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날 향한 팬텀의 눈은 진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깊은 심계를 드러내고 할 것도 없이 현재 파티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 그렇겠지.
레비아탄.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은 파티를 쇠락하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의 괴물이다.
대서양에 똬리를 틀고 대서양 전체를 자기 영역으로 삼은 이 괴물은 미국과 유럽을 주무대로 삼았던 파티의 세력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그 결과 미국의 통제를 유럽 지부는 벗어나기 시작했고, 파티 세력은 양분되고 말았다.
더욱 뼈아픈 것은 야심차게 조직했던 리그마저 배신하면서 북미로 영향력이 축소된 점이다. 그마저도 최근에 정부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파티 입장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마물이 바로 레비아탄인 것이다.
대서양을 갈라놓은 이 마물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은 대항해시대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레비아탄이란 마물의 위용은 대단하다.
이 개념으로 보면 투뿔 마물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단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고, 사막의 악몽이나 레비아탄이나 전설 혹은 괴담으로 남은 마물들의 힘은 능히 그 단계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하니.
“이걸 없애면 내가 얻는 건?”
“세상의 절반을 주겠네.”
“내가 그걸 탐낼 거라 생각하고 하는 말이고?”
“아닐 테지. 하지만 난 네가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왜?”
“보다 강한 마물을 사냥하는 것이 네가 가진 목표니까.”
“…….”
“아닌가?”
[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팬텀이나 용용이 말대로다. 레비아탄이라는 마물에 흥미가 생긴 건 사실이니까.
동시에 반감도 들었다. 녀석은 내 힘을 이용하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아마 내가 레비아탄을 제거하면 팬텀은 파티의 힘을 다시 복원하려고 들 테지. 그게 나한테 무슨 이익이 되지? 오히려 귀찮은 일만 발생하지 않을까.
“그걸로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고?”
“나에 대한 반감이 커져서 거절하려는 걸 테지.”
“잘 아네?”
“하지만 강한 마물을 사냥하고 싶은 욕구를 믿고 있지. 우리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다는 걸 잘 아니까.”
진짜 나에 대해 많은 걸 조사했군. 어차피 유럽 쪽 파티 세력은 상당 부분 와해가 되었기에 팬텀이 그걸 다시 복구하려면 유럽 연합과 충돌도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지지고 볶는다면 상당한 여력이 소모되겠지. 내 입장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면 나쁠 건 없다.
“이걸로 흥미를 자극하기에 모자란데.”
세계는 넓고 레비아탄이 아니더라도 강한 마물은 널리고 널렸다.
내 몸값이 높아질 걸 알고 있는데 굳이 레비아탄을 제거해줄 필요가 있나.
팬텀은 이마저도 알고 있던 것처럼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이런 건 어떤가?”
“뭐?”
“리그의 본거지를 알려주겠네.”
“…….”
[와,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네. 저 늙은 인간 귀신이네, 귀신이야.]용용이 말대로다.
리그의 본거지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던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괜찮은데?”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보게. 그것 말고도 우리가 준비한 선물꾸러미는 많으니.”
팬텀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재수 없게 웃었다.
그냥 브레인워싱으로 정보를 빼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너도 대단하다.]*
* *
팬텀과 대화도 그렇고 그 뒤에 이어진 미국 정부의 행보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부통령 다니엘은 직접 나를 상대하면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다른 사람들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걸로 내가 귀찮을 일을 상당히 덜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게 내 구미에 맞는 행동이다.
“괜히 세계를 주름 잡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지.”
그러면서 내게 핵심 몇 가지를 전달하고, 주로 정부 외교단과 접촉하면서 다각도로 협상을 벌였다. 내가 귀찮을 일은 철저하게 피해가면서 실속을 챙기는 행보였다.
[그래서 그 마물 사냥은 어떻게 하려고?]용용이는 레비아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대서양에 자리 잡은 마물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세계가 좁다하며 돌아다니는 신수가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마물을 모른다고?
[빨빨빨 돌아다니면서 충돌을 일으켜서 우리한테 좋을 게 없거든.]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확 이해가 된다. 용용이 녀석이 시비를 부르는 관상이긴 하지.
내 속마음을 듣기 무섭게 용용이가 발끈했다.
[선 넘네? 아무튼 대답이나 빨래 해줘.]“고민 중이다. 이게 남 좋은 일을 해주는 걸 수도 있어서.”
[꽤 계산적이네?]“거슬리는 녀석 처리하는 것도 좋지만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서 혈종일 때도 내 힘을 이용하려던 녀석의 머리는 꼭 날려줬다. 몇 번 그러니 날 이용하기는커녕 접근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더라.
그럼에도 이용하려던 녀석은 꾸준히 등장했고 꾸준히 머리가 날아갔다.
오히려 내가 손을 못 쓴 것은 날 바가지 씌운 장사꾼들이었지.
난 그걸 좋다고 이용했고.
지금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호구의 역사다.
[근데 고민하는 건 꽤 끌린다는 거네?]“그렇지.”
[그럴 거라 생각했어.]그리고 날 유도하는 건 팬텀만이 아니었다.
용용이 이 녀석도 아까 전부터 은근하게 내 결정을 유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레비아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지?”
[그렇지?]“그 말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걸 테고.”
[으응.]나는 아까 전부터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내용을 용용이한테 꺼내놓았다.
“그럼 하나 묻자, 레비아탄은 신수냐 마물이냐? 아니면 둘 중 아무것도 아닌 거냐?”
[…….]용용이가 침묵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모른 척을 하면서 은근히 유도하는 걸 보면 100% 알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생각하고 정리되면 말해라.”
어차피 내 힘을 빌리는 곳을 원하는 건 용용이나 팬텀이었으니까.
나야 가만히 지켜보다가 생각을 바꾸면 그만이다.
그로부터 30여 분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생각의 정리를 마쳤는지 용용이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레비아탄은 특수한 존재야. 신수도 마물이라고 할 수 없는 경계선에 걸쳐있어.]“자세히 말해봐.”
[그러니까…….]이어지는 용용이의 말은 상당히 의외의 것이었다. 본래 레비아탄은 대서양에 존재하는 여러 마물 중 하나였단다. 그 자체로도 강하던 이 마물은 대서양에 표류하던 신수의 정수를 흡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신수의 힘을 고스란히 흡수한 것은 물론 신수의 영성마저 갖추게 되었다.
“그럼 신수 아냐?”
[아니야.]영성을 갖췄지만 레비아탄은 여전히 마물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신수가 가졌던 힘을 고스란히 흡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신수도 마물도 아닌 경계에 걸친 생명체인 레비아탄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신수들은 레비아탄에 대해 상당 부분 우려하고 있어. 그건 나도 현아도 천둥새도 마찬가지였고. 녀석은 그걸 알고 있어서 대서양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고.]오히려 대서양을 철저하게 사수하려고 했던 것이 팬텀에게 재앙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게 내가 알 바는 아니고.
“그래서 너도 날 이용해서 녀석을 제거하려는 속셈을 가진 걸 테고.”
[그야 저 인간이 부탁하니까 겸사겸사 내 목적도 이루고 좋잖아? 너도 강적과 싸워서 좋고. 모두가 행복한 전개야.]아주 음흉한 녀석이다.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날 방심시키다가 이런 방식으로 목적을 이뤄내려고 하다니. 설마 여태까지 허술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전부 연기였던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저게 용용이 원래 모습일 것이다.
[진짜 실례되는 행동들이네. 신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물론 나는 신수를 무시하진 않는다. 하지만 용용이는 무시당해도 싸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특별대우라고 보면 된다.
[와! 진짜!]방방 날뛰어봤자 그게 전부였다. 아무튼 나는 레비아탄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얻고는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다현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만났어요.”
“그래?”
“네, 부모님은 여전하시네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쓰게 웃는 정다현의 얼굴에는 처연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가족과 이야기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나보다.
“넌 어떤데?”
“마음이 아파요.”
“어릴 때랑 비교해도?”
어둡던 정다현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어진다.
“예전처럼 칼로 저미는 정도는 아니에요. 어쩌면 기대가 크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어요. 사실 큰 기대는 없었거든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지.”
그 점에서 미국에 와서 실망스러운 부모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정다현은 나보다 용기가 더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혈종이던 시절, 나도 내가 미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그리고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먼발치에서 여러 번 가족이 있던 곳을 찾곤 했다.
하지만 끝내 가족 앞에 나서지 못했다.
날 잡기 위해 각성자들이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가족이 날 편견 없이 맞아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두려웠다. 가족마저 날 외면하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점에서 직접 마주한 정다현이 더 낫지.
“간단하게 생각해.”
겁쟁이가 용기 있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꼴이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기에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다. 과거로 돌아오는 기적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
“과거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달라. 지금의 넌 초인이 될 것으로 확실시 되는 사람이지. 그 위치를 생각하고 바라봐. 그러면 돼.”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상하가 변치 않지만 초인이 될 것으로 유력하며 미국에서 모셔가려고 하는 인재인 정다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물 사냥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교수 부부와 미래의 초인 구도가 되니까.
교수도 여전히 사회적 존경을 받지만 초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
특히 영웅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에 진심인 미국인 만큼 초인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것이 타국 초인들의 귀화 요소로 작용할 만큼 말이다.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날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사회적 지위로나 완력으로나 모두요.”
“그래.”
한결 풀어진 정다현의 얼굴을 보니 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 다음은 그녀의 영역.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짝짝짝!
그때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박수를 쳤다.
“아주 훈훈한 장면이네요. 보고 감동받았어요.”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안나 크리스틴이었다. 나나 정다현이나 안나 크리스틴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은가 봐요?”
“미국이라면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리고 이 점을 이용하고 있던 거 아닌가요?”
“나는 모르겠네요. 내 관심사는 그쪽보다 다른 곳에 있거든요.”
그러면서 은근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안나 크리스틴이었다. 미간을 모으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다현도 물러서지 않는다.
“다행이네요. 저도 당신이 왔으면 바로 거절했을 텐데.”
“그건 제대로 된 로비스트를 만나보지 않아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래도 의미는 없는데요.”
“알아요. 그래서 나서지 않은 거죠. 아무 의미가 없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
정다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내 말에 안나 크리스틴이 이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인위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기 좋은 미소였다.
“정부 의뢰를 받았거든요.”
“뭐지?”
“의뢰 내용과 상관없는 사람이 있는데 말해도 되는 걸까요?”
“자리를 비울게요.”
본인과 상관없다면서 정다현이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들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파티니 리그니 레비아탄이니 들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둘만 남게 되자 안나 크리스틴은 정부가 한 의뢰 내용에 대해 말했다.
“정부에서 의뢰한 내용은 이래요. 파티에서 의뢰한 레비아탄의 사냥 제안을 거절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