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48
348화
최준호에게 정면대결을 선언했지만 자신의 이러한 바람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이세희는 잘 알고 있다.
재벌 세계라는 것은 모든 것을 얻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 세계다.
단순히 돈만 많다고 무얼 하겠는가.
그룹을 장악해야 그룹이 수대에 걸쳐 깔아놓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그것이 권력이 되는 것이다.
그룹 핵심에서 밀려난 재벌가 일원이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하여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도 미련하긴 해.”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준호는 최고의 패 중 하나였다.
세계최강이자 과격하다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손속은 반대편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다.
최준호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그룹 전반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 대 회장으로 완벽하게 어울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세희의 생각은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끝을 맺고 말았다.
“…오빠가요?”
“예,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
운영총괄팀 부팀장에서 얼마 전 분리된 운영팀장이 된 이영탄이 이세찬의 죽음을 알려왔다.
“아니에요. 팀장님은 단순히 소식만 가지고 온 거니까요. 잠시만요, 잠시만.”
머리를 부여잡은 이세희의 사고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이영탄은 이세찬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말했지만 공교로운 시기에 누가 봐도 공교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범인은 최준호일까.
증거는 없지만 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직접 부탁까지 했는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살짝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생기려고 했다.
이영탄의 보고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요?”
“회장님께서 팀장님을 부르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저도 소식만 전달받았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비서실장께서 서둘러달라는 말을 전했기에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장 가겠어요.”
직감적으로 이번 호출이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도 될까?”
“어?”
음성과 사무실 안으로 한 인영이 스며들 듯 안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난입한 사람의 정체는 정다현이었다.
“마침 안 늦었네.”
“다현이 너?”
“나도 같이 갈게.”
“호의만 받을게. 이건 그룹 일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세희 네가 내 말을 따라줘야 해.”
“왜?”
“지금 네 상태가 좋지 않아. 아버지의 일로 냉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지? 내가 네 호위에 집중할 테니 다른 고민은 하지 말고 네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데 힘 써. 이견은 받지 않을게.”
“…….”
정다현의 말에 반박하려던 이세희는 자신이 냉정을 잃고 있는 상태임을 자각했다.
욕심 때문인가, 아니면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인가.
‘전부야.’
스스로 상태를 되돌아볼 수 있어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법이다.
사람의 리소스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대내외적으로 둘러싼 환경이 만만치 않았기에 평소와 달리 완벽한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정다현은 이런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제야 무리하게 뛰어든 것이 자신을 위한 요구임을 알아차렸다.
“고마워.”
“이럴 때 쓸 수 있는 게 다행이지. 난 걱정하지 말고 최고를 향해 가자, 세희야.”
“응.”
정다현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세희는 본래 표정을 회복하고는 이영탄에게 말했다.
“비서실장께 전달하세요. 지금 아버지를 뵈러 가겠다고.”
*
* *
정다현과 함께 신성병원으로 향한 이세희의 눈에 보인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신성그룹 사장들이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병원을 나서고 있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자들이다.
자신에게 대적하여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가려던 어리석은 자들.
이세희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최준호의 인내심이 끝나는 한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준호의 인내심은 대단히 짧다.
그늘이 드리운 얼굴로 병원 밖을 나서던 그들은 이세희와 마주치자 흠칫하고는 분분이 흩어졌다.
“널 두려워하고 있네.”
옆에 있던 정다현의 담담한 음성이 이세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날? 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대항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나야 모르지. 회장님이라면 그 답을 알고 계실 거야.”
“…….”
확실히,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두려워할 대상은 아버지 이영문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사장들이 저런 기색을 보이는 걸까.
병실 안으로 들어간 이세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이는 이영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서 와라.”
“괜찮으신 거죠? 상태는 어떠세요?”
“전혀 괜찮지 않다. 다 타버린 심지를 어떻게든 붙들고 있을 뿐.”
“…….”
완전히 허를 찔린 이세희가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이영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생전 처음 보는 미소에 이세희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그 미소는 빠르게 지워졌다.
이영문은 이세희 옆에 선 정다현을 보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예고도 없이 찾아와 죄송해요, 회장님.”
“세희를 위해 와준 걸 알고 있지. 어려울 때 나서줄 친구가 있는 걸 보면 세희가 인복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다시 한 번 고맙네.”
정다현은 대답 대신 미소를 띠었고, 이영문도 이세희에게 고개를 돌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널 부른 건 내 손으로 확실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회장님, 저는…….”
“아버지라고 불러라. 마지막 가는 순간은 회장님이라 불리고 싶지 않다.”
“네, 아버지. 그런데 저는…….”
“그만.”
이영문이 손을 들어 이세희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가 어떤 생각인지 안다.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싶고 모두의 인정을 받아 회장의 자리에 오르고 싶겠지.”
역시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영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네?”
“넌 이미 자기 능력을 충분히 보였다. 그럼에도 반대편에 섰다는 건 자기 이익을 위해, 너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건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뒤집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지금 네게 필요한 건 인정받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니라 권력을 공고히 하는 움직임이었어야 한다.”
“…….”
“나 또한 미숙한 상태에서 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지. 도움 받는 걸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왕국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다.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에 잡음이 동반될 수밖에 없고 예상하지 못한 온갖 문제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지. 그 과정에서 네가 생각할 건 네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룹의 자원이 불필요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다.”
“죄송해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영문은 고개를 저었다.
“넌 내 예상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내 젊은 시절보다 더 잘해내고 있고.”
“아버지.”
“이제 내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네 시대가 오는 것이다.”
“…….”
“사장단은 내가 책임지고 정리하겠다. 내가 곧 죽을 거라 생각하고 버티는 녀석들이 있는 거 같은데 그래봤자 내 밑에서 일하던 녀석들이다. 네게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녀석들을 남겨둘 필요가 없지. 그리고, 잠시 자리를 부탁해도 되겠나?”
“네, 편히 얘기 나누세요.”
그때까지 옆에 서 있던 정다현은 조용히 자리를 비워주었다.
“세찬이를 보낸 것도 내 지시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오빠는…….”
“내 손으로 자식을 죽였지. 녀석은 저승에서 날 평생 원망할 거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신성가 황태자로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다.”
“…….”
냉기가 묻어나오는 말에 이세희가 흠칫했다. 생각해보면 이 결정이야 말로 이영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판단과 행동이었다.
이영문이 쓰러져 있어 거기까지 행동에 옮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이세희의 패착이었다.
아니, 그것도 착각이다. 이영문은 자신의 방해물을 치워줬을 뿐이니까.
“내가 최대한 손을 쓰더라도 남은 잔재는 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네게 남은 과제다.”
“최선을 다할게요.”
“그래, 널 믿으마. 연애도, 실력도 다현이한테 밀리지 말고.”
“아…….”
믿음이 담긴 희미한 미소에 이세희는 탄식을 터뜨렸다.
평생 자식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떤 말이라도 꺼내고 싶었지만 목이 잠겨와 말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영문 회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난 그래도 행복한 회장이자 아버지로군.”
그로부터 얼마 후.
의료진과 이세희, 비서실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영문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 *
이영문 회장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가득 채웠다.
그 소란스러움은 어떤 정치인이나 초인보다 요란해서 신성그룹 회장이 갖는 위치에 대해 잘 알게 해줬다.
뉴스에서는 벌써부터 신성그룹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점이 맞춰진 것은 다음 회장으로 취임이 유력한 이세희의 존재였다.
아직 30도 되지 않은 20대 회장의 존재 덕택에 벌써부터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인 것은 누구도 이세찬의 죽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로군.
“그거야 전부 다 오빠가 죽인 걸로 알고 있거든.”
“누가 그런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다니냐?”
“소문을 퍼뜨리는 게 중요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라.”
“…….”
허위와 선동, 날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식이라는 말에 반박할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난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할 걸. 그냥 그렇다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포기해. 이미 사람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다 네 책임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그리고 따지고 보면 죽인 거 네가 맞잖아.]그렇기는 한데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인식이라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남을 죽이는 건 인간에게 큰 범죄인데 넌 그 기준을 적용받지 않으니 상황이 나은 거 아닐까?]그걸로 좋아하기는 싫은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아무튼 우리 회장님도 대단하단 말이야. 난 세희 언니가 그룹을 장악하는데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그걸 다 해치워버린 걸 보면.”
“그래도 방해요소는 다 치워놨지.”
“응. 하지만 자잘한 어려운 일들은 남아 있어. 말이 자잘한 거지 이것도 만만치 않을 걸.”
“만만치 않냐?”
“세금 문제도 그렇고 주식 같은 것도 문제가 꽤 산적해 있으니까.”
이영문이 직접 교통정리를 하고 이세찬도 죽은 시점에서 정통성은 이세희에게 있으나 그건 상징적인 부분일 뿐, 대한민국 체계에 있어서는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특히 지주회사 장악에 관한 문제가 중요하단다.
“여기를 확실하게 장악 못하면 계속 견제를 당하는 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 신성그룹 전문가가 된 윤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말 하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하긴, 누가 무심하게 도와주고 있는데 그 정도 견제쯤이야.”
의미심장한 눈길에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보였다.
그저 내게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주식을 모아놨을 뿐이다.
나머지는 이세희가 어떤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였다.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어떻게 확신해?”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뛰어넘는 자들이야. 아무 그에 대한 대비가 없을 리 없지.”
*
* *
이세희는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서 볼 틈이 없었다.
내가 도움을 주고, 이영문 회장이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었으나 여전히 이세희에 대한 의구심 섞인 시선은 있다.
무엇보다 이세희가 후계자가 된 기간이 너무 짧았다.
대한민국 특성상 재벌가 승계 준비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중에서도 약점으로 받은 것이 이세희 개인의 지분이다.
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경영권도 빼앗길 수 있겠지.
[제도란 게 이상하네.]용용이가 인간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로 볼 수 있지만,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이긴 했다.
그렇다고 큰 걱정은 없었다.
그동안 어련히 잘해온 만큼 알아서 잘 해낼 거라 믿어서다.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내가 도와주면 그만이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더라.
결국 돈이 문제인데 여차하면 내가 빌려줘서 해결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돈이란 게 참 좋네.]“좋지.”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세찬의 죽음과 이영문의 죽음으로 필요 이상 떨어졌던 신성 바이오 주식 상당량을 이세희가 획득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일말의 불안감마저 해소되면서 완벽한 이세희 체제가 구축되었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권력 획득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걸 보며 혀를 내둘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목적만 달성하면 됐지 뭐가 어때서?”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