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파티와 미국 정부의 입장 차이는 당연할 수도 있겠다. 이런 제안이 오는 것도 예상 못할 리 없지.
“이야기부터 들어보지.”
“뻔한 이야기에요. 정부에서는 파티가 이 이상 커지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파티가 휘청이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해요. 하지만 대서양이 단절된 점, 리그의 분화는 정부에 새로운 기회를 주었어요. 대통령은 이 구도가 보다 오래 이어지길 원해요.”
“다른 꿍꿍이는 없고?”
“감춰서 얻는 이익보다 준호에게 들켜서 받을 불이익이 더 크거든요.”
잘들 아는군.
하긴, 그동안 꿍꿍이 가진 녀석들의 머리를 직접 부숴놨으니 모르는 게 이상한 건가.
[대놓고 폭탄 취급받는 건데 그걸 만족스럽게 여겨?]폭탄이든 지뢰든 날 속이려는 의도가 중요한 거다. 누구든 걸리면 가는 거다. 그리고 안나 크리스틴이 가져온 이번 제안은 투명할 정도로 의도가 훤히 보이는 거였고.
그리고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거절하지.”
“역시 그렇군요.”
그게 끝.
안나 크리스틴은 내게 이유를 캐묻거나 그러지 않았다.
“설득할 생각이 없었군.”
“애초에 준호를 설득할 재료가 없다시피 했거든요.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운을 한 번 떼어보고 싶어 했고요. 그래서 제가 나선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패할 건 알고 있었고.”
“의도된 실패라는 건가.”
“그렇죠. 정부에서는 큰 기대가 없고 준호의 생각을 알게 돼서 다행이죠. 저는 어려운 일을 직접 나서서 해줬으니 앞으로 더 많은 일거리를 받게 되고.”
한 마디로 이 제안은 전혀 기대를 갖지 않고 한 번 찔러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건가.”
“네. 특히 레비아탄이 사라진다면 파티는 유럽의 힘을 흡수할 수 있겠죠.”
“그게 쉬울 것 같지 않은데.”
“실제로 쉽지 않겠죠. 하지만 그것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게 무서운 이야기니까요. 실물도 중요하지만 기대감이라는 게 가치를 결정하기도 해요. 파티라면 그 영향력이 더더욱 더 강하고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심각하게 보고 있는 중이란다.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근데 정다현한테 관심 없다는 건 진짠가?”
오히려 정다현에게 보인 태도에서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볼 때 미국이 정다현에게 들이는 공이 보통이 아니었는데 안나 크리스틴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건가 싶었다.
스르륵 풀린 안나 크리스틴이 눈을 찡긋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미래에 초인이 될 게 분명하고 사생활에 문제가 없고 성격도 반듯하죠. 게다가 아름다운 미모까지. 다현이 미국의 초인이 된다면 단숨에 월드스타 반열에 오를 걸요.”
여기서도 외모가 중요하군. 하긴, 실제로 그 덕을 봤으니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안나 크리스틴은 특히나 정다현의 존재가 아시아 출신들의 충성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왜 관심 없다고 한 건데?”
“다 전략이죠.”
“전략?”
“여자가 나쁜 남자 매력에만 끌리는 게 아니거든요. 초인을 섭외할 때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해요. 그중 하나가 관심 없는 척을 하면 호기심이 생겨나는 방식이죠.”
이 방식으로 여러 초인을 데려온 적 있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나였다면 그냥 신경 껐을 텐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싶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진짜 관심이 없어요. 다현이 자발적으로 귀화하겠다면 좋겠지만 공작을 벌이면 준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거든요. 머리가 날아가기 싫으니 저는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거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군. 이럴수록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해주고 싶어진다.
왜냐면 나에 대해 안다고 과신하는 녀석이 꼭 이용하려고 나서거든.
[눈앞의 인간이 들으면 기겁할 걸.]내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것이지 굳이 그럴 생각은 없으니 괜찮다. 그리고 요즘 느끼는 것이,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날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걸 알고 있다.
예측 가능하다는 건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그걸 안 좋은 의도로 이용하는 녀석들을 다 죽이면 이런 좋은 일이 벌어진다.
“개인 의사에 맡겨놓겠지만 정다현은 제자 같은 개념이라서.”
“그럼 다현을 미국으로 데려오면 준호도 가능성이 있는 거네요?”
“왜 그렇게 얘기가 되는데?”
“그냥요? 궁금해서요.”
안나 크리스틴의 눈에 빛이 서렸다. 정다현만이 아니라 나까지 미국에 데려오려는 건가.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지.”
“안 그래도 계약 기간이 있으니 근사한 제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할게요. 준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나 크리스틴은 미국의 주 하나를 들어다 바쳐서라도 날 데려오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날 띄워주려는 말이긴 해도 과장이 심하긴 하다.
“정부가 그걸 받겠어?”
“그럼요. 준호만 있으면 파티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텐데요.”
그러면서 늘어놓는 전망이 꽤 그럴 듯했다.
내가 미국에 오면 오히려 파티가 활개 치지 못해서 세력 전체가 유럽으로 갈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안정감 있는 균형이 이뤄질 거란 등등.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플랜을 줄줄이 꺼내들고 있었다.
이거, 왠지 처음부터 준비한 거 같은데.
[애초에 목표는 너였던 거 같은데?]그렇지?
용용이와 내 생각이 모처럼 일치했다.
*
* *
정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팬텀의 제안을 고민하면서 나는 미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석유 카르텔이라고 불리는 미국 석유회사들도 있었고, 빅뱅 시리즈를 유통하는 각성자 장비 회사들도 있었다.
세계를 하나로 묶던 항로가 망가지면서 석유를 수급하지 못한 국가들은 마물의 심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면 자체적으로 석유 수급이 가능한 미국은 석유와 포스를 활용한 에너지원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장점인 셈이지.
석유회사는 내가 가진 안전한 항해 방법을 활용하려고 들었고, 장비 회사는 빅뱅 시리즈의 퀄리티를 더욱 끌어올릴 방법을 듣고 싶어 했다.
내가 비즈니스에 큰 재능이 없다보니 원론적인 대화만 이루어졌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미국이란 나라의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만남은 졸라맨과 박사 보디빌더들이었다.
여전한 육체미를 자랑하면서 만남을 가진 그들에게 나눈 주된 내용은 대학원생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이었다.
육체개조에 일가견이 있는 만큼 고속비행을 견뎌낼 강인한 육체를 만들 수 없을지 물어봤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준호! 졸라 강한 육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준에 불과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 기프트와 약물.”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기프트는 능히 전설급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약물을 통한 강화도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연하게도 약물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럼 기프트를 구하는 것밖에 없는 셈이다.
난 또, 육체개조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서 그걸로 가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매일 모이면 3대 몇 치느니 얘기해서 기대했는데 괜한 거였군.
기대가 있으면 역시 실망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준호는 그걸 사용하지 않아도 굉장히 유리한 고지에 있어.”
“왜?”
“그야 준호는 졸라 뛰어난 대학원생들이 있으니까!”
“이미 한계라고 하던데.”
좀 부려먹었더니 요즘 기프트 자아들의 난동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 말에 졸라맨이 눈을 부릅 뜨더니 사자후를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거 전부 졸라 엄살떠는 거야!”
“뭐?”
“준호는 진짜 졸라 쥐어짜낸 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쥐어짜내면 더 나오는 게 대학원생이라고!”
“무슨 마르지 않는 샘물도 아니고.”
하지만 졸라맨의 태도는 진지했다.
“졸라 쥐어짜봐! 그러면 마른 걸레에서도 물은 나온다고!”
그 전에 마른 걸레가 너덜너덜 찢겨나갈 거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졸라맨의 말은 일리가 있다. 이어진 말에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일 뿐, 시키는 것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단다. 가끔 보이는 능동적인 모습에 속지 말고 한계에 한계까지 몰아붙여도 쥐어짜낼 것이 나온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대학원생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지 말 것. 이것이 졸라맨의 조언이었다.
아주 옳은 말이다.
내가 왜 그걸 확신하냐면.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내 안의 자아들이 미쳐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는 아니지만 졸라맨만큼은 죽이겠다는 선명한 살기가 내게 확신을 심어줬다.
이 방향이 맞군.
“땡큐, 잘 써먹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졸라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
*
* *
레비아탄을 놓고 고민이 길어질 이유가 없었다.
예정된 모든 미팅 후, 팬텀과 만남 자리에서 나는 의뢰금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챙겨줄지 듣고 싶은데.”
“우리가 갖고 있는 필수적인 것들을 공유하지.”
팬텀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선물 꾸러미를 펼쳐들었다.
내가 의뢰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다면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선물들이었다.
식량, 무기, 에너지.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는 미국에서 나는 풍부한 곡물의 수출을 약속했고,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스마트 헌팅 시스템(SHS) 제공을 약속했다. 그리고 미국의 석유와 마물의 심장을 가공한 포스 가공 노하우를 언급했다.
현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쥐고 있는 파티의 것을 내놓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레비아탄 사냥에 사활을 걸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정도라면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사냥 의뢰 받아들이지.”
“흔쾌히 받아들이는군. 좋군, 좋아.”
이 전까지 볼 수 없었던 미소가 팬텀의 입가에 그려졌다. 레비아탄이 얼마나 속앓이를 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마물로서 확실히 높은 단계를 달성했는데 여기에 신수의 정수까지 흡수했다. 게다가 바다라는 배경까지 두고 있으니 사냥이 불가능하겠지.
못해도 투뿔이라고 볼 때 통상 바다 마물은 한 단계 높게 평가받으니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 단계라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투뿔은 입에 착 감기더니 삼뿔은 그닥이다. 그냥 용용이 같은 녀석이라고 해야지.
[내가 왜 나와?]그래도 신수의 정수를 흡수했으니 너 정도로 강하진 않을까?
[내가 훨씬 더 강해.]확인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강하게 말하는군. 용용이다운 행동이다.
아무튼, 이렇게 보니 꽤 도전해봄직한 녀석이다.
“시원하게 받아줬으니 우리도 서비스를 제공하지.”
“무슨 서비스?”
“정다현의 부모님을 우리가 케어하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팬텀은 이것이 사소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정다현의 관계에 대해 조사 정도는 했을 테고, 미국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푸는 거겠지.
“자세히 말해봐.”
“정다현과 달리 부모님은 욕심이 많더군. 하지만 인종적 한계와 인맥 관계로 충족이 되지 않은 상태다. 그 욕구불만이 딸의 앞길을 가로막을 지경에 있지. 우리 파티가 그걸 충족시켜주겠다.”
실력은 나쁘지 않으니 부족한 부분을 파티에서 채워주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건 좋게 보았을 때 할 말이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다현의 부모를 인질로 잡아두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제거하는 게 낫지 않나?”
“뭐?”
“그게 서로 더 편할 거 같은데.”
“고작 신경 좀 쓰이게 했다고 제거해? 그 둘은 욕심이 많지만 실력이 있다. 그리고 네가 아끼는 제자의 부모이지 않나.”
“그렇기는 한데.”
욕심이 많은 사람은 꼭 사고를 치더라. 그래서 나는 두고 보는 것보다 제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다현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당연히 정다현은 모르게 해야지.”
귀찮아서 머리를 날리는 거지, 마음만 먹으면 자연사 한 걸로 꾸며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래도 팬텀이 나서겠다고 하니 한 번은 지켜봐야겠지.
“그럼 일단 지켜보고 결정하지.”
“현명한 선택이로군.”
가슴을 쓸어내린 팬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광기 앞에서 가짜 광기는 무의미하네.]용용이는 팬텀의 광기를 인상 깊게 봤나보다.
[그거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