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레비아탄이 날 데려간 곳은 사방이 반투명한 막으로 뒤덮인 곳이다.
수족관 한복판에 온 것 같은 바다 속 안 날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용궁 같은 곳이군.
[여기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야.]“그래서 여기서 대화를 나누자는 건가?”
[아니, 이제부터 안내해야지.]그런데 레비아탄은 움직이지 않고 꼬물거리고 있었다.
뭐하자는 거지?
파아앗!
내가 의문을 가질 때, 찬란한 빛과 함께 내 앞에 인영의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자리한 것은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얘도 현아처럼 변신을 할 줄 아는 거였군. 겉만 보면 신수와 마물의 차이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으로 변신한 레비아탄의 겉모습은 안나 크리스틴과 흡사했다.
옷은 고대 그리스 시절 복장 같았는데 그보다 노출이 더 많은 형태였다.
“안내할게.”
난 앞장 서는 레비아탄의 뒤를 따랐다.
내가 용궁이라 명명한 공간 중심에는 작은 궁전이 자리했다. 마치 바다 속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신기함이 내 앞에 펼쳐졌다.
대체 어떻게 바다 속에 궁전을 지은 거지?
그 의문은 궁전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고대 예술품들이 궁전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앉아.”
레비아탄이 권한 자리에 앉으니 고풍스러운 자기로 만들어진 잔을 내게 내밀었다. 안에 든 내용물은 그냥 평범한 물이었다.
여기에 있으니 먼 과거로 이동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길게 얘기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에 난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서 용용이를 보내고 날 초대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그 신수를 용용이라고 불러? 귀여운 어감이네. 고고한 신수가 그걸 순순히 허용할 리 없는데.”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건 아무 의미가 없나 보네. 꽤 신경 써서 꾸며낸 건데.”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는 다리를 꼬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뭇 남자의 심장이 두근거릴 자태였지만 내가 볼 때 바다뱀이 인간 거죽을 뒤집어 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유혹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나?”
“인간은 시각적인 연출이 중요하다고 들었거든. 내 착각이었나 봐. 난 꽤 매력적으로 꾸며놨다고 생각했는데.”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날 초대한 이유는?”
“직선적인 남자네. 알았어, 말할게.”
코웃음 치듯 말한 레비아탄은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같이 다니는 신수에 대해 내 얘기를 들었을 거야. 우선 말하자면 그 얘기는 전부 거짓이야.”
뭔 얘기를 한 줄 알고 저러는 건지.
“네가 마물인 것도?”
“내가 마물인 건 맞긴 해.”
“그럼 신수의 정수를 취한 게?”
“그것도 취하기는 했는데…….”
“그럼 대체로 다 맞는 말을 한 거 아닌가?”
“그러네? 생각보다 맞는 게 많구나.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이 녀석, 어딘가 모자란 게 분명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를 단절시킨 대서양의 지배자로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용용이도 겉만 봐서는 신수라고 보기 힘들긴 하다.
초월적인 존재라고 자부하는 녀석들은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 있군.
“뭐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지부터 말해.”
“우선 내가 마물인 것도 맞고 신수의 정수를 취한 것도 맞아. 그리고 그거 빼고 전부 거짓이고.”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듯 레비아탄은 내게 자신의 억울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레비아탄이라는 마물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악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 대서양은 자신의 영지이며,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자위권을 발동했을 뿐이고 실제로 다른 곳에 피해를 준 적 없다는 게 레비아탄의 주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나타난 것도 철저하게 대서양을 침범했을 때다.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경유할 때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항로가 몇 배 더 길어지긴 했지만 자기 탓은 아니란 게 녀석의 주장이다.
“그래서 결론이 나 착하다는 건가.”
“아니,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신수들은 마물을 악하다고, 소멸시켜야 할 존재로 말하고 있어.”
용용이 뉘앙스에서 미묘한 적의를 감지하기는 했다.
“그 이유가 뭔데?”
“나는 신수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으니까.”
레비아탄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자신이 신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기에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서양에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신수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네가 나타났어. 인간의 몸으로 신수조차 사냥해낸 인간.”
레비아탄은 내가 신수에게 속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신수에게 속아?
“넌 신수의 사냥개 노릇을 하고 있어.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글쎄.”
그동안 내가 사냥해온 것은 모두 내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옆에서 용용이의 부추김이 있었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내 몫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빗나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대답을 들은 레비아탄이 미소를 지었다.
“네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날 사냥하려던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거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있어.”
“말해봐.”
“이대로 가면 나도 너도 모두 신수의 손에 처리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신수가 아닌 자신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난 용용이나 현아에게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에 레비아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신수는 순수를 추구해. 신수가 아닌 존재가 힘을 가졌다면 그들에게 정화 대상에 불과해. 왜 그들이 방치된 신수의 정수를 회수해서 소멸시킨다고 생각해? 불순한 존재가 동급의 반열에 올라서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래. 넌 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냥개야. 네 힘이라면 자신들이 무리를 범하지 않고 제거에 나설 수 있으니까.”
“넌 그걸 어떻게 잘 알지?”
“내가 과거의 네 역할이었으니까.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게 우연찮게 신수의 정수를 발견해서 그런 거라 생각해? 아니야.”
레비아탄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 속에 깃든 감정은 짙은 비웃음이었다.
“난 이곳에서 날 제거하려던 신수를 잡았어. 그리고 그 힘을 취했어.”
“…….”
“신수들이 건드리지 못한 채 지켜보고만 있는 이유야. 신수는 순수한 존재인 만큼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거든. 자신이 소멸할 수 있는 위기를 감수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날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사냥개로 선택한 게 바로 너고.”
레비아탄의 말은 확실히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긴, 한국도 미국도 내 성향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춰서 대응하고 있는데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신수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레비아탄의 설명으로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레비아탄이 초대 사냥개였다면 내가 2대 사냥개라는 의미로군. 같은 사냥개끼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의미일 테고.
“맞아. 우리의 협력은 우리의 안전을 지금보다 더 크게 보장할 수 있어.”
그래, 이것이 레비아탄의 목적일 테지. 굳이 용용이를 밀어내서라도 날 보려고 한 이유일 것이다.
근데 난 녀석처럼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신수의 치명적인 약점마저 알고 있고.
“싫은데.”
“뭐?”
“지금 네 말은 살고 싶어서 꾸며낸 거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왜 믿어야지?”
“정확하게 봤네. 맞아, 나 지금 살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건 전부 진실이고. 그게 뭐 잘못됐어?”
“…….”
“그리고 나 혼자 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너도 이게 사는 길이니까 얘기하는 거잖아. 왜 얘기하면 바로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교활한 신수 녀석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신세지. …아! 물론 너랑 손을 잡고 싶다는 말이었어. 오해는 안할 거지?”
“제대로 알아들었다.”
“화난 거 같은데.”
“딱히.”
“화내지 마. 같은 사냥개 신세인데.”
이젠 아주 막나가는군.
“…….”
나와 레비아탄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처음에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쓸 생각이었지만 레비아탄과 대화는 몇 가지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녀석이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 신수들이 자신들의 순수성을 추구한다는 점 말이다.
그제야 용용이가 왜 자칭 신을 만나보고자 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은 확인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칭 신이라는 것이 마물이 힘을 얻어 신 행세를 하는 건지 아니면 신수가 다른 형태로 신을 자처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니 일련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살기 위해 손을 잡자는 건데.”
“당연히. 모든 생명체는 계속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애원해봐.”
신수조차 잡은 마물이라면 그 자존심이 드높을 터. 녀석의 잘 포장된 인격을 들춰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레비아탄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강적이었다.
“제발 나 좀 살려줘. 나 이대로 죽기 싫어. 신수들 눈 피해서 잘 버텨왔는데 너랑 싸우다가 부상 입으면 이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
고개를 숙이면서 냉큼하는 모습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살기 위해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녀석일 줄이야.
“바짓가랑이라도 잡을까?”
“됐다.”
녀석을 고고한 자존심을 가진 존재로 생각한 내 착각이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이 한 말 중에서 곱씹어볼 부분도 존재했다.
“그 말은?”
“그렇다고 네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아. 돌아가서 내 나름대로 확인절차를 거칠 거다.”
“내 말이 거짓이면 날 죽이러 와도 돼. 난 거짓말을 한 적이 없거든.”
“대신 내가 여기에 온 목적 하나를 이뤄야 하는데.”
“뭔데?”
“바다 길을 열어.”
파티에게 있어 레비아탄의 존재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북미와 유럽을 잇는 항로의 확보였다.
“그거라면 가능해. 내가 예민해져서 내 영역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거든. 든든한 동맹이 원하는 일인데 사소한 거슬림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언제 동맹이 된 거냐.”
“지금 이 순간.”
녀석이 뻔뻔하게 히죽 웃는다.
분명한 건 정상이 아니라는 거다.
“신수의 순수성을 지니지 못한 초월적인 존재는 서로 기댈 수밖에 없어. 설사 신수와 친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 날 이해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단다.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애초에 난 누군가의 이해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도 빌런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고.
“그러니 우리끼리 친해지자.”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서로 이해 좀 해줄 수 있지, 섭섭하게 말하네.”
“불만이면 덤벼보던가.”
“난 각자의 결정을 존중해. 온 김에 선물 챙겨줄까?”
태세전환 하나만큼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건 그렇고, 난 아까 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던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건 직접 만든 건가?”
“아니, 바다 속에 가라앉은 걸 원상복구 시킨 거야. 멋있지? 여러 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가지고 왔어.”
“바다에 가라앉아?”
“너희가 잃어버렸다고 하던 문명 같던데? 아마 여기 물건 가져가면 대박 날 걸?”
“…….”
해맑은 얼굴로 고고학계가 뒤집힐 말을 하는 레비아탄이었다.
*
* *
별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레비아탄에게 이것저것 선물로 받아서 영역을 벗어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인간 문화에 상당히 깊숙이 심취한 녀석이더라.
언제고 자신의 영역에 인간 문명을 누릴 수 있는 설비를 갖추겠다는 이상한 목적이 있었다.
[왔어? 일은 잘 해결했고?]레비아탄에 의해 플로리다 근처에 도착한 나는 귀신같이 날 찾아온 용용이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수라는 녀석들이 그런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냐니까?]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멍청한 얼굴에서 그런 음모를 꾸밀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 녀석이 음모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고역이군.
[자꾸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할 거야?]“이쪽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일단 레비아탄은 처리하지 않았다.”
[알아. 붙었으면 저렇게 잠잠할 리 없겠지.]“그럼 얘기나 하자. 자리를 옮기자.”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