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
용병들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나는 녀석들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선 제시라는 건 원래 많은 고민을 수반하는 문제였다.
흥정의 시작 지점인 만큼 너무 높게 제시하면 상대 페이스에 휘말리게 되고 너무 낮게 제시하면 거래 자체가 파토 나니까.
거래의 대가가 자신의 목숨인 만큼 당연히 신중해야겠지.
물론 모두가 신중할 수는 없다.
분노를 참지 못했는지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가진 험악한 인상의 용병이 튀어나와 내게 삿대질을 했다.
“헤드 브레이커! 우리는 아무 연관이 없다! 네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컥!”
녀석의 대답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저격으로 머리를 부숴주었다. 머리가 날아간 채 바닥에 쓰러지는 동료의 시체를 보며 용병들은 침묵했다.
“…….”
“이게 너희들 공식 대답인가?”
내가 손을 쓸 생각을 굳히려 할 때, 나카야마가 소리쳤다.
“리그의 비밀기지를 알려주겠다!”
“나카야마!”
“우리가 살아남는 게 먼저다. 리그와 관계는 그 다음이야. 이대로 죽어봤자 개죽음일 뿐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주변을 설득한 나카야마는 내게 리그의 거점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전혀 예상 밖의 위치였기에 꽤 의외였다. 확실히 정보 값으로 충분하군.
“이 정도면 충분한가?”
“글쎄다. 저기 있는 녀석들의 머릿속을 뒤져보면 찾을 수 있을 텐데.”
“못할 거다.”
“못해?”
“해커를 상대로 시도해서 실패하지 않았나.”
나카야마가 그걸 눈치 챈 건 의외였다. 난 그게 해커의 기프트가 작용하여 정보 수집을 막은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답이 흘러나왔다.
“네가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걸 알고 대책을 세운 거다.”
“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유용한 정보인데?
“리그 소속 빌런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없을 테지. 그러니 내가 건네주는 정보는 값어치가 있는 거다.”
“그 말이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만약 나카야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해.”
아직 확인을 거친 적 없는 정보였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감춰져있는 리그의 거점과 달리 국제 용병단은 양지를 추구하기에 위치가 드러나 있으니까.
정보가 거짓이면 그 대가를 짊어지면 되는 것이다.
“…….”
[쟤들은 가슴이 싸늘해진 거 같은데?]가짜를 팔았다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봐온 게 있기에 나카야마의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지.”
“가봐.”
“그러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던 나카야마와 용병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지하실 공간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일본에서 철수한 줄 알았더니 그게 눈속임이었을 줄이야.”
나카야마가 전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일본 내 위치한 리그 거점 이야기였다.
나중에 들려서 한 번 확인하기로 하고 우선 LA로 복귀하기로 했다.
“그럴 리가.”
다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만들어놔야지.
난 잠수함에 남은 빌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브레인워싱으로 거점을 파악해보려고 했지만 성과는 좋지 못했다.
*
* *
하와이에서 일어난 폭발에 대해 본토가 시끄러워질 무렵, LA로 돌아온 나는 해커에게 빼앗은 기프트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해킹이라 불리는 이 기프트는 모든 전자장비에 간섭할 수 있다.
독특한 능력인 이것은 현대 전쟁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리그는 해커를 영입함으로써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세만 보면 순식간에 세계 전역을 집어삼킬 것처럼 보였던 리그가 주춤하게 된 것은 세계 각국이 서로 힘을 합쳐 대항해서다.
여태까지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해킹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단점이 심한데.”
해킹은 말 그대로 천재가 다룰 수 있는 기프트였다. 세밀한 포스 조절을 통해 전자장비에 작동하는 코드를 읽어내고 역설계하여 반대되는 명령을 주입해야 한다.
찰나의 순간 해내야 하는 만큼 천재적인 두뇌가 필수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단점은 바로 무지막지한 포스 소모다.
아득한 원거리에서 개입하려면 폭발적인 포스량과 천재적인 두뇌, 그걸 받쳐줄 육체적인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왜 해커가 철저하게 리그의 그림자에서 움직였는지, 모든 행보를 감췄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네 머리로 해킹은 불가능하겠네.]“그러게 말이다.”
[어? 순순히 인정하네.]“그럴 머리도 의욕도 없는 건 사실이니까.”
내가 해커처럼 날아오는 미사일을 해킹해서 되돌려 보내거나 할 건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있지.”
해커가 고생했던 이유는 해킹을 통해 그걸로 위협을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용도가 전혀 달라서 말이지.
“남의 걸 해킹해서 내 걸로 만드는 건 어렵지만…….”
나는 손을 뻗어 해킹을 발동했다. 연습용으로 가져다놓은 태블릿은 해킹의 영역 아래 들어왔다. 하지만 통제까지는 지난한 길이다.
그런데 나는 저 태블릿으로 써먹으려는 용도가 아니어서 말이지.
콰직!
세밀하지 못한 해킹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한 태블릿이 산산조각났다.
그래, 해킹으로 세밀하게 다룰 수 없다면 부숴버리면 되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양의 포스가 들었지만 나야 포스가 남아도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니 해킹과 브레인워싱과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사이비교주 녀석이 브레인워싱을 보유했을 때는 이걸 세밀하게 활용하여 자신의 열성신도들을 양성했지만 나는 정보만 뽑아버리고 백치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누구보다 포스를 세밀하게 다룰 줄 아는데 브레인워싱이나 해킹은 왜 따라주지 못하나 싶었다.
[네가 그 정도로 공을 들이기 싫은 거겠지.]용용이의 말이 뼈 아프게 다가왔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상관없어. 내가 내 방식대로 잘 써주면 그만이니까.”
여러 번 연습해본 결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게 있다면 주변 CCTV나 블랙박스, 스마트폰은 모조리 부숴버릴 수 있다.
완벽 암살이 가능해지는군. 나와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는 기술이다.
[미친 인간한테 미친 능력이 들어갔네.]*
* *
내가 해커의 뒤를 쫓아 리그 거점을 습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는 길드를 동원하여 비어있는 요새를 점령했다. 그리고는 곧장 미사일 전력을 동원, 동시다발적으로 리그의 기지를 타격했다.
내 추격을 피해 잠수함에 있던 해커는 대응하지 못했고, 그 결과 미국 내에 위치해 있던 리그 거점 다섯 개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우왕좌왕 하는 리그 빌런들에게 미국과 파티 전력이 대대적으로 습격하여 큰 타격을 주는데 성공했다.
나와의 상의는 없긴 했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개입했고, 절묘한 성과를 거뒀다.
앙숙이라던 미국 정부나 파티가 힘을 합친 걸 보면 확실히 능력이 있다.
[너 이용해서 성과거둔 거 아냐?]“그것도 실력이지.”
어차피 죽어도 빌런이 죽은 거라 신경 쓸 부분도 아니고.
그런데 용용이 녀석, 아닌 척하면서 은근슬쩍 이간질을 하려고 한다.
[아니,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부분이니 물어본 거지. 생각보다 기분이 안 나빠 보이네?]“나쁠 것까지야.”
오히려 나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 나섰다고 생각한다. 내 습격으로 어떤 분란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게 미리 선수를 친 거니 말이다.
덕분에 빌런들이 설치는 꼴을 안 봐도 되니 딱 좋군.
이제 남은 건 레비아탄 사냥 정도인가.
바뀐 분위기는 LA에도 전해져서 한창 사냥에 전념하던 정다현도 느낄 정도였다.
“이곳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리그를 소탕하는 중이야.”
“저번에 크게 소탕이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완벽하게 한 게 아니었나보네요.”
“잔당은 어디에나 남아 있지. 이번 기회에 그것도 없애려는 걸 테고.”
아마 자신이 리그 소속인지도 제대로 모를 잔챙이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이용당하는 부류들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럼 저도 힘을 보태야겠어요.”
지금은 마물 사냥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정다현은 본래 빌런 체포 스페셜리스트였다.
예전 생각이 나는군. 그때 정다현은 물렁물렁한 정의관으로 제대로 된 체포도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사람을 만들어 놨다 싶다.
[베려놓은 게 아니고?]베려놓다니, 내가 사람을 제대로 만들어놓은 거지. 봐라, 저 홀가분한 정다현의 얼굴을.
[빌런 잡을 생각에 두근두근하는 거 같은데.]원래 빌런을 잡는 건 설레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를 잡으면 세상이 그만큼 평화로워지는 건데 당연히 즐거워야지. 그래야 능률도 높아지고 성과도 좋아지는 거다.
[말을 말자, 말을 말어.]왜인지 용용이는 불만이 굉장히 많은 듯한데, 나는 정다현의 말이 기꺼웠다.
“든든하겠네.”
그렇게 빌런 소탕 작전에 정다현이 합류하게 되었다.
*
* *
허버트가 LA로 날아왔다.
그의 결단력으로 리그 거점 다섯 곳을 타격하면서 미국 내 리그 세력을 크게 축소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 허버트의 지지율이 무려 20% 넘게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선 대통령이 70%를 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모두 헤드 브레이커 덕입니다.”
허버트는 내 덕이라며 날 추켜세웠다. 자신이 타이밍을 잘 잡은 것이지만 내가 없었으면 해낼 수도 없는 일이라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감사 인사나 하자고 먼 길을 온 거 같진 않은데.”
“예? 하하! 감사 인사를 하려고 온 게 맞습니다. 겸사겸사 LA 내 빌런 소탕을 지켜볼 생각이고요.”
“다른 꿍꿍이는 없고?”
“당연히 여러 가지 생각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다현의 영입이라던지.”
바로 속내를 털어놓는군. 허버트의 저 말은 정다현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고 선언하는 거라 봐도 무방했다.
그 정도로 정다현이 탐나는 거라고 봐야겠지. 내 제자로 분류되는 만큼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걸 테고.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정다현을 제자로 생각 하냐면, 아니다.
난 누군가와 사제관계로 얽힐 생각도 그럴 계획도 없다.
내가 한 수 가르쳐줄 수 있는 거지, 그거 가지고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건 별로다.
“다만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손을 뗄 생각입니다.”
“나야 한국에 있는 게 편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다현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자격까지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선택은 정다현이 하는 거지.”
“그렇습니까?”
이런 대답을 원했는지 허버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누가 보면 나 때문에 영입에 나서지 못했던 것처럼 보이겠다.
[조심스럽긴 했겠지. 넌 수틀리면 머리부터 부숴놓고 보니까.]“그건 그렇고 지지율도 상당히 높던데.”
“하하, 덕분입니다.”
“근데 재선이라 더 대통령 선거에 나올 일도 없지 않나. 정권재창출로 만족할 생각인 건가.”
허버트의 임기는 아직 3년이 남았고, 현재 지지율이 3년 후에도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당내에 여러 계파가 있고, 다수파를 이룬다고 해도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면 3년 후에 분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내 말에 허버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난 허버트 옆에 조용히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는 다니엘을 보곤 말했다.
“다음 대통령으로 다니엘 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인지 다니엘은 홍차를 뿜어내고 말았다.
“무, 무슨 말씀을!”
기겁한 다니엘이 날 제지하려 했지만 허버트의 외침에 무산되고 말았다.
“아주 멋진 제안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그는 다니엘이 말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다니엘이야 말로 참된 대통령 후보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이미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었는데 내 옆에서 국정경험까지 쌓았으니 이보다 더 대단한 후보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관계도 지금보다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인물이 다니엘입니다!”
“…….”
“나랑 생각이 같네.”
“우리 다니엘 잘 부탁합니다. 하하하핫!”
대뜸 악수를 청해오는 허버트의 손을 잡고 당사자의 의사는 없는 협정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