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이영문의 안배와 내가 한 팔 거든 덕택에 이세희의 회장 취임 과정은 순조로웠다.
20대 중반의 여인이 재계 서열 1위 그룹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 마스터로 등극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방송에서는 대대적으로 이세희가 살아온 생애에 대해 보도했고, 외국에서도 각성자 강대국이자 빅뱅 시리즈로 세계 곳곳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의 신성 오너에 관한 정보를 보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다.
아무래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런 걸까.
무덤덤한 내 반응에 윤희는 약이 바짝 오른 기색을 보였다.
“당연하지! 신성그룹 회장이라고! 우리나라나 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오빠에 못지않을 걸?”
“갑자기 거기에 나는 왜 들어가냐?”
“그야 오빠도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오빠나 세희 언니나 이제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물이라고.”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되긴 한다.
나야 마물을 사냥하고 빌런을 죽이는데 특화되어 있지만 신성그룹은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니까.
“아무튼 오빠 덕택에 신성그룹은 편해졌어. 빠르게 개편될 걸.”
“아직도 의심하냐?”
“난 의심한 적 없는데?”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 몰아붙여놓고 발뺌을 한다고?
[맞아, 네 동생은 의심한 적 없어. 확신을 갖고 있을 뿐이지.]…말을 말자.
나는 자꾸 나를 의심하는 윤희를 피해 부모님 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해주는 된장찌개의 맛은 언제나 그렇듯 변함없이 맛있었다.
그래, 이게 과거로 돌아온 이유다.
분명 거기에 윤희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요리조리 날 갈구는 걸 생각하면 가끔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원래 여동생이란 게 이런 존재였지.
앞으로 내게 여동생에 대한 환상을 늘어놓는 녀석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아야겠다.
그 사이 거실에 틀어놓은 TV에는 한창 이세희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사방에서 난리네요.”
“당연한 말 아니니. 다른 누구도 아닌 신성그룹의 새로운 회장님이신데.”
“네 엄마 말이 맞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지. 그만큼 대단한 자리라는 거다.”
“그렇게 대단한 곳이니 두 분이 가진 것도 대단하다는 거네요.”
“당연한 말이다.”
“준호 네 말이 맞는데 이걸 진짜 가져도 되니? 난 잠깐 맡아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부모님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소재는 다름 아닌 신성그룹의 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오래 전부터 신성그룹의 주식을 모아왔고, 이걸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과 회사의 명의로 구매를 해놓았다.
그 과정에서 증여세 같은 세금이 발생했지만 더 큰 돈으로 막으면 그만이었다. 철저하게 합법 테두리 안에서 주식을 사들였고 그걸 부모님께 드렸다.
그 결과 부모님과 윤희는 신성그룹의 대주주가 되셨고, 나 또한 개인, 회사로 상당한 양을 보유하게 되었다.
“갖고만 계셔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네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누리면 됩니다.”
이것은 이세희를 향한 지지가 되었기에 회장으로 취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단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해도 되겠지.
하지만 엄마는 그거보다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럼 우리 집하고 신성그룹하고 가까워진 건가?”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
갑자기 부모님이 이상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이번에 도움을 주는 건 역시 특별한 마음이 있는 걸로 보여서 말이다.”
“그런 거 아닌데요.”
난 유용한 수단이 신성그룹이 마음에 들어서일 뿐, 다른 생각이 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랑해서 아니었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난 우리 준호가 나선 게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알았지.”
“그런 거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제거해준 게 아니고?”
“그런 거 아닙니다.”
“내가 듣던 거랑 얘기가 많이 다르네. 하긴, 우리 아들은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뭘 기대한 건지.”
어머니는 어딘가 많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뭡니까?”
“그야…….”
“자세한 이유를 알아야 준호도 대응할 수 있지.”
아버지는 나를 둘러싼 소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거다.
내가 이세희를 향한 감정 때문에 직접 나서서 이세찬의 숨을 거뒀단다.
아주 자기들끼리 로맨스 소설을 쓰고 앉았다.
게다가 내가 이세찬을 죽인 건 기본값으로 넣고 있다.
더 열 받는 건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우리 준호는 큰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래, 이해해.”
어머니에게는 이미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들을 기색이 아니니 참 갑갑한 일이었다.
“시기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식물인간이 되었어도 한때 유력한 후계자가 살아있다면 지금처럼 원활한 흐름이 나오지 않았겠지.”
“진짜 아니라니까요.”
“가족에게도 감추려는 건 훌륭한 행동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가볼게요.”
전혀 믿어줄 기색이 아니어서 난 짧게 인사를 남기고는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감정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에 대한 믿음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군.
하물며 가족들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는 해.]아무리 그래도 이세찬의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 과정에서 어떤 힘도 개입되어 있다는 흔적을 남긴 것이 없다.
말 그래도 자연사인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세찬을 죽였다는 말을 믿는 거 아닌가.
이래서는 길 가다가 걸려 넘어져 숨을 거둬도 범인이 나로 지목될 판이다.
[에이, 설마.]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하긴, 이렇게 사람을 찍어놓으면 편안해지는 건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 인간을 죽인 게 너인 건 맞잖아?]“…….”
[대체 왜 억울해 하는 거야?]*
* *
“최준호 초인님이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신성그룹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일이셨을 텐데도 힘을 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역시 내 공을 제대로 인정해주는 건 천명국밖에 없다.
“안정을 찾은 것치고 주식이 많이 떨어졌던데요.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괜찮습니다. 잠시 혼란이 찾아왔을 뿐이지, 곧 제자리를 되찾아 갈 것입니다. 오히려 오너의 건강이 좋지 않아 그동안 치고 올라가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그건 몰랐네요.”
“이세희 회장에 관한 의심은 있겠지만 오래 이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확실하게 검증된 능력이 있고 정부와 보조도 잘 맞기 때문입니다.”
“이미 얘기가 되어 있나보네요.”
“…신성그룹 정도 되면 정부와 긴밀한 협조는 필수입니다.”
천명국은 어딘가 켕기는 표정이었다.
저런 반응이 왜 나오는지 잘 안다.
높은 자리에 가진 사람일수록, 권력을 가질수록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한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신이 권력을 잃을 수 있다고 봐서 그런 거겠지.
“탓하려고 말한 건 아닙니다.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서 그런 거였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요. 서로 믿고 협력하는 관계인데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믿음직하네요.”
역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와서인지 천명국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기분이다.
불필요하게 의심하는 것도 없어 보이고.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역시나, 시뮬레이션의 힘은 대단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눈치 챘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해왔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난 천명국에게 이세찬의 자연사(?)가 내 소행으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무미건조한 표정이 내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흥미로움으로 가득했다.
“제 조언이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상황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
“초인님이 범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냥 너라고 아예 인정을 해버리는 거 같네? 어떡하나, 넌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거 같은데 저 인간 대통령은 기대를 완전히 날려버렸네.]기회를 붙잡은 용용이의 맹폭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천명국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이세찬 전무가 사망한 것이 자연사일 수도 있고 초인님이 손을 써서일 수도 있지만 그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의심한다는 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인님에게 굉장히 유리한 내용입니다.”
“나한테 유리하다?”
“사람이 죽은 일입니다. 그냥 사람도 아닌 한때 신성그룹 후계자였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었는데도 초인님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윤희와 부모님 외에 누구도 내게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도 이런 소문이 도는 걸 부모님에게 듣고 알았지.
“이미 초인님은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보는 것만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람. 설사 그것이 용서받기 힘든 범죄라고 해도 초인님에 한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집니다. 초인님은 누구도 갖지 못한 면죄부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른 의미로 들리기는 합니다.”
“제게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초인님이 어떠한 의도가 있었기에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 얘기에 흔들리지 마시길. 초인님은 지금 충분히 중심이 잡힌 상태이며 ‘예측 가능한 위험’으로 모두에게 안도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위험이래! 이게 무슨 소리래?]폭소를 터뜨리는 용용이와 별개로 나는 순순히 납득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는 걸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날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신, 거기에 안주하는 순간 나도 길들여지는 거겠지.
방심하지 말아야겠다.
*
* *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현상이었지만 천명국의 말은 내게 꽤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존재이기에 발버둥을 쳐봤자 무의미한 말로 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혈종이라는 희대의 빌런에서 정의로운 초인으로 돌아왔음에도 이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다니, 애석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네가 해온 행동을 보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그런 와중에 용용이는 태클이나 걸고 있고.
나는 신성그룹 일을 처리하느라 그동안 보고받지 못했던 내용을 듣기 위해 졸라맨을 찾아갔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음에도 녀석은 여전한 텐션이었다.
“이 나라는 정말 다이나믹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거 같아.”
“넌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잖아.”
“사람이 어떻게 연구에만 집중해? 이것도 관심을 갖고 저것도 가져보는 거지. 그나저나 신성그룹은 미국에서도 졸라 유명한 곳이야. 아마 미국에서도 졸라 신경 쓰고 있을 걸?”
졸라맨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 중요도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이야기였다.
왜냐면 졸라를 두 번이나 말한 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윤희가 모처럼 맞는 말을 했나보다.
“그래도 새로운 회장은 졸라 능력이 있으니 잘 될 거야. 이미 주식에서도 반응이 오고 있어.”
“너도 주식하냐?”
“몰랐어? 성진그룹 주식 구입한 외국인 비율 중 30%가 나야!”
“…….”
“아마 나머지 금액도 내가 강력 추천해서 한 발 앞서 들어갔을 걸?”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엄청난 금액이라는 건 알고 있겠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육체 개조에 매달리고 있을 줄 알았더니 투자에도 재능이 있었네.”
“노! 세상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해! 나 지금 졸라 실망했어.”
“아니면 말고.”
“시대가 달라! 방에서 연구만 하면 사악한 자본가들한테 졸라 뜯긴다고! 자유롭게 연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해! 그것도 졸라 많이! 그러니 재테크도 철저하게 할 줄 알아야 돼! 돈은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거든!”
그곳에는 주식에 눈을 뜬 자본주의 전도사가 있었다.
“더 많은 돈으로 더 다양한 연구를 하고 더 많은 연구원과 졸라 많은 대학원생을 부리는 거야! 돈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많게 해줘!”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언제든 날려먹을 수 있는 거 알지? 그때 되면 나한테 말해라. 난 너희가 말하는 사악한 자본가는 아니니까.”
“대신 머리가 날아갈 수 있지.”
“그래서 싫다고?”
“아니, 졸라 스릴 있어. 차라리 이게 나아.”
변태같은 녀석이다. 이러니 주변에 제정신인 사람이 남아날 수가 없지.
“연구 성과나 얘기해봐.”
“응, 우선…….”
졸라맨은 내게 그동안 거둔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고는 짧고 굵게 끝났다.
“결국 뭐 없다는 거네?”
“준호! 연구가 항상 졸라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건 그렇지. 그럼 분발해라.”
“하여간에 사람들은 우리가 기계처럼 결과를 척척 내놓는 줄 알… 응? 뭐라고?”
“앞으로 잘하라고.”
“어, 어어? 응, 알았어.”
“그럼 연구 이야기 말고 리그 이야기나 해봐.”
“아, 리그! 안 그래도 파티에서 얘기가 전해졌어.”
“뭔데?”
“현재 리그 세력은 전열을 정비해서 남미에 주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남미는 모리안의 세력권이고.”
모리안은 십대초인의 일원이자 파티에서 보낸 남아메리카 대륙 책임자라고 한다.
뭔 자기들이 책임자를 다 정해놓는군.
“설마 아시아 책임자나 대한민국 책임자도 있는 거냐?”
“그건… 하하!”
졸라맨이 어색하게 웃었다.
[정해놨네.]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아, 아무튼! 모리안은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야. 졸라 무서운 사람이야. 남미에서 리그를 막아 세운 일등공신이고.”
범죄의 온상인 남아메리카는 리그가 세력을 키울 수 있는 보금자리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리그 세력이 자리 잡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모리안의 존재 때문이다.
남미의 대부인 그는 리그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빌런들이 리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번 기회에 확실한 반격을…….”
졸라맨이 그리 말하려 할 때였다.
밖에서 다급한 기색을 띤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제임스! 급보입니다.”
“지금 얘기 중인 거 안 보여?”
“시급을 다투는 사안입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졸라맨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
내용을 들은 졸라맨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앞에서 나도 모든 걸 엿들었다.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던 것과 다르군.
“강하다며?”
방금 전 보고된 내용은 킹 모리안의 사망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