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대의를 외치는 사람의 진심을 파악해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그 사람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이 했던 말이 진심이라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것이고, 거짓이라면 눈알을 굴리면서 탈출로를 확보하려고 할 테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렇게 옳은 말이면 목숨 정도는 내어줄 수 있잖아?
정작 녀석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왜, 자결 할 생각은 없냐?”
“헤드 브레이커, 이건 이성적인 논의가 아닙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성적으로 논의해왔다고 그러냐.”
“정녕 주변의 모든 걸 파괴하고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겁니까?”
“어.”
야누스의 표정은 흉측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표정을 구기면 인상이 바뀌어서 야누스인가.
뭐,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결국 입만 산 녀석이군.”
내가 손을 뻗자 흠칫한 녀석이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내게 붙들리는 신세가 되었다.
12궁인지 뭔지는 아니었다.
그냥 입만 산 녀석이다.
녀석의 이명을 볼 때 두 얼굴을 지녀서 그런 거 같은데 난 그런 게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말이지.
“자, 잠깐만……!”
기겁한 녀석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목을 부러뜨렸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질기기 때문에 확실하게 처리해야된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돌아간 녀석의 눈이 흐려지면서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시체를 바닥에 던져놓은 나는 무스타파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군.”
“어.”
“내가 없으면 이집트에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걸 바라는 것이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네놈!”
일갈을 터뜨린 무스타파는 내게 달려들었다. 놈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는데, 푸른 포스가 별안간 금빛으로 바뀌더니 내 정신을 강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독인가? 예상하지 못한 기습은 맞다.
하지만 만득이가 움직이자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무스타파의 단검을 부러뜨린 뒤 주춤하는 녀석의 팔목을 비틀고 정강이를 부러뜨려 기동력을 상실시켰다. 그리고 어깨를 부숴버려 전투력을 상실시켰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나, 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녀석의 몸이 금빛으로 물드는 순간, 내 손을 벗어나 자취를 감췄다.
공간 이동 계열 기프트인가? 하지만 이런 류는 멀리 가지 못한다.
나는 감각을 확장해서 무스타파의 기운을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감각이 걸려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200m 정도 떨어진 곳 지붕 위로 허우적거리는 녀석이 보였다.
난 녀석에게 저격을 시전했다.
퍽!
살기 위해 발악하던 녀석의 머리가 터져버리더니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다.
수십 년 동안 이집트의 절대적인 독재자로 군림하던 무스타파의 최후였다.
[어떤 기프트였는지 궁금하지 않아?]“제약이 커서 별 거 없겠지.”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대신 내 시선은 바깥으로 향했다. 무스타파를 죽이기 위해 나오다보니 경호 병력이 우르르 몰려든 상태였다. 저기에는 정부 소속 각성자들도 있고 리그 소속 빌런들도 있었다.
두 부류가 섞여있지만 저걸 구분하려는 건 무의미한 일이겠지.
난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어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려는 녀석들 뒤통수에 저격으로 구멍을 내고, 한꺼번에 달려들던 녀석들은 칼날폭풍으로 한 줌 핏물로 만들어버렸다.
“으아아아아!”
“괴, 괴물!”
뒤늦게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지만 전부 쓸어버리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체로 뒤덮인 대통령궁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허공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미소 지었다.
“이곳에 눈을 두고 있을 줄 몰랐는데. 오랜만이군. 아르고스.”
내 부름에 허공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걸 보면 자칭 신하고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르고스는 천둥새와 연관 있는 걸로 아는데 자칭 신하고도 연관이 있나?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겠지.
[대체 어디까지 내 앞을 막을 생각입니까, 헤드 브레이커.]“빌런이 보이면 처리한다. 이건 가장 간단한 사실 아닌가? 그리고 빌런이 가장 많이 소속된 곳이 너희 조직이고.”
[마치 우리가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내가 너희를 제거하고 싶었다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보군.”
[…….]아르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계를 쥐락펴락한다는 녀석임에도 냉정하게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이 리그가 세계를 누비게 만든 저력이겠지.
그보다 내가 먼저 알고 싶은 정보가 있었다.
“네 주인인 천둥새가 죽었는데 별 타격이 없나봐?”
[당신, 정말로 천둥새를 사냥한 겁니까?]“내 질문의 대답부터 먼저. 천둥새와 넌 연관이 있나?”
[하나씩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그럼 나도 답해주지. 천둥새는 내가 잡았다. 여태까지 상대했던 녀석 중 가장 까다롭고 강했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일개 인간이 신수를…….]“신수에 대한 믿음이 상당하군.”
하긴, 천둥새에게 도움을 받아 기프트를 각성하고 지금의 리그를 만들어냈다면 신수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건지 알 수도 있겠지.
[맞아, 신수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너도 잘 아네.]용용이가 으스대는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신수가 대단한 건 사실이니까.
[놀라울 정도로 순순히 인정하네?]난 신수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저 용용이 너니까 무시한 것뿐이지.
[야, 그게 무슨 소리야?]네가 그만큼 하찮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는데 말귀가 어둡나보다.
[와, 얘 진짜 열 받게 만드네?]꿍얼거리는 녀석을 뒤로 하고 아르고스와 대화에 집중했다.
“천둥새가 사라진 이상 네 야망도 무너졌다고 봐야겠지.”
[각성자들은 신의 인정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어나가야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더 큰 재앙이 도래할 것입니다.]“너희 존재가 더 심각한 거 같은데 말이지.”
[우리는 세상을 이롭게 만들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빌런들이?”
[세상을 향한 분노는 혁명의 밑거름입니다.]아예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헤드 브레이커, 당신은 세계 모든 각성자들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을 잡으십시오. 신수조차 사냥할 수 있는 당신의 힘이라면 모든 걸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내가 리그를 접수하고 해체해도?”
[…정녕 우리와 함께 할 뜻이 없군요.]“나더러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 녀석들과 손을 잡겠냐.”
[난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나도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만담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난 아까 전부터 분주하던 아르고스의 눈을 보고 물었다.
“그래서, 도망치려는 준비는 끝났냐?”
[……!]“너만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니라서 말이지.”
아르고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녀석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쫓고 있었다.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테군. 난 아르고스의 흔적을 발견한 곳으로 고속비행을 시전했다.
공간이 접히고 갈라지며 모습이 드러난 곳은 한적한 공간이었다.
위치는 다르지만 몇 차례 본 적 있던 풍경이다. 리그의 본거지가 아닌 지부였다.
“쯧.”
아르고스의 흔적이 느껴져서 조금 더 비중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녀석의 능력은 세계각지에 지부를 두고 그곳에 중계기를 놓고 세계 전역에 눈을 두는 방식이다.
이걸로 독보적인 정보력을 얻고, 모래알 같은 리그라는 조직을 하나로 거느리게 되었다.
내가 있는 곳은 중계기가 하나 있는 곳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도, 도망쳐!”
“지부 하나 날려버린 걸로 만족하기로 할까.”
상념을 접어둔 나는 도망치는 빌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아르고스가 절규를 터뜨렸다.
[하늘은 어찌하여 저런 괴물을 내리셨단 말인가!]하늘이 괴물을 내린 게 아니고 과거에서 돌아온 거다.
그리고 날 낳은 건 우리 엄마고.
뭘 모르는군.
*
* *
리그의 지부를 정리한 뒤 나는 리야드로 복귀했다.
내게 자초지종을 들은 아메드 국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으로 이집트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어지겠군요.”
독재자인 무스타파는 물론, 독립운동가도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말에 그는 탄식했다.
원래 악이란 건 부지런한 법이다. 끝없이 편법을 찾고 견제가 심해질수록 그 방법은 교묘해지기 마련이다. 무스타파는 반대파까지 이용할 정도로 수가 높았던 거고.
“친우여, 한 가지 동의를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난 그게 무슨 말일지 알 거 같았다.
“이집트에 개입하고 싶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메드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에즈 이권을 독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본래 영토를 보유한 국가가 허락해주는 모양새가 더 좋으니까. 그리고 이웃나라의 소란이 안정된 이곳까지 영향을 끼칠까 걱정이 됩니다.”
“그건 편한 대로 하시지요. 리그와 손 잡거나 하는 행동만 아니면 개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우는 독재에 대해서 별 말이 없었군.”
“어느 정치 체제가 옳은지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빌런으로 규정된 리그가 눈에 띌 때마다 족족 없애버릴 뿐이다.
“그럼 친우의 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믿고 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아메드 국왕은 인근 국가까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으니 좋고 나는 더 신경 쓰지 않으니 좋은 방식이다.
이걸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온 일도 일단락이 되어가는군.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네 손에 죽은 인간이 수백 명이 넘고 말이야.]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무감각한 거 아냐?]용용이 녀석이 착각하는 게 있다. 빌런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세상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박멸한 것이라 여겨야 아무 망설임 없이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대단한데?]감탄할 것까지야.
[비꼬는 거야!]내가 거리낌 없이 죽인다고 타박하는 말에 잊고 있던 옛 부캐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말소자를 쓸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완전히 기억 너머에 미뤄두고 있었군.
이제 와서 그걸 다시 꺼내들기도 애매하니 그냥 내가 편한대로 행동해야겠다.
[그게 더 무서운 거 알지?]나만 무섭지 않으면 그만이다.
*
* *
끼아아아!
불과 얼마 전까지 수에즈의 지배자였던 호루스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 지역을 호령하던 지배자에서 한 인간의 애완 마물로 전락했지만 호루스는 이 생활도 꽤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모든 것을 자신이 처리해야 하던 상황에서 주인의 명령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는 점이 안정감에서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강한 마물들과 보이지 않던 경쟁도 의미가 사라지게 되었다.
자신은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주인을 뒷배로 두었기 때문. 설사 더 강한 마물이 침공해온다고 해도 주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호루스를 매료시킨 건.
“먹어라.”
주인이 보상에 후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준 것은 자신보다 조금 약하지만 그래도 인간 나라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한 강한 마물의 심장이었다.
자신조차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 적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선뜻 내어주는 모습에 호루스는 다시 한 번 인간 주인을 모시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보상은 굉장히 컸지만 주인의 요구는 간단했다.
“네가 할 일은 이 일대를 지키는 거다. 그것만 집중하면 돼.”
평소에 행동하던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만 덜 죽이고 접근하는 녀석들을 쫓아내는 귀찮음이 더해진 수준의.
이 정도는 주인이 챙겨주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간단한 미션이다.
끼아아아!
“좋아, 그럼 맡기도록 하지.”
호루스는 최고 심복이자 1호 부하인 자신을 믿어달라고 외쳤다.
주인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지만 다음에 나온 말은 호루스가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너 1호 아닌데.”
끼아아아?
주인은 그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곧 내가 키우는 녀석이 하나 더 올 텐데 괜히 부딪치지 마라.”
호루스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설마 자신이 1호 부하가 아니었단 말인가.
먼저 1호 자리를 꿰찬 녀석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멍멍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주인에게 이름까지 하사받았다.
자신조차 이름을 받지 못했는데.
멍멍이.
그 심상치 않은 이름을 호루스는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