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최준호가 떠났다. 처음 말한 대로 리그 기지를 무너뜨리러 간 것이다.
“…….”
정다현은 침묵한 채 노려보듯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지금보다 더 강했다면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최준호의 정의는 과격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었다.
힘없이 스러지던 자신의 정의를 마주한 정다현은 강해지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닿지 못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일국의 대통령은 보고 싶다고 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정다현을 각별히 관리하고 있는 천명국은 없는 시간도 만들어 정다현과 마주했다.
“그만 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게…….”
정다현이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잔뜩 흥분한 천명국이 잘랐다.
“미국입니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미국으로 갈 생각은 아니고요.”
“그럼 어디입니까? 분명 다른 국가는 접근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게 아니라요.”
정다현은 당분간 훈련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을 밝혔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일과 병행하면서 훈련을 할 수 있지만 빌런 퇴치에 최준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보다 더 훈련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처음에는 놀랐다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정다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천명국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생각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반대입니다.”
“네?”
“초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알지만 초인의 경지라는 것은 간절히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기존의 루틴을 벗어나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한다고 해서 큰 효과를 보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정 비서관처럼 훈련량이 많은 각성자의 경우 더더욱.”
“그래도 저는 하고 싶은데요.”
“병행을 못하겠다는 겁니까?”
“할 수는 있겠지만 소홀해지게 되면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요.”
최소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였다.
고민하던 천명국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절 이겨보세요.”
“네? 대통령님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정다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명국이 뛰어난 각성자인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다.
“제 실력을 얕보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런 건 아닌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어디 가서 두들겨 맞을 정도는 아니니까.”
천명국의 운명을 가른 것은 시뮬레이션을 개방한 이후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각성자로서 발전을 포기했던 그는 기프트 활용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훈련을 재개했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성과에 포기하고 있던 그는 욕심을 버리자 놀라울 정도로 성과를 거두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대로 최초의 초인 대통령이 자신이 아닐까 기대감이 생길 정도였다.
대통령이 되어 철저한 관리까지 받으니 그 효율은 더 높아졌다.
지금 상태면 상대가 초인이 아니라면 누구든 꺾을 자신이 있었다.
“절 꺾으면 정 비서관의 바람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다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
* *
그래, 정다현이라면 신진 중 가장 가능성이 뛰어난 인재였다. 5년 이내에 초인이 될 거라고 불리는 초특급 유망주.
하지만 자신도 레벨 7 각성자이며 사전수전 다 겪은 실력자였다. 정치인으로, 각성자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실력으로 시뮬레이션을 보유한 자신이라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힘이 개입되는 순간, 시뮬레이션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허허.”
걱정스러운 정다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천명국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정다현의 파고들기를 허용하고 찰나의 순간 엉망진창으로 당했다.
고통조차 뒤늦게 찾아올 정도로 은밀하면서 빨랐다. 천명국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정다현의 실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깨달았다.
“약속은 약속, 약속은 지킬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비서관은 계속 해도 됩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모든 편의를 봐드리지요.”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큰 혜택인데요.”
정다현은 바로 거절하려고 들었다. 올곧은 모습에 천명국은 미소지었다.
“미래의 초인을 위한 당연한 투자입니다.”
“그래도 부담스러운데.”
“그럼 이렇게 합시다. 휴직 상태로 두는 거지요.”
갑작스러운 일로 휴직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는 법이니까.
천명국은 정다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보탰다.
“대신 초인이 되면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됩니다.”
“그건 당연해요.”
“그러면 됩니다. 뒷일은 제게 맡기고 정 비서관은 최선을 다해 초인이 되어주면 됩니다.”
저만한 천재가 굳게 각오를 세웠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걸 적극적으로 밀어줘야 한다.
“…감사합니다. 대신 저도 대통령님의 계획에 적극 동참할게요.”
“계획이라면?”
“삼촌을 다음 후계자로 생각하고 계시죠?”
“……!”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허를 찔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정다현은 미소지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삼촌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삼촌이 잘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적극 협력할게요.”
“주호가 이 자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삼촌은 풀어지면 마냥 풀어지거든요.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뻐하면서 받아들일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천명국이나 정다현 모두 알고 있었지만 한 마음 한 뜻이었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모종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
* *
청와대를 나온 나는 나카야마가 전달한 정보를 떠올렸다.
일본 내에 자리한 리그의 비밀기지. 한때 대대적으로 리그의 침공이 이어졌던 것은 이 비밀기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란다.
섬나라에 경제력 크기나 전력이 굉장한 일본이기에 리그는 오래 전부터 물밑에서 작업을 해왔고, 행여나 일본 진출이 실패하더라도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비밀기지를 수면 위로 노출시키지 않았단다.
[여기 있었네.]“어떻게 알고 왔냐?”
비밀기지가 위치한 곳은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인 삿포로였다.
내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용용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네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는 것쯤은 쉬운 일이지.]“현아랑 얘기는 좀 했고?”
[어, 했어. 문제 될 내용은 없어. 나도 레비아탄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대할 생각 없고.]“그래?”
그렇다면 크게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빌런 애들 잡으려고?]“어.”
[난 신경 쓰지 마. 할 일 해.]순순히 물러서는 모습이 대놓고 감시로 따라붙겠다는 것 같군.
그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비밀기지부터 찾아 나섰다.
이 기지는 러시아로부터 오래 전부터 보급을 받아온 곳이며, 리그의 비밀기지가 아닌 평범한 각성자 길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단다.
“양지에서 적당한 가면을 뒤집어 쓴 건 어디나 비슷하지.”
나는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도로에 스며들었다. 5월로 접어들었지만 쌀쌀하다고 할 수 있는 날씨 덕분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크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나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어보였고. 덕분에 당당하게 거리를 가로질러 목표한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래도 주변의 눈을 피해야 하는지 도시 외곽에 거점을 마련해두고 있다. 본관 건물이 있는 곳은 아예 인적이 드물 정도라서 리그의 빌런 출입이 자유자재일 정도였다.
리그 비밀기지로 위장하고 있는 곳은 니신(にしん) 길드였다. 홋카이도에서 잡히는 청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두 마음, 딴 마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 정도면 비밀로 할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가 방비도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입구에 달랑 두 명만 경비를 선 게 전부였다.
[식은 죽 먹기네.]그러게 말이다.
애초에 의심을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건가. 나야 상관없다.
“누구냐……!”
퍽!
간단하게 둘을 처리한 뒤 안으로 진입했다. 건물 내부 구조는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게 보이려고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제법 잔머리를 잘 굴렸다 싶었다.
“그래봤자 별 의미는 없지만.”
보이는 족족 다 처리하면 된다.
이 비밀기지가 리그의 일본 진출 거점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구체적인 용도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게 뭔지 알아낼 생각은 딱히 없어서, 죄다 죽이고 부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걸려드는 게 있겠지.
*
* *
삿포로 시장 모리타는 오래 전부터 니신 길드를 눈여겨보았다.
전원 뛰어난 각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냥 성과도 좋은 이 길드는 삿포로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아주 훌륭한 길드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만.
모리타 시장이 이상 기류를 감지하게 된 것은 니신 길드로 유입되는 물량이 평균치보다 높은 것, 사냥에 나설 때와 돌아올 때 인원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이었다.
길드가 마물을 사냥하다가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망자도 발생하지만 그 숫자가 굉장히 불규칙했다.
이상한 점이 여러 개가 나오면 의혹은 사실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차분하게 정보를 수집해왔고, 이곳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곧장 압수수색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보고만 아니었다면.
“니신 길드 건물에 불이 났다고?”
“예! 무슨 변고가 발생한 게 분명합니다.”
“각성자들을 소집하도록. 직접 현장으로 간다!”
불길함을 느낀 모리타 시장은 즉시 각성자를 소집했다. 그리고 약 1시간 뒤, 삿포로 시청 앞에 모인 백여 명의 각성자들과 함께 니신 길드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삿포로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은 니신 길드를 모르는 이들이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변고는 소란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분명 뭔가 있다.’
모리타 시장은 그 소란 속에서 분주히 머리를 굴렸다.
오랫동안 자기 세력을 닦아온 니신 길드가 갑자기 사고에 휩싸일 리가 없다.
자신조차 우연에 우연이 연이어 겹쳐 의아한 점을 파고들지 않았다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이던 자들이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 중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리그.’
니신 길드가 리그의 하수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몰아붙이면 역공을 당할 수도 있기에 꾸준히 증거를 수집하면서 시기를 가늠했다.
그렇게 니신 길드 본부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저 너머에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본 모리타 시장은 일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느끼고는 걸음 속도를 재촉했다.
“시장님!”
“…….”
모리타 시장은 대답하지 않고 앞장섰다. 어수선한 분위기로 뒤따르던 각성자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따라오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발 앞서 본부에 도착한 모리타 시장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성을 터뜨렸다.
“아…….”
온통 불에 휩싸인 곳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염제 마냥 이 모든 걸 불살라버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남자였다.
모리타 시장은 물론이고 그를 따라온 측근들은 몸이 굳어버렸다. 그만큼 남자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설마?”
“눈치 빠른 사람이 있었군.”
“당신.”
모리타 시장이 헤드 브레이커의 정체를 언급하려던 순간이었다.
“이건 그쪽이 한 걸로 합시다.”
“그게 무슨…….”
“숨어있던 리그 비밀기지를 불태워버렸으니 성과로 충분하겠지. 이건 그 증거.”
그렇게 앞에 툭 던져진 것은 서류뭉치였다.
“훌륭한 성과를 거둔 당신에게 박수.”
무성의하게 박수를 세 번 친 남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지면을 박찼다.
하늘 위로 높이 떠오른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
방금 전까지 눈앞에 시선을 두고 있었음에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직 처음부터 이 일을 벌인 존재가 누구인지 잘 아는 모리타 시장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에게 홀린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