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최준호가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는 권한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다니엘은 허버트에게 소리를 질렀다.
“허버트! 거기에서 동조하면 어떡하나!”
“왜? 원하던 말을 해줘서 난 만족스러운데.”
이 사태를 불러온 녀석이 오히려 뻔뻔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뜬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너한테 권유했는지 알면서 거기에서 거절하길 바랐냐?”
“헤드 브레이커는 순수한 의도로 제안한 게 아니다.”
“당연히 자신이 잘 알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 거겠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
“이번 한국의 대통령도 사실상 헤드 브레이커의 픽이지. 하지만 어디에도 말이 나오지 않아. 왜냐하면 그게 헤드 브레이커의 본질이기 때문이지. 그는 권력을 탐하지 않아. 왜냐, 그걸 굳이 바라지 않아도 될 강함이 있으니까. 녀석이 왜 널 선택한 건지 알면서 그런 반응을 보이냐.”
최준호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니엘이 모를 리 없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최준호에 대해 조사해왔다. 그의 성격, 성향, 취향, 심지어 자주 사용하는 단어까지 쫓으며 어떻게 하면 충돌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그 속에 정치 성향도 포함된 건 당연한 일이다.
최준호에게 정치 성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들 모두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정치인들이다.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주고받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
최준호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정치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허버트가 히죽 웃었다.
“오히려 선택을 받았다는 것에 기뻐하라고, 브로.”
“네놈의 부추김 때문에 두고두고 귀찮아지게 생겼는데 그러겠냐.”
“좋으면서 그러냐?”
“안 좋아. 옆에서 고생하는 걸 다 지켜봤는데 내가 그걸 좋다고 받아들일 것 같냐.”
“그렇다고 거절하려고? 다른 누구도 아닌 헤드 브레이커라고. 세계최강의 각성자이자 신수조차 사냥이 가능한 걸어다니는 재앙이지.”
“…….”
“무엇보다, 레비아탄이 사냥되면 대서양의 길이 열려. 그 말은 파티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는 의미가 되지. 너 말고 다른 녀석이 된다면 그 녀석이 파티의 유혹에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당연히 버틸 리 없다. 지금도 파티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정치인들의 소원은 파티의 간택을 받아 편하게 정치를 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여당 야당 모두 파티의 선택을 받은 후보가 되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데 시간이 필요해.”
“아니, 이건 시간을 두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또 그러냐.”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
허버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문제인 녀석이다. 평소에는 한없이 가볍다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게 되면 벗어나지 못한 채 빨려 들어가고 만다.
“내게 남은 시간은 3년이지만 본격적으로 대선을 준비하려면 지금도 늦어. 다니엘, 네가 권력 의지가 크지 않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대로 흘러가게 되면 이 나라는 다시 파티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거야. 리그가 약해진 지금 파티를 견제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어.”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참 오랫동안 거절을 했다. 자기 대신 대통령 자리를 맡아놓겠다며 허버트가 대선 출마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치기 어린 생각으로 미국을 부흥시키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들 앞에 놓인 적은 강대했다.
그 적에 맞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미국을 위한 길을 모색하다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친구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다니엘은 뿌리치지 못했다.
“알았다, 알았어. 네 제안대로 할 테니 심각한 표정은 그만 지어라.”
“누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고. 난 우리 친구가 큰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 거라고. 하하핫!”
그리고 줄줄이 흘러나오는 로얄로드로 향하는 길.
처음부터 준비했던 기색이 느껴지는 말에 다니엘은 속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빌런 소탕 작전에 특별 참여한 정다현을 향한 눈은 처음에는 곱지 않았다.
유력한 초인 후보이자 뛰어난 재능으로 유명하지만 마치 배우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미모는 온실 속 화초라는 평가를 내리게 만들었다.
자국에서 사냥 중독자라 불리고, 과잉 진압으로 많은 우려를 낳았다고 하나 각성자도 개성이 필요한 시대였다.
아름다운 미모에 과격한 손속이라는 캐릭터 설정 부여는 선호도가 높기에 소탕 작전에 임하는 각성자들은 정다현의 합류를 이력 한 줄 추가하려는 것 정도로 보며 삐딱하게 대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말이다.
영어로는 블랙 프린세스라고 번역되었지만 한국어로 불리는 이명은 나찰녀.
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 함께 작전에 임하는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폭풍이었다.
빌런을 앞에 둔 순간 사지 하나를 잘라버리는 것은 물론, 항복하지 않고 살기를 드러내면 목숨을 거두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압도적인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빌런의 아지트를 추적하고 그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매료되고 말았다.
이는 언론에서도 달려들어 극찬을 거듭했다. 새로운 영웅에 대한 칭찬이지만 잘 아는 사람들이 보면 의도적인 영웅 만들기다.
“별 거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추앙받는 느낌이네요.”
“하루에 오백이 넘는 빌런을 잡았으면 충분히 칭찬받아야 하는 성과지.”
“자주 하던 건데요.”
“하긴.”
국가수호국에서 정다현의 활약은 전설로 남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전설보다 괴담이었고.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빌런을 체포하는 정다현의 실력은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이곳 생활은 만족스럽고?”
“네,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오래 있을 곳은 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
“오빠는 제가 미국에 올지 아니면 남을지 결정하길 바라는 거죠?”
하긴, 이 정도에 이르렀으면 눈치를 못 채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테지.
“선택을 강제할 생각은 없지. 여기저기 겪어보고 결정하는 건 네 몫이니까.”
“전 돌아갈 거예요. 미국도 좋긴 하지만 한국이 좋거든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호한 대답이었다. 정다현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이들이 꽤 실망할 것 같다.
“생각보다 결정이 빠른데?”
난 정다현이 좀 더 겪어보고 결정을 할 줄 알았다.
내 대답에 정다현이 쓰게 웃었다.
“미국에서 바라는 건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초인 정다현보다 선전용으로 국민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장식용 정다현을 원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에 있는 내내 정다현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하라고 할 정도로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정작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저는 좀 더 치열한 곳에 머물고 싶어요. 그곳에서 제 모든 역량을 발휘해서 힘껏 부딪쳐서 깨지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면서 나아지고 싶지, 초인이 되어서 받을 대우를 만끽하면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미국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 정다현으로 하여금 거절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걸 요구하면 들어줄 수도 있을 텐데.”
“비싼 값에 들여왔으니 부서지지 않게 간섭을 하겠죠. 제가 길게 살지 않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이 정도로 결심이 확고하다면 정다현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군. 정다현을 데리고 오기 위해 공을 들이던 미국 정부나 길드들이 실망하게 생겼다 싶었다.
어차피 나와 관련은 없지만.
“그럼 한국에서 다시 보겠네.”
“네, 많이 알려주세요. 막 다뤄도 좋으니까요.”
“그래.”
정다현과 대화는 그것으로 끝.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한 건 없으니 나머지 일은 미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먼저 돌아가.”
“오빠는요?”
“아직 할 일이 남았어.”
귀찮은 일들을 다 처리했으니 이제 레비아탄 사냥에 나설 순간이다.
*
* *
내가 레비아탄 사냥 의뢰를 받아들였을 때부터 파티에서는 그동안 축적해온 자료를 건네주었다.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사냥 가능성에 대한 온갖 주석이 다 달려 있었는데, 거대한 마물을 앞에 둔 인간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마물의 크기가 한계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인간이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미사일이나 자주포 같은 무기가 먹혀들지 않는 것은 물론, 각성자들이 포스를 집중하여 타격을 준다고 해도 거대 마물 입장에서는 작은 부위에 입은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추천한 것은 뇌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다들 제대로 보고는 있단 말이지.”
문제는 어떻게 바다 속에 있는 마물, 그것도 투뿔 단계로 추정되는 마물의 속도를 쫓아가서 머리에 직접 타격을 주느냐인데, 그에 대한 해결법은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주석을 보고 느낀 건 고민들이 많았겠다 싶었다. 나한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일단 레비아탄을 찾아봐야겠지.”
[바로 붙어보려고?]“글쎄다.”
사냥 의뢰를 받아들였지만 사냥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은 없었다.
용용이가 해줬던 마물 출신이 신수의 정수를 취한 것에 대해 꽤 흥미가 있어서 말이지.
[마물은 기본적으로 사악한 존재야.]“앞뒤 분간 못하는 녀석이었다면 당장 뛰쳐나와서 사방을 헤집고 다녔겠지. 그런데 대서양에만 틀어박혀 있는 건 이성이 남아있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해. 하지만 언제 미쳐버릴지 알 수 없어.]“그거야 직접 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고.”
[…….]용용이는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나는 내 호기심을 해소시키는 게 먼저다.
애초에 신수가 무조건적으로 선은 아니고.
[빨리 제거하는 게 더 나아 보이는데…….]아까 전부터 녀석은 싸움을 붙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자각하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은밀함이다.
그럴수록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녀석의 뜻을 들어주기 싫었다.
그렇게 용용이와 티격태격하면서 대서양으로 향했다.
광활한 바다에서 레비아탄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찾을 때 이야기. 이곳 전체가 녀석의 영역이라면 날 감지하고 날 찾아오게 만들면 그만이다.
[어떻게?]“이렇게.”
난 망설이지 않고 기세를 개방했다. 점점 더 커져가는 내 존재감에 용용이는 경악했다.
[대놓고 싸움을 건다고?]“이성이 남아있다며? 그러면 궁금해서라도 찾아오겠지.”
[나야 그 방법에 찬성하기는 하는데 오히려 숨지 않을까 하는데.]“아닐 걸.”
내가 자의식이 과잉된 게 아니다. 투뿔 아니, 삼뿔 등급의 녀석이 대서양에 틀어박혀 몸조심을 할 거라면 사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세를 개방하는 이유를 눈치 못 챌 리도 없지.
그것도 모른다면 이성을 잃은 마물로 간주하고 제거하면 그만이다.
내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고오오오!
공기가 달라졌다. 대기의 색이 바뀌고 공기 냄새가 바뀌면서 은밀한 존재감이 퍼져 나갔다. 존재감은 희미한데 기세는 강렬하다.
상반된 이 두 가지 힘이 레비아탄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왔어. 녀석이야.]이제는 존재감을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점점 더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한 줄기 포스가 치솟았다가 형태를 갖췄을 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다뱀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용용이 친척이라고 생각하기 딱 좋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손님이네.]“날 기다렸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맞다, 인간. 그대를 내 영지로 초대하고 싶다.]“초대?”
[그렇다.]갑작스러운 초대라니, 기껏해야 이곳에서 대화를 할 줄 알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생각보다 이성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나는군.
용용이가 서둘러 날 제지했다.
[저 말 들으면 안 돼. 함정이야.] [판단은 필멸자가 하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을 거야. 가지 마.]내 생각이라.
용용이는 제지했지만 내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초대에 응하도록 하지.”
가만히 있던 용용이가 펄쩍 뛰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불청객은 초대하지 않는다.]그 말과 함께 레비아탄에게 쏘아진 빛이 용용이를 덮쳤다.
[야야, 진짜 너 그러기야!]공허한 목소리를 남기며 사라진 용용이.
[신수는 저 정도로 소멸하지 않는다. 곧 이곳으로 돌아오겠지.]“무슨 얘길 할지 궁금한데.”
[그대에게도 꽤 흥미로운 내용일 것이다.]곧이어 나는 레비아탄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