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한 번 닫힌 리쥔밍의 입은 열릴 줄 몰랐다.
문제는 그 침묵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다는 점이다.
아마 고민이 될 테지.
천마갑귀는 남군 측에서 만들어낸 마물이다. 생체 코어라는 괴상망측한 것으로 마물의 심장을 만들고, 그걸 마물에 이식하여 투뿔 마물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생체 코어는 각성자의 포스를 쥐어짜내 응축한 것이다. 아마 당에 반기를 든 각성자나 타국의 각성자, 혹은 포로들이 이용되었을 거라고 본다.
아니면 말고.
그렇게 해서 쥐어짜낸 포스 덩어리를 마물의 심장에 이식하여 투뿔 단계가 될 때까지 키워낸 것이다.
문제점이라면 투뿔 마물이 자신들의 통제를 거부했다는 사실이겠지. 이것만 제외하면 만족할 성과라는 것도 사실일 테고.
다만 공식적으로 남군은 천마갑귀를 만든 게 자신들이라는 걸 부인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걸 인정하게 되면 마물을 이용해서 동족을 제거했다는 책임을 뒤집어쓰게 되니 당연한 일일 터.
하지만 그게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내 앞에서는 누구나 분명해야 한다.
너희가 했는지, 안했는지.
처음부터 애매모호한 말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내 기세를 접한 리쥔밍도 생각이 깊어지는 걸 테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내가 내리게 해줘야겠지.
“…….”
“결정을 못한 겁니까?”
“시간,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아는 게 있는지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이미 많이 드렸는데요.”
“…제가 모르더라도 본국은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잔머리만 굴릴 텐데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나.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천명국의 생각은 다른가보다.
“그러시죠. 대신 시간을 많이는 못 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다급한 표정의 리쥔밍이 자리를 벗어났고, 천명국은 한결 차분해진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처음부터 원하던 게 그거였습니까?”
“예.”
“미리 말해주시지요. 대통령이 되어서도 혈변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한껏 불쌍한 표정으로 말하는 천명국.
내가 말한 사안이 그렇게 심각한 거였나?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초인님의 기준 아닙니까.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건수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과 관련된 일 아닙니까?”
투뿔 마물도 이젠 나한테 그리 어려운 녀석은 아닌 거 같아서.
아무튼 내 기준이라 그런가보군.
“앞으로 미리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말고 제발 미리 말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허허! 전한철 대통령님이 그리워지네요.”
“현재 대통령님은 대통령님인데요.”
“맞는 말씀입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던 천명국은 다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초인님은 그 시설을 제거할 생각입니까?”
당연한 소리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게 뻔합니다. 사람이란 본디 여유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지루한 소모전을 관두고 한껏 끌어 모아 제2의 천마갑귀를 만들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 싹은 미리 잘라놓는 게 최선이고.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걸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게 정부를 위해서도 나은 방향일 겁니다.”
“그렇습니다만 과연 상대가 순순히 인정하고 나올지는…….”
“그 상대의 결정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렇지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의 허락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어차피 움직이는 건 나였으니까. 결정은 언제나 그렇듯 내 몫이다.
다만 직접 인정할지 아니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날지 궁금해서 그랬지.
“저들은 부인할 것입니다. 천마갑귀를 자신들이 만들어냈다고 인정하는 순간, 모든 명분을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예? 어째서… 설마 다 죽이실 겁니까?”
당연한 소릴 왜 물어보는 건지.
“연구소를 없애버리면 아마 지금보다 몇 단계 경쟁력이 더 하락할 겁니다.”
“…분명 애꿎은 사람이 죽을 테지만 예로부터 중국이 분열되고 약해지면 우리에게 기회가 오곤 했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변명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정의롭던 천명국인데, 국익을 위해 기꺼이 타협하는군.
대통령이 이렇게 밀어준다면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난 리쥔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마음 편히 기다리기로 했다.
*
* *
“본국에 문의해본 결과, 관련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무슨 논의를 하고 온 건지 리쥔밍은 꽤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럴 거라 예상했다.
친한파니 뭐니 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국의 이익이다. 리쥔밍에게 있어 천마갑귀 시설을 감추는 것이 자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한 걸 테지.
그렇다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면되는 것이다.
“그럼 천마갑귀 제작 시설은 남군과 관련이 없다는 걸로 봐도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곳이 파괴되어도 아무 연관도 없는 걸 테고요.”
“…….”
“관련이 없는 곳이 파괴된 건데 왜 그러시는 건지?”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파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게 머리를 굴려서 나온 말이 저거였다.
딱 봐도 어떤 계획인지 알겠다.
시간을 벌겠다는 거로군.
고속비행을 얻기 전 나한테 실행했다면 유효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무의미한 전략이다.
“자국민을 무수히 학살한 마물이 나온 시설인데 확인이라니, 이해하기 힘든 말이네요.”
“그게, 자세한 진상을 파악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저런 궤변으로 내가 설득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저렇게 말을 해대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다는 거야.]갑자기 모든 인간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 무슨 의도인 거냐.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너 같은 인간이 나타난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야.]이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리쥔밍이 하는 말은 전부 헛소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나한테 책임을 묻지 못하겠지.
책임 없는 파괴라, 내가 처음 공무원 헌터가 되었을 때가 떠오른다.
공무집행을 방해하던 녀석들을 모조리 반병신으로 만들어버렸지.
과잉진압이니 뭐니 했지만 그로 인해 이세희에게 유용한 회복제를 공급받기도 했어서 나름 꽤 즐거웠던 시절이다.
“귀국과 상관없다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저는 급한 볼일이 생겨서 이만.”
“자, 잠시만……!”
리쥔밍이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걸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
* *
최준호가 나가고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천명국 대통령은 이 분위기에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고 판단, 잠깐의 휴식을 선언했다.
자리를 옮긴 리쥔밍에게 보좌관이 따라붙었다.
“괜찮을 겁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합니다.”
“음. 분명 그렇게 되면 좋긴 하겠지만 쉽지 않겠어. 방금 나간 것도 연구소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지?”
“아닐 겁니다. 설령 가더라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천마갑귀는 당내 최고위층만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처음 완성한 천마갑귀는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었기에 지도부에서는 통제가 되는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최준호가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리쥔밍은 재빨리 당에 이 사실을 알렸다. 현재 위치가 노출되었을 수도 있기에 관련 시설을 옮겨놓을 계획이었다.
“그렇지. 다행인 건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는 점이겠지. 며칠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설령 최준호가 지금 움직이더라도 파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핵심 자료만 옮겨놓으면 된다.
보좌관은 리쥔밍의 긍정적인 생각에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하지만 최준호 이동 속도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최준호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버텨내지 못할 거다. 공간 계열 기프트 한계는 분명해.”
지금은 천마갑귀를 만들던 연구소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총력이 깃든 곳이다. 이곳에서 각성자의 기프트도 연구하고, 그 원리와 발생 여부를 놓고 수도 없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전략적인 기프트가 바로 공간 계열이었다.
만약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각성자가 핵폭탄을 들고 각국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면?
이는 단숨에 세계 패권을 움켜쥘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지며, 연약한 인간의 육체로는 그걸 견뎌낼 수가 없다.
리쥔밍이 자신하는 것도 그 연구 결과를 받아서다.
“그래도 그가 공간 이동 계열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알리심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리쥔밍은 당에 최준호의 공간 계열 기프트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낸 뒤 다시 회담 자리에 복귀했다.
최준호가 없는 자리에서 대화는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국 측이 원하는 건 재건 사업 참여였다. 이 기회에 다양한 산업 분야로 진입해서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리쥔밍으로서는 황폐화 된 국토를 복구하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속으로 조용히 칼을 품었다.
이 내전이 벌어지게 된 것은 최준호의 탓이었다. 녀석이 위하오를 충동질하여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신성그룹이 움직여서 홍콩과 광둥성이 분열했다. 그 틈을 타 서부도 등을 돌렸고.
하지만 지금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만큼 대립은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영토도 인구도 더 많은 중국이 다시 압도할 시기가 온다. 그때는 두 번 다시 반항할 생각도 못하게 짓밟아놓으면 된다.
그가 조용히 칼을 갈며 협상에 임하고 있을 때, 연신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중앙에서 온 연락이지만 협상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에 무시하고 천명국 대통령과 대화에 집중했다.
각자 속내를 숨긴 채 이해관계를 일치시킨 대화가 얼추 끝났다.
“앞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명국 대통령의 말이 많이 거슬렸지만 리쥔밍은 권토중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올 무렵이었다.
리쥔밍을 맞이한 것은 당장 무너지기 직전의 보좌관의 얼굴이었다.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왜 그러나?”
“본국에, 본국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
“그, 그게 그러니까…….”
머뭇거리는 보좌관을 보며 리쥔밍은 짜증이 치미는 걸 느꼈다.
“빨리 말해!”
“연구시설이 파괴되었습니다.”
“뭐? 연구시설?”
리쥔밍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가 손짓하자 보좌관은 현재 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준호가 나가고 리쥔밍이 천명국 대통령과 회담을 나눈 지 2시간 만에 천마갑귀를 연구하고 제작하던 연구소가 파괴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리쥔밍이 경악한 건 그 다음 일에도 있었다.
“분명 샤오도 보내지 않았던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연구소에 초인을 파견해놓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곳이고,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기에 리쥔밍의 조카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초인을 보내놓은 후였다.
“모두 남김없이 죽었습니다.”
“으, 으음! 샤오가…….”
아찔한 현기증이 엄습함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린 리쥔밍이 비틀거렸다.
“총리님!”
“괜찮으십니까!”
충격적인 소식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지만 그 또한 수라장을 헤쳐 나와 총리에 오른 정치인.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뒤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숙소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다.”
“예!”
그렇게 거처로 돌아간 리쥔밍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남군이 권토중래하며 준비했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중국 내 최고 엘리트 과학자들의 전멸, 모든 자원을 집중하여 만들어낸 성과물의 파괴.
워낙 보안을 철저히 했기에 자료 백업도 허용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모든 자료의 소멸이었다.
그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이 투자해온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이다.
설사 자료를 복구하더라도 얼마나 살려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모든 사고를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뻔했다.
“따져야 돼!”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리쥔밍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최준호는 대한민국 소속이다. 그러니 그가 저지른 짓을 따져야 할 곳도 바로 대한민국 정부였다.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말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그저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터뜨릴 곳이 필요했다.
거듭 재촉을 하며 청와대에 도착한 리쥔밍은 가로막는 사람들을 끌고 가다시피 하여 대통령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표정을 굳히고 있는 천명국 대통령과.
…세상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준호였다.
충칭에 있는 연구소를 파괴한 그가 어떻게 여기에?
“이건 상당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분노가 실린 천명국 대통령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리쥔밍의 시선은 오직 최준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최준호의 입이 열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봅니다?”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최준호가 꺼낸 말이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것이 의식의 끝.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리쥔밍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