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난 용용이와 이동하면서 천천히 녀석의 기색을 살폈다.
레비아탄을 사냥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음에도 녀석은 크게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포커페이스인가 아니면 별 생각이 없는가.
나는 후자라고 보고 있다.
애초에 자신의 목적을 꽁꽁 숨길 정도로 치밀한 녀석은 아니다.
물론 그동안 날 대하면서 철저하게 가면을 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지.
그렇다면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레비아탄이 날 속이려는 경우와 ‘일부’ 신수의 경우를 겪어보고 지레짐작하는 경우다.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뒤, 용용이는 궁금했던 부분을 캐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얘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대화가 통하던데.”
[그 마물이? 널 속이려고 한 건 아니고?]“놈이 속이려고 하면 내가 속겠냐.”
[당연히 속지. 너 생각보다 잘 속던데?]용용이 이 녀석이.
하지만 이것이 나름대로의 걱정이 담긴 말이라는 걸 눈치 챘다.
“속은 게 아니라면 그렇게 알아.”
[알았어.]“얘기를 나눠보니 꼭 죽이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신기하네. 보통의 너라면 어느 정도 강할지 궁금해서 붙어볼 줄 알았어.]“붙어보길 바랐던 건 아니고?”
한 번 푹 찔러봤는데 용용이 반응은 태연했다.
[마물이 저 거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게 달갑지는 않거든. 기왕이면 제거하는 게 좋지. 당장 멀쩡해보여도 언제 힘에 집어삼켜질지 모르니까.]“그건 그때 가서 제거하면 되겠지.”
[그것도 그러네.]묘하게 사냥하라는 쪽으로 얘기하는 게 레비아탄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신수가 마물에 가진 적대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물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제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사냥 목적은 항로를 여는 거였으니까. 녀석이 열어주기로 했으니 제거하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다. 네 말대로 미쳐서 날뛰면 그때 제거하고.”
[그렇구나.]미지근한 용용이 반응에 레비아탄의 말이 전부 맞는 게 아니란 걸 확인했다.
“레비아탄을 보니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뭔데?]“그 자칭 신이라는 녀석 말이다.”
[유럽에서 봤던 신 말이지? 갑자기 그 녀석은 왜?]“레비아탄을 대할 때처럼 강경하게 얘기하지 않던 게 기억이 나서. 넌 그때 녀석을 보고 지금처럼 반응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네가 볼 때 그 자칭 신이라는 녀석은 신수가 신을 사칭하는 거 같냐, 아니면 마물이 위장한 거 같냐.”
용용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볼 때 자칭 신은 신수일 확률이 거의 100%였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다. 과연 용용이 반응이 달랐던 건 신수와 마물의 차이여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레비아탄이 말했던 신수의 순수 추구는 맞다는 의미가 된다.
부지런히 눈알을 굴리던 녀석이 어렵게 대답했다.
[아마 신수일 거야.]“확실하지는 않고?”
[응. 서로 깊이 파악하려들지 않았거든.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킬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무엇보다 기세가 안정되어 있어서 폭주의 우려가 없었거든.]“레비아탄은 마물 출신이라 폭주의 우려가 있는 걸 테고.”
[…맞아.]그렇다면 적어도 레비아탄이 주장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신수여서 믿음을 갖는 걸까, 아니면 신수 외에 누구도 믿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해. 신수라고 해서 꼭 믿고 그런 건 아니야. 천둥새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던 걸 너도 봤잖아?]“그랬었지.”
[신수도 얼마든지 폭주할 수 있어. 다만 그 판단이 종에 따라 온도 차이가 존재할 수 있는 거지.]이 녀석, 내가 어떤 부분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건지 눈치 챘다.
[생각해봐. 네가 그렇게 폭주하고 다니는데 내가 너에 대해 레비아탄처럼 우려를 드러낸 적 있어? 적어도 난 그렇지 않아. 신수가 비슷한 격을 가진 존재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그래, 레비아탄의 우려도 맞는 말일 테고 용용이가 말하는 것도 정답일 것이다.
좀 더 캐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 있다.
“근데 나 없는 곳에서 내 험담 많이 하지 않냐?”
[솔직히 넌 좀 심하잖아.]“이 정도면 정상적인 행동이지. 오히려 나로 인해 예방효과도 있고.”
[전혀.]신수도 쑥스러움을 타나 보다. 용용이 녀석이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걸로 하자.”
[먹고 죽지 않는다고 해서 유통기한이 지켜진 건 아니라니까? 넌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유통기한이 많이 지나 있어. 솔직히 너에 근접한 인간도 본 적 없고.]녀석은 인간 상태를 유통기한에 빗대지만 생각 보면 유통기한은 제품마다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먹고 탈이 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에휴, 너 마음대로 생각해.]말을 안 해도 이미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중이다.
*
* *
최준호, 헤드 브레이커의 존재는 미국 정부나 파티에 있어 분명 큰 부담이 가는 존재였다.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강함으로 인해 세계 질서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힘의 남용으로 인해 세계를 호령하던 이들이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무사히 사냥을 성공하길 바랐다.
특히 파티에서 더더욱.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전개는 헤드 브레이커와 레비아탄의 충돌로 어느 한 쪽이 살아남는 것이지, 대화를 통해 성과를 가져오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이 팬텀으로 하여금 허버트와 다니엘의 맞은편에 앉게 된 이유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이 성사되었어. 이건 우리가 생각하던 방향도 아니었고.”
“그래도 대서양이 열린 거 아닙니까? 축하드립니다. 파티는 지금보다 더 거대해지고 더 강해지겠군요.”
“그렇게 될 테지. 하지만 헤드 브레이커한테 확실하게 목줄을 잡힌 상태로 진행될 거고.”
레비아탄을 사냥했다면 대서양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형태일 테지만 레비아탄의 허락을 얻었다면 최준호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닫히게 될 것이다.
물론, 레비아탄이 사라졌을 때 그 빈자리를 채울 마물을 생각하면 안전은 더 확실해진 셈이다.
“그건 유감입니다.”
“유감인 것치고 좋아하는 것 같군.”
“그럴 리가요. 더 강해질 파티를 상대할 생각에 머리가 아픈 상황입니다.”
그러면서도 허버트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익이라 판단한 것임이 분명했다.
“슬슬 우리를 부른 이유를 알려주시죠.”
“그래야겠지.”
팬텀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우리 손을 잡아라.”
“갑자기 불러와서는 손을 잡자?”
“다음 대선을 위해 헤드 브레이커와 접촉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대로 서로 갈라져서 대립해서는 정부나 우리나 좋지 못하지. 그러니 공동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걸 제안하는 것이다.”
“공동의 적이라면?”
“리그. 그리고 헤드 브레이커.”
노골적인 언급에 허버트와 다니엘이 멈칫했다.
손을 잡자는 것도 가볍지 않았지만 이 제안도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허버트.”
머릿속을 헤집는 고민에 생각을 거듭하던 허버트는 다니엘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전자는 힘을 합쳐서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후자는 우리가 힘을 합친다고 해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팬텀께서 나이가 드셨나봅니다.”
빈정거리듯 말했지만 허버트는 팬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헤드 브레이커와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그의 존재는 너무나 위험했다.
“헤드 브레이커는 독식도 하지 않으면서 균형을 무너뜨리는데 거리낌이 없지. 녀석이 계속해서 세계 곳곳을 휘젓는다면 혼란은 커질 거다. 그걸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놓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그거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손을 잡겠나?”
“대신 다음 대선은 우리가 가져가야겠습니다.”
태연하게 가장 큰 걸 가져가겠다고 선언한다.
이 동맹이 천년만년 이어지지 않을 걸 양측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가장 큰 걸 먼저 챙기려고 하는 것이다.
팬텀은 코웃음 쳤다.
“이미 헤드 브레이커와 접촉해서 다 정해놓고 잘도 그런 소릴 하는군.”
“그래도 확실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쩔 수 없군. 받아들이지.”
더 이상 밀어붙이기 어려웠던 팬텀은 허버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긴장을 거두지 않던 허버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니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됐다고, 이제 다음 대통령은 네가 될 거야, 다니엘.”
“…….”
이 자리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된 주인공이 정작 웃지 못하고 있었다.
*
* *
레비아탄의 사냥이 아닌 협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서 여러 가지를 재조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자기들끼리 논의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그 시간 동안 졸라맨과 박사 보디빌더들에게 레비아탄에게 받은 물건을 연구재료로 넘겨줬다.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난리가 났다.
“준호! 이게 뭐야? 이건, 졸라 상상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잖아!”
“물건 준 녀석은 아틀란티스 거라고 하니 당연히 신기하겠지.”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라고?”
“시간은 많으니 넉넉하게 살펴봐.”
졸라맨 반응을 봐서는 물건은 확실해 보이는데 어떻게 처리할 건지가 고민이긴 했다.
서울로 가져가서 박물관이라도 차려야 하나. 늘 부수고 불태워버리다 보니 손에 뭔가 쥐어졌을 때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경악하며 달라붙는 졸라맨을 떼어놓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카야마에게 리그의 거점 하나를 들었으니 조만간 찾아가기로 하고 시간을 잡아 현아를 만나야겠다.
[갑자기 현아는 왜?]“몇 개 물어보려고.”
[그런 거면 나한테 물어봐도 돼. 나도 충분히 대답해줄 수 있어.]“신경 써줘서 고마운데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런 거거든?]“그럼 신경 꺼.”
[아, 왜. 무슨 생각인 건데? 나한테 말해보라니까? 내가 해결해줄 수도 있잖아.]적당히 거절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나, 생각보다 질척거리는 걸 안 좋아하는 걸지도.
“현아한테 물어봐야 해결되는 거니까 넌 신경 안 써도 돼.”
[진짜 뭔데? 엄청 궁금하네.]“계속 궁금해 하던가.”
[진짜 야박하네!]그렇게 용용이와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내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초인님! 큰일입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양주혁이 방금 전에 이집트에서 터진 사고에 대해 내게 보고했다.
뭔가 싶어서 들었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이긴 했다.
“멍멍이랑 호루스가?”
“예. 두 마물이 서로 마주치더니 강렬한 적의를 보이곤 격렬한 충돌을 벌이는 중이라고 합니다.”
정유 운반선을 지키기 위해 동행했던 멍멍이가 호루스와 대판 붙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기 싸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변 지형이 초토화 될 정도의 싸움이란다.
듣는 내용으로 판단하면 세상이 뒤집어질 어마어마한 여파가 전해지는 것 같다.
“청와대로 가지.”
양주혁과 함께 청와대로 향한 나는 자세한 내용을 보고 받을 수 있었다.
멍멍이와 호루스가 죽자살자 싸우는 게 사실이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유 운반선이 상하지 않게 철저히 선을 지킨다는 점 정도?
하지만 플러스 단계에 접어든 두 마물의 충돌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실제로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물론, 정유 운반선에 동행한 사람들과 사우디 측 사람들은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함구 중이라고 한다.
“이 사태를 종결지을 수 있는 건 초인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처리해달라는 건데.”
양주혁은 그렇다는 듯 간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심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천명국은 물론, 다른 청와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이걸 왜 이렇게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냥 놔두면 될 거 같은데?”
“예?”
난 양주혁은 물론이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 아닙니까.”
그저 덩치가 좀 크고 힘이 좀 셀 뿐이다.
“…….”
황당함이 담긴 시선이 내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