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혈종과 협약을 맺은 뒤 나는 의식 세계 밖으로 나왔다.
[왔다.]아니나 다를까, 용용이가 사료 냄새 맡은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살랑살랑 맴돌았다.
[심상 세계에 다녀온 거야?]“어.”
[얘기가 잘 됐나봐.]그게 느껴지나? 역시 신수다운 눈치였다.
[기척이 감지 돼. 설렘이 담긴 기척이야. 네 의도가 누구보다 불순한데…….]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렇고 혈종도 언제든지 서로가 서로를 속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속은 놈은 바보가 되고, 속여서 이득을 취하면 그것이 곧 승자다.
아마 녀석도 내 뒤통수를 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다.
당연하지만 나도 뒤통수를 칠 생각이고.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으니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나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읽은 용용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너희 인간들의 관계라는 건.]이게 바로 우정이라는 거다.
[진짜? 내가 알고 있는 그 우정이 이런 거야?]우정이라는 단어가 꼭 긍정적으로 쓰일 의미는 없는 법이니까.
어찌 되었든 혈종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내 목적과 별개로 녀석이 기프트 자아들을 휘어잡고 전투를 지원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여벌의 목숨 역할까지.
이쯤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동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관계야.]나는 심상 세계로 넘어간 짧은 시간 동안 다소 어색해진 몸을 풀며 걸음을 옮겼다.
아르고스와 헬 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과거 잉카의 유적으로 알려진 ‘태양신의 궁전’이라는 곳이다.
과거 잉카의 타완틴수유는 태양신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영위해나갔다.
그곳에서 신화로 전해지던 태양신이 신수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독특한 신수였어.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거든. 그 힘이 너무나 강대해서 등장만으로 주변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서 두문불출 한다는 말이 있어. 조용히 자기 영역을 지켜나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소멸할 줄은.]용용이도 태양신을 본 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존재만으로 주변의 모든 걸 불태워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헬 마스터가 이걸 집어삼키면 지금보다 월등한 힘을 보유하게 되겠군.
[기프트가 신수에게 부여받은 거라면 보완을 해야 할 거야. 널 죽이기 위해 진심인 거네.]경고하듯 내게 말했지만 결코 나쁜 흐름은 아니었다.
나 또한 바라던 바였으니까.
“근데 헬 마스터가 갖고 있는 기프트는 어떤 신수로부터 비롯된 거냐?”
[아마 죽음을 관장하는 신수였을 거 같은데.]“이름은?”
[나도 몰라.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거든.]몇 가지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뭔가 단서가 될까 싶었는데 역시 용용이 녀석은 도움이 안 된다.
[억울하네.]“보통 인간이 신수의 정수를 발견하면 바로 취할 수 있나?”
[불가능 해. 그걸 받아들이는 것, 소화시키는 것, 자기 힘처럼 발현하는 것 모두 별개의 작업이야. 아마 발견해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걸? 너도 알면서 왜 물어봐?]그래, 용용이 말대로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혹시나 해서 한 번 점검해본 것이다.
“발견했더라도 그걸 제대로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겠어.”
나는 그 틈을 노려 상대를 공략하고.
애초에 신수의 정수라는 것이 소화하기 버거운 불량음식이라는 걸 알고 선택한 것이다.
“가볼까.”
*
* *
“헤드 브레이커야. 그리고…….”
“왔네. 그보다, 괜찮아, 알?”
헬 마스터는 하얗게 질린 아르고스를 보며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르고스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더니 두 눈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인즈가 죽었어.”
“…….”
헬 마스터의 입이 닫혔다. 블랙하운드 하인즈는 아르고스가 가장 힘들 때부터 옆에서 보좌해온 남자다.
과묵하면서 부담이 될 무수히 많은 임무를 완수해온 실력자.
유일하게 아르고스의 곁에 서면서 리그의 위계를 세웠던 것이 블랙하운드였다.
죽는 그날까지 강건할 것 같던 거목이 쓰러졌다.
션 베일리에게 있어 블랙하운드는 귀찮은 잔소리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녀석이 있었기에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며 신수의 정수를 찾으러 다닐 수 있었다.
세상에 나와 믿을 수 있던 몇 안 되는 상대. 아르고스와 함께 곁에 둘 수 있는 친구였다.
자연히 헬 마스터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인즈를 죽인 녀석은?”
“버서커.”
“그 이름, 기억해두겠어. 헤드 브레이커를 제거하면 다음으로 죽는 건 녀석이다.”
늘 미소를 짓던 그가 맹세했다. 그리고는 핏기가 사라진 채 혼란스러워하는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알, 너는 이곳을 벗어나.”
“션, 헤드 브레이커를 죽일 거야?”
“죽여야지. 죽일 수 있어.”
“신수의 정수를 완전히 흡수한 게 아닌 걸 알아. 그리고 헤드 브레이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먹음직한 미끼를 입에 물 때까지 기다리다가 빈틈을 포착하여 사정없이 후벼 파는 것이 헤드 브레이커의 방식이다.
“그럴 줄 알고 소화 가능한 양만 취했지. 이곳은 내 전장이야. 넌 더 큰 꿈을 위해 이곳을 내게 맡겨.”
“알았어.”
아르고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그 뒷모습을 쫓던 헬 마스터는 자신에게 다가올 재앙의 존재감을 감지하고는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도 날 죽이고 싶었던 건가.”
인간을 초월해버린 절대강자와 인간을 초월한 존재마저도 죽일 수 있는 자신.
둘 중 서 있게 되는 건 누구일까.
그게 자신임을 헬 마스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돼, 헤드 브레이커.”
잠시 후, 태양신의 사원 안으로 헤드 브레이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내가 태양신의 사원 안에 진입할 때만 해도 느껴지던 기척은 두 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기척 모두 사라지더니, 내 앞에 모습이 드러난 것은 하나뿐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청년과 중년의 단계에 걸쳐 있는 잘생긴 남자였다.
“아르고스는 어디에 있지?”
“네 상대는 알이 아니라 난데.”
“빼돌렸군. 도망친 건가.”
“도망이라니, 대계를 위해 전략적 후퇴라고 해줘.”
도망이라는 단어가 발작 버튼인가보다.
펄쩍 뛰는 녀석을 보며 난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걸 도망이라고 한다.”
“…….”
여유가 묻어나오던 헬 마스터의 얼굴에 균열이 번져갔다.
그것도 잠시,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예의 여유를 덧씌웠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이젠 내가 상대해주지.”
이런 유형의 빌런들이 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여유를 가져야만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먹혀들지 않고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
살려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구두라도 핥으라면 핥겠다며 복종의 자세를 취하곤 하지.
“그 전에 방해꾼부터 치워야 할 거 같은데.”
헬 마스터의 시선은 내 옆에 있는 용용이에게 고정되었다.
[어? 내가 보여? 신기하네.]“신수의 정수를 찾아다니던 하이에나인 내가 몰라볼 리가. 이런 누추한 곳에 고귀한 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돌아가셔서 결과를 소식으로만 듣길.”
[잠깐…….]용용이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헬 마스터의 손에서 쏘아진 붉은 기류가 닿자 그대로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신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고 해도 신수인데 그걸 감지해서 손을 쓰다니. 놀라웠다.
무엇보다 헬 마스터의 손에서 쏘아진 붉은 기류가 거슬렸다.
“그게 네 기프트인가.”
“아주 사소한 응용이지. 그걸 우리 헤드 브레이커에게 보여주다니 부끄럽군.”
그 이면에 짙은 자신감이 깔린 게 느껴졌다.
내가 볼 땐 재수 없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신수의 정수를 들이켜 기프트는 완성했고?”
“보여줄까?”
“얼마든지.”
나와 헬 마스터 사이에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
* *
[보통 녀석이 아니다. 저번 생에도 리그에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 다닐 수 있었던 건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용용이가 사라져서 조용해지겠다 싶었더니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혈종이었다.
놈은 저번 생에 헬 마스터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리그의 삼악이지만 리그에 얽매이지 않는 자. 리그에서는 녀석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했다.]빌런으로서 악명보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엉뚱한 곳에 나타나 이따금씩 무지막지한 무위를 보여주던 것이 헬 마스터의 정체성이었다.
세계 정복을 노리는 빌런 집단의 수뇌부라는 이미지와 달리 악행을 저지른 것도 없고.
미국 정치인들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블랙하운드나 파티에 치명상을 입힌 아르고스와 비교하면 헬 마스터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내가 한국 리그 지부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언제고 한 번 부딪칠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 난 녀석이 강자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놈은 강자가 아니라 신수의 정수에 관심이 있는 거였어.]당연하게도 한국에는 신수의 정수가 없으니 헬 마스터의 관심 밖인 지역이었다.
굳이 리그의 삼악을 찾아 나설 생각이 없지만 한 번쯤 붙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혈종의 바람은 그렇게 무산되고 말았다.
‘나와 비슷하다고 했지.’
헬 마스터에 대한 정보를 받아봤을 때,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파티에서 오라클(Oracle)이라 불리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아르고스나 미국의 빈틈없는 살인병기로 불린 블랙하운드는 리그로 뭉치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를 울리던 유명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헬 마스터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혜성처럼 나타나 파티 소속의 십대초인이던 ‘미스터 화이트’를 제거하고 십대초인이자 리그의 삼악 자리를 꿰찼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그 속에서 빛나는 재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다른 초인들과 전혀 다른 등장 방식이었다.
“궁금하긴 한데.”
어떤 방식으로 세상의 이목을 피해 강해진 걸까. 나처럼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닐 테고.
그 사이 나와 헬 마스터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녀석의 표정과 다르게 내 몸, 내 기세, 내 생각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읽어내어 한 방 먹이겠다는 기색이 뚜렷했다.
이 지루한 대치는 내 취향이 아니지. 난 손을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며 동시에 저격을 발동, 포스 탄환을 헬 마스터에게 발사했다.
파앗!
아래에서 위로 튀어 오르는 포스 탄환이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쏘아지는 순간, 녀석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포스 탄환이 그대로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녀석이 검을 휘두르자, 나 또한 손에 기뢰를 두르고 맞부딪쳤다.
콰앙! 콰직! 콰지직!
음습한 붉은 기류와 금빛 기뢰가 얽혀들며 무시무시한 폭발을 연이어 일으켰다.
포스는 충만하고 잘 제련되어 있었다. 헬 마스터의 움직임 또한 기계적으로 상대를 말살하는 블랙하운드와 달리 한 분야에 통달한 무술가와 같았다.
여태 상대해온 각성자와 전혀 다른 유형이라서 흥미를 자극했다.
“좀 더 어울려볼까.”
헬 마스터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간 나는 손에 기뢰를 두르고 녀석의 팔을 잡아채려고 했다.
오히려 녀석도 물러서지 않고 맞부딪치면서 충돌을 일으켰다.
쏴아아악!
손끝을 모아 칼날폭풍을 시전하자 녀석의 허리가 뒤로 90도 가까이 꺾였다.
기계와도 같던 블랙하운드와 달랐다. 조금 전 공격에 섬뜩함을 느꼈을 법한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담담하게 내게 손을 뻗었다.
전체적인 실력은 블랙하운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프트가 없으면 더 특별할 것이 없는 건가.
즉사 기프트 발동이 쉽지 않다는 걸 용용이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고작 이 정도면 실망인데.
그 순간, 본능이 강렬한 경고를 보내왔다.
어찌나 강렬했던지 상황을 판단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붉은 기류가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큰 피해 없이 받아냈던 기운이다.
지금 저 붉은 기류에서 절대적인 죽음의 향기가 났다.
이것이 헬 마스터의 기프트 ‘즉사’였다.
실패했지만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깝네.”
“개수작을 부리는군.”
그런데 왜일까.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그거, 더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