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바사칸의 정체가 버서커라는 걸 전해 들었지만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별 거 아니네요.”
“……!”
“바사칸이 버서커일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이라도 다르게 하던가, 어감이 비슷하니 예상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네요.”
“그렇습니까. 하긴, 비슷하긴 합니다. 하하!”
“호호호호!”
웃음을 짓는 천명국과 진세정의 모습은 어색함의 극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네요.”
내 말에 둘이 청천벽력을 맞은 표정이 되었다.
“네에?”
“방금 전에 별 거 아니라고 하신 걸 들었습니다만.”
“별 거는 아니지만 뒤에서 제 욕을 하고 다닌 건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들어보고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죠.”
“그래도 버서커님인데…….”
뒤에 줄줄이 이어지는 것은 버서커의 위상에 관한 것이었다.
리그 삼악과 대등한 접전을 벌일 수 있는 실력자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인 중 한 사람이 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리그 삼악과 맞설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거보다 강하다고 해도 버릇이 잘못 들였으면 바로 잡아야지요.”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적어도 버서커님의 자존심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두들길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허탈한 웃음을 지은 천명국이 진세정을 바라보았다. 설마 도움을 청하는 건가.
“죄송해요. 제 힘이 닿지 못해요.”
“부디 잘 해결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해결까지야.
이미 정해진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천명국은 화제를 돌렸다.
“마초맨과 박사님들은 어떻습니까?”
“만족하고 연구에 집중하더군요.”
“다행입니다. 이번 건은 본국에도 상당한 기회입니다. 초인님의 허락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안만 한 겁니다. 받아들인 건 저들이고.”
당초 내 계획은 한국대학교에 최신 연구시설들을 들여놓고 졸라맨과 박사들을 주저앉혀 주구장창 연구만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악한 인간들은 자신만 당할 수 없다는 듯이 후학양성이라는 패를 꺼내들었고, 인재양성에 목이 말랐던 정부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예로부터 각성자 연구 분야의 탑은 미국이었습니다. 중국도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고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의 음흉스러움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패권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인 만큼 이번 기회에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겸사겸사 그들에게 붙들려 골수까지 뽑히고 말이지.
나야 연구 진척 속도만 빨라진다면 크게 문제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은 정부에서 관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주시길.”
언젠가 그 실체가 드러나겠지.
청와대를 나선 나는 진세정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진세정의 눈물겨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버서커님이 활동한 건 초인님의 관심을 사기 위한 일환으로…….”
“버서커님이 드러내지 않지만 초인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상당해요.”
“빌런에서 존중 받는 초인이 된 건 전적으로 초인님의 공으로…….”
요약하면 버서커 일병 구하기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어떤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하지만 각성자는 각성자의 대화가 필요한 법이죠. 잡음이 생기지 않게 잘 해결하겠습니다.”
“아…….”
망연한 표정이 된 걸 보면서 나는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더 진저리 치는데?]어차피 일상인데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나.
사실 다른 이름으로 악플을 달았다고 해도 별 생각도 없고. 바사칸 계정으로 활동할 때도 인상 깊었던 건 욕을 잘해서가 아니라 왕성한 활동력과 어떤 것이든 아는 척을 하던 관종력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있으니 나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긴 하군.
나는 훈련실에 있는 버서커를 찾았다. 요즘 한창 훈련에 집중 중인 녀석은 날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무슨 일이지?”
“하나만 묻자.”
“뭔데?”
“네가 바사칸이냐?”
“…….”
버서커의 표정이 굳었다.
*
* *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지?
버서커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다짜고짜 나온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바사칸은 버서커에게 있어서 하나의 해방구였다. 욕설이나 외설스러운 말을 남긴 적은 없지만 익명의 힘을 빌려 마음껏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 최준호에게 할 수 없던 톡톡 튀는 견제구를 날릴 수도 있었고.
그런데 그게 들켜버리다니.
그것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한테 들켜버렸다.
“별로 심한 말도 한 거 없던데 뭘 그렇게 놀라냐. 아니면 바사칸 말고 다른 계정이라도 있어?”
“없다.”
“그럼 별 거 없잖아. 바사칸으로 행동하던 것도 그냥 관종에 지나지 않았고.”
“음, 부끄럽군. 솔직히 이렇게 들킬 줄 몰랐다.”
“내가 촉이 좀 좋은 편이긴 하지. 아무튼 그동안 내가 신세 좀 졌다?”
“…….”
최준호의 말에 버서커는 긴장했다. 그것도 잠시, 피식 웃는 최준호를 보고 표정을 풀게 되었다.
“뭘 그러냐. 고작 리플 좀 단 거 가지고 내가 난리 칠 줄 알았어? 다 그런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냥 네가 나보다 이런 활동에 능숙한 거 보고 신기했을 뿐이야. 난 아직도 댓글 다는 것도 적응이 잘 안 되던데 말이지.”
“아무래도, 빌런일 땐 자유로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익명성에 기댄 면이 있다. 그래도 나도 지킬 것이 있으니 선이라는 걸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어, 선은 잘 지키더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행여나 이걸로 꼬투리를 잡으면 어떡할지 오만 생각이 다 떠올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준호가 납득하니 버서커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음 말만 이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건 여기까지 끝내기로 하고, 오랜만에 실력이나 점검할까?”
“왜, 왜지? 설마 악플러로 활동했다고 복수하려는 거냐?”
“아니, 그건 별개. 붙어본지 꽤 됐잖아? 그러니 한 번 제대로 붙어서 점검해봐야지.”
결국 이래나 저래나 최준호는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일삼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별개 사안이라고 말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고.
정해진 결말이었나.
싱글벙글 웃는 최준호의 얼굴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나도 리그의 삼악과 대등하게 맞선 버서커님의 실력을 보고 싶었거든.”
“…….”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그 생각이 들면서도 버서커는 이를 악 물었다. 그래, 자신이 최준호를 천년만년 피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제대로 한 판 붙어보자. 나도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으니.”
“오, 자신감이 멋진데. 제대로 해보자고.”
씩 웃는 모습을 보면서 성난 사자의 코털을 뽑은 게 아닌가 후회도 되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로잡았다.
자신도 예전의 버서커가 아니었다. 밀리긴 했지만 블랙하운드와 맞서지 않았던가. 다음에 붙으면 제대로 때려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리그의 삼악까지 잡게 되면 그 다음은 최준호였다.
“붙어보지.”
그리고 시작된 대결.
버서커는 의욕을 불사르며 최준호에게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처참한 멸망.
뼈와 살이 분리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말만 온화했지 결과가 뭐가 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
* *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최준호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서 제임스 리드와 친구들은 차근차근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성자와 기프트. 둘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의문이자 신비였으며 인류가 마물로부터 승리를 거두기 위한 열쇠 중 하나로 꼽혔다.
그동안 진척이 없었던 것은 이 관계에 이해도가 높은 각성자가 거의 없었으며, 설령 나타나더라도 이런 실험에 임하려 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최준호의 등장으로 연구는 중대한 분기점을 맞게 되었다.
이 연구는 각성자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생겨나기 충분했다.
“준호가 기프트 결속에 대해 연구 사안을 꺼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기프트를 버리기 위해서 아닐까?”
“아니, 준호는 이미 기프트 삭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것도 가정일 뿐이지 않나? 준호가 가지고 있는 기프트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필요하지 않은 걸 꺼내들지 않는 걸 수도 있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기프트 보유량이 늘어날수록 사용자에게 부담이 커지는 건 이미 검증된 이론 아닌가? 그동안 복사한 기프트를 전부 보유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폭주를 일으켰을 거야. 제정신도 유지할 수 없을 테지.”
뛰어난 기프트일수록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다른 것과 뒤섞이기 힘든 기름과 같다.
당연히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불협화음은 커지고 폭주가 일어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 점에서 여러 개의 기프트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최준호의 실력은 불가사의 덩어리였다.
“그러니 모든 기프트를 보유했다는 것보다 필요하지 않은 건 삭제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기프트 삭제가 가능하면 이 연구를 왜 하는 거지? 난 그게 더 이해가 안 되는데.”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지.”
“…….”
친구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제임스 리드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이봐, 제임스. 침묵만 하지 말고 의견을 보태달라고.”
“애초에 준호를 상식 선에서 생각하는 건 곤란해. 여태까지 상식을 지킨 적이 있던가?”
“그건…….”
에릭 클락슨을 비롯한 박사들의 입이 닫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긴 하다.
최연소 초인은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프트 중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전투지능까지.
누구보다 많은 전투를 치러본 것 같은 노련함 앞에 그를 가로막은 모든 적들이 무너졌다.
“우리가 선택할 건 간단해. 연구원으로 진리를 향해 달려나가느냐, 조국의 어리석은 판단을 유도할 것이냐.”
제임스 리드가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최준호의 데이터 입수는 곧 그가 가진 전력의 측정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세계최강 초인의 전력이 어느 정도냐가 추측 가능하다는 것은 그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 한 정보였다.
그 부분에서 제임스 리드와 친구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난 이걸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
“제임스?”
“아직도 몰라? 이 종이에 적힌 숫자로 준호의 강함을 판별할 수 없어. 준호의 가장 무서운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만들어내는 전투지능이고 하나하나가 전설급인 기프트에 있어. 이 숫자만 보고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덤비는 적이 나타날 거야.”
그리고 그 전력을 준비할 수 있는 세력은 손에 꼽힐 수밖에 없다.
리그, 파티, 마지막으로 미국.
리그와 파티가 어떤 오판을 저지르던 상관없지만 미국이 오판을 저지르는 건 상황이 다르다.
“설마 그럴까?”
“지금은 준호에게 우호적인 정권이지만 미친놈은 언제든지 나타나는 법이야. 이 숫자만 보고 준호를 제거할 수 있다고 선동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너희는 준호가 당할 거라 생각해?”
“…….”
장내에 침묵이 깔렸다.
그들은 제임스 리드를 따라 직접 자신의 육체를 개조하면서 각성자의 길로 접어든 실력자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최준호가 시연했던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수준인지 잘 알고 있다.
몇명을 동원하든 절대 잡을 수 없다. 그것이 그들 사이에 내린 암묵적인 판단이다.
“그러니 양심을 내세워. 이건 오판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지막 방법이야.”
“우리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사실이지만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알았어, 비밀로 할게. 지금 얻어가는 것들로도 충분하니까.”
“유출되면 제일 입이 싼 크리스텐센이 말한 걸로 하자고.”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에서 입이 가장 무거운데!”
“술만 안 마시면 말이지.”
“근데 너 매일 술 마시잖아!”
“한 번 실험해볼래? 내가 얘기하는지?”
“그럼 오늘 오랜만에 파티라도 해야겠어.”
“그것도 좋지.”
“…….”
낄낄 웃는 친구들을 보며 제임스 리드는 미소 지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당장 가장 자유로운 자신에게도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덤비면 다 죽겠지.”
제임스 리드는 어설프게 덤비다가 모조리 몰살당하는 걸 막기 위해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