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전한철은 최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이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스타일링이 곁들어진 지금은 몇 배나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헤드 브레이커라고 하겠는가.
최준호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가 올라왔을 때 적나라한 표현을 아직도 기억한다.
도살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처분한다고 해서 붙여준 이명이었다. 초인으로 영입할 당시에도 무수히 많은 반대가 존재했고, 그 모든 걸 돌파하고 간언한 천명국의 조언을 받아들인 게 자신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달라졌지.’
최준호 첫 인상과 지금은 많은 부분이 달랐다.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살기를 마치 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손만 대도 베여버릴 것처럼 섬뜩한 모습은 국가를 수호하는 초인이라기보다 피에 미쳐버린 빌런을 보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렇게 몇 마디로 축약하는 게 우스운 일이지.’
자신의 임기 중 최준호와 함께 한 3년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할 경험 그 자체일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다음 대통령은 과연 최준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분위기 면에서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어 있다. 첫 모습이 빌런을 떠올리게 했다면 지금은 배우나 모델이라 생각할 정도로 평범한 기세다.
전한철은 그것을 사회에 익숙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지만 전처럼 누구에게나 손을 쓸 것 같은 위태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놀란 것들을 생각하면 많은 일들이 있었지.’
하지만 자신의 임기가 끝난 지금, 모든 일들은 추억이 되어 있었다.
남은 시간은 자신의 것이 아닌 천명국의 것이었다.
‘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최준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답을 구한 눈이었다.
아마 자신의 대답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볼 여지는 제공할 수 있겠지.
전한철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나라면 신이 되고 싶지 않군.”
“…….”
“신이라는 건 전지전능함을 가진 존재겠지. 불로불사와 압도적인 힘, 지치지 않는 체력, 영민한 두뇌. 간단하게 생각하면 불완전한 것이 채워져 완벽한 존재가 됨을 말하는 걸 테야. 맞나?”
“비슷합니다.”
“그 모든 걸 채우고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쉽진 않겠네요.”
“신은 존재할 때부터 완벽하기에 신인 것이야. 그게 아닌 존재가 신이 된다는 건 그저 완벽해지고 싶은 존재의 안쓰러운 참칭에 불과하지.”
누구나 신이 되고 싶어한다.
설사 신이 아니더라도 완벽한 존재,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다.
북진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최준호와 협력을 공고히 하여 대한민국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전한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권력을 평생, 아니 영원히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욕심을 버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뛰어넘는 재목을 봐서다.
정치 9단이라고 불리던 그조차도 천명국의 수완 앞에 물러나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다만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면 신이라는 목표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다고 신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자네는 신이 되고 싶은 건가?”
“글쎄요.”
애매모호한 최준호의 대답.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에 대한 전한철의 생각은 간단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게. 누구도 갖지 못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마르지 않는 재화를 갖게 될 수도 있겠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들을 따르게 할 수도 있을 테고.”
모두 힘을 갖고 권력을 갖게 되면 하는 것들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 모습을 보면.
“단지 자네가 그걸 원하지 않는 듯하지만.”
“딱히 끌리지 않네요.”
“그래도 해보는 게 나아.”
자신이 최준호 나이 대였다면 아니, 5년 전만 되었더라도 신이 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천명국이라는 싹이 틔우지 못하도록 짓밟고 짓이겼을 수도 있겠지.
의외라는 감정이 담긴 최준호의 시선이 도달했다.
“그 후의 일은 전혀 걱정되지 않으시나보네요.”
“나야 앞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죽기는요. 대통령님은 백 살 넘어서도 정정하실 거 같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하지만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건 곤란하지. 마지막까지 모든 걸 불태우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게 내 소망이야. 아프다고 골골대면서 물고 늘어지는 건 사양하고 싶어.”
“의외네요. 대통령님이라면 끝까지 권력 의지를 놓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자네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
하지만 자신은 최준호처럼 될 수 없다. 그리고 더 잘해낼 사람이 등장했다.
그랬기에 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집착이 사라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여기에서 멈춰 선 자신과 달리 최준호는 계속해서 달려야 한다.
그 끝은 어디일까.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초인을 보면서 전한철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불안감을 털어냈다.
사회화라는 과정을 거친 최준호는 결코 세상을 무너뜨릴 존재가 아니었다.
“대신 우리나라 사정은 좀 봐주고.”
“예, 뭐,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말에서 신이 될 생각이 없다는 걸 느꼈다.
안심이 된다는 건 최준호에 대해 100%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하긴, 신도 아닌데 어찌 완전히 믿을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하지 말고.”
“그래도 걸리면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
마음 놓고 안심했으면 큰일 날 뻔했군.
그래,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걸리지만 않으면.
*
* *
대통령과 대화는 상당히 의외였고 동시에 흥미로웠다.
애초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한 조언이었다.
내 생각이라는 건 이미 존재했고, 참고 정도만 해볼 생각이었다.
그저 대통령은 신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대화를 하니 울림이 있었다.
신이 된다는 것. 결국 내 욕망이 흐르는 방향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신이 된다고 해서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성공? 그거야 이미 손에 거머쥐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시절에나 강한 힘을 손에 넣고 각성자로 성장해서 멋진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사람은 결국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만큼 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과거의 잔재를 지우는 것.”
더 이상 미쳐있던 과거에 얽매이는 내 모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신이 된다는 건 완벽해짐을 의미하지만 내가 볼 때 그건 불가능하다.
사이비 교주 녀석이 그랬고, 리그의 아르고스가 그랬다. 더 나아가 천둥새도 그렇고 자칭 신도 그렇다.
녀석들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을 참칭하고 드높은 자리를 탐했다.
신은 이뤄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다.
대통령의 말은 구체적이지 않던 사실을 확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도 거의 다 이뤘으니까.”
대통령과의 대화가 머릿속을 정리하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그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떨어져 있던 용용이가 나타났다.
[대체 날 밀어두고 무슨 짓을 한 거야?]“개인적인 얘기.”
신에 관한 얘기는 굳이 녀석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아서 격리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면 아마 녀석이 가장 펄쩍 뛰었을 것이다.
[나한테 감춰봤자 뭐한다고.]“사사건건 딴지 거는 녀석이 뭐 예쁘다고 다 보여주냐.”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야? 너한테 그런 자각은 별로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아주 사람 머릿속이 꽃밭인 걸로 아는군.
“그런 걸로 알아둬.”
[어차피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어.]말은 그랬지만 용용이의 눈알은 부지런히 굴러가면서 날 쫓고 있었다.
*
* *
천명국의 대통령 취임 이후, 내 팀에 관한 내용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바로 정주호의 국가 소속 초인행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내 앞에 선 정주호는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안하게 됐다.”
“예상하던 일인데요. 못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미안할 거 없습니다.”
“그래도 은혜를 입어놓고 떠나게 된 건데 미안하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 은혜는 보호에 성공한 모발이 비례하는 듯했다.
“국가 소속이 된다고 해도 내가 최준호 팀이었던 과거를 잊지 않을 거다. 네 성격상 부정청탁을 하지 않을 테니 언제나 네 팀이라 생각하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죠.”
어차피 정주호의 성격상 청탁같은 건 통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내가 청탁할 일이 없기는 하고. 그저 내가 맺은 인연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게 된 것에 만족할 뿐이다.
실제로 정주호는 친 천명국으로 분류되고 있고, 초인이 되면서 천명국에게 강한 힘이 실리게 될 거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정주호를 활용하여 정계 개편과 차기 주자로 양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정확해서 천명국이 말한 건 줄 알았다.
“그리고 말인데…….”
“말씀하시죠.”
머뭇거리는 행동을 재촉했음에도 잠시 더 고민하던 정주호가 어렵게 말했다.
“다현이와 관련된 일이다. 부모, 그러니까 내 형과 형수님에 관련된 일이지. 조만간 다현이랑 미국에 갈 거라고 들었다.”
“갈 예정이죠. 근데 주된 용건은 그게 아닙니다.”
미국에서 주기로 한 것들을 받으러 갈 때 겸사겸사 처리할 생각인 거지.
정주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되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같이 가게 되면 아마 많이 귀찮아질 거다.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다현이를 데려가기 위해 공을 들였고, 형 부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내가 손을 쓸까봐 그런 겁니까?”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정주호는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선을 넘는다면 손을 써도 돼. 대신 확실하게 주제 파악을 시켜줄 수 있나?”
“주제 파악?”
“너와 그 사람들의 격차.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 있는 격차까지.”
“…….”
무척 의외의 말이었다.
*
* *
정주호가 내게 한 의뢰는 굉장히 성가신 거였다.
앞으로 내 말 잘 듣겠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부탁을 해오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닌 인물이다.
나는 청와대에 요청하여 정다현의 가족 관계에 관한 정보를 받아보았다.
정다현의 부모님은 출세지향적인 성격에 자식을 자기 물건처럼 여기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주호가 국가수호국에 있던 시절부터 청탁으로 충돌을 빚었고, 미국행을 선택할 때 정다현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데려가려던 걸 간신히 남기는데 성공했다.
정주호가 걱정하는 것은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정다현의 트라우마를 자극해서 정다현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우였다. 미국에 가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정다현에게 방해만 될 거라 확신했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정다현이 극복할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정다현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 정도 사소한 것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겠지.
정다현도 내 생각과 동일했다.
“제게 부모님은 벽과 같아요. 이걸 완벽하게 극복하면 한 단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요.”
미국행 비행기에서 정다현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내가 도와주는 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나머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고. 본인의 의지가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
다만 아쉬운 건 고속비행이 아닌 비행기를 타고 가려니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거다.
[오히려 몸 상하지 않고 편안하게 가니까 좋은 거 아냐?]약간 괴롭더라도 시간을 절약하는 게 더 좋으니까 그러는 거다.
[전혀 이해가 안 돼. 아마 나 말고 다른 인간들도 네 생각을 이해 못할 걸?]아무래도 용용이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 방문은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와 사뭇 달랐다.
그때는 비공식적으로 방문했었다면 지금은 공식 방문이다 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 상태였다. 옆의 외교관은 타국 대통령 방문에도 보여주지 않는 극진한 대접이라며 들뜬 기색을 보였다.
그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냐면 부통령 다니엘 로건이 직접 나와서란다.
정다현은 낯선 공기를 한껏 들이키더니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다.
“환영받아서 좋네요.”
“귀찮기만 한데.”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니까요. 세계최강국이 대우를 해준다는 건 기분 좋은 것 같아요.”
“그런가.”
난 이런 게 별로 와 닿지 않던데.
내가 내성적이라서 그런 건가.
아무튼 환대 속에서 우리는 거처로 이동했다.
부통령이 유독 정다현에게 잘해주는 걸 보면 역시 목적은 저쪽인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 볼일을 위해 움직였다.
고작 몇 달 전일 뿐인데 LA는 상당히 많이 변해 있었다. 잦게 울려 퍼지던 총성은 자취를 감췄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시민의 숫자는 늘어나 있었다.
도시 상태가 꽤 괜찮게 바뀌었군.
그리고 다음 날, 나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팬텀이었다.
그는 내게 정식으로 의뢰했다.
“레비아탄을 제거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