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최준호가 저택을 침공했을 무렵, 훌리우 아라우호는 아르헨티나의 유력 정치인인 막심 로베르토를 맞이하고 있었다.
현 부통령이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그는 훌리우 아라우호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도움을 구걸하는 그에게 적당한 가식과 적당한 대우로 대하던 차에 최준호의 습격을 전해들은 홀리우와 막심의 표정이 하얗게 변했다.
“헤드 브레이커가 이곳을 왜 와!”
“헤드 브레이커? 그 괴물이 왜 이곳에 온단 말입니까? 분명 상파울루에 있던 걸로 아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막심 로베르토의 목소리에 훌리우 아라우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12궁의 일원이기에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섭력한 그는 잘 알고 있다.
헤드 브레이커는 리그의 삼악마저 뛰어넘은 괴물 중 괴물이라는 것을.
행동에 거침이 없고 손을 씀에 있어 조금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폭탄이었다.
녀석이 브라질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안데스 산맥으로 향할 거란 확신이 있어서다.
듣는 귀가 있다면 헬 마스터가 더 큰 힘을 얻기 전에 서둘러 안데스 산맥으로 향할 거라 생각했고, 그 틈을 타 상파울루를 공략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훌리우 공?”
생각은 잠깐이고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부하들을 부르자 안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당장 짐 싸! 이곳을 뜬다!”
“잠깐, 훌리우 공. 이대로 가버리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뭐? 하!”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에 훌리우 아라우호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막심 로베르토는 그 속에 깃든 살기를 느끼고는 멈칫했다.
“무…….”
하지만 말을 끝맺지 못했다. 번개처럼 목을 낚아챈 훌리우 아라우호가 그대로 힘을 줘 목을 부러뜨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잠깐이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꿈꿨던 인물이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입맛 버리게 물고 늘어지고 있어.”
손에 튄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낸 훌리우 아라우호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의 옆에는 어느새 호위인 오스틴이 따르고 있었다.
“헤드 브레이커는 어디에 있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어느 정도로?”
“적어도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포기하는 것은 후퇴 상황에서 비행기와 지하통로 둘 중 하나를 이용하는 걸 말한다.
가장 효율적인 후퇴 수단인 비행기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날 수 있지만 눈에 너무 띈다.
“어쩔 수 없지.”
그 뒤로 더 도착한 호위들을 데리고 훌리우 아라우호는 저택 밖으로 나와 비밀통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두두두두!
저 멀리 경비행기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탈출 수단이면서 동시에 양동작전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끌 수 있겠…….”
쾅! 콰과과광!
훌리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수십 줄기로 이어진 포스가 경비행기에 적중하더니 산산조각을 냈다.
“…….”
믿기지 않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도 잠시, 헤드 브레이커란 녀석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상기하고는 훌리우 아라우호가 외쳤다.
“서둘러!”
하지만 그 발걸음은 오래 지나지 않아 멈추고 말았다. 저 앞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그들이 향할 길을 가로막고 있던 것이다.
“찾았다.”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다.
그 이면에는 진득한 살기가 질척거리면서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길거리에서 보면 잘생겼다 하고 지나칠 남자다.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존재감은 훌리우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려 들고 있었다.
이것이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힘.
거기에 압도된 훌리우가 신음을 흘렸다.
“…헤드 브레이커.”
“어, 나야.”
*
* *
역시 오랫동안 남미에서 자리 잡은 실력자란 말인가.
상대해보니 확실히 잔머리가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망치는 걸 위장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띄워놓다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걸 쫓느라 경계가 소홀해질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나한테는 조잡한 속임수에 불과했지만.
“왜, 왜 이곳에 온 것이냐!”
약간 통통한 체격의 남자가 내게 소리쳤다. 감출 수 없는 부의 흔적을 보아하니 저 녀석이 훌리우 아라우호였다.
엠페라도르라는 거창한 이명답게 걸치고 있는 장비나 들고 있는 무기 모두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녀석의 검은 내가 들고 다니던 누리에 비견될 정도고, 걸치고 있는 장비 또한 드라쿨레아를 가공한 코트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구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나저나 방금 이상한 질문이 들렸는데?
“초인이 빌런을 죽이러 온 게 무슨 이상한 점이라고?”
“내가 빌런이라고? 난 아르헨티나의 여당 상임고문이다.”
“그런 녀석이 리그의 12궁이라 불리지 않지.”
“내 고국을 지키기 위해서다! 리그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어!”
“그런다고 네가 리그에 가담한 게 사라지는 건 아니지.”
내 귀에는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되었다는 급의 황당한 소리였다.
“나와 손을 잡자! 내 위명이라면 널 최고로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 거 관심 없어.”
“이익! 그럼 왜 날 노리는 것이냐! 난 여기에만 조용히 있었을 뿐인데!”
“조용히 있긴,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더만.”
악을 지르는 훌리우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버서커가 늦는군.
녀석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나.
확실히 훌리우 옆에 있는 오스틴이라는 녀석은 뒤에서 실력자라고 알려질 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버서커가 탐낼 만한데.
내가 둘을 모두 처리해야 하나 싶었을 때였다.
“제 이름 부르니 바로 오는군.”
묵직한 힘이 담긴 섬전과도 같은 빛이 나타나더니 내 옆에 멈춰 섰다.
버서커였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군. 하마터면 맛있는 만찬을 모조리 뺏길 뻔했어.”
“누가 뺏는다는 거냐. 시간에 늦으면 맛이 없어지니 내가 먹겠다는 건데.”
“크크크!”
내 핀잔에도 버서커는 마냥 좋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녀석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오스틴이 꽤 손맛이 느껴질 실력자라는 걸 말이다.
내가 볼 땐 훌리우보다 더 손맛이 좋아보였다.
“꽤 쓸 만해보이던데, 네가 맡아.”
“기꺼이.”
*
* *
버서커가 본격적으로 오스틴과 맞붙기 시작했다.
한손에는 장도를, 한손에는 단도를 든 오스틴은 독특한 스타일로 버서커의 공격을 막아나갔다.
장도는 버서커의 공격을 봉쇄하고 단도로 화려한 공격을 펼쳐 상대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도록 유도했다.
쾅! 콰광! 콰과과광!
무시무시한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결 흐름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오스틴이라 알려진 녀석의 실력이 상당했다. 열세였다고 해도 블랙하운드와 맞선 버서커와 잠시나마 대등하게 맞서다니. 만약 훌리우 옆에 남지 않았다면 저 녀석이 12궁의 일원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변칙적인 스타일에 적응되면 버서커가 승기를 잡게 될 것이다.
미국 텍사스 출신이라고 했던가.
마리오가 어떻게든 생포를 부탁했다가 체념하던 게 떠올랐다.
미국에서 도망친 범죄자 출신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게 이상하긴 했지만 애초에 세상에 사연 없는 빌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저마다 사연이 있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기본 패시브다.
한껏 손맛을 보고 처리할 때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아마 저 녀석 때문에 훌리우가 12궁의 일원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난 주변 눈치를 보며 슬슬 움직이려는 훌리우에게 저격으로 탄환을 발사했다. 그래도 12궁 일원이라고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게 보였다.
그래봤자 그것뿐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녀석의 얼굴.
그 사이 대결 흐름은 버서커에게 기울고 있었다. 양손의 도로 변칙적인 공격을 이어나갔지만 거기에 적응한 버서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푸캉!
장도가 부러졌고, 현란한 단도의 움직임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버서커에 의해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기본적인 힘에서 밀리면 격차를 극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퍽!
“커헉!”
결국 단도마저 부러지고 칼등에 얻어맞은 오스틴이 피를 토하며 나동그라졌다.
버서커의 신형은 조금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녀석을 쫓았다. 그리고 대검을 들었다.
“자, 잠깐! 안 돼!”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버서커의 대검이 오스틴의 몸을 갈랐다. 세로로 갈라진 오스틴의 시체가 자욱하게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12궁이니 뭐니 해도 죽음은 이렇게 허망한 법이다.
버서커는 쏟아지는 피를 샤워기 물 맞듯 즐기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해외여행을 멈출 수 없단 말이지. 숨어있는 녀석들이 이렇게 많으니. 크크크.”
“만족했냐?”
“그래, 오랜만에 맛보는 변칙의 극치였다. 이 좁은 곳이 아니라 큰물에서 놀았다면 필시 지금보다 더 재밌는 대결을 벌였을 수 있겠지.”
“그거야 본인 선택이니 어쩔 수 없잖아.”
“그것도 그렇군.”
“그럼 이제 남은 녀석을 처리해볼까.”
내가 훌리우에게 시선을 옮기자, 녀석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호위들이 앞을 가로막아서 거슬리게 하길래 저격 탄환으로 모조리 목에 구멍을 뚫어줬다.
“컥!”
단발성 비명과 함께 우수수 쓰러지는 녀석들.
훌리우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협상하자! 원하는 게 뭐냐.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
녀석이 간절한 표정으로 내게 협상을 말했다.
상당히 늦은 거 같은데 말이지.
“난 너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쓸모가 있다. 난 모리안의 대체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너희에게 협력하면 이 혼란스러운 남미의 상황을 단숨에 안정시킬 수 있어.”
“그건 다른 애들이나 바라는 거고.”
나나 버서커는 남미가 안정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녀석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네놈이 지금 무슨 선택을 하는 건지 아느냐! 지금 이 시간에 리그는 네놈을 죽이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고 있다! 넌 가장 처참한 형태로 죽게 될 거다! 컥!”
살기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발악하는 녀석의 목을 틀어쥐었다.
값비싼 명검도, 튼튼한 장비도 무용지물이었다.
거칠게 바동거리던 녀석의 눈에 짙은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살려줘! 난 죽기 싫어! 아직 해나갈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브레인워싱을 사용했다.
거세게 저항하던 녀석의 눈이 풀리고, 나는 정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뽑아내려고 할 때였다.
브레인워싱에 거세게 저항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브레인워싱을 해제하지 못했다. 대신 브레인워싱에 대항하여 폭주를 일으켰다.
그리고 훌리우 아라우호의 머리에 폭발이 일어났다.
퍽!
머리가 사라진 채 피분수가 뿜어졌다.
이것이 리그에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방책임을 알았다.
피가 전신을 적시고 상황에서 난 입맛을 다셨다.
“손맛만 버렸네.”
결국 필요한 정보는 손에 넣지 못했다.
아니, 날 죽이기 위해 녀석들이 안데스 산맥에 숨어든 게 사실로 드러났으니 수확은 있는 셈인가.
“들어 보니 시간이 상당 부분 지체된 것 같다만.”
“전혀.”
고속비행을 얻은 이후,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다른 사람과 나의 시간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녀석들에게 늦었다고 하는 것도 내게는 전혀 늦지 않은 것이 되었다.
“바로 안데스 산맥으로 갈 거다. 따라올 수 있냐?”
“준비운동이 끝났으니 본 운동을 할 차례겠지.”
버서커는 바라던 바였다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미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군.
*
* *
12궁의 일원이자 남미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있던 훌리우 아라우호.
그의 죽음이 리그에 알려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도달한 블랙하운드가 아르고스를 보며 말했다.
“훌리우가 죽었다.”
“헤드 브레이커다운 행동이네.”
아르고스는 담담히 수긍했다.
모든 게 헤드 브레이커다운 모습이었다.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손을 쓰는 것과 수완 면에서 쓸모가 있는 훌리우 아라우호를 바로 처리해버리는 손속, 그리고 속도전에 접어들었음에도 눈에 거슬리는 것부터 치워버리고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그만 아니었다면 리그는 세계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헤드 브레이커만 없었다면.
“하지만 우리가 더 빠를 걸.”
아르고스를 상념 밖으로 끄집어내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에게 보인 것은 미소 짓고 있는 친구의 목소리였다.
“녀석만 죽이면 모든 건 정상화 돼. 내 꿈도, 네 꿈도 다시 이룰 수 있어. 그러니 고민하지 마, 알.”
“그게 가능할까?”
“가능해.”
강한 확신이 깃든 션 베일리의 말에 아르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없이 자유분방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있을 때는 어김없이 들어줬던 친구다.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닌 헤드 브레이커.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죽일 수 있는 션 베일리.
그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상대를 죽일 유일한 방법을 갖고 있다.
“찾았거든, 태양신.”
안데스 산맥이 꽁꽁 숨은 신수의 정수 위치를 마침내 파악했다.
씩 웃은 션 베일리는 몸을 돌렸다.
“가자, 헤드 브레이커를 죽일 기프트를 완성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