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대통령 취임식 날짜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취임식의 귀빈으로 초청되었다.
주변에서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하지만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취임식의 초청이라,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긴 하지. 혈종일 때 꿈도 꾸지 못하던 곳이긴 했다.
하다하다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에 일조도 하고 취임식에 초대도 받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많이 커졌다 싶었다.
물론 지지 연설을 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곳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입지긴 하지.”
내가 얼마나 달라진 건지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본래 혼자서 가려던 계획이 조금 어긋나게 생겼다. 천명국이 나만 초대한 게 아니라 우리 일가족 모두를 초대했던 것.
생각해보니 그동안 공식행사에서 가족들과 함께 움직인 적은 없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이번 행사에서 가족과 함께 움직여야 할 듯 싶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참석하려던 나를 본 진세정이 대놓고 노기를 터뜨렸다.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곳에 편안한 옷차림이라니요! 오직 초인님의! 초인님에 의한! 초인님을 위한 패션으로 가야지요! 귀찮으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준비해놨어요! 초인님은 입고만 가시면 돼요!”
말 그대로 사자후였다. 공식행사에 예의를 갖춰 입어야 한다는 명분에 결국 나는 진세정의 말을 받아들여 내 맞춤 고급 정장을 입고 취임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효과는… 불행하게도 확실했다.
내 개인적으로 수트핏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겠는데 주변 반응을 보면 좋긴 한가보다. 진세정이 말하길, 이 수트핏이란 게 실전에서 단련되어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다고 했던가.
딱 봐도 입에 발린 말이었다. 나 말고 각성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그 사람들 모두 수트핏이 좋은 거겠지.
취임식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삼엄한 경계망이었다. 초대받은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경계가 완벽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여차할 때 인의 장막으로 시간을 지연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
나라면 정면 돌파를 했을 것 같긴 한데 대통령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 같다.
하긴, 고속비행을 얻은 순간 저 경계망이 다 무의미하긴 하지만.
[넌 왜 항상 누군가를 죽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그야 지키는 것보다 죽이는 게 쉬우니까. 물론 오늘은 가족과 함께 온 만큼 나도 지켜야 하는 입장이긴 하다. 경계를 넘어서는 녀석은 목부터 꺾어서 제압해야겠지.
[그건 제압보다 죽인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최준호 초인!”
고개를 돌리니 아방가르드 길드의 이찬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로 시작이었다. 사신 길드의 류광호도 다가와서 인사를 했고, 대외협력관리국의 한상민과 국가수호국의 노국철 팀장이 인사를 건네 왔고 그 뒤로 신성그룹을 비롯한 재계 인물들과 인사를 나눴다.
모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나야 별 감흥이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특히 날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눈빛들이 달라지는데?]아버지는 이미 유력자들과 안면이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도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신이 나신 듯했다.
아니, TV에서도 나 잘나간다는 이야기는 매일 나오는데 그걸 체감 못하고 계셨나.
이런 내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윤희가 끼어들었다.
“사고뭉치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된 거지.”
“내가 사고뭉치라고?”
“그럼 사고뭉치가 아닌 줄 알았어? 이거 놀랍네.”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거 100%,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한 행동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희의 용감한 행동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말 잘한다! 인간 동생!]“오빠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한데 주변에서 상상 이상으로 사고뭉치 취급을 받고 있어. 아마 오빠 얼굴만 보면 지릴 사람이 한 트럭일 걸.”
[맞아 맞아, 말 잘하네. 속이 시원하다.]서로 대화를 섞지도 않는 것들이 쿵짝이 맞아서 신나게 날 몰아세우고 있었다.
조만간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각개격파를 해야겠군.
그렇게 인사하는 자리를 나눈 뒤 본격적인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제는 전 대통령이 된 전한철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정권 연장에 성공하고, 재임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보니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대통령을 하면 보통 늙는다고 하던데 5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세월의 흐름이 정통으로 맞은 듯했다.
이제는 더 신경 쓸 일이 없으니 좋긴 하겠군.
그리고 오늘부로 대통령이 될 천명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 실장에서 대통령이 된 천명국을 보니 사람 일이라는 게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혈종이 되어 미쳐버렸던 과거에는 뛰어난 각성자이자 전략가로 활동을 하던 그가 일국의 대통령이 되다니.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뒤 운명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뀐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대통령이 되었으니 사람이 달라 보이는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거겠지.
“사람 일이란 건 몰라.”
당장 나만 해도 그렇고.
그것이 삶의 묘미겠지.
본격적인 취임사에 앞서 천명국이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이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 속에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는데,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응원을 보냈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입을 열었다.
내용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자신을 뽑은 유권자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줘야 하는 자리인 만큼 좋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내 귀에는 뻔하게 들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감명 깊게 듣는 걸 보면 좋은 이야기가 맞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입을 닫은 천명국이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날 본다.
설마 그 보물이 나라는 건가?
[맞는 거 같은데?]“여기 최준호 초인과 함께 굳건한 협력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1일차 대통령 입에서 나온 발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내 존재로 인해 천명국을 뽑은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나를 놓고 빌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여지는 모습에 의한 것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내 캐릭터가 원래 그러하다는 걸 이해할 시간이 주어지고, 진세정에 의해 팬층이 형성되면서 이야기는 확 바뀌게 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은 내 존재로 인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실질적인 이득이다.
잡는 방법이 어떻든 간에 내 무자비한 소탕에 빌런들이 줄어들어서 범죄율이 수직 낙하했고, 마물들을 쓸어버리다시피 하면서 마물의 위협에 눈에 띄게 안전해졌다.
유해 8단계 마물이 나타나도 더 이상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세희는 내게 말했다. 국민들이 내게 아주 큰 허용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짓을 저지르더라도 용납할 거라고 말이다.
국민들의 이런 실질적인 이득이 나에 대한 사소한 불편함쯤은 지나치는 계기가 되었고, 나와 관계가 돈독한 천명국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천명국은 그 유권자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취임식에서 날 언급한 것이기도 하고.
이렇게 보니 천명국도 정치인이 다 되었다 싶다.
그걸로 취임식이 막을 내렸다.
용용이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새로워서 좋았어. 인간들 행사도 꽤 볼 게 많긴 하네.]“좋긴 하지.”
[넌 어땠는데?]“나? 별로.”
분명 취임식에 온 건 내가 빌런이 아닌, 대한민국 소속 초인으로서 성과다.
더 이상 나는 빌런이 아니며, 내가 초인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이렇게 쌓아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은 건 너도 옆에서 지켜봐서 알 거다.”
[어려워보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봤지.]“몇 년이 걸렸지. 그럼 이 모든 걸 부수는 건 얼마나 걸릴까?”
[어, 음. 순식간이겠지?]“그래서 별로란 거야.”
좋은 걸 쌓아올리는 건 한참의 시간이 걸리지만 모든 걸 지워버리는 건 순식간이라는 점이.
기껏 제정신으로 돌아와 평온한 삶을 사는 내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많았다.
[왜 걱정하는데?]“나 말고 다른 미친놈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할까.]“그건 또 몰라.”
[너보다 더 한 녀석은 없다니까.]난 궁시렁거리는 용용이의 말을 사뿐하게 무시해주었다.
*
* *
취임식은 여러 호평을 남긴 채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전한철 전 대통령 취임 때만 하더라도 마물의 침공으로 인해 생존을 걱정하여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해야 했지만 이번 취임식은 화려하게 해도 될 정도로 호전된 대한민국의 상황을 세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세계 각지에서 대한민국의 안정된 상황을 보면서 놀라는 모습들이 국뽕 심리를 한껏 자극하는 것도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의 일정은 바쁘다.
특히 대한민국은 자체 전력으로 세계에서 5위 안에 들어가는 수준에 도달했기에 강대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순서로는 미국을 시작으로 그 다음이 일본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중요성이 대두되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상전벽해 같은 변화였다. 분열된 중국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며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렸음을 의미했다.
그런 의도가 노골적으로 전해졌음에도 중국 측 인물들은 불만조차 표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중한 태도로 천명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화를 위해 귀국의 힘이 필요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군 측에서는 사실상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리전후오가 와서 중재를 부탁했다.
목이 뻣뻣하기로 유명한 중국 측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든 행동이었다.
[네가 있는데 어떻게 뻗대냐? 그러다 목이 돌아갈 텐데.]그런 기개를 가진 사람들 의외로 많던데, 용용이 너도 꽤 많이 보지 않았냐.
[응, 봤어. 너한테 다 죽던데.]기개 있는 거랑 죽일 놈인 건 다른 법이니까.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다 그러다가 살아남아있을 사람이 없을 텐데.]그렇다고 치자.
이 자리에는 나도 초대되었다.
북군과 남군의 휴전에는 나라는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북군 측에 따로 원하시는 게 있으신지?”
“없습니다.”
“그 말씀은…….”
북군이야 신생 정권이고, 천마갑귀 등장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내부 상황도 좋지 못하고. 아마 당분간 주변에 시선을 돌릴 여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남군은 다르지.
“남군하고 얘기할 때 할 얘기가 있긴 합니다.”
“…….”
“왜 그러시는지?”
날 보는 천명국의 눈동자에 짙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대통령이 됐지만 제 심장은 그때와 같습니다. 절 놀라게 할 일이라면 부디 먼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손님 오면 얘기하시죠.”
내가 볼 때 별 거 아니라서 굳이 두 번 이야기 할 건가 싶었다.
천명국은 더 물어보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이내 포기하고는 남군 측 인사를 불러들였다.
“반갑습니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총리 리쥔밍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 중 한 사람으로, 이번 방문 전에 총리가 되면서 우리와 친해지려는 의사를 비춘 걸로 해석되고 있었다.
나야 그런 복잡한 정치적인 수사 같은 건 관심 없고. 그저 내가 얻고 싶은 것만 얻으면 그만이다.
상대가 줄지 주지 않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 사이, 천명국과 리쥔밍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남군 측에서도 꺼내든 것은 역시나 휴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있는 가운데 우리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다면서 교류를 늘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천명국으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다.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재건 사업이 필요한 만큼,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입장에서 속된 말로 노다지다.
“저희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군요.”
“남은 건…….”
천명국이 날 힐끗하자 리쥔밍도 날 바라본다.
내가 나설 차례로군.
“남군 측에서 하나만 들어주면 협력하죠.”
“말씀하시죠.”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천마갑귀 생산시설. 그걸 원합니다.”
“…….”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천명국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별로 어려운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
리쥔밍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시침을 뗐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저희와 관련이 없습니다.”
“진짜입니까?”
“그렇습니다.”
과연 정치인이라는 건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지금은 완벽하게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러면 오히려 이야기가 편해지지.
“그럼 제가 그 시설을 찾아가서 그 시설을 없애도 그쪽과 아무 관련도 없는 거겠군요.”
“그, 그건…….”
“하나만 확실히 해야 할 겁니다.”
“…….”
리쥔밍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