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
36화
36화
“국가수호국 특수팀장 노국철입니다.”
“최준호입니다.”
노국철은 내가 왕주열을 찍어내고 다음으로 팀장이 된 남자다.
왕주열이 앞에서 나대길 좋아하고 부하에게 이것저것 간섭하길 좋아했다면 노국철은 간섭을 싫어하고 조용히 자기 일을 처리하는 걸 선호했다. 대신 무척 깐깐하고 원칙대로 처리하려고 했다.
내 과거 상관이기도 했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지 않을 정도로 날 가만 놔뒀다.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팀장이다.
“저야 말로 잘 부탁합니다.”
“작전 개요는 보셨는지?”
“주요 포인트마다 반 단위로 나눠 배치하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빌런을 체포하겠지만 초인님의 명령대로 피해를 최소 하는데 집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번 빌런 조직 소탕 작전의 진행은 간단했다. 군소 조직이 협상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지점을 내가 습격한다. 체포는 하되 생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놈들은 리그로 인해 엉망이 된 인천일대 치안을 더 엉망으로 만들었기에 보이는 즉시 즉결처형이고 운이 좋아 살아남으면 체포한다.
주요 지점을 국가수호국으로 틀어막고, 그 외 범위는 인천 각 지역의 빌런대응팀이 맡을 것이다.
이걸로 주변 일대를 휩쓸던 오백이 넘는 빌런을 다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내가 난입한 방식은 간단했다. 회합이 이루어지는 폐건물 뒤의 산에서 포스로 계단을 만들어 옥상에 착지했다. 무지막지한 양의 포스가 드는 방법이지만 상관없었다.
옥상에서 경계를 서던 빌런들을 쓸어버린 뒤 문을 열고 내려가 그대로 우두머리들이 모인 곳을 습격했다.
누군지 볼 것도 없이 여덟 조직 보스와 호위하던 빌런의 목을 모조리 비틀어버렸다.
“헤드 브레이커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절대 대적하지 마! 도망치라고!”
폐건물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스를 얇게 펼쳐 모조리 튕겨내면서 나는 손에 닿는 빌런을 하나씩 죽였다.
난 살릴 생각 없이 손에 닿는 것 족족 갈가리 뜯어버렸다.
죽이는 빌런보다 도망치는 빌런이 많았지만 주변 도망칠 길은 국가수호국 헌터들이 점거한 상태였다.
나는 저항하는 빌런들을 죽이면서 폐건물 밖으로 나왔다. 자기들이 몰고 온 차에 타거나 짐을 챙기는 등,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죽어!”
미처 도망치지 못한 빌런이 총을 쏘기도 하고 자포자기 한 표정으로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놈들도 다 죽였다. 더 이상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 안을 포함해서 백 명 가까이 죽였다. 사지가 갈가리 찢긴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바닥을 적시는 걸 보다 나무 상자 위에 걸터앉았다.
피가 조금씩 말라붙을 무렵, 폐건물 주위로 국가수호국 헌터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난 선두에 선 노국철에게 물었다.
“얼마나 잡았습니까?”
“백 명 넘게 현장에서 사살하고 백 명 정도 체포했습니다. 나머지는 도망쳤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 죽이진 못했지만 빌런들에게 시달려 잔뜩 독이 오른 빌런대응팀의 손은 매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면?”
“죽은 빌런 중에 외국인이 있습니다.”
빌런을 죽이는데 내국인 외국인 구분할 이유가 있나? 어차피 빌런일 뿐인데.
“무슨 문제가 됩니까?”
“가끔 자국의 각성자를 죽였다며 딴죽을 걸 때가 있습니다.”
“빌런 짓을 해서 죽인 걸로도?”
“예.”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문제가 된다면 문제가 안 생기게 하면 되겠지.
난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은 건 전부 한국인입니다.”
“예?”
노국철은 물론 주변 헌터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이 죽으면 문제라고 했으니 죽은 사람을 전부 한국인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체포된 외국인들이 증언 할 수도 있고.”
“제가 전투 중에 한국말을 들었으니 한국인입니다. 만약 이게 납득되지 않으면 체포한 빌런을 전부 죽이면 됩니다. 그럼 주장할 수 없겠죠. 데려 오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난 노국철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먼저 굽힌 건 그였다.
“···초인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우리가 죽이고 체포한 빌런은 모두 한국인입니다. 그럼 뒷정리는 팀장님에게 맡기고 가보겠습니다.”
“예.”
특수팀에 현장을 맡겨두고 나는 현장을 벗어났다.
*
빌런 소탕 작전을 마친 그날 밤, 나는 멧돼지구이, 멧돼지김치찌개, 멧돼지수육 사진을 보낸 버서커에게 통화가 가능하냐고 톡을 보냈다. 그러자 녀석이 3초도 되지 않아 전화를 걸어왔다.
난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시킬 일 하나 있다.”
-뭐지? 누굴 죽이면 되나? 날 흥분시킬 수 있는 상대면 좋겠군. 눈에 거슬리는 빌런 조직이어도 좋다. 네가 흡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도록 하지.
“그런 건 아니고. 그 전에, 너 힘 조절은 잘하냐?”
-그건 왜 묻는 거지?
“힘 조절 되냐고.”
-어설프게 힘 쓰면 추격이 붙는다. 숙련된 빌런이라면 힘 조절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래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일 수 있지. 애초에 힘 조절도 못하면 수준미달 애송이 아닌가?
수준미달 애송이라 미안하군.
난 버서커의 업보를 고이 쌓아두며 용건을 밝혔다.
“지도 대련 좀 해라.”
-내가 지도를?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
“네가 적임자 같거든.”
-네가 시키는 일은 뭐든 하기로 했으니 받아들이겠다. 네가 가르치라고 했으니 보통 놈이 아니겠지. 마침 무료하던 참이니 재밌겠어.
무료한 것치고 제대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던데. 가끔 녀석이 보내는 사진을 보면 최고급 캠핑용품이 풀세트로 갖춰져 있었다.
오종엽이 말하길 캠핑 중독의 끝은 캠핑카라며 곧 그 단계로 넘어갈 거라던데 버서커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시간과 장소는 톡으로 보내지.”
난 통화를 끝낸 뒤 버서커에게 시간과 장소를 통보했다.
*
지도 대련 당일이 되었다.
“누군지 기대돼요.”
정다현은 밝은 표정으로 내 뒤를 쫄쫄 따라왔다.
움직이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챙겨 입은 그녀는 지도해줄 사람을 향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
버서커 그놈은 진짜 미친놈인데. 혹시 실망하는 건 아닐까?
기껏 지도해줄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됐다.
“일단 타.”
나는 정다현과 함께 경차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꽤 멀리 가네요? 수련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여기가 더 편한 인간이라. 저기 있군.”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릴렉스체어에 앉아있는 버서커가 보였다. 그 뒤에는 캠핑카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미 있었군.
차에서 내린 나와 정다현이 버서커에게 다가갔다.
“······.”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정다현의 표정이 굳어갔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반대로 정다현을 본 버서커의 표정은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내가 지도해줄 대상인가? 이런 어린양일 줄 몰랐는데. 꽤 재밌겠어.”
“오빠, 이 상황은······.”
“호오, 오빠라고?”
버서커 이 자식이 나를 본다. 보는 눈빛이 재수 없어서 눈알을 빼내고 싶었다.
“한창 때로군. 풋풋해서 보기 좋아.”
“······.”
정다현은 대답 대신 의문 섞인 시선으로 날 봤다.
“버서커는 마음을 고쳐먹고 날 돕기로 했다. 국장님도 알고 계신 사실이고.”
“난 최준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 난 녀석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내 몸과 영혼을 다 바쳐 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
저 미친놈은 괜히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었다.
“버서커는 미친놈이지만 실전경험이 풍부한 실력자다. 네게 도움이 될 거야.”
레벨 8 측정 대련 때도 그랬지만 내겐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고 대련해주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윤희처럼 저레벨이면 가능하지만 정다현의 레벨은 6이라서 적당히가 어려웠다.
혈종일 땐 그냥 다 죽이면 됐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내가 정신을 붙잡고 있는 거겠지.
갈등하는 정다현에게 말했다.
“빌런에게 배우는 게 내키지 않으면 안해도 돼.”
“아니요.”
어느새 감정을 수습한 정다현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버서커가 악행을 저지른 빌런과 다른 종류 빌런인 건 알고 있어요. 아직 이해하기 어렵지만 레벨 8인 초인과 대련해볼 기회를 놓칠 수 없죠. 해볼게요.”
“좋아.”
나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버서커에게 다가갔다.
“나는 대련만 해주면 되는 건가.”
“그래.”
“대가는 없나? 공짜로 부려먹기만 하는 건가?”
“뭐 받고 싶나?”
“아무거나 상관없다.”
“······.”
“참고로 난 네 제안을 받고 땅끝마을에서 올라왔다.”
왜 거기까지 가 있었냐.
뭐라도 줘야 된다는 생각에 난 잠시 고민하다가 녀석의 완전회복이 소멸된 게 떠올랐다.
“줄 거 생각났다.”
“기대되는군.”
“네가 얻을 수 있는 기프트를 알려주마.”
“······!”
녀석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감정 표현 풍부하기는.
“알지 내 능력?”
“갑자기 의욕이 생기는군.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찾아봐야 할 줄 알았는데. 대련은 어느 정도로 하면 되나?”
“죽음이 생각날 정도로.”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
“트라우마에 잡아먹히면 거기까지겠지. 자비없이 몰아붙여. 죽이지만 않으면 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준이군. 알겠다.”
버서커의 광기 어린 미소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기회를 성장의 발판으로 사용하느냐는 정다현의 몫이었다.
*
대련은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버서커는 정말 정다현을 죽일 것처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버서커의 대검이 대기를 찢어버릴 때마다 여파에 휘말린 정다현의 머리칼이 허공에 우수수 날아가곤 했다.
포니테일로 묶었던 머리끈이 잘려 산발이 되었지만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릴 틈도 없이 버서커의 검에 감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쓸모 있어.”
버서커는 내 주문에 충실히 임했다. 정다현을 향한 공격에 짙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걸 마주한 정다현은 전력을 다해 반응해야 했다.
안 그러면 죽을 테니까.
모든 걸 쥐어짜낸 순간이야 말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제법인데? 과연 내 모든 걸 바칠 상대가 신경 쓰는 여자로구나!”
“저 입을 찢어놓을까······.”
제멋대로 날뛰는 버서커의 주둥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정다현의 손발이 점점 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한계에 봉착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부터 한계 그 이상의 여력을 쥐어짜내지 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직감의 활용, 그 이상의 건너편을 봐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토대 위에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
“됐군.”
완전히 잡념이 배제된 정다현은 기프트를 발동한 채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감이 개화를 하여 통찰로 넘어가는 단계다. 정확히 말해 직감의 두 번째 단계다. 정다현은 버서커의 기세, 미세한 움직임만 보고 예지에 가까운 미래를 그려 간신히 피해냈다.
“오! 오오오! 좋다!”
버서커가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다현의 분전은 거기까지였다. 버서커가 완급조절을 통해 변초와 허초를 섞자 감각이 교란된 정다현은 다섯 번도 버텨내지 못한 채 튕겨나갔다.
“이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더 할까?”
“딱 좋아. 수고했다.”
“나야 주인님의 명대로 따랐을 뿐.”
난 못 들은 척하고 정다현에게 다가가 회복제를 내밀었다.
잠시 후, 정다현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방금 그 감각을 기억해둬. 네가 레벨 7에 도달하려면 그걸 자유자재로 활용해야 하니까.”
“네, 고마워요.”
“쉬고 있어. 난 버서커랑 얘기 좀 할 테니까.”
정다현을 쉬도록 둔 나는 버서커에게 다가갔다.
“그럼 정산을 할까.”
“좋다.”
“너도 저번에 겪어서 알겠지만 나는 피에 새겨진 기프트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내 완전회복이 뺏겼지.”
“이걸 응용해서 피에 새겨진 기프트 정보도 알 수 있어. 저번엔 네 기프트를 복사하느라 못 봐서 다시 피를 봐야 돼.”
“난 좋다. 시작해라.”
버서커가 가슴을 쭉 폈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이 미친놈은 대체 내 어딜 보고 믿는 거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상대의 믿음을 시험할 정도로 못된 놈은 아니었다.
내 손가락이 녀석의 심장 옆을 파고들었다. 두 번이나 부쉈다보니 위치도 정확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자 피가 흘러내렸다. 난 회복제를 뿌린 뒤 녀석의 피를 섭취했다.
피에 새겨진 정보를 읽던 나는 인상을 구겼다.
“야이, 미친놈아.”
“왜 그러나.”
“대체 마물의 피랑 고기를 얼마나 처먹은 거냐.”
“그런 것도 나오나? 마물의 신선한 피로 만든 선지는 훌륭한 식재료지.”
“거시기는 왜 먹어!”
“정력에 좋다고 들어서.”
미친 새끼. 쓸 곳은 있으시고?
녀석은 마물을 먹으면서 독기도 빼내지 않았나보다.
얼마나 독을 처먹었으면 마물의 특성과 독성에 대한 기프트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중 정점의 기프트가 만독불침이었다. 모든 독과 상태 이상에 버텨낼 수 있는 최강의 패시브 기프트다.
그리고 버서커의 피에 만독불침이 새겨져 있었다.
이 전설의 기프트를 내가 보게 될 줄이야.
“······.”
갖고 싶다. 탐났다.
버서커를 향한 내 눈이 욕심으로 타올랐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녀석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더니 어깨를 움츠렸다.
왜 저래?
“···살려다오.”
“뭐가?”
“어떻게 하면 살려줄 수 있나?”
“누가 잡아먹는데? 너 안 죽여. 안 뺏어.”
그래도 좀 아쉬웠다.
내가 입맛을 다시자 버서커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조용히 정다현 뒤에 섰다.
갑작스러운 버서커의 행동에 정다현이 몸을 움찔 떨며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버서커도 옆으로 이동해서 정다현 뒤에 섰다.
“너 뭐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