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역시 예상대로였다. 도시 밖으로 나갔던 정다현은 홀로 유해 7단계 마물을 사냥했고, 그 뒤로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잘생긴 녀석이 뒤따라 들어왔다.
나를 본 정다현이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다녀왔어요.”
“고생했어. 캘리포니아 마물은 어때?”
“좀 더 무지막지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익숙해지면 공략은 더 쉬울 거 같아요.”
“큰 곳이면 힘이 중요해지지.”
“네, 그런 거 같아요.”
마물도 지역성을 띠는데, 미국 마물은 대체로 직선적이고 힘을 내세운다고 한다.
힘 센 멍청이를 요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사냥에 임한 것이 정다현이다. 마물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가서 힘껏 후벼내는 걸 당해낼 마물은 없겠지.
“네 실력이 는 거야. 힘을 앞세우는 건 단순무식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러네요.”
“아무튼 고생했어. 그리고 저쪽은?”
난 이미 전해 들었지만 알렉스 시몬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잘생기긴 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생각보다 더 느끼해 보인다. 저런 얼굴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가.
[내 빅데이터에 의하면 여자들이 선호한 얼굴이야. 그리고 환경에 맞게 표정을 바꿀 줄 아네. 봐, 너랑 눈 마주치니까 호감있는 척 하잖아.]음, 뒷골목에서 봤으면 바로 손부터 썼을 것이다.
“알렉스 시몬입니다, 헤드 브레이커.”
“제게 오빠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곳에서 유명한 배우인데 실제로도 뛰어난 실력자기도 해요.”
“그래?”
“…….”
그 의도가 빤히 보였기에 알렉스 시몬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내가 알 정도면 정다현도 알 텐데 좀 이상하긴 하다. 눈치가 없나?
[너보다 눈치가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내가 눈치 없는가에 대해서는 반박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정다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정의에 대한 관점이 바뀐 뒤로 줄곧 사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옆에 있는 녀석은 그게 아닌 듯했지만.
“그래서 마물 사냥에 관심이 많다고?”
“여러 활동을 하지만 각성자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연히 더 강해지는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 블랙 프린세스가 강해진 것은 많은 각성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쪽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블랙 프린세스는 정다현의 영어식 이명이었다.
한국어로 나찰녀라 불린 걸 어떻게 번역할지 많은 고민을 한 듯한데 차마 데빌이나 데몬이라고 하지 못한 듯했다.
정다현은 그걸 낯 간지러워했지만 나찰녀의 영어식 번역을 듣고 블랙 프린세스로 만족하기로 타협을 했다.
그나저나 알렉스 시몬 이 녀석의 말에 진심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진짜 관심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정다현이 첫 사냥이다 보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건가 싶었다.
[딱 봐도 그게 아닌데…….]아니긴, 그럼 제대로 된 걸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럼 제대로 된 걸 보여주면 될 거 같은데.”
“예?”
“강해지는데 관심이 있다며. 우리 방식대로 하면 제대로 강해질 수 있지. 실제로 이걸로 초인이 된 각성자도 여럿 있고.”
물론 재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견뎌낸다면 초인도 가능하다.
[살아서 견뎌내기만 한다면 말이지.]“그럼 가지.”
“자, 잠깐……!”
알렉스 시몬의 표정이 바뀌면서 제지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결국 녀석은 포기하고 뒤따라왔다.
그리고 함께 사냥하고 며칠.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죽어가던 알렉스 시몬은 사흘째 되는 날 도망치고 말았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근성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
* *
“꽤 실력 있는 사람들이더군.”
다시 만난 팬텀의 표정은 한 층 밝아져 있었다. 정다현의 부모님 건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풀린다고 말하더라.
나야 실력을 검증할 부분이 없으니 팬텀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더 상관 안할 테니 알아서 잘하고.”
“그러겠네, 그리고.”
팬텀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는데 망설였다. 뭔가 싶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알렉스 시몬을 정다현에게 붙인 건 내 의지가 아니네. 정다현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보기관 중 한 곳의 움직임이지.”
“정다현을 꼬셔서?”
“가능성이 낮을 거라 듣긴 했는데 처참하더군.”
알렉스 시몬을 동원하면 100% 성공할 거라던 정보기관의 체면이 단단히 구겨졌다고 한다.
그 녀석도 그렇다.
미남계가 실패했어도 강해질 절호의 기회인데 그걸 붙잡지 못하다니.
“강해지고 싶다고 하더니 근성이 없어.”
“그쪽 사냥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나보더군. 부여받은 임무도 완전히 실패했고.”
부여받은 임무라는 것은 정다현을 꼬시는 거였지만 전혀 넘어오지 않았다고.
오히려 상상을 뛰어넘는 사냥 방법에 트라우마를 겪을 정도라고 한다.
고작 그 정도로 트라우마라고? 정다현의 방식은 마물의 습성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당장 사냥 방법에 교과서로 실려도 모자라지 않을 판에 그걸 보고 트라우마라니. 겉모습만 번지르르 한 약해빠진 녀석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지 않다고. 너랑 그 인간 여자가 특이한 거야.]글쎄다. 아직 우리 방식이 이해받지 못한 것일 뿐이다. 언젠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꿈도 크네.]“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돼.”
“내가 신경 쓰도록 하지. 그럼 이제 리그 본부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팬텀에게서 내가 원하던 정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리그의 본부란 곳은 본래 파티의 휘하에 있을 때 독립 후 따로 차린 곳으로 현재 본거지로 쓰일 확률은 낮다고 한다.
굳이 분류하면 본거지로 알려진 주요 거점 수준이다.
난 가만히 팬텀을 바라봤다.
“나한테 본거지를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중요한 곳 중 하나긴 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아르고스를 비롯한 삼악이 아직도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말장난이다. 하지만 본거지였던 곳이고 핵심이 모인다면 본거지라고 우길 여지도 있다.
아니, 사실 속았다는 괘씸함보다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본거지의 위치를 알고도 가만히 둔 게 이상했다.
“위치를 알면서 왜 못 날렸지?”
“요새기 때문이네.”
리그의 본거지는 각성자들이 몰려가도 교환비가 터무니없는 천혜의 요새라고 한다. 본래 이곳은 파티의 소유였던 곳이기에 얼마나 공략하기 어려운 곳인지 잘 알고 있기도 하고.
그래봤자 결국 각성자들이 있는 곳 아닌가?
게다가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미사일을 날리면 되지 않나?”
“이곳에 해커가 있어서 안 돼.”
“들어본 적 있어.”
“우리가 리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녀석이지.”
해커는 리그 12궁의 빌런으로, 모든 전자장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파티와 미국은 리그의 거점을 알면서도 공략할 수 없게 되었다. 미사일을 날리면 그걸 해킹한 해커는 미사일을 날린 곳으로 고스란히 타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뒤, 파티에서는 버젓이 드러난 리그의 거점을 타격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저번에 한 번 듣긴 했지만 꽤 흥미로운 기프트였다.
마음 같아서는 가져오고 싶군.
“해커가 거슬리겠어.”
“녀석만 처리하면 당장 리그의 거점 여러 곳을 타격할 수 있지.”
그 정도로 리그에서 해커의 위상은 대단하며, 파티와 미국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전력이라고 한다.
당장 까다롭기로는 블랙하운드나 헬 마스터를 뛰어넘어 아르고스와 동급 수준이라고 하니까.
날 이용해서 그 전력을 없애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리그를 없애고 싶은 목적과 일치하니 못 이기는 척 넘어가주지.
“그곳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맞나?”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곳이 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아마 우리가 모르는 리그에 대한 정보도 습득할 수 있겠지.”
나머지는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건가.
뻔뻔한 말이지만 그게 더 속이 편해지는 말이기는 했다.
“좋아, 그럼 정보를 내놔.”
“보기 편하게 제공하도록 하지.”
팬텀은 흔쾌히 수락했다.
*
* *
팬텀에게서 받은 리그의 거점에 대한 자료는 위치만 확인했다.
그 안에는 요새 공략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요새의 전략적 가치와 장점에 대해서 장황하게 적혀 있었지만 내 귀에 들어올 것들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리그의 본거지를 무너뜨리는 것.
두 번째는 해커를 잡는 것.
전자장비를 무력화 시킨다는 해킹 기프트가 탐이 났다.
“근데 해커가 없을 수도 있단 말이지.”
나는 리그의 본거지에 해커가 있는 상태에서 습격하길 원했다. 그래서 해커를 저 기지 안에 두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리그 본거지에 대한 정보를 받고 다음 날, 나는 허버트를 찾아갔다.
LA에서 워싱턴은 먼 거리였지만 고속비행으로 이동하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리 연락하고 도착했음에도 내가 백악관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작 당사자인 허버트는 태연한 표정으로 백악관에 나와 날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헤드 브레이커. 여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 속도입니다.”
“이렇게 오는 게 편해서.”
“안으로 오시죠.”
허버트는 정중하게 날 맞이했다. 백악관 안 집무실로 향한 나는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마실 커피를 직접 내려온 그는 정작 본인은 콜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 고속비행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MLB나 NBA 선수들이 봤으면 환장할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있으면 각성자로 활동할 텐데.”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졌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각성자들의 등장으로 퇴보하기 시작한 스포츠계를 떠올리며 허버트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고통에 해방되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웬 고통?”
“제가 응원하는 팀은 만년 꼴찌였습니다.”
허버트는 NBA팀인 뉴욕 닉스의 팬이었다고 한다.
보통 대도시에 있는 팀이면 강팀 아닌가?
어지간히 못했나보군.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요청할 게 있어서.”
“미국의 귀빈인 헤드 브레이커의 요청이라면 당연히 전향적으로 들어드려야지요. 뭐든 말해보십시오.”
진짜 뭐든 들어줄 것처럼 구는 모습에 나도 부담 갖지 않고 말했다.
“리그 본거지를 공략할 거라는 정보를 뿌려줬으면 좋겠는데.”
“…….”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미사일 타격할 것처럼 액션을 취하면 더 좋고.”
“잠깐, 지금 그게 무슨 요구를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알아.”
그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부탁할까.
다 들어줄 것 같던 허버트의 태도가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대신 진지함이 내려앉았다. 이게 더 낫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파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리그의 본거지를 습격하기로 했지만 이 기회에 해커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리그 내에서 해커의 위치는 철저한 기밀에 감춰져 있었다. 해커의 존재 하나만으로 수면 위에 드러난 리그의 거점 몇 개가 보호받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파티의 정보원들은 해커의 위치를 알지 못하기에 타격을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면 된다는 말도 나왔지만 한 번의 실패가 곧 뼈아픈 실책으로 다가온다. 만약 해커가 있는 곳에 미사일이 날아가서 그걸 해킹하여 도시를 타격한다면?
그날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은 끝이 난다.
아무리 애국심이 넘치는 정치인이라도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은밀히 준비한다면 리그 귀에 들어가겠지.”
“저들이 속을 거라 생각합니까?”
“속을 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내가 파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리그에도 전해졌을 테니까. 파티가 힘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날아갈 사람이 누구인지도 뻔하고.”
바로 미국 정부다.
“…….”
허버트는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급한 정치인은 치적을 쌓고 싶어 하지. 과감한 판단으로 리그의 본거지를 날려버렸다고 알리면 시민들이 열광할 거다, 괜찮지 않아?”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나쁘지는 않은 제안인데.”
허버트는 목이 타는지 콜라를 단숨에 들이켰다. 저러다 트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묻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진짜 당신이 정치에 큰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관심 없을 예정이니 안심해도 돼.”
“대신 하나만 약속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본거지를 날리고 해커를 잡게 되면 그 공을 우리 정부의 것으로 해도 됩니까?”
“얼마든지.”
파티든 정부든 도움을 주면 자기 공으로 내세워도 난 상관없다.
“협력하겠습니다.”
*
* *
[해킹이라는 걸 왜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거야?]백악관을 나선 내게 용용이가 물어왔다.
오랫동안 나와 다니면서 그걸 모르고 있단 말인가?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내가 인간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너도 미사일 맞을까봐 그러는 거야?]“아니.”
믿기지 않게도 용용이는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아차릴 수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하다니.
나는 혀를 찼다.
“해킹이 모든 전자장비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며.”
“그럼 저게 있으면 CCTV랑 카메라를 전부 무력화 시킬 수 있잖아.”
[CCTV? 카메라? 잠깐, 너 설마…….]용용이는 그제야 눈치 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눈치가 느려서야.
“장소의 제약이 사라지는 거지.”
가령 이런 것이다.
어느 날 내게 죽일 놈이 생겼다.
그런데 녀석을 다짜고짜 죽이면 적잖이 귀찮아질 수 있다.
예전의 나라면 당연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도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하지만 해킹으로 그 귀찮음마저 없애버릴 수 있다면? 대낮에 증인이 없는 곳에서 대놓고 습격한 뒤 CCTV와 카메라, 블랙박스, 스마트폰을 모조리 파괴한다.
그럼 대놓고 완전암살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주 훌륭한 무죄추정의 국가. 여기에 나는 불체포 특권까지 있지.
심증은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누구도 날 범인이라 할 수 없다.
“백주대낮에 완벽한 암살이 가능해지는 거지.”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