각이 있기는 하고요? 그런 거 없으면 지적 그만하고 사라져요.”
“…….”
“흑심 있으면 손이라도 대보던가!”
“…….”
[한 방 먹었네?]내 옆에서 용용이가 즐겁다는 듯 낄낄 웃었다.
*
* *
성녀와 헤어지고 난 뒤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려던 나는 계획을 바꿔 로마에 머물기로 했다.
내가 자각하지 못한 고속비행의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만만치 않은 피로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기프트 자아들이 보좌한다고 해도 하루 동안 서울에서 베를린, 베를린에서 로마로 향하는 일정은 고됐다.
그래서 주 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을 방문해서 신세를 졌다. 용용이한테도 내일 얘기하자고 했고.
[어쩔 수 없지.]그렇게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일어났을 때, 예상치 못한 초대를 받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방문해온 것이다.
그는 아메드 국왕의 친서를 내게 전달했다.
-바쁘지 않다면 리야드를 방문해줬으면 좋겠군, 친우여.
날 초대하는 용건은 비즈니스 논의라고 하는데 가는 길이니 못갈 것도 없지.
다음 행선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정할 무렵 용용이가 상대해주지 않는다며 옆에서 칭얼거렸다.
[그래서 나랑 얘기는 언제부터 할 건데?]우선은 칭얼거리는 용용이부터 상대해줘야겠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냐.”
[신이랑 만났다며? 무슨 얘기 나눴는지 궁금한 거지, 뭐.]자칭 신을 보다 용용이를 보니 투명하다 싶었다. 이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긴 하지.
만만해서 옆에서 계속 빨아먹을 수 있고.
이런 게 상부상조란 거겠지.
[말 안할 거야?]이 녀석 봐라?
매달리니까 더 말해주기 싫었다.
심술 좀 부려볼까.
“생각해보니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뭐어?]“내가 그 녀석과 이야기 한 걸 너한테 왜 얘기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야기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던가.
아니나 다를까 용용이는 난리가 났다.
[어, 그러니까… 그게 세계에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네가 돌발 행동하더라도 대응도 할 수 있으니까…….]“그게 뭐 어쩌라고?”
[아씨, 뭘 원하는 건데? 원하는 걸 말해봐.]“네 발톱.”
[뭐? 갑자기 그건 왜!]“신수의 발톱이라 그런지 유용하던데. 미리 확보해두려고.”
[와! 진짜 이러기야?]“정당한 거래를 하자는 거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 거절하던가.”
[…….]용용이는 꿈틀거리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건 나였고, 궁금한 건 용용이였다.
고민에 휩싸였던 용용이는 이내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줄게! 몇 개나 원하는데?]“5개 주면 내가 뭘 물어봤는지 알려주지.”
[…아씨, 발톱 뽑는 거 아픈데. 알았어. 5개면 되는 거지?]“그래.”
협상이 타결되었다.
내게 발톱을 뜯기게 되었지만 용용이 표정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의외네? 좀 더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내 쿨거래에 용용이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놀라기는.
이걸로 끝날 리가 없잖아.
“그럼 이제 자칭 신이 나한테 뭘 물어봤는지 알려주는 걸로 협상해볼까?”
[뭐, 뭐어?]“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