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천명국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한 실장 출신이다.
전한철 대통령 말년에는 직접 업무를 대행까지 맡다 보니 실무에 있어 웬만한 정치인보다 더 능하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당시 느꼈던 점은 대통령이 신경 쓰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일이 늘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깨닫게 된 후, 천명국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일에 신경 쓰는 것을 차단하여 불필요한 심력 소모를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업무에서 가장 힘든 것은 이런 산적한 일들이 아닌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사건사고 때문이다.
방금 전 비밀리에 도착한 일본 측의 항의가 이와 같은 궤를 따랐다.
“올게 왔군.”
최준호가 리그 비밀기지를 제거하러 떠난 시점에 발생할 일이었다.
당연히 일본 정부 측 동의는 얻지 않고 벌인 일일 테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외교장관에게 물었다.
“갖고 온 증거는 있습니까?”
“그게, 없습니다.”
“없으면 어떤 걸로 항의를 하는 겁니까?”
“…….”
“그럼 이렇게 전달하십시오. 우리는 아예 모르는 일이라고. 그리고 항의를 하고 싶거든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정식으로 항의를 하라고.”
“예? 하지만……!”
외교장관은 무례라면서 말했지만 무례는 상대가 먼저 범했다.
아마 증거가 있었다면 바로 그걸 내밀면서 압박을 해왔겠지.
제시하지 못한 것은 증거가 없어서일 테고, 그 말은 심증으로 뭔가를 얻어 내려한다는 의미였다.
설사 사실이더라도 발뺌하면 그만이고.
무례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할 뿐이다.
이 점을 외교장관도 눈치 채고 있었다.
“일본 측 심기가 많이 불편할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의 심기를 걱정하기보다 저들이 왜 이렇게 비밀리에 접촉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 자존심은 지키고 싶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최준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다.
“확실한 증거와 공식적인 항의가 있으면 헤드 브레이커를 제지하겠다는 말을 전달하시길.”
“알겠습니다, 그런데…….”
머뭇거리는 외교장관을 보며 천명국이 물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최준호 초인을 제지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건지 궁금합니다.”
하긴, 최준호가 세계가 좁다 하며 누비고 다니면 일이 가장 몰리는 곳이 외교부겠지.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만큼 정부부처에서 가장 힘든 곳이 외교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상대도 최준호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만큼 물밑에서 항의를 하는 터라 시끄러워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예? 그럼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건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반드시 해내겠다는 건 의미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길.”
불만이 있으면 더 강하게 나오겠지.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알겠습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다. 강자가 날뛰면 속을 끓이면서 감당 좀 해야겠지.
*
* *
한국으로 돌아와 있으니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버서커는 해외 작전 수행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이세희도 수출 논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여기에 진세정은 지방에 팝업 스토어를 세우겠다는 의중을 밝히면서 남부 지방을 순회하고 있었다.
아이돌화를 멈춰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사업은 확장일로라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싶은 것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했다.
있어야 될 사람들이 없다 보니 쓸쓸하기도 하고.
[네가 외로움을 느낀다고?]“그럼 안 느끼겠냐.”
[난 안 느끼는데.]“너 잘났다.”
용용이 녀석은 날이 갈수록 날 이겨먹으려고 하는데 수단이 유치해지는 느낌이다.
[잘난 체보다는 궁금해서 그래. 어떤 감정일까.]아무도 없고 해서 모처럼 기프트나 하나씩 점검하고 내 안의 대학원생들의 기강이나 잡을까 했다.
떠넘기듯 돌아왔는데 막상 리그 비밀기지라고 해서 털어봤지만 다른 기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오히려 지하로 숨으라는 지령만 확인했을 뿐.
녀석들이 활개를 쳐야 순차적으로 잡을 수 있는데 이렇게 숨어버리면 일일이 찾아내는 것도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결국 입맛만 버린 셈이다.
이런 아쉬움을 대학원생 잡는 걸로 보내려던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삼촌과 조카였다.
바로 정주호와 정다현이었다.
초인이 된 정주호는 국가 소속이 되어 사무실에 안 나온 지 꽤 된 상태였고, 정다현은 지금 이 시간에 청와대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들은 정다현의 결심과 천명국의 허락이었다.
“초인이 되겠다고?”
“네.”
“…….”
결연한 정다현의 표정에서 이 상황으로 만든 게 내 탓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일본에 가는 건 내 개인적인 볼일이었다. 나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 굳이 정다현을 데려갈 생각이 아니었던 건데 본인에게는 다르게 들렸나보다.
[약해서 낙오 당했다고 생각했겠지.]그걸로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된 건가. 이걸 계기로 삼겠다면 그건 나쁘지 않다 싶었다.
“네가 좀 말려줘라.”
“…….”
난 응원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정주호는 날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뒤져봐도 얘처럼 열심히 훈련하는 각성자가 어디 있냐. 그런데 초인이 되기 위해 별도의 특훈을 하겠다고? 그러다가 몸이 망가지기 일쑤야. 지금이야 젊음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게 천년만년 가냐? 이러다가 골병이나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큰 성과 없는 훈련을 멈추라고 얼마나 말렸는데…….”
조카를 위해 당연한 걱정이라 생각했지만 지나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성과가 없는 훈련?”
“어, 그게 그러니까…….”
“그 훈련 방법 제가 추천한 건데요. 그리고 이사님도 제 방식으로 훈련해서 초인이 되신 거 아닙니까.”
“효과야 확실하지. 그런데 그 고생을 다현이한테도 겪어보라고 추천하는 게 제정신이냐?”
강해지고 싶은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당연히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게다가 정주호는 정다현이 지금 어느 수준에 도달한 건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모르면 겪어봐야지.
“말로 말리지 말고 한 번 겪어보고 말씀하시죠.”
“뭐?”
“조카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건지 확인도 안 해보고 말리는 거 아닙니까. 지금 집중해야 할 때인지 아니면 여유를 두고 천천히 기반을 다져야 할 때인지 가늠해봐야죠.”
물론 그 이유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초인이 된 삼촌의 위엄도 세울 기회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나쁘지 않아. 그러고 보니 우리 조카가 삼촌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군. 그게 가장 중요한 건데 말이지.”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정주호가 삼촌의 위엄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와서인지 의욕을 활활 불태웠다.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너도 이해하지?”
“네.”
정다현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렇게 내 앞에서 조카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섬뜩한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초인이 된 정주호와 레벨 7의 정다현 대결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것과 같다. 하지만 결과가 정해졌을 뿐,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의외성이 발생할 수 있지.
실제로 둘의 대결은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정주호는 조카의 결심을 막고 초인이 된 삼촌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로 생각했지만 정다현은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 되었다.
결과는 정주호의 승리. 하지만 대결 과정만 본다면 그가 승리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상처를 입었다.
반대로 정다현은 멀끔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다현이 이긴 것처럼 보이겠다.
승리를 거둔 정주호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어, 아무래도 내 생각이 잘못된 거 같네. 이 정도면 초인이 되기 위해 집중하는 게 맞지. 난 또 무리한 객기를 부리는 줄 알았네. 하하, 네가 원하면 금방 초인이 될 수 있을 거다. 난 널 믿고 있던 거 알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다현은 마지막 장벽이던 정주호마저 뛰어넘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각오가 나한테도 전해질 정도였다.
천재의 결연한 다짐이라.
정다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에 초인이 될 것 같았다.
*
* *
짧은 시간이지만 리그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해커의 죽음. 그리고 미국 정부로부터 시작된 정부 세력의 연이은 폭격.
정보를 공유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총공격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그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해커의 존재로 인해 함부로 폭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각국 정부에서 해커의 죽음을 전해 듣자마자 공개된 리그의 기지를 모조리 쓸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소멸된 거점이 무려 30%에 달했다.
공식적으로 활동하던 리그 세력은 모두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호주에서 진행된 작전은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리그 거점을 타격하기 위해 호주의 각성자 전력이 총동원된 곳에서 블랙하운드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블랙하운드를 상대한 것은 다름 아닌 버서커였다. 그리고 약 1시간여 동안 이어진 둘의 대결은 승자를 남기지 않은 채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정확히 블랙하운드가 우세를 점했지만 불리한 상황에 처한 리그가 물러난 것이다. 이걸로 호주 내에 리그 세력이 완전한 철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일로 리그 삼악과 대등하게 맞선 버서커의 이름이 세계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충격보다도 전 세계에 걸친 세력이 한순간에 축소되었다는 것이 엄청난 타격이었다.
아르고스는 리그의 빌런들에게 비밀거점으로 숨을 것을 지시한 뒤 본인도 은신처에 틀어박혔다.
짙은 절망감이 리그에 드리웠다.
호주의 전력을 무사히 철수 시키고 돌아온 하인즈는 아르고스의 상태에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정반대에서 편안한 표정의 녀석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오랜만이다, 하인즈.”
“네놈이 무슨 일이지?”
“나도 리그의 일원이라고?”
“가장 힘든 시기에 못 본 척 외면하는 녀석이 우리 식구라고?”
“워워, 그렇게 말하니 내가 속 편하게 돌아다니는 거 같잖아? 여기 오면서 전멸할 뻔한 식구들을 무사히 구출하고 왔다고.”
“…….”
하인즈는 듣지 않은 척 외면했다.
헬 마스터, 션 베일리는 그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알을 만나고 싶은데?”
“널 만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괄시가 심하군. 나는 알이나 우리에게 이로운 제안을 하려고 왔는데 말이지.”
“그래도 안 돼.”
“내가 언제부터 네 허락을 갈구했다고 그러는 거냐.”
션 베일리는 하인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며 아르고스가 있는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춰!”
경악한 하인즈가 손을 뻗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밀어진 션 베일리의 손에 밀려나고 말았다. 힘을 쓸 생각이 없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밀려난 하인즈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션 베일리를 바라보았다.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는 거기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르고스가 있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알, 너한테 할 말이… 알!”
“션.”
“…….”
션 베일리는 폐인이 되어버린 친구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늘 고고한 곳에 서서 자신을 이끌어주던 친구였다.
세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냉소를 지으면서 녀석들을 분쇄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것은 완전히 의욕을 잃은 사람이었다. 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친구의 모습에 션 베일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알이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명백하다. 헤드 브레이커 때문이다.
“헤드 브레이커, 내가 죽여줄게.”
“…뭐?”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기프트가 완성됐어. 알, 그 녀석만 사라지면 되는 거잖아.”
텅 비어있던 아르고스의 눈에 생기가 깃들었다.
“그게 가능해?”
“누구라도 가능해. 설사 신수라도 해도 내가 내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
그걸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수준의 완성도를 이뤄내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다면 이제부터는 친구를 위해서다.
션 베일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고생했어. 놈의 목을 네게 가져올게. 날 믿어, 아르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