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이유 없는 어둠은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세상에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개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특별하다면서 내게 매달리고는 했지.
난 그때마다 듣지 않고 머리를 부숴버리고는 했다.
미쳐버렸던 혈종에서 정상으로 되돌아온 이후에도 그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주호의 표정이 어두웠던 건 단순히 천명국에게 붙들려서 혹사당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눈앞의 정다현 때문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삼촌이요? 저는 별로 얘기를 나눠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이유가 필요한가.”
“이유는 중요해요.”
“그래?”
“네, 그것이 사람 자체를 바꿔놓기도 하거든요. 절 보세요.”
“이해가 되는군.”
“그렇죠?”
정다현도 어떻게 보면 별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본래 정의를 수호하던 그녀가 빌런을 증오하고 마물 사냥에 모든 걸 바쳐 전념하게 된 건 뜻밖의 전개였으니까.
[아주 훌륭한 인간의 전형 아니야?]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스스로의 존재감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걸로 천재라 불리고, 나로 인해 생각이 바뀌게 되면서 별종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 별종 천재인가.
[아무리 들어도 그게 칭찬처럼 들리지 않아서 그래.]용용이 녀석이 아무리 폄하해도 내 말에는 칭찬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결코 좋은 게 아닌데 말이지.]“네 삼촌 이야기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
그렇다. 정주호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지금 중요한 건 정다현이 어떤 성과를 이뤄냈느냐겠지.
난 정다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한다, 초인이 된 걸.”
“아직 시험을 통과한 건 아니에요.”
“내가 보기에 초인에 모자라지 않아.”
그럼 초인인 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루아침에 초인이 되는 게 아니듯이.
“감사해요.”
오늘 본 정다현은 세상에 초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음을 증명했다.
저번 생과 비교했을 때 믿기지 않는 경이로운 발전 속도였다.
답답한 고지식이에서 사람을 만들어놨으니 흐뭇하군.
“이제 어디 가서 두들겨 맞지 않겠어.”
“아직 많이 모자라요. 초인이 된 걸로 만족하기에는 세상에 강자가 너무 많아요.”
“네 삼촌은 충분히 만족하는 거 같던데.”
“사람마다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삼촌은 지긋지긋한 탈모를 벗어난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괴로워하셨거든요.”
탈모의 고통은 정다현에게도 감출 수 없는 거였나 보군.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서 전혀 공감할 수 없지만.
[그럼 네가 탈모가 온다면 어떨 거 같아?]허튼 소리를 하긴.
그런 일은 절대로,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러니 헛소리 하지 말도록.
[너도 탈모는 싫구나?]지금 싸우자는 거냐.
[반응 한 번 격하네. 아니면 아닐 것이지.]툴툴대는 용용이 목소리를 흘려버리며 정다현에게 조언해줬다.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너도 마찬가지고.”
“저도요?”
“그래, 만족해버리는 순간 그대로 정체되어버리는 경우도 벌어지니까.”
“만족, 만족은 아직 아닌 거 같아요. 갈증이 있거든요.”
“그래?”
“네.”
정다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이뤘다고 생각해요.”
“초인이 된 걸 그렇게 말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러네요. 그럼 이제 된 건가요?”
“뭐가?”
“조만간 남미로 가게 될 오빠를 따라갈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요.”
[와, 얘도 미친 인간이랑 어울리더니 독해졌네. 진짜 따라오려고 초인이 된 거였어?]“…….”
예상치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
난 입을 닫았다.
*
* *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좀 들어줘도 되는 거 같아?]정다현의 부탁은 최종적으로 거절했다. 버서커조차도 데려갈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다현을 데려간다는 건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그리고 더 발전해야 하는 시점이고.”
[그 정도면 인간 중에서 충분히 최상위에 속할 텐데. 난 네가 너무 날 선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해.]“할 말을 했을 뿐이지. 정다현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발전할 수 있어.”
그동안 충분히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초인이 된 이상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그 인간이 바라는 게 그게 아닌 거 같은데.]아니면 어쩌겠나. 내가 바라는 건 그거인데.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함께 가지 못하는 대신 리그의 다른 거점을 공격해서 시선을 분산시켜달라고 말했다.
거듭 부탁하던 정다현은 결국 포기하고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걸 선택했다.
모두에게 행복한 엔딩인 것이다.
[걔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냉정하네. 하긴, 그 인간을 위해서는 그게 최선의 결정이긴 하지. 잘했어.]“그래.”
이거면 된 거다. 나도 정다현도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왜일까.
그토록 되기 힘들다는 초인이 된 것임에도 우리 모두 웃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참 피곤한 존재들이란 말이지.]걱정하지 마라, 인간만 그런 건 아니니까.
용용이 너도 충분히 피곤한 존재다.
내가 본 신수 중에서 네가 압도적인 1위더라.
[내가 뭐가 피곤해? 일찍이 이렇게 인간에게 맞춰준 신수는 없었다고!]그걸 자랑하고 싶다면 앞으로 좀 더 맞춰주면 된다.
근데 가능하냐?
[나 화병 나서 죽는 걸 보고 싶나보네.]인간도 쉽게 죽지 않는데 신수는 더 잘 버티겠지.
난 널 굳게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제발 걱정 좀 해줘!]한바탕 실랑이를 거친 뒤에 나와 용용이는 제임스 리드가 있는 한국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그 인간은 왜 그러지? 원래 자기 연구할 때면 네가 불러도 대답하지도 않잖아.]“할 말이 있다고 하던데.”
[의외네? 부르면 부른다고 순순히 갈 인간이 아니면서?]파티에서 새로운 제안을 가져왔다고 해서 들어보려고 할 뿐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들어봐야겠지.
내가 모는 차가 한국대 방향으로 향했다.
*
* *
제임스 리드는 고급정장으로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자를 바라봤다.
월가에서나 볼 법한 말끔한 차림새에서 강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횡행하는 귀계와 교활한 혀를 갖고 있었다.
초인이자 수완가이며 파티의 핵심적인 인재는 늘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탐욕스러워서 제임스 리드가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초맨.”
“리코 로이스.”
“편하게 리코나 릭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내키지 않아.”
“저런, 안타까운 일입니다.”
슬픈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고는 제임스 리드는 경계심을 키웠다.
원래부터 저런 남자였다.
상대를 자기 뜻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저 슬픈 표정마저도 이 상황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네가 이곳까지 올 이유가 있나?”
“겸사겸사였습니다. 마침 파티의 이익에 부합하기도 하고 마초맨이 한국에 눌러앉아 연구하려는 내용이 어떤 건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네겐 자격이 없다.”
“여전히 야박하군요. 서로 적당한 선에서 보여줄 건 보여주는 게 좋은데요.”
“내가 싫으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시길. 이번부터는 우리나 미국 정부나 이해관계가 밀접해지지 않았습니까. 제가 하려는 건 미국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호를 설득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
“소문이 자자한 인물을 보고 싶었거든요.”
“네 뜻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머리 좋고 실력 좋은 자들의 흔한 착각이다.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다.
제임스 리드는 진심을 담아 조언했지만 리코 로이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오면서 그 정도 신뢰 관계는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슬프군요.”
“준호에게 허튼 짓을 하려고 하지 마라. 이건 준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얘기하는 거다.”
“진짜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헤드 브레이커가 보고 싶었을 뿐.”
리코 로이스는 양손을 들며 자신의 결백을 말했다.
그 진실 되어 보이는 모습조차도 제임스 리드는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대신, 상대가 원하는 걸 뒤에서 살살 밀어드릴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역시나.
그는 이것을 위해 머나먼 한국에 온 것이다. 아마 팬텀도 옆에서 부추기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겠지.
그 정도로 눈앞의 남자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지. 난 경고했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습니까? 연구자 입장에서나, 미국 정부 지지자 입장에서나.”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말을 하는군.
역시 직접 마주하고 겪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되겠지.
늘 불안감을 동반하던 최준호와 만남도 이렇게 제3자의 입장이 되니 편안할 줄이야.
비틀린 제임스 리드의 입매는 버서커의 것과 흡사했다.
“난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지.”
*
* *
제임스 리드를 보러 왔는데 내 앞에 불청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헤드 브레이커. 저는 미합중국 소속 초인이자 파티의 일원인 리코 로이스라고 합니다.”
내 눈앞에 머리를 반듯하게 넘긴 금발 중년인이 인사를 건네오고 있다. 하는 행동에 우아함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유려한 행동이었다.
본인을 로이스라고 소개한 건 독일계라는 의미겠지. 실제로 겉모습만 보면 프란츠 영감의 아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독일인이 원래 그런 건가?
아무튼 썩 마음에 드는 녀석은 아니었다.
“최준호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오래 전부터 뵙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이제야 뵙게 되었습니다.”
말만 들어보면 날 열렬히 사모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하지만 이런 입에 발린 말은 사기꾼들이나 하는 거라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싶어서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러면 보통 무안해하던데 녀석은 그런 감정도 없는지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초인님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도움이라?”
“예. 이번 기회에 남미로 향하셔서 리그를 정리하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이걸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디 들어봅시다.”
“예.”
리코 로이스는 내가 남미로 향할 때 파티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리안을 통해 구축해놓은 남미의 거미줄 같은 인프라와 휴민트 등이었다.
사실상 몸만 오라는 이야기였다.
그게 거짓은 아닌 듯 졸라맨도 아무 반박 없이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희는 초인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아무 사심 없이 모든 걸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혓바닥을 잘 놀리는 녀석이로군.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할 거 같고.
“사심이 없는 거 같지는 않고.”
“예?”
“리그를 없애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게 파티일 테니. 대서양을 열고 남미를 차지한 리그가 사라지면 파티를 가로막는 적이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리코 로이스의 표정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가 봉합되었다.
아무리 입을 잘 놀리는 녀석이라고 해도 결국 본질을 들춰내면 지금 같은 반응이 나온다.
“하하, 자연히 따라오는 성과가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추후 재편될 세계 정세와도 관련 있는 일입니다. 파티는 헤드 브레이커의 친구이자 지지자로 전폭적인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역시나 파티였군.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자칭 세계를 지배했다던 그 정신 나간 자부심이 아니고서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없을 테니.
“파티에서 직책이 어떻게 됩니까?”
“과분하지만 대외협력 부문에서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내가 조직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하나는 안다.
대외협력이니 총괄이니 들어가면 실권은 녀석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파티에서 2인자란 이야기네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아닌 척 뒤로 물러났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눈치 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유형은 내가 마르고 닳고 상대해봤다.
자신이 이익 보는 것을 숨기고 타인의 이익을 강조하는 자들.
방금 말한 것 중에도 밝히지 않은 사실이 존재한다.
“리그가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파티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부분은 얘기를 안 하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와 리그의 공멸.”
빙빙 돌려봤자 결국 본질은 그거 아니겠는가.
내 지적에 녀석이 펄쩍 뛰었다.
“절대 아닙니다!”
“진짜 아니라고? 목숨을 걸고 대답할 수 있나?”
“초인님이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습…….”
잠깐의 침묵, 그 후 유려하게 흘러나오려는 말.
하지만 그걸로 의중을 파악하는 건 충분했다.
녀석이 가장 잘하는 설득을 하려고 할 때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공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