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장내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서양인이었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젊은 동양인 청년이었다.
서양인, 에릭 클락슨 맞은편에 앉은 연구원의 표정에 암담함이 드리웠다.
“이건 양이 너무 많은데요…….”
방금 전 그가 요구한 보고서의 양은 일개 연구원이 해내기에 너무나도 많은 양이었다.
이걸 다 소화할 수 있다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부정적인 연구원의 말에 에릭 클락슨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온화한 표정과 함께 서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건 스스로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거 같네.”
“아닙니다, 교수님. 제 능력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이보게, 김 군.”
“예, 교수님.”
“자네는 이곳 한국에서 가장 명문대학인 한국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 학창 시절에는 클래스에서 꼽히는 수재였고 집에서는 듬직한 아들이었을 거야. 내 말이 틀린가?”
“맞습니다만…….”
“그런 아들이 약한 소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네는 한국에서 최고의 인재야. 천재라 불릴 두뇌를 갖고 있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우수한 실적을 거뒀지.”
김 군이라 불린 연구원의 표정이 자부심이 실렸다.
천재들만 모이는 곳에서 경쟁하다 보니 자존감이 깎였지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천재가 아니고서 불가능했다.
여기에 에릭 클락슨이 쐐기를 박았다.
“나는 믿네, 자네가 이걸 극복하고 더 나은 연구원이 될 거라고.”
“해보겠습니다.”
“좋네. 난 언제나 믿고 있었어. 우리 연구소는 자율 출근제이니 편안한 시간에 출근하게. 성과만 거둔다면 이른 시간에 퇴근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시간이 모자랍니다.”
“효율적으로 보내면 되지.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게. 난 김 군이라면 해낼 수 있다고 믿네.”
믿음이 듬뿍 담긴 목소리에 김 군의 얼굴에 결연함이 서렸다.
“…맞을 겁니다. 아니, 맞습니다. 교수님에게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시일 내에 제 모든 걸 불살라 가져오겠습니다.”
“건강은 챙기고. 특히 잠은 꼭 자게.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건강도 흔들리는 법이니까.”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인 김 군이 밖으로 나갔다.
분명 불가능한 미션을 받은 건 마찬가지인데 에릭 클락슨의 몇 마디에 반드시 해낼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마 저걸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대야겠지.
언제 봐도 놀라운 수완이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방 안으로 진입했다.
“대단한데?”
이미 내 기척을 감지하고 있던 에릭 클락슨은 커피잔을 숟가락으로 저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철저하게 성과도 평가하는 만큼 높은 급여를 보장해주니까. 열의가 남아있는 연구원이 진심으로 임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지.”
“어떻게 가능하지?”
“실력으로 서열을 각인하고 인정을 해주는 일이지.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하거든.”
사람의 심리를 훤하게 들여다보고 행하는 전술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의 폭을 좁혀놓고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해. 남이 강요해서가 아닌 자신의 결정으로 임하게 되는 거니까. 이 정도로 지식을 쌓은 사람은 책임감이 있거든.”
그 간극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게 묘미라고 한다.
들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수법이었다.
나도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때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를 부려먹을 때 그 스킬이 부족했어.”
[쟤 눈치 챘는데?]“알고 있었나?”
“우리를 필요로 하는데 당연히 눈치 챘지. 아마 다른 친구들도 다 눈치 챘을 걸.”
“내가 미숙했군.”
대학원생 굴려먹기로 스페셜리스트인 녀석들을 부려먹으려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준호의 제안이 워낙 좋았으니까, 우리 대신 일을 해줄 사람들을 구한 거야. 그 사람들도 실무 경험을 쌓으면 이 나라에 도움이 되고.”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 서로 원하는 걸 얻은 거니까. 괜찮아.”
못 당하겠군. 역시 전문가를 속이는 건 초보에 불과한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대학원생을 거치고 진저리를 칠 사람조차 자발적으로 갈리게 만드는 실력이라니.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익숙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이다.
고작 한 케이스였지만 보고 배우는 게 많았다.
“앞으로 많이 배우도록 하지.”
“얼마든지 환영이야.”
[기프트 애들 죽어나겠네.]*
* *
[여기에서 더 강해지려는 이유가 있어?]연구소를 나섰을 무렵, 용용이는 내게 불쑥 물었다.
“이유?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넌 이미 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하잖아? 인간도 마물도. 신수야 너와 적대하려 들지 않고.]거짓말 치기는.
호기심도 분명 있었지만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생각이 더 강한 게 보였다.
“신을 만나고 싶어서.”
[어?]“신을 만나고 싶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신은 존재하지 않아.]용용이는 단정 짓듯 말했지만 난 그걸 믿지 않았다.
“인간 관점에서 신수도 비슷했어. 인간과 마물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였지. 하지만 신수는 존재했지. 그렇다면 신도 존재할 수 있어.”
[신은 없다니까. 왜 자꾸 신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데?]그거야 신이 아니면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게 설명되지 않으니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신수들도 불가능하다고 한 만큼, 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신밖에 없다.
“아무튼 신은 있어.”
[그렇다 치자. 근데 신은 왜 만나고 싶은데?]“만나고 싶은 이유?”
그거야 간단하다.
신을 만나면 무슨 이유로 날 과거로 돌려보냈는지 물어보고 싶다.
내가 후회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기 위해?
아니면 우연의 산물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신을 만난다면 이런 의문을 풀어줄 수 있겠지. 용용이 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사실이고.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왜 안 읽히지.]“글쎄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용용이를 튕겨내지 않아도 내가 들키고 싶지 않으면 생각을 읽히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걸까. 아무튼 좋은 일이겠지.
“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러려면 더 강해져야 돼.”
[근데 신을 만나려면 왜 더 강해져야 하는 거야?]“그야 물론…….”
나도 신이 존재한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체가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당장 신을 만나는 방법조차도 용용이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럴 때는 내 방식, 내 수법으로 찾아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신이 직접 날 찾아오게 만드는 걸 테고.
“내가 강해져서 신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녀석이 놀라서 튀어나올 테니까.”
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법이다.
자신에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지켜보다가 자신에게 옮겨 붙을 거 같으면 그제야 부랴부랴 반응한다.
신도 마찬가지일 테지.
어쩌면 위협이 된다며 제거하기 위해 덤벼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을 상대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보다는 의문을 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너희 신수들처럼 신도 비슷할 테지.”
[왜 그래, 나는 빼줘. 현아도.]“그렇다고 쳐주지.”
말은 그랬지만 용용이나 현아도 속은 시커먼 녀석들이다.
나도 100% 신뢰하지 않고.
그래서 녀석들의 말을 믿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그걸 뛰어넘는 힘을 가지려고 한다.
“평생에 걸쳐 강해지는데 매진하면 되겠지.”
그럼 언젠가 신과 조우하게 되지 않을까.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강하고 내일의 나는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용용이가 날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
* *
연구소를 나온 나는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안도하는 천명국의 얼굴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초인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나에 대해 믿고 있었다는 것은 버서커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다.
근데 말과 달리 느껴지는 감정은 정반대였다.
“안 믿고 있었네요.”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제 진심을 몰라주시니 섭섭하네요.”
“솔직히 시뮬레이션으로 몇몇이었습니까?”
천명국은 내 질문을 외면하려고 했지만 내가 바사칸의 정체를 버서커로 알게 됐을 때부터 부지런히 시뮬레이션을 발동한 걸 다 알고 있다.
집요하게 쫓는 내 시선을 이겨내지 못한 천명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망 9% 중상 63% 경상 27% 아무 일도 없음이 1%였습니다.”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제일 낮네요.”
“이것도 반올림해서 1%인 것입니다. 0%대였습니다.”
“시뮬레이션이 오작동하는 거 아닙니까?”
“초인님에 관한 정보로 내린 정확한 판단입니다.”
시뮬레이션 성능도 다 옛말이로군.
난 바사칸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버서커를 칠 생각보다 대련을 슬슬 회피하는 녀석을 어떻게 굴릴까부터 생각했다.
당연히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내가 마음껏 두들겨도 오뚝이처럼 부활하는 훌륭한 녀석을 왜 죽인단 말인가.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사람이 아니다.
“초인님 지금 하시는 말씀들은…….”
“아, 속마음이 좀 나왔나보네요.”
“예, 다 들렸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내가 버서커를 죽일 마음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적어도 버서커님이 초인님에게 죽을 리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힘 조절은 세심하게 해주시길.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연약합니다.”
“주의하죠.”
그런다고 해도 버서커 녀석이 쉽게 죽을 리가. 오히려 실력이 느는 만큼 육체는 더 강해질 것이다.
대신 잘 버틴다고 빈도를 늘리거나 강도를 필요 이상으로 높여서는 곤란하겠지.
“아, 버서커한테는 비밀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잔머리를 살살 굴리는 게 보여서 기강부터 잡을 생각이라.”
“버서커님도 이제 존경받는 초인인데 대우해주실 생각은 없으신지?”
“전혀 없습니다.”
“…….”
“버서커가 제정신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은 미친놈입니다. 누구도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미친놈이 바로 그 녀석이죠. 그런 녀석은 주기적으로 두들기지 않으면 제 안의 광기가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이를 테면 약물 치료라던가.”
“자존감이 치솟은 녀석이 미친놈인 걸 인정하고 약물 치료를 받겠습니까?”
당장 혈종도 자기는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미친놈들을 많이 접해봐서 잘 안다.
미친놈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거 같아.]용용이도 인간 사회 맛을 봤다고 바로 인정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천명국도 내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버서커가 미친놈이고, 그동안 내가 주기적으로 눌러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근데 진짜야?]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엥?]한 가지 분명한 건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에게는 폭력이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난 여태까지 버서커에게 폭력보다 더 나은 처방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게 부작용이 가장 덜 한 치료법인 거지.
[…그 인간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어.]신수가 인간을 동정하는 척 하기는.
아무튼 버서커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락 지은 나는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래서 용건을 말해주시죠.”
“알고 계셨던 겁니까?”
“단지 버서커의 상태만 묻기 위해 부른 건 아닐 거 같아서요.”
버서커가 무사한 건 다른 경로로도 확인했을 텐데 날 불러서 당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당연히 그것 외에 다른 용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음, 맞습니다. 다만 이건 부탁이라기보다 초인님에게 공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초대한 겁니다.”
“말씀하시죠.”
“그게…….”
마지막까지 시뮬레이션을 발동하면서 뜸을 들인다.
내게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닐지 고민하는 걸 테지.
수십 번 반복하고도 마지막에 한 번 더 사용하는 건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천명국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영문 회장이 쓰러졌습니다. 초인님이 아시는 신성그룹의 이영문 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