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제법 길게 레비아탄과 대화를 나누던 현아는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러니 오히려 아쉬워하는 건 레비아탄 쪽이었다.
“언니, 다음에 또 와요.”
“응. 금방 올게.”
“언니 같은 신수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이곳에만 있지 않았을 거예요. 왜 이제 나타난 거예요.”
“나도 몰라. 너랑 잘 맞을지도 몰랐고.”
“그건 그래요.”
“오늘 만남은 유익했다고 생각해.”
“저도요.”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친자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친해진 둘이었다.
데려온 나도, 잔뜩 경계하던 용용이도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용용이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배신감이 드리워 있었다.
누가 보면 애인이 바람 핀 현장을 목격한 줄 알겠다.
“나와 용이는 손님이니까 먼저 갈게. 얘기 나눠.”
[어? 나도?]“너 때문에 자리가 불편해지잖아. 내가 데려가야 좀 더 편해질걸.”
[아니,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가자.”
용용이가 궁시렁거리면서 순순히 현아의 뒤를 따랐다.
*
* *
[좀 더 지켜봐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빨리 떠나는 건 안 좋은데.]“이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좀 더 살펴봤어야 해.]“용아, 넌 저 레비아탄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해? 저 모습을 보고도?”
[그건…….]“고집부리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한 톤 내려간 목소리에 용용이는 움찔 몸을 떨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친근한 모습을 보였어도 본질은 마물이야. 널 잡기 위해 연기를 하는 걸 수도 있어.]“그럴 수도 있겠지.”
[봐, 내 말이 맞지?]“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적어도 내 앞에서 열린 모습을 보여줬어. 거기에 응하지 못한다는 건 신수가 마물보다 못하다는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넌 좀 더 멀리 보고 싶다는 이야기지? 알았어, 방해하지 않을게.]“이해해줘서 고마워.”
감사 인사를 받았지만 용용이는 하나도 기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건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강요받은 거 아냐? 에휴,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뒤치다꺼리를 하게 됐는지 모르겠네. 고달프다, 고달퍼.]“네가 날 보살폈다고? 내가 진짜 보살폈던 게 어떤 건지 얘기를 해야 돼?”
[아, 아니. 굳이 머나먼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하하하하!]용용이는 어색하게 웃었지만 현아의 시선은 무미건조했다.
“우리의 시간으로 따져보면 별로 먼 과거도 아니야.”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근데 굳이 짚고 넘어갈 건 없잖아. 좋게 생각하자.]“그럴까.”
[응응, 그러자.]“이번만이야. 다음에도 선 넘으면 네가 좋다고 따라다니는 인간에게 과거에 있는 일들을 세세하게 알려줄 수밖에 없어.”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거야!]“그래서 대답은?”
[…알았어. 우리 지금처럼 서로 존중하는 변치 않는 우정을 갖자. 영원히!]“알아서 잘해.”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 거지?]나직한 경고가 담긴 말에 용용이는 찌그러지고 말았다.
*
* *
내가 레비아탄에게 현아를 데리고 온 것은 모든 마물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 용용이는 자기가 온 거라 꼽사리 낀 거다. 이놈은 데려와 봤자 마이너스라서. 그래도 현아 눈치를 보는 건지 별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어땠나?”
“으음, 나쁘지 않았어.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저런 신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고.”
“당연히 믿지 않아야지.”
“응?”
레비아탄이 멈칫했다.
“왜?”
“의외네, 믿으라고 데려온 거 아니었어?”
“아니, 신수가 전부 널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라고 데려온 거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할 만큼 자아가 강한 녀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힘을 갖고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 비대해진 자아로 온갖 사고를 치는 게 인간이다. 그보다 월등한 신수는 손해 보는 걸 싫어하며 다른 신수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걸 소멸하는 것보다 싫어한다.
그걸 눈으로 보여줘야 이해할 수 있기에 데려와서 보여준 것이다.
바로 쿵짝이 맞아서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될 줄 몰랐지만.
뭐,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자.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하면 돼?”
“할 거 없어.”
“응? 할 게 없어? 뭐 하라고 부른 거 아니야?”
“아닌데.”
신수만이 아니라 마물도 자의식 과잉이긴 마찬가지였다.
“세상 모든 게 네 적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된다.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예민하게 행동하면 그걸로 신수들도 경계하게 되니까 문제가 더 커지지. 적당한 선에서 누그러뜨릴 줄도 아는 게 좋겠지.”
그래야 대서양을 오가는 내 돈들이 안전하게 움직이겠지.
여차하면 틀어막을 수도 있고.
머리 좋은 녀석들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테니 괜히 날 귀찮게 구는 일은 없을 거다.
이런 게 억지력이란 거겠지.
“음, 맞아. 내가 예민한 게 있었어. 널 보고 데려온 것도 네 존재만이 신수를 상대하는데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해서였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네. 가장 큰 문제는 나한테 있었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군.
“나머지는 알아서 해. 그동안 꽤 외로웠던 거 같은데 순순히 믿는 것도 위험하단 걸 알아두고.”
“알았어. 도와줘서 너무 고마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굳이 주겠다고 하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저번에 줬던 물건 몇 개 더 줘봐.”
“많이 있어. 잔뜩 챙겨줄게.”
난 아틀란티스 유물로 추정되는 것들을 잔뜩 챙겨 들고는 복귀할 수 있었다.
*
* *
확실히 신수나 레비아탄을 보면 기프트보다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고속비행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육체가 그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엉망진창이 된다. 초재생이 있어 빠르게 원상복구가 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 전에 몇 차례 멈춰야 하는 페널티가 존재한다.
물론 감수할 수 있는 피해긴 하지만 신수나 레비아탄이 손쉽게 사용하는 걸 보면 욕심이 생겨난다.
“과욕이긴 하지.”
고속비행 하나만으로 해결된 게 많으니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가다듬으면 된다.
한국으로 복귀한 나는 모처럼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정주호가 초인이 되고 국가 소속이 되면서 더 이상 훈련실을 방문하지 않았기에 버서커를 잡아놓고 드잡이질을 하는 나날을 보냈다.
안정된 환경에서 안정된 훈련을 해서일까.
버서커 녀석의 실력은 무섭게 늘어난 상태였다.
이대로 붙으면 졸라맨도 흠씬 두들겨 맞겠는데?
보이지 않게 칼을 갈고 있다 싶었다.
그래 봤자 나한테는 샌드백 신세지만.
그걸 견디지 못한 건지 녀석이 내 앞에 주저앉아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해외 작전 요청을 받아들여야겠어. 더 못 해먹겠군.”
“넌 우리 팀 소속인데 무슨 소리냐?”
대놓고 탈출을 꿈꾸다니, 꿈도 큰 녀석이다.
이런 내 말에 녀석이 코웃음 쳤다.
“그 소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국가에서 요청이 오면 모든 초인은 응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 그 조항을 적극 이용하면 된다.”
“초인을 함부로 해외로 돌린다고?”
“초인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고.”
“위험해서 안 하지 않냐.”
“너한테 두들겨 맞는 것보다 낫다.”
버서커 이 녀석 진심이로군. 난 전부 녀석이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임해줬던 건데 벗어날 궁리만 하다니.
“섭섭한데?”
“이대로 더 구르다가 네놈한테 죽을 거 같으니 하는 소리다. 이제 나를 빌런이라 부르는 자들도 많이 줄었으니 국가를 위해 일도 해야겠지. 너만 이미지 개선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마침 해외에서 리그를 소탕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요청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버서커 녀석이 간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 오히려 분에 차고 넘치는 자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 개수작을 부리다가 모조리 머리가 부서질 걸 걱정해야 될 것 같은데.
녀석은 그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을 것으로 추측되는 호주의 요청을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라 최소 12궁의 초인이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
“까불면 머리를 부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거 행패 아니냐?”
“네놈이 저지른 짓은 생각도 나지 않나 보군. 난 아직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네놈이 뒤집고 다닌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버서커의 시선이 집요하게 날 쫓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한테 수작 부리려는 녀석들을 가만둘 이유가 없긴 하지.”
“크크, 그렇지.”
“다 죽여버려. 살아있어 봤자 해만 될 테니까.”
“옆에서 지켜본 게 있으니 명을 수행하도록 하지. 이번 기회에 12궁의 일원이나 만났으면 좋겠군. 시시하게 끝나는 건 싫으니까.”
부디 그 소원 이뤄지길 바란다.
“그런데 갑자기 반격이 이루어지는 느낌인데.”
“네 탓 아닌가?”
“난 왜?”
영문도 모르는 나라의 리그 세력에 난 영향을 끼친 적이 없는데?
버서커가 한심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네가 리그의 해커를 잡지 않았나, 그로 인해 리그 전력에 큰 문제가 벌어진 거고.”
“그 정도로 여파가 있는 일이었던가?”
“전투력은 낮아도 성가시기로는 삼악 이상이었지. 그러고 보니 삼악이 있군. 12궁보다 그 녀석들을 더 상대하고 싶은데 말이지.”
“뭐, 잘해봐라. 형편없이 굴어서 죽지나 말고.”
“크크크.”
나한테 실컷 두들겨 맞아놓고 전의를 불태우는 녀석의 모습은 참 기괴했다.
*
* *
“현재 리그 움직임은 극도로 축소되어 있는 상태에요. 모두 오빠 덕분이라는 평가에요.”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버서커의 해외 파견 작전 진척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나한테나 샌드백 신세였지 버서커는 나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초인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그 실력은 12궁에 근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볼 때 직접 전투력만 보면 그 이상인데 말이지. 아무튼 이런 버서커의 힘을 원하는 국가는 많았고 가장 강력한 리그 세력이 있는 국가로 파견되기로 결정이 났다.
“해커를 없앤 게 그 정도인가?”
“사실상 억제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까요.”
해커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미국을 시작으로 각국은 노출되어 있던 리그의 기지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쏟아지는 미사일 다발에 대처가 한발 늦은 리그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실력 있는 녀석들이야 폭격에도 살아남겠지만 대다수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못하니까.
오히려 거점을 두지 않고 민간인과 뒤섞인 곳의 빌런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지경이었다.
“그로 인해 입은 피해가 30%에 가깝다고 해요.”
“생각보다 피해가 큰데.”
“그만큼 노출되어 있는 게 많았다는 이야기도 되고요. 해커가 전투 능력은 낮은데 12궁의 일원으로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현재 리그는 모든 활동을 멈춘 채 재정비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각국 정부에서 놓칠 리 없었다.
그동안 리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곳들이 최정예 각성자들을 동원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우 아예 쪼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고.
내게 배우고 활약이라니, 흐뭇한 일이로군.
저우콴 사태 이후 나한테 기프트 알아보러 오는 녀석들이 뚝 끊겨서 그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완벽 범죄였는데 대체 어떻게 내가 범인인 걸 눈치챈 거지? 증거가 없어서 말을 꺼내지 않지만 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억울하군.
“다들 이렇게 움직이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어디 가시려고요?”
“알아둔 리그 기지가 있어.”
한 번 확인해봐야겠지만 나카야마가 얘기한 것이니 아직 남아 있겠지. 만약 그 장소에 없다면 나카야마를 비롯한 국제 용병단이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바로 옆인 일본에 있으니 거리도 가까워서 좋다. 그런데 내 앞에서 정다현이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저거 몇 번 본 적 있다. 전투에 참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때 나오는 반응이다.
“왜?”
“저도 갈 수 있을까요?”
리그 기지를 털러 간다니 정다현도 활약을 하고 싶나 보다. 빌런을 앞장서서 퇴치하고 싶은 마음가짐, 아주 보기 좋다. 하지만 데려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가 청와대 소속이긴 하지만…….”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보였나 보다. 표정에 딱히 드러난 것 같지 않은데 말이지.
아무튼, 정다현은 다른 의미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닌데.”
“네? 그럼 왜?”
“넌 너무 약해.”
“…….”
나야 고속비행으로 금방 도착할 수 있지만 정다현을 데려가려면 이동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같이 고속비행을 한다? 아마 도착하기 전에 전신이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다.
최소한 초인 정도는 되어야 어찌어찌 갈 것 같은데 말이지.
지금 상태로 정다현은 단순한 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말에 정다현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제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갈 수 있을까요?”
“초인은 되어야지.”
“초인, 초인이요.”
가볍게 언급되는 감이 있지만 초인은 여전히 국가에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위치이자 각성자들의 꿈이다.
“초인 되고 싶었어요. 조만간 초인이 되도록 할게요.”
정다현은 어딘가 결연한 표정으로 맹세하듯 내게 말했다.
초인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지.
그렇다고 격려를 못 해줄 이유는 없다.
“그래, 힘내고.”
“바로 되어야겠어요.”
내가 어딘가 불을 붙여버린 거 같은데 착각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