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육체를 통제하는 주체가 달라졌다.
혈종은 언제고 최준호의 육체를 다시 차지할 순간이 올 것임을 굳건히 믿었다.
그걸 위해 존재감을 완전히 지운 채 지내기도 했고, 때때로 녀석의 협력자이자 조언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은 위장.
이런 같잖은 걸로 녀석이 자신을 믿을 거란 순진한 발상 따위는 해본 적 없다.
오히려 이걸로 자신을 편히 여기고 사용하려 든다면 어느 순간 경계가 풀리거나 약해지는 순간에 기회가 올 걸 노리고 있었다.
녀석의 경계가 상당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 미쳤다고 비난하면서 스스로는 제정신인 줄 알고 기고만장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고.
하지만 이런 형태로 육체를 되찾는 건 아니었다.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었지만 혈종은 웃을 수 없었다.
“이 자식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그리고 분노.
육체의 통제권을 갖게 되는 순간, 혈종은 자신이 최준호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녀석은 자신이 육체를 차지하지 못하게 막고 있으면서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육체의 통제권을 바꿔놓을 수 있던 것이다.
이게 가능할 것임을 혈종은 간과하고 있었다. 최준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만약의 가능성마저 배제했던 것이다.
왜 하필 지금이겠나.
당연하게도 즉사 기프트를 보유한 헬 마스터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속아줘서 고맙다.]“…….”
툭 던진 한 마디에 혈종은 속이 뒤틀렸다.
“네놈이 그런다고 해도 내게 방법이 있다.”
헬 마스터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난 혈종은 곧장 고속비행을 시전하려고 했다.
기프트 사용할 때 나타날 틈을 헬 마스터가 놓치지 않을 테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사태를 수습할 생각이었다.
여기에서 최소한의 피해는 죽지 않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기프트인 고속비행이 발동하지 않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변에 당황할 때 최준호의 이죽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걘 내 밑에 있는 녀석인데 말을 듣겠냐.]당연하게도 훼방을 놓은 것은 최준호였다.
[네가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다. 저 녀석을 죽여. 그럼 너와 했던 약속을 지켜주지.]“네가 날 죽이려 하는 걸 모르는 줄 아나.”
[죽이다니, 너라면 더 잘할 거라며?]“그래서 이런 개수작인가.”
[판을 깔아줘도 난리로군. 언제부터 그렇게 약한 녀석이었냐? 이건 네놈이 활개 친 것에 대한 내 은혜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봐.]“내가 죽으면 네놈도 죽는다.”
[그걸 내가 믿을 거라 생각했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네가 죽으면 나도 내장 몇 개가 뜯겨나가는 타격을 받겠지. 그것만으로 충분히 목숨이 위태로울 테고. 그래서 뭐?]최준호의 음성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것이다.
대체 언제? 어느 순간부터?
혼란스러워하는 혈종의 귓가로 최준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살고 싶으면 놈을 죽여. 대화는 그 후에 하도록 하지.]“네놈!”
혼자서는 죽지 않는다.
손을 든 혈종이 손을 들어 스스로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섬전처럼 쏘아진 손이 당장이라도 목을 꿰뚫을 것 같았지만 목전에 멈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허, 손장난은 하지 말아야지? 자, 저 녀석을 죽여.]“…개자식이.”
결국 혈종은 헬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마주설 수밖에 없었다.
*
* *
혈종에게 육체 통제권을 넘겨주고 심상 세계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뭐라고 해야 할까.
저번 생에 숱하게 봐온 더러운 경험을 다시 하는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은 경험.
녀석에게 육체를 빼앗겼을 때 난 무력했다. 놈은 내가 원하지 않은 살육을 벌이며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일상과 멀어졌다. 과거로 돌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녀석에게 육체를 넘겨주는 일이 벌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오롯이 내 통제 아래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렇다.
상황은 비슷해도 받아들이는 감정은 저마다 다른 법이다.
특히 표정이 일그러진 채 헬 마스터의 즉사 기프트에 대응하려는 혈종을 보고 있으면 수십 년 묵은 원한이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이제 녀석이 죽기만 하면 완벽할 거 같다.
현재 내 심정은.
[이런 게 자동사냥이라는 건가.]내가 직접 움직일 때만큼 효율을 보여주는 걸 자동으로 실행하는 기분이었다.
헬 마스터의 대응 방법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면 녀석도 알고 있을 테지.
지금 저 상황에서 맞이할 결과가 어떤 건지 말이다.
무조건 죽는다.
나도 혈종이라는 여벌의 목숨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있게 뛰어들었지만 아무 대책 없이 달려들었다면 녀석의 즉사 기프트에 완벽히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일이었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뭐, 남의 일이라서.
물론 혈종이 죽으면 나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기생충처럼 내게 달라붙어 영양분을 갈취하던 만큼 강제로 뜯어낼 때 큰 피가 흐르겠지.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녀석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하는 일은 녀석이 이 자리를 탈출하려는 시도를 통제하고 자해하려는 걸 막아서는 것.
오직 헬 마스터만 충실히 상대하도록 도와주는(?) 일뿐이다.
[제기랄! 제기라알!]분노가 실린 녀석의 욕설이 내게 감미롭게 들려왔다.
곧이어 피할 수 없는 헬 마스터의 죽음이 혈종에게 선사되었다.
오랜 악연의 끝이다.
*
* *
마침내 완벽한 죽음이 선사되었을 때, 헤드 브레이커의 움직임이 고장 난 인형처럼 삐끄덕거리더니 이내 멈춰 섰다.
그리고 빠르게 생기가 빠져나갔다.
헬 마스터, 션 베일리는 멈춰 선 헤드 브레이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를 죽이기 위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환희가 서렸다.
“…성공이다.”
괴물 중 괴물, 세계최강이라 불리는 초인이 즉사 기프트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완전히 생명 반응이 멈춘 것을 확인한 헬 마스터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었다.
녀석은 재앙이었다.
신수에게 부여받은 권능임에도 잠시나마 녀석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절망감을 경험했다.
그것은 신을 모독하는 게 분명함에도 헤드 브레이커는 그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이제 끝났어.”
헤드 브레이커는 죽었다.
비록 리그의 주축을 이루는 전력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아르고스가 건재하다. 그럼 무너졌던 꿈을 다시 재건할 수 있으리라.
비록 자신이 죽더라도.
하지만 헤드 브레이커를 죽이기 위한 대가였던 만큼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헬 마스터는 헤드 브레이커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시체는 리그가 다시 한 번 세계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선전도구가 될 것이다.
그때였다.
두근!
멈췄던 심장의 거센 박동이 울려 퍼졌다.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을 미세한 소리였지만 헬 마스터에게 천둥 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환청이 아니었다.
한 번 뛴 심장은 두 번 뛰고, 세 번 뛰더니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믿고 싶지 않은 악몽을 떠올린 헬 마스터는 경악성을 터뜨리며 헤드 브레이커에게 달려들었다. 온전한 녀석의 시체로 선전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사라졌다.
확인사살을 할 것이다. 녀석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다시 꿰뚫을 것이다. 한 번이 아니고 수십 수백 번,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놓일 때까지 반복해서 확인사살을 가할 것이다.
먼저 거세게 뛰고 있는 심장을 부숴버리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그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헤드 브레이커의 눈이 뜨이더니 헬 마스터의 손을 낚아챘다.
주르륵.
다시 생기를 띤 최준호의 칠공에 피가 뿜어졌다. 녀석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녀석은 기쁜 듯 웃었다. 최악의 상태일 것임에도 기쁘게 웃는 기괴한 모습에 헬 마스터는 섬뜩함을 느꼈다.
“고맙다, 네 덕에 우환을 해결했다. 나도 피해가 꽤 큰 거 같지만.”
피와 뒤섞여 섬뜩한 빛을 띠는 눈이 헬 마스터를 훑고 지나갔다.
“이제 네 쓸모는 끝났다.”
*
* *
내가 헬 마스터의 즉사 기프트를 보면서 세운 가설이 다시 하나 적중했다.
녀석의 즉사 기프트는 총량이 존재했다. 그 양이 맞춰짐에 따라 ‘죽음’이라는 것이 완성되지, 닿는 즉시 죽어버리는 만능은 아니다.
신수에게 부여받은 권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하여 몇 가지 조건 충족을 통해 죽음을 완성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퍼즐 조각을 전부 사용하면 그림을 만들 퍼즐이 존재하지 않듯, 헬 마스터는 혈종에게 죽음을 내림으로써 보유한 퍼즐 조각을 소모한 상태였다.
나도 혈종이 죽음으로써 치명상을 입은 상태지만 패닉에 빠진 녀석보다 더 나은 상황이었다.
이럴 때 완전회복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버서커 녀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아가면 알뜰살뜰 갈궈 줘야겠다.
즉사 기프트를 발동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헬 마스터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 또한 전신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내게 압도된 녀석은 끝까지 저항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네놈만은 데려가고 싶었는데…….”
“누구에게나 그럴 듯한 계획은 있는 법이지.”
나도 녀석도.
그리고 둘 다 목적을 이뤘다.
단지 헬 마스터는 내가 아닌 내 탈을 쓴 혈종을 죽였던 것이고, 나는 헬 마스터를 죽였고.
내가 좀 더 섬세하고 철저했을 뿐이다.
난 녀석의 심장에 손을 박아 넣었다. 폭발적인 기뢰가 녀석의 심장을 비롯한 내부 전체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곧 네 뒤를 많은 녀석들이 따라갈 테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
숨이 끊긴 헬 마스터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나는 어떻게 보면 과거로 돌아온 이후 날 가장 고전하게 만들었던 적을 보다가 내 상태를 살펴봤다.
“하.”
이런 부상은 처음이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온몸에서 비상경종을 죽어라 울려대고 있었다.
내장의 일부가 뜯겨 나간 것처럼 기능이 떨어졌고, 전신의 뼈가 뒤틀리고 균열이 일어났다.
특히 눈, 코, 입, 귀에서 끝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초재생이라는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이건 초재생으로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완전회복이 그리워졌고, 버서커를 쥐 잡듯이 잡아야겠다는 내 결심은 확고해졌다.
“회복에 전념해야겠어. 이런 모습을 봐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미국 정부도, 파티도, 용용이도 말이다.
나는 헬 마스터의 시체를 두고 조용히 태양신의 궁전을 벗어났다.
*
* *
리그가 멸망!
남미에서 대대적으로 궐기한 리그 소탕 작전은 대외적으로 미국 정부와 남미 각국, 헤드 브레이커와 버서커가 힘을 합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드 브레이커는 헬 마스터를, 버서커는 블랙하운드를 제거함으로써 명성을 떨쳤고 이 큰 그림을 주도한 미국은 자국 영토만이 아닌 외부로 힘을 투사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널리 알렸다.
여전히 아르고스가 살아 있지만 리그 소탕 작전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으며, 직접적인 무력을 보유하지 않은 특성상 큰 위협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각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바로 리그 소탕 이후, 최준호의 실종 부분에 대해서다.
워낙 물밑에서 활동을 많이 하던 인물이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났을 때 하나둘씩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었고, 최준호와 관련된 사람들도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그때도 그러려니 했다.
헬 마스터라는 난적을 상대했으니 부상이 클 수도 있으니까.
태양신의 궁전이라 불린 곳에서 헬 마스터의 시체만 남겨두고 떠났을 때, 최준호가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피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여러 가지 추측이 뒤섞이면서 리그라는 강적이 사라진 곳에 조금씩 새로운 혼란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