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나는 고속비행으로 단숨에 리그의 본거지라 알려진 거점으로 향했다.
내가 도달한 곳은 거점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상공이었다.
“음.”
저 멀리 보이는 요새를 나는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미 파티에서 건네받은 정보와 다수의 사진, 3D 모델들을 통해 접했지만 실물로 보니 왜 천혜의 요새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모르고 왔다면 평범한 민둥산으로 지나쳤을 곳이었다. 이 요새는 산을 파서 그 안에 시설을 만들어놓은 곳으로, 요새에 진입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포격이 가능한 구조였다.
미국 내 리그 세력이 상당한 만큼 요새를 방어하는 무기는 최신 미군 장비였다. 이것들은 마물은 물론 인간을 상대하는데 탁월했다.
“뭐 상관은 없나.”
내게는 어느 경우도 속하지 않으니까.
나는 허공을 박차며 곧장 요새 진입을 시도했다. 짧은 거리를 고속비행으로 주파하는 순간, 요란한 경고음이 산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침입자의 존재를 감지하자마자 경계 태세로 접어드는 것이 신속했다.
콰직!
미리 파악해둔 입구를 통해 내부로 진입한 날 환영한 것은 총알이었다.
두두두두두!
기관단총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총알이 포스막에 부딪쳐서 바닥에 떨어졌다. 방어하지 못했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을 화력이다.
“물러나!”
내가 무시하고 달려드니 빌런들이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총은 저들만 쓰는 것이 아닌 나도 가능했다.
퍽!
도망치려던 빌런의 머리가 하나가 부서지며 쓰러졌다.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총알을 퍼부은 만큼 나도 좁은 공간에서 맹공을 퍼붓는 게 가능했다.
“애, 애로우 기프트다!”
“저, 저격! 컥!”
내가 시전한 포스 탄환에 가로막던 빌런들이 모조리 죽었다.
녀석들의 장점으로 작용하던 것이 오히려 내게 장점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하단 말이지.]좁은 공간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약한 다수가 아니라 강한 소수였다.
내부 위치도 숙지해뒀기에 곧장 통제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요새는 최대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리그에서 활용한 이후, 적게는 5백여 명에서 최대 1천여 명까지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그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으니 북미 대륙 핵심 요새인 만큼 정예 인원이 배치되어 있어 만약 이곳을 소탕하면 팔다리 하나쯤은 사라진 타격이 될 거라고 했지.
실제로 작전안 중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장갑차, 폭격기, 공격헬기 등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극도로 강한 소수의 각성자가 잠입하여 통제실을 장악하는 거라고 나와 있다.
통제실 장악은 곧 요새의 무력화.
나는 가로막는 빌런들을 모조리 치우면서 통제실로 향할 때였다.
카가가각!
내 앞뒤로 철창이 내려오면서 경로를 틀어막았다. 나는 곧장 손을 뻗어 기뢰를 시전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카앙!
기뢰가 철창을 우그러뜨렸지만 부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거 재질이 어떻게 되기에 버텨내는 거지?
재차 손을 쓰려던 내 앞뒤로 연이어 폭발이 일어났다.
콰광! 콰과과광!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폭발이었다. 웬만한 각성자는 육편이 되고 초인조차 치명상을 입을 상처였지만 포스막을 두르고 드라쿨레아 가죽으로 만든 코트를 입은 내게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그래도 과감한 결단임은 분명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벌려는 거 같은데?]용용이 말에 나도 동감이었다.
“이거 지체돼서 다 도망칠 거 같은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잡아봐야겠지. 철창을 뜯어낸 나는 곧장 통제실로 향했다. 몇몇 간헐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눈에 띄게 막아서려는 의지가 약해진 게 보였다.
마침내 통제실에 도착한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도망쳤네.”
방금 전까지 이곳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게 느껴졌다. 사람의 온기, 그들이 흘린 땀이 잔상으로 전해졌다.
잔챙이만 잡고 허탕을 친 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온 걸 보고 이렇게 빨리 자리를 비웠다는 건 내 정체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도망친다는 건 호승심보다 중요한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는 의미일 테고.
해커는 이곳에 있었다.
난 확신했다.
“오히려 좋지.”
나는 주위를 둘러본 뒤 비상통로가 있을 곳을 탐색했다.
[여기야!]감춘다고 감췄지만 찾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용용이가 바로 찾아냈다. 곧장 입구를 뜯어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비상통로 끝에 도달하니 전혀 기반이 닦이지 않은 육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앞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다.
그런데 다수가 도망쳤음에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하늘로 사라진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당황할 이유는 없다.
적이라면 확실하게 도망치기 위해 어디로 향할까.
하늘, 그리고 바다.
그중에 내 시야에 잡히지 않고 완벽하게 도망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바닷속이다.
“재밌는데?”
*
* *
“사정권에서 벗어났습니다.”
“음, 고생했네.”
해커, 안데르손은 눈을 살며시 떴다. 미국 출신의 천재들 중 빛나는 천재였던 그는 허겁지겁 도망쳐야 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모았다.
세상은 언제나 리그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음지에서 세계를 지배했던 파티조차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과 리그의 초인들이었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재앙스러운 존재 하나가 모든 걸 망쳐버리고 말았다.
“헤드 브레이커.”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를 키워나가던 자신들이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그 찬란하던 아르고스마저 헤드 브레이커의 존재에 실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반전을 만들고자 이번 작전에 지원했다.
아르고스는 말렸지만 해커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녀석들을 주제 파악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함정이었다.
헤드 브레이커는 미국 정부, 파티와 연계하였다.
그 목적은 아마 자신일 터.
“함정이었군. 헤드 브레이커가 그렇게 오래 참고 있을 줄은 몰랐어.”
“파티와 미국 정부에서 나선 합작이었습니다. 최소한의 피해로 막은 것입니다.”
“북미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거점을 잃은 건데 최소화 한 것인가.”
“헤드 브레이커는 그 자체로 신수 혹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 이상의 재앙이라고 아르고스께서 평가하셨습니다. 실제로 조금만 늦었다면 통제실에 도달한 헤드 브레이커와 마주했을지도 모릅니다.”
보좌관의 말에 해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보게 된 헤드 브레이커의 무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천혜의 요새마저 헤드 브레이커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자신과 부하들은 헤드 브레이커에게 잡혔을 것이다.
“알지. 그 괴물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도. 대계가 머지않았는데 세상에 그런 괴물이 나타날 줄이야.”
“헤드 브레이커는 위험한 대신 적극성은 떨어집니다. 내줄 건 내주고 거둘 건 확실하게 거둔다면 대계는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계라.”
12궁의 일원이자 리그에서 가장 철저한 경호를 받고 있는 그는 모든 전자장비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 중 한 사람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아르고스와 함께 가장 높은 현상금이 매겨져 있으며 몇 차례 벌어진 대규모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전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능력들이 헤드 브레이커 앞에 무력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그럼에도 해커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잠수함으로 이동하여 도착할 곳은 하와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해킹을 발동하여 요새 파괴와 더불어 미국 정부 측에 경고의 의미를 담은 무차별 폭격을 가할 생각이다.
기존 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부스트를 이용한다면 가능했다.
그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테지만 이렇게라도 한 방 먹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탄 잠수함은 하와이에 도착했다.
하와이는 여전히 미국의 영토였으나 바다의 마물과 하늘의 마물로 인해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반독립 상태로 운영이 되고 있으며, 중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만큼 리그에 협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고.
무제한에 가까운 지원을 하지 않는 이상 효율이 나오지 않기에 사실상 방치된 자유도시였다.
잠수함을 도킹한 뒤 밖으로 나온 해커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미국 정부와 파티가 헤드 브레이커와 결탁한 게 알려졌으니 후속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르고스에게 연락한다.”
부스트를 사용하고 무차별 폭격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때였다.
“히, 히익! 괴물!”
“뭐……!”
뒤에서 비명이 들려온 순간, 해커는 전신을 엄습하는 싸늘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거리를 벌린 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들어왔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자신을 보좌했던 보좌관이 머리가 터진 시체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와 뇌수를 무성의하게 코트에 문지르는 잘생긴 청년이 이곳을 보고 있었다.
“네가 해커냐? 기다리느라 지칠 뻔했어.”
*
* *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도주 방법이었다.
거점을 버린 해커의 도주 수단은 잠수함이었다. 발견하는 즉시 잠수함을 날려버리지 않고 뒤따라온 것은 해커의 기프트를 얻기 위해서고, 목적지가 리그의 또 다른 거점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걸 위해 따라온 너도 참 대단하다.]목적지를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잠수함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 하와이로 향하는 것임을 짐작했고 시간에 맞춰 도달할 수 있었다.
도망쳐봤자 손바닥 안이다.
[이런 인간에게 고속비행이 주어다니. 세상이 위험해졌네, 위험해졌어.]오히려 더 평화로워지는 걸 호도하는 용용이였다.
[그럴 거면 그냥 다 죽여 버리지 그래?]그럴 거면 빌런하고 뭐가 다르나.
[다른 사람 눈에는 비슷할 걸?]선 넘기는.
나도 목적을 이뤄야 하니 용용이와 더 말을 섞지 않고 해커에 시선을 고정했다.
해커 안데르손. 미국 출신이자 천재로 유명했던 그는 전자장비를 해킹할 수 있는 기프트를 보유하여 미국 정부와 파티가 리그의 성장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주인공이다.
겉모습만 보니 별로 강해보이지 않는다.
해킹 능력으로 12궁에 속하게 되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네, 네놈.”
“잔머리 굴릴 거면 제대로 굴릴 것이지, 너무 뻔하잖아.”
나는 해커를 향해 다가갔다. 잔뜩 질린 표정이 된 녀석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다 굳게 닫혀있던 반대쪽 문이 열리더니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그의 기지니까 빌런들이겠지.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의 정체는 리그의 빌런들이 아니었다.
그중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최준호……!”
“여기서 볼 줄 몰랐는데.”
날 보며 경악하는 남자는 일본의 초인이었다가 지금은 국제 용병단으로 떠난 환월 나카야마였다. 일본을 두 번이나 배신하여 리그의 삼악보다 더 욕을 먹는 녀석은 국제 용병단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곳이 리그의 기지가 아니라 국제 용병단의 기지였던 건가?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이곳은 우리 기지 중 한 곳이다.”
국제 용병단과 리그가 가까운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 가까웠군.
그런 내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나카야마가 말을 덧붙였다.
“오해는 하지 말길. 우리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파트너 관계니까.”
“그래? 근데 내가 지금 너희 협력자를 잡아야 할 거 같은데.”
리그와 협력 관계라면 해커를 잡으려는 나를 막아야겠지.
하지만 나카야마의 판단이 더 빨랐다.
“우리는 못 본 걸로 하지.”
“네놈! 리그와 용병단의 계약을 어기는 것이냐! 아르고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해커가 분노를 터뜨렸지만 나카야마의 표정은 담담했다.
“계약보다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
“이, 이 용병놈들이 은혜를 잊고… 컥!”
배신당한 건 안쓰러운 일이지만 배신당하지 않을 거면 그만한 실력이 있었어야지.
애초에 용병이란 그런 족속들이다.
해커의 목을 틀어쥔 나는 녀석의 양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하는 걸 보면서 생각보다 전투력이 더 낮은 걸 확인하게 되었다.
“네 기프트는 내가 잘 써주지.”
“아, 안 돼……!”
비명을 지르건 말건 녀석의 가슴에 손을 꽂아 넣었다. 펄떡거리던 녀석의 눈이 흐려지더니 그대로 숨을 거뒀다.
악명에 비해 허무한 죽음이지만 사람의 목숨이란 게 다 그렇다.
심장에 박힌 손을 빼서 기프트를 복사한 나는 해킹이 자리 잡았음을 느꼈다.
따로 자리를 옮겨 천천히 살펴야겠다.
그때까지도 나카야마를 비롯한 용병들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허튼 짓을 하면 바로 손을 쓰려고 했는데 생존본능이 발달한 녀석들이다.
“용건이 끝났으면 우리는 가고 싶은데.”
“어딜 가려고?”
“오늘 본 일은 비밀로 하겠다. 그러니 보내다오.”
누가 보면 내가 순순히 보내주기로 한 줄 알겠다.
“올 땐 너희 마음대로지만 갈 땐 아니지.”
공짜로 살려주면 다른 녀석들이 두고두고 자기 목숨 값을 놓고 협상하려 들 것이다.
그런 꼴은 내가 못 본다.
“네놈들 목숨 값을 제시해봐.”
“목숨 값? 대체 얼마를…….”
“선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