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
33화
33화
“끄아악!”
나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고 있는 오창문을 봤다.
녀석을 잡은 건 즉흥적인 결정이다.
오늘은 내가 레벨 8이 되고 처음 공식선상에 나서는 날이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헌터가 됐던 때가 떠오른다.
내 의도는 순수했다.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아들, 여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오빠가 되고 싶었다. 가끔 주변에 보이는 빌런을 잡으면서 공무원 헌터 역할로 충실한 나날을 보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특히 이런 기레기는 평화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나도 빌런으로 만들 놈이었다.
“끄으으!”
그동안 정주호가 보호하여 내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잉 진압 건으로 몇 번 기사가 났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행동으로 기사가 나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기사를 보던 윤희가 노발대발 할 때가 있었는데, 하나는 낚시에 가까운 제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자의 사견이 교묘한 방향으로 몰아가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낼 때였다.
나도 제목 낚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혈종일 때 기자들의 농간으로 하지도 않은 수많은 악행이 추가됐으니까. 아마 기사대로면 내가 죽인 숫자가 만 명이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 수천은 될지 몰라도 만은 과했다.
왜 내가 저지르지 않은 악행도 모조리 뒤집어썼어야 했을까.
당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어떤 기자도 처벌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책임지지 않으면 책임지게 만들면 된다. 난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내게는 이제 불체포특권도 따라다닌다.
“크흐흑!”
그렇다고 현미경을 들이대서 모두를 벌할 생각은 없다.
정도가 크게 어긋난 놈만 처리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중요하니까.
단지 자유에 대한 책임만 지우면 될 뿐.
“······.”
역시 배운 사람들이라 내 말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도 오창문 같은 부류를 좋아하지 않나보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이름은 익숙한 기자의 이름을 불렀다.
“고예진 기자님.”
“히끅! 네, 네!”
150cm 조금 넘는 키에 작은 체구를 가져 얼핏 보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기자가 딸꾹질을 하며 대답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기사 다 내릴게요! 제발 용서를······.”
“괜찮습니다.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내용이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앞으로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네, 넵!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끄아아아!”
나는 아직도 괴성을 지르는 오창문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입에 게거품을 멀고 정신을 잃었다.
기자회견실 미관과 어울리지 않아 회복제 하나를 꺼내 녀석에게 부었다.
기괴하게 뒤틀려있던 팔다리가 되돌아오자 모두의 눈에 경악이 서린다. 원상복구의 마술이다.
난 제자리로 돌아와 회복제병 상표가 잘 보이게 들어보이며 말했다.
“궁금하실까봐 말씀드립니다. 제가 사용한 회복제는 신성제약에서 나온 회복제입니다. 문의는 신성제약에 해주십시오.”
나한테 물어볼까봐 바통을 신성그룹으로 넘겼다.
“그럼 기자회견을 계속하겠습니다.”
*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천명국은 자신의 손을 완전히 떠났음을 깨달았다.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말이 옳을까.
어린 시절 8시간 넘게 바닷가에서 만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을 때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최준호는 기자 하나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빌런도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망가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손을 쓴 최준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일의 파장은 누가 감당할까. 일을 벌인 건 최준호지만 그는 아니다. 불체포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질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최준호에게 불체포특권 부여를 밀어붙인 게 자신이었으니까. 모든 회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고 심지어 마지막에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도 있다.
순간 사퇴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다.
‘힘 조절을 못했다고?’
저렇게 사람을 종이접기 하듯 접어놓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다.
그제야 최준호 옆에 붙어있던 정주호의 모호했던 표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백미는 오창문에게 회복제를 들이붓자 부러졌던 사지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였다.
사기의 화룡점정이다.
과잉진압건이 줄어들기는 미친.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저 비싼 회복제를 들이부었던 것이다. 누가 저런 빌런에다 3천만 원짜리 회복제를 들이붓는 미친 발상을 할 수 있겠는가.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30분 동안 자신을 둘러싼 상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남은 건 수습, 수습, 또 수습이다.
근데 이게 수습이 가능할까.
천명국은 기자들에게 질문 받는 최준호를 보다 탄식을 터뜨렸다.
“아······.”
레벨 8 초인을 영입했다고 자랑하기 위해, 이 모든 광경은 생방송으로 중계 중이었다.
*
최연소 레벨 8 초인, 인형술사를 사살한 영웅. 미국이 극찬하고 중국이 놀라워하며 일본이 두려워하는 초인의 등장.
최준호의 첫 등장은 대중들의 큰 관심을 샀다.
그러다 보니 공식선상에 등장하는 기자회견 채널에는 평소보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극동의 작은 반도국가임에도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각성자 강대국.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은근한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최연소 타이틀마저 빼앗아온 것이다.
-근데 너무 어리지 않냐? 레벨 8이 되는 평균 나이가 42세인데. 점점 어려지고 있는 추세라지만······.
-인형술사 잡은 것도 과장하는 거 아냐? 걔가 불사신이라고 해도 어차피 전투력은 별로잖아.
-나이가 어리면 아무래도 포스량이 부족하고 운용 노하우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그래도 측정 시험이 허투루 이루어지지 않으니 최소 요건을 채웠다고 봐야할 걸?
-우선 나이가 깡패임. 나이가 어리다는 건 발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거. 그리고 육체가 전성기일수록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커진다.
-이번 일은 정부를 칭찬할 만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되는 대어였음.
-새로운 각성자안보실장이 일 잘한다고 하더니 제대로 해낸 듯.
-이제 나온다.
잠시 후, 최준호가 등장하자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가 수십 배 빨라지기 시작했다.
-와! 존나 잘생겼다. 왜 여기 배우가 있냐?
-외모 실화냐? 외모 수준이 레벨 8이라는 거였어?
-수트핏 죽이네. 얼굴도 얼굴인데 몸 상태 뭐냐? 키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 비율이 완전······.
-오빠! 절 가져요ㅠㅠㅠㅠ 너무 잘생기셨어요ㅠㅠㅠ
-얼굴 보고 뽑았냐? 선전용이냐?
외모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지만 우려하는 채팅도 늘어났다.
-근데 별로 강해보이지 않는데? 진짜 레벨 8이라고?
-저래서 빌런이나 마물 잡겠어? 빌런이 총질하면 사색이 돼서 도망칠 거 같은데.
-주저앉아 지리는 거 아니냐? ㅋㅋㅋ
-마물이 울부짖어따, 최준호눈 주저앉아 지려버려따!
-근데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짐!
-이거, 측정 시험에 미비함이 드러나면 정부가 역대급 호구딜을 한 거일 듯.
-크크, 최준호의 존재만으로 빌런들은 두려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들도 최준호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다 오창문의 사지를 꺾어버리자 씻은 듯 사라졌다.
-···방금 최준호 움직임 본 사람?
-모니터에 눈을 뗀 적이 없는데 언제 이동한 거야? 팔다리는 어떻게 부러뜨린 거고?
-미쳤다. 120프레임인데도 했는데 움직임이 안 잡혀. 이게 레벨 8의 움직임이라는 거냐?
-걱정했던 말 다 취소. 와! 손 하나 까닥하는데 사람이 병신이 되네. 이게 레벨 8 초인의 힘이구나 ㄷㄷㄷ
-초인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읍읍!
-최준호 앞에서 무조건 굴종하라. 그래도 녀석의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목이 날아가겠지. 크크크…!
단 한 수로 실력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그 자리를 대신 한 건 즉결심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근데 자기 힘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거 아님?
-ㄴㄴ 저 오창문에 대해 검색해보셈. 몇 년 전에 빌런한테 돈 먹고 그 조직 옹호해준 기사를 쓴 놈임. 죽어도 싼 놈 맞음.
-미친, 저런 놈이 국회까지 들어간다고? 딴 맘 먹으면 어떡할 건데? 저런 과격한 사상을 가진 놈이 초인이라고? 이게 나라냐!
-최준호가 아주 탄산을 한계치까지 들이붓네.
-걱정된다고 뭘 할 수 없음. 최준호가 계약하면서 받은 게 불체포특권임.
-눈앞에서 조져도 처벌할 수 없네. 이게 큰 그림이라는 건가 ㄷㄷㄷ 근데 어차피 레벨 8 초인은 체포 못하지 않나?
-지금 쏟아지는 기사 보셈. 다들 어조가 정중햌ㅋㅋㅋ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건가 ㄷㄷㄷ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기 때문에 불체포특권 가진 초인한테 대놓고 대립각 세울 용자는 많지 않을 듯. 머리 진짜 잘 썼다.
-정부는 최선의 판단을 했다. 최준호에게 불체포특권을 준 걸 후회하지 않을 것…!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기자회견이 끝났지만 시청자들의 채팅은 끝없이 이어졌다.
*
치이익!
불판위에 익어가는 고기를 열심히 굽던 오종엽은 맞은편에 있는 나를 힐끔거리다 물었다.
“근데 승진한 건 넌데 내가 고기를 사고 있냐?”
“내가 사?”
“아니, 그건 아니고. 당연히 나도 대접할 생각은 있긴 한데 갑자기 시간 내라고 하니 이해가 안 돼서······.”
“생각해보니 너한테 얻어먹어야 하는데 깜빡한 거 같아서.”
“그런 건 깜빡해도 되는데.”
“안 잊어먹어. 그러고 보니. 이제 내 직위가 더 높군.”
녀석이 첫 출근 때 했던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되돌려줬다. 오종엽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눈이 마주칠까봐 불판에 시선을 옮긴 녀석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 음. 그럼 존대할까요?”
“그냥 해본 말이야. 공적인 자리에서나 잘 지켜라.”
“그치? 그런 거지? 후! 난 또 진심인 줄 알았네.”
“종수는 어때?”
“통원치료 해도 될 만큼 나았어. 종수가 퇴원하고 놀래켜 주자고 했는데 들켰네. 진짜 네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정말 고마워.”
어떻게 되긴, 빌런이 됐겠지. 오종엽 때문에 말소자가 등장했고 버서커라는 미친놈이 들러붙었다. 놈은 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종수는 앞으로 계획은 있고?”
“난 괜찮다는데 자꾸 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라. 돈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러네.”
“일할 수 있는 상탠가?”
“할 순 있는데 체력은 안 좋아. 그래서 몸 쓰는 일은 무리. 체력이 좋아지면 하자고 설득 중이야.”
“그럼 국가수호국으로 출근시켜보는 건 어때.”
“응?”
“내 휘하에 공무원 몇 명 뽑을 수 있으니까. 종수가 괜찮으면 출근시켜봐. 간단한 서류 정리랑 심부름 정도만 하면 돼.”
“어, 괜찮을까?”
“괜찮으니까 하는 소리다.”
오종수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내가 레벨 8이 되었다고 하자마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연락 때문이다.
그중에서 내 직권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자체 팀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엄한 사람 들여놓으면 내 행적이 줄줄 새어나갈 게 뻔해서 아는 사람으로 채워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대상 중 하나가 오종수였다.
저번에 보니 똘똘하고 분위기 파악도 잘해서 오종엽이 깐족대는 걸 효과적으로 틀어막을 것 같다.
“기회를 주면 감사하지. 종수도 하겠다고 할 거고.”
“같은 국가수호국 내라 지켜보기도 쉬울 거다.”
“고맙다. 진짜 고마워.”
“그럼 고기나 더 사던가.”
“그, 그럴까? 얼마든지 시켜!”
친구의 호의를 배신할 수 없지.
나는 녀석의 바람대로 메뉴판에 부위 중 제일 비싼 걸 주문했다.
“여기 살치살 2인분이랑 업진살 2인분, 차돌된장찌개 추가요.”
“······.”
오종엽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었다.
*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보고 있어요.”
안으로 들어온 직원에게 이세희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조금 전 끝났지만 실시간 채팅창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건 기회죠.”
“예?”
기자회견에서 난데없이 터진 폭력사건. 그 과정에서 신성제약 회복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비상사태였지만 이세희의 명령은 달랐다.
“회복제 재료 가공량을 늘리도록 해요. 계열사에 생산 원료 발주량을 늘리고요.”
“아, 알겠습니다.”
“빨리 움직이도록 해요. 곧 회복제 주문량이 폭주할 테니.”
보고하러 올라왔던 직원은 일거리를 잔뜩 떠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이세희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몸을 묻었다. 조금 전 본 장면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레벨 8이 되었어도 최준호는 최준호다웠고 신성제약은 큰 기회를 잡게 되었다.
“다 알고 도와준 거겠지.”
대놓고 기레기를 빌런으로 지목하고 조질 줄 몰랐지만 거기서 회복제를 사용할 줄 몰랐다.
그것도 상표를 대놓고 드러내고.
역대급 PPL(간접광고)이었다.
팔다리가 부러진 기레기의 부상이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걸 봤으니 효과가 확실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리라.
이건 곧 회복제 광고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주문량 폭증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준호가 역대급 화제성을 얻게 되었다면 이익은 신성그룹의 것이 되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팀장님.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오늘 미팅은 없는데요.”
약속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만남은 이세희가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손님의 정체를 듣자 이세희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게 손님이 최준호 초인님입니다.”
“지금 어디 계시죠?”
“프런트에 계십니다.”
“10분! 10분을 지연시키세요.”
“아,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가고 혼자 남은 이세희가 빛의 속도로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건 과하지 않게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러운 것. 각성자의 신체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다 고 쳤다. 풀어놓았던 목걸이, 귀걸이, 팔찌를 착용하고 남은 시간 동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정확히 10분이 되자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최준호만이 아닌 최윤희도 함께였다. 최준호의 팔을 잡고 질질 끌고 온 최윤희가 사과를 건넸다.
“언니,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이 웬수가 아주 큰 사고를 쳐서 사과하러 왔어요.”
“아니, 괜찮아. 준호 씨가 회복제를 광고해 주셨는걸.”
“봐라.”
“아니, 기자 조져놓고 우리 회사 물건 써놓고 뭐가 그리 당당한 건데?”
“기자가 아니라 빌런이지.”
“어이구 그러셔요? 기자 모인 자리에서 기자 조져서 전부 적으로 돌려놓고서?”
최윤희가 기가 찬 듯 말했지만 이세희가 끼어들어 정정해줬다. 최준호의 행동에는 고도의 노림수가 있다, 여태까지 최준호를 봐온 이세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기자들이 준호 씨를 적대하기 쉽지 않을 거야.”
“왜요?”
“준호 씨가 평범한 각성자가 아닌 초인이니까.”
초인이 가진 권한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공격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초인의 무력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최준호는 첫 만남부터 그 틀을 깨버렸다.
무력 앞에 초연할 수 있는 기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최준호에게는 불체포특권이 있다.
“특히 죄 없는 기자를 공격한 게 아니야. 실제 혐의가 드러난 기자를 공격했어. 선량한 기자와 분리시킨 거지. 제목으로 장난질하던 기자는 공격하지 않았고.”
“고예진 기자가 제일 악질인데······.”
“그리고 하나 더, 준호 씨는 일부러 강하게 나가서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도 있어.”
“진짜요?”
“국가수호국 시절 과잉 진압 건이 많았던 건 사실이니까. 기자들에게 얕보였으면 이걸 시작으로 계속 물어 뜯겼을 거야. 하지만 처음부터 기레기 하나를 처리하면서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고 ‘선 넘으면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준 거지. 초인이 날 공격하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고 낚시성 기사를 남발할 수 있지만 그 초인이 날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결과적으로 경고가 되어 최준호에 대해 기사를 쓰려면 한 번 필터링을 거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게 고도의 노림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최준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세희는 그가 판을 짰다고 확신했다.
강력한 무력만큼 교활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최윤희는 가족이라 오히려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최윤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첫 이미지를 과격하게 가져감으로써 준호 씨는 앞으로 활동 반경이 위축되지 않도록 유도한 거야. 맞죠?”
“그래.”
“그리고 하나 더. 준호 씨는 기레기를 부상 입혔지만 그 자리에서 치료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것도 보여줬어. 이건 윗사람들을 향한 메시지가 돼. 간섭하려고 들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해질 수 있지만 간섭하지 않으면 자기가 알아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는 뜻이지.”
“호오.”
최준호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오는 감탄사에 최윤희가 눈에 불을 켰다.
“오빠는 별 생각 없이 지른 거 같은데 언니가 의미부여하는 거 같아요.”
“아니야, 윤희 넌 준호 씨의 노림수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준호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보고 움직이셔. 상황을 조성하고 유리한 판을 만드는 거지. 안 그런가요?”
“···모두 네 말대로다.”
3초 정도 멈췄다가 대답한 최준호가 미소를 지었다.
“모두 내 의도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