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1
31화
31화
“아!”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틀어졌다. 상대가 자국어에 대한 애착이 이토록 강할 줄 몰랐다.
가끔 헤드헌팅 대상 중 자국에 자부심이 큰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도 끌어들이기 위한 매뉴얼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보고된 자료에 최준호는 그런 생각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발생한 참사였다.
이대로 보내기 아쉬웠던 안나 크리스틴이 한국어로 소리쳤다.
“자, 잠칸만요!”
이 또한 의도했던 것.
어설픈 한국어를 더 귀엽게 보는 걸 알고 장착해놓은 비장의 무기였다.
미녀가 자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한다? 무조건 호감이 갈 수밖에 없는 포인트다. 그리고 자신은 그 미녀 중에서도 최고의 미녀다.
하지만 돌아온 건 명백한 무시였다. 심지어 돌아보지도 않았다.
완벽한 실패.
“······.”
멀어지는 최준호를 보며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딱 봐도 미인계였다.
뒤늦게 뒤에서 한국어가 들려왔지만 그 또한 미숙.
대화해봤자 해석하느라 피곤할 게 뻔해 못 들은 척했다.
레벨 8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 이상 사방에서 유혹이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이용할 수단에 불과할 뿐, 내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나는 정주호에게 다가갔다.
날 보는 얼굴에 반가움과 착잡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레벨 8이구나. 축하한다. 나보다 신분이 더 높아졌어. 존대할까, 요?”
싫은 기색이 대놓고 느껴졌다. 나 또한 정주호가 편하게 대해주는 게 좋았다.
날 무서워하지 않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가끔씩 머리를 쥐어뜯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동안 국장님이 잘 돌봐주셔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국장님은 영원한 국장님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근데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네가 원하는 게 있고 나도 네 편에서 얘기를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실제로 협상의 지난한 과정에 지친 각성자들이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기에는 제약이 걸려있고 다른 곳과 협상하려면 처음부터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그러나 난 다르다.
상대가 불리한 걸 알고 있는 한 결국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걸 얻기 위해 천년만년 기다릴 수 있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난 정부에게 자기 주제를 각인시켜주고 원하는 걸 얻어내면 된다.
“독자적 지위를 얻어도 국가수호국 소속으로 남으려고 합니다.”
“네가 있으면 큰 힘이 되지.”
근데 왜 이를 꽉 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감격해서 혀라도 깨물었나.
아무튼 우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파트너다. 그 과정에서 정주호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최선의 선택이다.
정주호는 다가오는 신성 길드 인물들과 정다현을 보고 말했다.
“내가 정부 사람들 만나면서 시간 끌고 있을 테니 인사하고 와. 길어져도 돼. 그럼 저쪽이 더 다급해할 테니까.”
“예.”
가까이 다가가자 미소 지은 이세희가 성큼 나섰다. 조금 전 안나 크리스틴을 봤더니 저 계산적인 미소도 사실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준호 씨, 축하드려요. 이제 누구나 아는 레벨 8이 되셨네요.”
“고마워. 도움을 많이 받았어.”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이번 기회에 신성 길드와 준호 씨가 긴밀한 관계인 걸 알렸으니 우리가 이득이죠.”
미래를 보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 이세희의 거래 방식은 내 마음에 들었다.
원하는 게 뚝딱 나오는 신성 길드의 연구소 역량도 좋고.
팔다리 부러뜨려도 멀쩡하게 만드는 포션도 있으니 다음에는 다른 걸 주문해봐야겠다.
“내 소개를 해도 되나? 신성의 백군서라고 하네. 측정 과정, 인상 깊게 봤어. 대단하더군.”
그때까지 조용히 날 보던 백군서가 나섰다. 신성 길드의 충신이며 견실히 쌓아온 실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저번 생에 나와 부딪친 적은 없지만, 신성그룹의 칼로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해왔다.
신중하고 계산이 빠르며 의리를 지키는 인물. 하지만 이면에는 이익에 따라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이미지마저 던져버릴 과감함까지 겸비했다.
그리고 이세희가 신성 길드를 차지할 때 반대편에 선 걸로 유명했다.
“레벨 8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신성 길드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지. 내 자리가 필요하다 해도 기꺼이 양보할 의향이 있어. 어떤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툭 던져 의향을 떠본다. 그리 좋아하지 않는 화법이지만 조마조마하게 보는 이세희를 보고 좋게 넘어갔다.
“제가 원하는 어떤 거라도 말입니까?”
“그리 말하니 무섭군. 내 목만 아니면 의향이 있네. 어떤가?”
“신성 길드는 좋은 곳입니다. 제 동생을 믿고 맡길 만큼.”
“다른 대형 길드도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반백년 넘게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린 신성그룹이야 말로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지. 동생도 만족할 테고 자네가 와도 만족스러울 거야.”
가식인가 진심인가.
이런 인물이 어째서 이세희와 대립했던 걸까.
속내를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 있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다른 속내가 있으면 조용히 제거하면 되겠지.
“오늘의 여기까지 하지. 한 번 생각해보게. 원한다면 회장님에게 부탁드려 세희와 소개팅 자리도 마련해보지.”
“당사자 앞에서 그러기에요, 삼촌?”
“이만한 신랑감이 또 어디 있나. 이럴 땐 못 이기는 척 이 삼촌의 주책에 어울려주는 게 좋아.”
“그런 거 아니라니깐 그러네요. 준호 씨, 다음에 봐요.”
“그래.”
이세희와 백군서가 돌아가고, 정다현만 혼자 남았다. 날 보는 눈에 홀가분함이 서려 있었다.
“축하해요. 측정 과정, 인상 깊게 봤어요.”
“어땠어?”
“새로웠어요. 그리고 준호 씨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도달했는지, 평소 보여주던 게 높은 경지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이 드러나던 걸 알게 됐어요. 많이 배웠어요. 고마워요.”
“앞으로 잘하면 돼. 계속 옆에서 지켜봐. 국가수호국에 있을 거니까.”
“다행이네요. 멀리 떠날 줄 알았는데.”
“국장님이 잘해주니까. 대신 모발은 좀 위험할지도?”
내 말에 정다현이 웃음을 흘렸다. 편하게 대하기로 해서 그런가, 좀 더 편해진 느낌이다.
“적을 압살하는 게 준호 씨 다운 거 같아요. 상처 없이 제압하는 거 많이 힘들었죠?”
“···여태해온 전투 중 가장 어려운 전투였어.”
이런 측정 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 진짜 열어보면 안 되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다.
“이해돼요. 저도 요즘 빌런 상대할 때 그러거든요.”
“어떻게?”
“한 번 경고하고 바로 실력행사 들어가요. 그러다 보니 효과도 확실하고.”
일선의 공무원 헌터들도 전보다 빌런 체포에 적극성을 띄게 되었단다.
“좋은 현상이야.”
“준호 씨 덕분이죠. 진짜 중요한 가치가 뭔지 깨닫게 해주셨으니.”
응? 난 그냥 빌런이 나쁘다는 말밖에 한 적 없는데.
그 가치가 뭔지 궁금했지만 정다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다음에 볼 땐 제가 상사가 아니네요.”
“그런가?”
“모든 레벨 8 초인은 1급 공무원 대우를 받아요. 직급상 국장님도 상사가 아닌 거죠.”
정주호가 나더러 신분이 높아졌다고 말했던 게 그거 때문이군.
매해 호봉이 쌓이고 계약 갱신을 하면 장관급 대우로 높아진단다.
“그래서 말인데요.”
“응?”
“다음에 볼 땐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
“네.”
전혀 예상치 못한 호칭이다. 윤희와 같은 호칭인데 울림은 달랐다.
“그럼 가볼게요. 협상 응원할게요. 준호 오빠.”
고개를 숙인 정다현이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나는 정주호의 부름에 정부 인사와 협상 자리를 가졌다.
*
“각성자안보실장 천명국입니다.”
각성자안보실장은 대한민국에서 각성자 관련 직위 중 가장 높은 셋 중 하나다.
천명국은 사신 길드 부마스터 출신으로 젊은 시절 무수히 많은 사냥 실적과 해외 사냥 합작을 해내고 전국 길드 연합 정책실장을 맡다가 3개월 전 각성자안보실장으로 임명되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대명사이며 정부와 길드 사이 이권, 외국과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는 실력자다.
나도 아는 이름이고. 하지만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 이유가 혈종이 될 당시 정부, 길드, 시민의 대타협을 이뤄내 지긋지긋한 추적이 이루어지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이 양반이었다.
각성자안보실장을 그만두고도 전국 길드 연합 고문으로 빌런 추적 시스템 구축의 혁혁한 공을 세웠지.
그게 다 날 잡으려고 만든 거다.
그래서 저번 생에 내가 가장 죽이고 싶었던 사람 중 첫 손가락 안에 꼽힌다.
물론 저번 생의 원한이다.
내가 아닌 혈종의 원한.
“국가수호국 특수팀 빌런전담반 9급 공무원 헌터 최준호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최준호 초인님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왔습니다.”
“영광입니다.”
“장래에 대한민국을 떠받칠 재목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레벨 8 초인을 두고 과소평가를 하게 되었지만요. 하하!”
적당히 띄워주면서 은근한 눈으로 날 훑었다.
“여기 정 국장님에게 들었지만 최준호 초인님의 의향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정부 소속이 되실 의향이 있습니까?”
“예. 다만 그에 걸맞는 대우를 원합니다.”
난 국가수호국 헌터로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원하지만 여러 방향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래야 내가 유리해진다고 이세희가 코칭해줬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정부 측에서는 최대한 성의를 보일 생각입니다. 초인님의 생각이 긍정적이시니 서로 맞춰갈 수 있겠군요. 기대가 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내가 수긍하자 정주호가 말했다.
“우선 레벨 8 초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얘기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야지요. 우선 초인은 첫해 1급 공무원 대우지만 매년 호봉 상승이 이뤄집니다. 실제 국가 서열은 장관에 준하며······.”
각종 세금 혜택과 외국 방문시 국빈 대우, 각성자 관련 예산 운영 참여, 정부 산하 무구 우선권 등등이 언급되었다.
대형길드에서 제시하는 천문학적인 연봉과 특유의 몰아주기 등이 없었지만 돈에 큰 미련이 없다면 이것도 나쁜 조건은 아니다.
실제로 이세희는 정부 측이 어떻게 나올지 말해줬고 대부분 일치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듭니다.”
“그럼······.”
“두 가지 조건만 들어주시면 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내가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천명국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긴, 상대에게 별 거 아닌데 나만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정주호를 흘긋 본 뒤 오래 전부터 갖고자 했던 걸 거론했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부여받고 싶습니다.”
“자, 잠깐!”
정주호가 놀라서 외쳤지만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건 이거였다.
천명국도 허를 찔렸는지 표정이 굳었다. 저번 생의 원한을 끌고 올 생각이 전혀 없는데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상쾌하군.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답을 주셔도 좋습니다. 오늘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
“아니면 바로 답을 줄 수 있습니까?”
결국 천명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상의가 필요합니다. 시간을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원래부터 원하던 걸 말한 건데 내가 괴롭히는 모양새였다.
진짜 괴롭힐 생각이 없는데?
아무튼 공은 이제 천명국에게 넘어갔다.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주호가 내 뒤를 따라왔다.
“무슨 생각이냐?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이 나라 멸망시키려고?”
“제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차라리 김영환 영감처럼 이권을 달라고 해. 저쪽도 너에 대해 다 알고 왔는데 그걸 달라고 하면 받아들여지겠냐.”
“절 간절히 원하면 받아들이겠죠.”
“···생각해보면 지금 급한 처지긴 하지. 그것까지 계산한 거지?”
그냥 처음부터 그걸 갖고 싶었을 뿐이다. 면책특권은 이것도 좋아보여서 즉석으로 포함시켜 찔러 넣었다.
이것이 거래라는 건가. 나 혼자 요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넌 진짜 악마다. 천명국 실장이 진짜 수완간데 바로 입 다물게 만들어버리고. 지금 머리 터져버릴 거다.”
“수완가면 들어주겠죠.”
“네가 필요한 입장이니 움직이겠지. 근데 그거 다 받고 무슨 짓하려고?”
“아무 짓 안합니다.”
권한이란 건 받아놓고 있으면 언제고 쓸데가 있다.
특권이란 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람이 없는 법이니까.
난 별말 안했는데 정주호가 사색이 되었다.
“준호야, 내가 진짜 간절히 부탁하는데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짓 하면 제발 그 자리에서 말해줘라. 행동으로 옮기지 말고. 아니, 국가수호국이 마음에 안 들면 말만 해. 대외협력관리국이라고 좋은 곳 있는데. 거기 국장은 성격도 좋아. 저번 작전 때 너한테 믿고 맡긴 거 봤지? 사람 확실하게 믿어주고, 부인이 20년째 바가지 긁어도 잘 버틸 만큼 인내심도 있어. 빠지는 모발도 불굴의 근성으로 20년 동안 잡아내고 있고. 네가 결정하면 언제든 가능하니까. 알았지? 응?”
정주호는 가끔 과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내가 특권을 받고 여러 사건을 해결할 때 가장 깔끔하게 해결해줄 사람은 정주호밖에 없다.
“끝까지 국가수호국에 붙어 있을 테니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난 싫어!”
정주호가 절규하며 기뻐했다.
*
“내 오빠지만 진짜 대단하긴 하다.”
윤희는 내가 레벨 8이 된 걸 축하하면서 내가 요구한 걸 듣고 고개를 저었다.
“왜?”
“저거 다 받아주면 완전 무법지대잖아. 오빠 막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내가 남용할 것 같냐?”
저건 그저 눈에 보이는 빌런들을 때려잡기 위한 용도다. 물론 내가 보는 빌런과 사회에서 정의하는 빌런의 범위가 다소 차이날 수 있을 뿐.
“아무튼 대단하다, 대단해.”
“받아들일 거야.”
“그럼 좋겠지? 나야 오빠 편이니까.”
“귀찮게 구는 사람은 없냐?”
“음, 슬슬 생기는 거 같아.”
안 그래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온단다.
나한테는 안 오던데. 내 스마트폰에는 부모님과 윤희, 정다현과 이세희가 전부다. 아, 최근에 버서커 이놈도 등록했다.
제일 많이 연락 오는 놈도 버서커다.
“그리고 부모님도 귀찮아지실 텐데 서울로 모셔오는 건 어떠냐?”
“나야 완전 좋지. 근데 엄마 아빠가 올까?”
“설득해야지.”
내가 레벨 8이 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오는 거다.
윤희는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돈은? 여기서 살 수 없잖아.”
“없는데.”
“나도 없어. 근데 대출은 잘 나올 걸? 풀로 당겨볼까?”
“······.”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돈, 저번 생에서 아무 불편함이 없던 게 새로운 불편함으로 떠올랐다. 마물 하나를 잡아야 하나.
아니면······.
“이세희한테 부탁해볼까.”
“거기가 무슨 은행이냐!”
윤희가 황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근데 말하면 빌려줄 거 같은데.
*
사흘 후, 정주호는 국가수호국을 방문한 천명국을 회의실 안내한 뒤 최준호를 불렀다.
천명국은 첫날 그대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특히 최준호 초인님의 이력을 보면서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점이 말인지?”
“이런 말씀은 실례지만 과잉 진압 건이 많으시더군요.”
“예.”
정주호는 속으로 동감했다. 정부 측이 제대로 일하고 있군.
소름 돋는 건 최준호 본인은 과잉 진압으로 경고받은 걸 열심히 빌런을 잡고 다닌 훈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런 부분이 우려되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주어지면······.”
말끝을 흐렸지만 무엇을 우려하는지 너무 잘 알겠다. 정부에서 제대로 봤다. 최준호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가지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특히 자신이 최준호를 통제해야 하는 각성자안보실장이었으면 바로 사퇴했을 것이다.
날카로운 부분으로 찔렀지만 최준호는 태연했다.
“요즘은 괜찮아졌습니다.”
“예?”
“조사하셨으면 아시겠지만 과잉 진압 건수는 초기에 많을 뿐, 근래 들어 많이 줄어든 걸 확인하셨을 겁니다.”
고작 반년이 넘은 공무원 헌터 생활에서 최근 한 달 괜찮아진 걸 거론하다니. 그 뻔뻔함에 정주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천명국도 고개를 저었다.
“표본이 너무 적습니다. 그걸로 줄어들었다고 표현하기 힘들고요.”
“실제로 빌런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속은 골병이 들었더군요.”
최준호 손을 탄 빌런은 두 번 다시 빌런 짓을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서 감옥에 들어갔다.
문제는 겉모습만 멀쩡하다는 점.
그 우려는 백 번 지당했다.
정주호는 최준호가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뭔가가 있는 건가.
뒤이어 나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그동안 힘 조절을 못했습니다.”
“힘··· 조절이요?”
“예. 그리고 제가 경고를 많이 받아봐서 아는데 체포된 빌런의 껍데기만 멀쩡하면 크게 문제 삼지 않더군요. 앞으로 겉포장에 신경 쓰겠습니다. 믿어보시죠.”
“······.”
상상을 초월하는 뻔뻔함에 정주호는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