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결국 팬텀의 간곡한 만류에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후환이 될 게 뻔하다면 미리 제거하는 게 편한데, 귀찮을 수 있는 일을 미리 처리해준다는 것치고는 팬텀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네가 더 무섭거든? 방해가 되면 치워버리겠다는 거잖아.]신수가 언제부터 인명을 귀하게 여겼다고 그런 소릴 해대는 건지 모르겠다.
[인명이야 크게 상관은 안하는데 네 사상이 무섭긴 해. 방해가 된다고 천둥새를 제거한 것도 그렇고.]무섭기는. 귀찮으니 치워두려는 거다.
결국 뒤에 붙은 말이 진심 같은데.
세상을 살다 보면 느끼는데, 내가 께름칙한 느낌을 받았을 때 끝도 그리 될 확률이 99%는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경험들이 빅데이터로 쌓여 본능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프트인 직감까지.
난 내가 느끼는 부분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기에 행동으로 옮기는데 망설임이 없다.
정다현의 부모는 관리해두지 않으면 귀찮아질 여지가 있다.
이럴 때 최선의 선택은 보통 없애는 거고.
[그 1%일 가능성은 없고?]당연하지만 없다. 게다가 세상일이라는 건 희망회로를 돌리면서 살아가면 큰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1%에 속할 사람이 불쌍하네.]그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면 내가 더 귀찮음을 겪었겠지.
오랫동안 고민하는 건 사양이다.
[와…….]놀란 용용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숙소로 복귀할 무렵이었다.
외교부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다가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초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굽니까? 예정된 사람은 없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외교부 직원이 소개한 손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정다현의 부모님이었다.
마침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좋다 싶었다.
[아는 사람이 있는데 없애겠다고?]그런 건 아니고, 팬텀이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봐둘 기회다.
[오, 성장했네?]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날 생각할 테지. 하지만 그것이 때때로 전부 좋은 건 아니다.
특히 점점 나를 예측 가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시점에서 모두의 예상에 부응할 이유는 없겠지.
[그럼 어떻게 하려고?]이렇게.
나는 정제되어 있던 기세를 해제했다. 옆에 있던 외교부 직원이 흠칫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지금의 내 모습은 갓 과거로 돌아왔을 때 모습과 비슷하다. 굳이 살기를 감추지 않고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을 것 같은 시한폭탄 같은 느낌.
지금은 날 알아보고 굳이 건드리지 않지만 가끔 주제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게 더 나을 때도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죠.”
“예, 그런데 설마…….”
“걱정하는 사고는 없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장관께 보고 드리러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러시죠.”
고개를 숙인 외교부 직원이 후다닥 물러났다. 아마 내가 사고칠 수도 있다고 보고하러 가는 걸 테지. 하지만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정다현을 정확히 반씩 닮은 부모의 얼굴들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최준호입니다.”
*
* *
정다현 부모님과 대화는 약 30여 분 동안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치고 방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표정은 꽤 밝았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네?]“…….”
[왜 그래?]“역시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도 그 생각하는 중이었어?]“그냥 그렇다는 거다.”
별 일 없이 끝냈지만 대화 분위기는 내 예상대로였다. 정다현의 부모님은 자기 출세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들이었다.
딸은 뒷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거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출세는 딸을 이용해서 하려고 하니 말을 다 한 것이다.
뻔뻔한 요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기세를 정제하지 않은 채 압도했고, 머뭇거리는 그들을 향해 미리 준비해둔 미끼를 투척했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초인이면서 박사로 유명한 졸라맨까지.
평생 접할 수 없던 화려한 인맥들에 눈이 돌아갔고, 미끼를 물고 희희낙락 물러났다.
나머지는 팬텀이 연착륙을 할 것이다. 실력이 있다면 기회를 받고 승승장구 할 것이고, 실력이 모자라다면 그대로 묻혀버리겠지.
[그럼 적절한 선에서 관리가 되겠네.]그렇겠지. 아마 녀석의 의도야 인질일 테지만 내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 테니 큰 문제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인간 여자한테는 의미가 있지 않아?]그렇게 인질로 활용될 거 같으면 제거하면 된다. 희망을 갖고 고문당하는 것보다 단칼에 잘라내면 고통이 덜할 테니.
그러면 정다현이 평생 미국에 갈 일은 없겠지.
[와…….]아무튼 정다현 부모 일은 이 정도로 하면 될 것 같고.
나는 외교부 직원을 불렀다. 어딘가 안도하는 그에게 정다현의 위치를 물었다.
“어, 그러니까…….”
“뭡니까?”
“정 비서관님은 지금 알렉스 시몬이라 불리는 분과 도시 밖으로 나간 상태입니다.”
“알렉스 시몬?”
“실력 좋은 각성자이면서 셀럽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조심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그거야 낯선 남자랑 밖에 나갔다고 하니 그런 거지! 그것도 몰라? 너 고자야?]모를 리가. 다만 정다현의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상의 나래라 그런 거지.
정다현이 도시 밖으로 나가겠다는 게 뭘 의미하겠는가.
“또 한 사람 버려놓겠군.”
*
* *
알렉스 시몬.
나이 31세.
캘리포니아의 리릭시스 클랜 소속 각성자인 그는 잘생긴 외모와 몸매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금발에 푸른 눈,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몸매를 가진 그는 정부에 고용되어 각성자를 모집하는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이며,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여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레벨 6에 도달하여 실력적으로도 크게 모자라지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풍부한 사냥 경험으로 곱상한 외모에 야성적인 매력까지 갖춰 미국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여인과 나란히 섰다.
우연이 아니다. 그가 이곳에 있는 건 정부에 의해 은밀히 받은 의뢰 때문이다.
알렉스 시몬은 자신 옆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평소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정다현.
그 이름은 정부로부터 몇 차례 들은 적 있다. 그리고 그녀를 꼬셔달라는 말을 듣고 자료를 살피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그녀는 레벨 7에 도달했으며, 5년 이내에 초인이 될 것으로 유력한 여인이었다.
이런 재능은 일찍이 샤일로 에게만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이 얼마나 전국적인 열기에 휩싸였던가. 결국 샤일로가 빌런이 되면서 그 실망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그 재능 하나만큼은 진짜로 평가받았다.
정다현은 그 재능마저도 뛰어넘는 진짜배기였다.
‘생각보다 쉬운 거 같으면서도 쉽지 않아.’
팬을 자처하면서 접근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 후, 몇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간단하게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친분관계를 가졌다.
문제는 그게 끝이라는 점이었다.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하는 건 금방이었으나 그 안의 경계로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취향을 물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관심사로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던 차에 사냥 이야기에 흥미를 보인 걸 파고들어 외부로 나가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전혀 뜻하지 않은 월척이 걸려든 것이다.
“시몬 씨는 배우 이미지가 강했는데 사냥에 진심일 줄 몰랐어요.”
“근본은 각성자이기 때문입니다. 배우로서 많은 분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좋지만 각성자로서 마물을 사냥하는 본분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멋지네요.”
자신을 향한 정다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동안 넘을 수 없든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은 것이다.
‘이거였군.’
사냥 중독에 가까운 성향이라고 해서 거짓일 줄 알았는데 이게 사실일 줄이야.
그래서 더 매력적인 건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거겠지.
몇 차례 정다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무척 마음이 들었던 알렉스 시몬은 욕심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사람이란 낯선 외국과 매력적인 이성이 있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개방감을 보이기 마련이다.
어떻게 단계를 뛰어넘는지 알게 된 이상 방법은 쉽다.
가장 중요한 건 분위기를 잡는 것.
하지만 알렉스 시몬의 뜻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다현은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마물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마물의 흔적을 발견했다.
“마물을 잡으려면 새끼를 이용해서 유인하는 게 좋아요.”
“예?”
“따라오세요.”
“자, 잠깐……!”
알렉스 시몬은 정다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녀는 편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그는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올 정도.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간신히 따라온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마물의 둥지였다.
“여긴 어떻게?”
“지금 부모가 사냥을 떠난 상태에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상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일은 없어요. 이 정도 규모에 사냥된 마물들을 보면 최대로 쳐도 유해 7단계에요.”
그게 문제였다.
유해 7단계라면 레벨 7 각성자가 여럿 포함된 사냥팀을 끌고와야 한다.
그런데 정다현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설마 사냥할 자신이 있기라도 한 거란 말인가.
“이런 마물의 둥지에는.”
정다현은 망설이지 않고 둥지로 뛰어들었다.
알렉스 시몬이 놀라서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정다현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끼이이!
잠시 후, 그녀는 자기만한 크기의 마물을 질질 끌고 나왔다.
“새끼만 있죠.”
그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검집째 뽑아든 검을 휘둘렀다.
퍽!
끼에엑!
정다현이 칼등으로 후려치자 새끼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연이어 매타작을 하기 시작했다.
성체 마물보다 한없이 약한 마물의 전신이 붉은 멍으로 물들었다.
그럼에도 정다현의 매타작은 멈추지 않았다.
“…….”
알렉스 시몬은 그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새끼 마물을 초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대화할 때 모습만 보면 마물을 사냥할 때도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할 것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해놔야 저항 의지가 꺾이죠. 성체는 죽기 전까지 인간을 향한 적의를 지우지 않지만 새끼는 가능해요.”
끼이이이!
정다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새끼 마물이 기겁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털을 움켜쥐자 뜯겨지는 고통에 고분고분 일어났다. 새끼를 완전히 틀어쥔 정다현은 넓은 들판으로 끌고 나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사냥을 끝낸 성체는 둥지에 새끼 피를 보고 쫓아올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서 성체를 잡아야죠. 편하게 끌고 와야 하니 다리는 건드리지 않았고요.”
“…….”
그리고 정다현의 말대로 잠시 후 마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유해 7단계 마물이었다.
진짜 나타날 줄이야.
생각보다 더 강한 마물의 등장에 알렉스 시몬의 표정이 급변했다.
“저걸 어떻게 혼자 잡습니까?”
“왜 못 잡나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그게 무슨…….”
알렉스 시몬이 뭐라 묻기도 전에 정다현이 검을 휘둘렀다.
끼이이!
푸른 포스가 기다란 막대기처럼 쏟아지더니 그대로 새끼 마물의 다리를 잘라버렸다.
피멍 투성이가 된 새끼가 바닥을 뒹구는 걸 보고 성체가 분노를 표출했지만 새끼가 잡혀있는 상태에서 신경이 분산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든 정다현의 검격이 연이어 마물의 가죽을 두들겼다.
“…….”
홀로 유해 7단계 마물과 대등하게 맞서는 모습을 알렉스 시몬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접전이 이어질수록 마물이 새끼의 존재를 잊고 대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쾅!
마물의 무지막지한 힘에 뒤로 밀려버린 정다현은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새끼 마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몸과 분리되는 새끼 마물의 목.
바닥을 뒹구는 새끼 마물의 눈동자가 부모 마물에 머물렀다가 초점이 흐려지더니 빛을 잃었다.
키야야야야!
졸지에 새끼를 잃은 마물이 분노하며 달려들었지만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달려드는 마물을 정다현은 여유롭게 요리했다.
조금 전 접전은 마치 마물의 힘을 파악하는 절차였다는 듯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면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혀 힘을 빼놓았다.
이성을 잃고 날뛰던 마물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정다현의 속도를 쫓지 못하다가 움직임이 멎어버렸을 무렵, 망설이지 않고 마물의 목을 날렸다.
바닥을 뒹구는 마물의 머리를 보다가 가까이 다가간 정다현은 확인 사살을 위해 마물의 머릿속에 칼을 꽂은 뒤 한 차례 휘저었다.
마물의 피와 뇌수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와 지면을 흠뻑 적셨다.
“익숙하지 않은 유형이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가죽은 이래서 못 써먹겠어요.”
“…….”
“역시, 이 맛이야.”
마물의 피가 묻은 채 활짝 웃는 정다현의 모습.
알렉스 시몬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미소였지만 감히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