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솔직히 말하면 인정한다. 버서커가 갑자기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영웅이 되자 기분이 묘했다.
내가 혈종일 때만 해도 녀석은 말 그대로 미친놈이었다. 나보다 더 미친놈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이상한 녀석이다.
그랬던 악연이 이번 생에서 묘하게 풀리더니 앙숙이 되고 빌런에서 국가의 초인이 되었다.
처음 ‘완전회복’을 얻기 위한 용도에서 참 많이 발전했다.
버서커의 인생 전체가 뒤틀린 결과물이었다. 뒤늦게 초인이 되었던 것도 ‘별의 순간’을 거머쥐어 가끔은 나도 움찔할 정도의 발전을 보였다.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미친놈이고 평생 그 기질을 눌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블랙하운드와 접전을 벌인 걸로 영웅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 후에 청와대에서도 대대적인 행사를 열어주려고 한단다. 물밑에서 오가는 얘기로는 천명국이 버서커에게 씌워진 혐의를 완전히 지워주는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얘기가 나왔다.
미친 빌런이 출세를 많이도 했군.
“버서커 녀석이 잘해봤자 얼마나 잘한다고…….”
하긴, 이렇게 말해도 이미 의미가 없긴 하지. 나는 버서커가 진행하고 있는 방송을 봤다.
처음에는 녀석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냐며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잘하잖아?”
말 그대로였다.
방송 초기에 기미를 보이던 악질들을 단칼에 쳐낸 뒤 버서커는 능수능란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심각한 얘기를 하다가 대수롭지 않은 척 내뱉은 말로 분위기를 풀어냈다.
내가 TV에서 본 어떤 진행자보다도 매끄러운 진행 능력이었다.
녀석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고?
안 그래도 언론에서 띄워주다 보니 시청자 숫자도 많았다. 나는 정신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쫓을 수 없는 채팅 속도였지만 초인에 도달한 반사신경은 모든 걸 쫓을 수 있게 했다.
내가 방송을 할 때와 거의 비슷한 시청자 구성이었다. 악질들이 강제퇴장 당했으니 그들이 배제된 채팅창은 놀라울 정도로 클린했다.
오히려 찬사로 가득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
“그런데…….”
홀린 것처럼 채팅방을 보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 악독하기로 유명한 두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더 불을 붙이기 위한 불쏘시개로 활동하는 진세정이다.
진세정이 없는 건 그러려니 했지만 내가 방송하고 난 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악플을 달던 녀석이 안 보였다.
“바사칸은 어디 갔지?”
분명 강퇴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방송할 때마다 쫓아와서 악플을 달던 녀석이 버서커가 방송할 때만 공교롭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
그 사이에도 방송은 순항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최준호랑 붙어도 이길 거 같다고? 날 죽이려는 놈이군. 강퇴.]팩폭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웃음 포인트로 만들어놓고.
[이제 나도 양지에 나왔으니 이미지를 관리해야지. 언제까지 철부지처럼 살 수 없잖아?]뻔뻔하게 방송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털어놓고.
[나처럼 강해지고 싶다고? 나처럼 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나처럼 되지도 마라.]스스로 강함에 대한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가 개그맨 방송이냐고? 난 각성자다. 그래도 재밌다는 말이니 각성자 중 가장 재밌는 각성자로 하지. 불만이면 도전하도록. 최준호는 빼고.]그 결과 버서커의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 숫자는 나보다 많아졌다.
…묘한 감정이 든다.
이게 패배감인가.
“방송이나 할 것이지, 왜 빌런 짓을 했던 거냐.”
과거로 돌아와 처음 패배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
* *
밖으로 나온 나는 방송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방송이 대박이어서인지 스튜디오를 감싼 분위기는 밝고 명쾌했다.
“축하합니다, 성공했네요.”
“아, 보셨어요? 진짜 대박이에요. 제 생각보다 훨씬 방송에 재능이 있으셔요.”
진세정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버서커의 방송은 그동안 씌워져 있던 빌런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것도 있고, 내 팀에 속한 것을 널리 알려지게 함으로써 공고한 세력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이번 생에서 나는 빌런까지 간 적은 없지만 공무원 헌터와 빌런의 경계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버서커는 누명을 쓰긴 했지만 오랫동안 흉악한 빌런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최준호 팀에 대한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좋지가 않단다. 진세정은 이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건가요?”
“지금 저 시청자도 제가 방송할 때 보던 사람이던데.”
“네, 그렇죠.”
“팀장님이야 여기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글을 남길 수 없을 테고요.”
“그렇죠?”
버서커한테는 나처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단다.
나와 경우가 다르다나.
아무튼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근데 가장 악질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군요.”
“악질적이라면……?”
“바사칸이라고 있던데.”
“…….”
“팀장님도 악플러로 활동하니 알 겁니다. 진짜 집요하게 달라붙던 놈이거든요. 직접 보게 되면 그대로 말해보라고 한 번 털어보고 싶은데 말이죠. 왜 그래요?”
내 앞에 선 진세정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사칸 녀석이 달았던 악플을 알고 있나? 근데 녀석이 악질인 건 무지막지한 활동력과 집요함 때문이었지, 막상 댓글 수위는 그렇게 세지 않았는데.
진세정과 동일인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 왕성한 활동력을 혼자서 커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그래서요?”
“그 녀석이 없는 게 수상하네요.”
“무슨 일이 있던 거 아닐까요?”
“그런 것치고 내가 방송을 킬 때만 귀신같이 찾아오더군요. 내 방송인 줄 알고서라도 접속을 할 줄 알았는데 아예 접속 자체를 하지 않은 거 같고.”
“초인님의 열렬한 팬이라서 그런 거겠죠. 아무래도 버서커님은 초인님하고 유형이 다르니까요. 원래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아마 그분은 초인님에게 질투심을 느낀 사람일 거예요.”
“딱히 질투심은 모르겠던데.”
그저 참견하기 좋아하고, 나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을 뿐이다.
한 마디로 나대길 좋아한다는 거다. 겁대가리도 없고.
그런 녀석이 강퇴당할까 무서워서 채팅을 치지 않는다?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러고 보니…….”
“네? 왜, 왜 그러세요?”
“그 녀석에 대해 궁금증만 드러냈는데 팀장님이 그 녀석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바사칸이 팀장님입니까?”
“…차, 착각이죠. 제가 악플러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가요.”
“네, 그런 거죠!”
“알겠습니다.”
“…휴우!”
난 순순히 납득한 척하고 물러났지만 지나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수상함을 느낀 후였다.
진세정이 순순히 말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물러났지만 이미 의심은 마음속에 싹을 틔운 상태였다.
아닌 척 하지만 진세정은 바사칸에 대해 알고 있군. 그리고 그 정체를 내게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천천히 알아봐야겠다.
*
* *
버서커의 성과를 축하하기 위한 만찬이 청와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천명국은 버서커라는 초인이 대한민국에 소속되어 있음을 널리 알리면서 그동안 억울하게 쓰고 있던 누명을 벗어던졌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남겼다.
이 다음 과정이 사면일 테지. 당연하지만 버서커에게도 그 제안이 전달되었고 당연히 수락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녀석도 곧바로 적응해서는 주인공답게 주위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뒤에 서 있다가 천명국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다.
내게 할 말이 많은 얼굴이다.
“일본의 리그 기지를 공격한 겁니까?”
“맞습니다. 그동안 외부에 드러난 적 없는 비밀기지입니다. 그곳을 중심으로 일본과 이곳을 공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얻어낸 정보라고는 밑으로 숨으라는 것뿐, 다른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리그에서 내가 브레인워싱이 있는 걸 알고 점조직화 하여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 비공식적인 항의가 있었습니다.”
“저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텐데요.”
“…아마 저들은 초인님의 소행인 걸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던 겁니까?”
“잠깐 마주친 사람은 있습니다. 그 시간이 매우 짧고 제가 습격했다는 증거는 없으니 다른 말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무튼 초인님의 행보를 알지 못하다 보니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큰 비밀이 아닌 일이라면 저희 측 사정도 좀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외교부 공무원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난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공무원이 과부하 걸릴 정도로 굴려지는 건 몰랐다.
그렇다면 협력해야겠지.
“앞으로 저라는 걸 의심조차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허허!”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문득 천명국이 짧은 시간 흰머리가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신경 쓸 일이 많으면 흰머리가 늘어나기 마련이지.
“대통령은 하는 일이 많죠?”
“많습니다. 해도해도 일이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에 난 의아함을 느꼈다.
내가 본 천명국은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다. 일 하나를 마치면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곧장 다음 일에 들어가서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해나가는 유형이다.
알다시피 대통령의 업무시간은 정해진 바가 없다. 그 말은 천명국은 지금 역량이 닿는 곳에서 최대한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면 당연하게도 일을 처리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조절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 당선되기 전에도 나라는 잘 돌아갔는걸요. 중요한 일을 제외하고 다른 건 참모들에게 맡겨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아, 제 말은 공식적으로 대통령님이 처리하고 있는 중으로 하란 의미였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동원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지만 본래 오래 걸릴 일들도 있으니까요. 이걸 잘 이용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테고요.”
당장 눈앞에 산적한 일을 외면하지 못해서 그렇지, 한 번 외면하고 휴식의 달콤함에 빠지면 그 다음은 알아서 조절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난 천명국이 어떤 걸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조절해서 만든 시간을 영부인님이나 따님이 모르는 휴식으로 가진다던가.”
“……!”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놀라움의 감정이 담긴 눈이 내게 향하더니 그것이 이내 환희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업무 조절을 잘해야 하겠죠.”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죠. 초인님은 천재십니다.”
천재라고 할 것까지야.
워낙 워커홀릭인 천명국이 5년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다.
저러다가 폭발하면 나만 손해를 보는 일이고.
여기에 당근 하나를 더 내밀었다.
“여차하면 저와 만남으로 시간을 만들 수도 있으니 언제든지 써먹으시길. 제가 까다로운 거야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용용이 태클에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천명국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자주 애용하겠습니다.”
그걸 또 거절하지 않는다. 많이 힘들긴 했나보다.
아무튼 이렇게 원하는 걸 들어줬으니 이제 원하는 걸 꺼내들 차례였다.
“국가에서 사람 신원 하나 파악하는 건 쉽겠죠?”
“법적인 절차만 갖추면 매우 쉽습니다.”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사고 칠 생각은 없고, 악플 달던 사람이 사라져서 안부가 궁금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