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뭔가 거창한 말이 나올 거라 생각했던 현아의 대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했다.
“넌 인간이니까.”
“그게 뭐?”
“인간의 삶은 길지 않아.”
간단하지만 강렬한 말이로군. 난 코웃음 쳤다.
“두고두고 분탕질을 못치고 죽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거냐?”
“응.”
“…….”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니 오히려 말문이 막힌 측은 나였다.
“넌 모를 거야. 영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100년, 200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야. 그 시간 안에 초월자가 나타날 수도 있고 우리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와 종이 다른 존재가 영원을 살아간다는 건 다른 의미거든.”
“결국 신수가 아니라서 믿지 못한다는 거로군.”
“그렇게 봐도 돼. 그게 일반적인 신수들의 생각이야.”
“말이 강경한 것과 다르게 너는 무리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불필요한 충돌이 더 큰 여파를 일으키기 마련이야. 난 신이라고 칭하는 녀석이나 천둥새와 달리 간섭을 최소화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
결국 신수들도 인간 사회와 비슷한 것 같다. 신수의 순수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려는 강경한 녀석들이 있고 현아처럼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고.
다만 고작 100~200년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지 겪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고는 한다.
이거야 수틀리면 사용할 방법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용용이랑 생각이 다른 거 같은데.”
[내가 거기서 왜 나와?]불퉁하게 지켜보던 용용이가 반발했지만 난 신경을 끄고 현아를 바라봤다.
“아닌가?”
“맞아. 용이는 신수가 아닌 존재가 힘을 갖는 걸 우려하고 있어.”
[야야, 거기서 왜 말해!]소리 지르는 용용이에게 현아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인간 옆에 있으면서 그것도 몰라? 사실대로 말해야 앞으로도 편할 거야.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렇긴 한데… 네가 저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게 놀려대는지 몰라서 그래…….]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용용이는 더 방해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현아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용이가 잘못된 게 아니야. 용이가 육신을 갖출 당시 그 힘을 탐낸 마물이 있었거든.”
“듣긴 했지.”
그 마물의 심장을 내가 몇 번 유용하게 사용했다.
근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사연이 있었나 보다.
“간단하게 끝낼 내용이 아니었어. 당시 용이는 힘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 존재가 힘을 갖게 될 때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직접 봤어.”
때는 용용이가 신수로 각성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물의 등장 이후, 실체가 존재하지 않던 신수는 실체를 갖출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영원의 소멸을 선택한 신수가 있고, 육신을 갖춰 초월적인 존재로 탄생한 신수들도 있다.
용용이는 그 선택이 상당히 늦은 신수였다. 그리고 방치된 신수의 정수를 탐낸 마물이 신수의 정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용용이가 신수의 정수를 탐내고 접근한 마물을 발견하고 소멸시킨 줄 알았더니 현아가 바로잡아주었다.
“달라, 용이의 선택이 늦어서 마물이 신수의 정수를 절반 이상 흡수한 상태였어.”
그로 인해 용용이는 존재의 유무를 건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혈투 끝에 승리한 건 용용이고. 하지만 당시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책임 없는 힘을 가진 존재는 위험하다, 이것이 용용이가 가진 생각이다. 현아보다 더 강경하지만 현아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는 말이로군.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결국 지가 우유부단하게 미적대다가 죽을 뻔한 멍청한 사건 아닌가?”
[야! 아무리 입이 뚫렸어도 말을 그렇게…….]“그 말이 틀린 것도 아냐.”
[야아! 넌 내 편을 들어줘야지!]“사실인 건 맞으니까.”
[진짜 내 편이 하나도 없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딱 봐도 저 멍청이는 자기 의견이 있어도 현아의 말을 따를 듯하니 넘어가면 될 듯싶었다.
[내가 이래서 저 인간하고 상종을 하지 않으려고 한 건데.]“저 멍청이는 자신이 자초한 일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더라도, 중요한 건 신수들의 의견일 듯한데 강경한 녀석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되지?”
“전체로 보면 70%가 조금 못 돼.”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걸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녀석은 적겠지.”
“맞아. 그것이 여태까지 균형을 이루게 만든 이유고.”
신수의 순수성을 주장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다.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탁월한 자기 보신이기도 했다.
아니면 심기를 크게 거스를 만큼 임계점을 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고.
“자칭 신도 그런 부류인가?”
“맞아.”
“정체는?”
“그건 몰라.”
현아가 말하길 신수끼리 왕래를 갖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가까운 지역을 영역으로 두고 있으면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자아가 센 신수의 경우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너랑 용용이가 친한 건 네가 어떤 도움을 준 걸 테고.”
[…….]“그건 용용이를 위해 비밀로 할게.”
그런 것치고 용용이는 굉장히 지친 표정인데. 아무튼 신수끼리 왕래는 별로 없고, 신수의 근간이 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신수들 종 초강경파는 이미 인간 세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겠어.”
대표적인 게 자칭 신이라는 녀석일 테고. 천둥새도 비슷한 부류겠지.
“맞아.”
현아도 그것까지는 부인하지 못했다. 그럼 내 눈에 거슬릴 녀석들이 정해진 건가.
“그 녀석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게 목적인가?”
잠시 망설이던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가 초월적인 존재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건 인간이니까. 그 인간을 지배해야만 우리들의 위치가 공고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대표적인 게 천둥새와 자칭 신일 터였다.
“하지만 걔들의 지배 방식은 성공하기 어려워. 인간은 약하면서도 강해. 전면에 나서서 모두를 죽이지 않는 이상 지배한다는 의도는 이뤄내지 못할 거야.”
“그러는 넌 어떻지?”
“난… 이대로 흘러가는 걸 두고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온화한 방향이었다.
“난 인간의 문화가 좋거든. 신수들이 할 수 없는 창의적이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인간으로 변신해서 그걸 즐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존재를 유지할 이유로 충분해. 그걸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건 좋지 않아.”
“결국 너도 즐길 거리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로군.”
“그걸로 충분한 거 아냐?”
“충분하지.”
현아도 결국 신수였으니까. 그 신수 관점에서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아의 관점이 인간을 가장 대우해주는 것일 확률이 높다.
“생각해보니 말이야.”
“응.”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납득하는 건 이상하다 싶어서. 100년, 200년이라는 기간이면 내가 힘을 더 키워서 신수들을 전부 사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거든.”
아니, 힘만 있으면 그것보다 훨씬 덜 걸릴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지?”
“있어.”
“듣고 싶은데.”
“당연하게도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내가 널 인정하는 건 네가 가진 힘의 무게에 대해 알고 있어서거든.”
“내가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온 뒤 가장 신박한 소리였다.
내가 줄곧 들었던 소리는 힘을 지나치게 남용한다는 말이었다. 강자라면 좀 더 자중하라고, 의미 있는 곳에 쓰라고 귀에 딱지가 얹힐 정도였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 힘은 내가 얻은 결과물이다.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건 온전히 내 의지에 달린 일이고 책임도 내가 질 일이다.
그래서인지 현아의 말은 뜻밖이었다.
“너만큼 네 힘에 대해 자각이 잘 되어있는 인간은 본 적이 없어.”
“…….”
“잘 생각해봐. 내 말이 맞을걸.”
마치 모든 걸 꿰뚫어보는 것처럼 현아가 말했다.
반박하려던 나는 혈종일 때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부분이 생각났다.
혈종은 제어가 풀려 모든 걸 파괴해버린 빌런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제어가 풀린 채 움직이고 있지만 세계최강의 초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근본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는 없다. 내게 덤빈 녀석들을 죽이고 죽일 놈들을 똑같이 죽였다.
달라진 거라고는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뿐.
현아는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 힘의 무게를 알고 있어서인 걸로 보는 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내가 제정신인 걸 꿰뚫어보다니, 과연 신수다운 날카로운 안목이다.
“짚이는 부분이 있어.”
“그게 맞을 거야. 넌 네가 가진 힘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난 그래서 걱정 안 해.”
“언제부터 눈치챘지?”
“처음부터.”
“대단하군.”
“뭘 이 정도 가지고.”
내가 제정신인 걸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알아준 게 같은 인간이 아닌 신수일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현아를 오해하고 있었나 보다.
저렇게 맑은 눈을 가진 녀석을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니.
“하지만 다른 인간은 다르지.”
나야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내 힘의 무게를 알게 되었지만 강자라는 녀석들은 제어해주는 장치가 없다 보니 미쳐 날뛰는 게 다반사였다.
물론 그런 미친놈이 내 눈에 띄면 보이는 족족 죽이기는 했다.
“알아. 근데 그 인간이 너만큼 강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
“응. 그러니 걱정하지 않는 거고.”
현아의 근본적인 믿음에는 나 같은 강함을 가진 인간이 또 등장하지 않을 것에 있었다.
“하지만 신수가 힘을 보태준다면?”
“…충분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
“그렇게 되면 꽤 귀찮아지겠어.”
“경계해야 돼. 하지만 그걸 견뎌내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그런가.”
그렇다면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말이 나온 김에 현아를 레비아탄에게 데려가 볼 생각이다.
“시간이 되면 같이 대서양이나 가지.”
“왜?”
“신수에 대한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녀석인데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으니까. 여차하면 네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다 싶고.”
“나쁘지 않네.”
나머지는 현아와 레비아탄의 몫이다.
비교적 온화한 녀석도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내가 간섭할 일은 없겠지.
“가자.”
[나도 가!]“넌 왜?”
[난 왜 빼놓으려는 건데!]“레비아탄에 부정적이었던 거 아니냐?”
[아니거든! 현아도 가는데 내가 못 갈 이유는 없잖아.]근데 난 별로인데.
“데려가자. 내가 잘 제어해볼게.”
“그렇다면야.”
[와, 이젠 완전 사고뭉치 취급이네.]순순히 수긍하는 현아와 마지못해 따라붙는 용용이를 데리고 대서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던 기운이 나의 등장으로 살짝 풀어졌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레비아탄은 현아와 용용이를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신수들을 데려온 건 나와 끝을 보기 위해서인가.]“아니, 널 제거하는데 별로 관심 없는 신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신수인데 날 제거하지 않는다고?]“세상의 모든 신수들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한테 관심이 많지 않아.”
세상에 즐길 거리와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레비아탄을 신경 쓸까.
내 말을 듣고 새초롬한 시선으로 날 보던 레비아탄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안내하지.]그렇게 나와 두 신수는 레비아탄의 공간에 진입할 수 있었다.
*
* *
내가 레비아탄을 데려온 건 곧 확보될 대서양 항로의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나와 이야기가 되었다고 해도 신수 이야기만 들으면 발작하는 녀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적대적이지 않은 신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 한 게 없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을 거두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 진짜에요? 저도 거기 가봤어요! 인간들의 발상이 정말 기발하다니까요?”
“나도 그거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저랑 같네요. 이렇게 취향이 같은 존재를 보게 될 줄 몰랐는데 신기해요!”
“나도 마찬가지야.”
“다음에 같이 여행 가요! 제가 계획 짜올게요.”
“기대할게.”
“…….”
눈앞에서 신수와 마물이 짝짜꿍하는 모습에 난 할 말을 잃었다.
[난 몰라, 다 네가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